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39
1339회. 제가 ‘혼란의 선봉장’이라고요?
“하아! 어째 바무트 백작의 말장난에 내가 당한 것 같군. 라고아 백작, 미안하게 됐네.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내 스스로 손발을 묶고 말았으니…….”
킬리언 헤일 공작이 탄식하자 엘리오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 정도로 몰리지는 않았습니다.”
“라고아 백작이 그랜드 마스터라고는 하나 방심하지 말게. 강철 군단은 제국군 최강의 부대일세. 바탈리온 부대의 엑시티움은…… 육체를 가진 존재라면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궁극의 병기라네.”
“알고 있습니다.”
“백작은 마검사니 요령껏 활동할 테지만……. 바탈리온 부대 역시 소드마스터와 고위 마법사를 상대로 한 전투 경험이 많네. 특히나 최근에는 총사들을 대거 영입하기까지 했지. 엑시티움과 총사의 조합이면 육화(肉化)한 신조차 죽일 수 있을 걸세.”
“…….”
“제국군 정보부에서 강경하게 나오는 이유도 거기에 있네. 강철 군단에 당장 움직일 수 있는 바탈리온 부대가 있다 이거지.”
“페로무로스는 어쩌고요?”
“그건 원정군 총사령관인 황태자의 뜻에 달려 있네. 페로무로스 점령이 먼저냐, 백작의 체포가 먼저냐를 두고 고민하겠지.”
“공작님은 황태자가 어떤 결정을 내릴 것 같습니까?”
“모르겠네. 총사령관이니 당연히 페로무로스부터 점령할 거라고 생각되지만……. 제국군 정보부를 보내 백작을 자극한 걸 보면 아닌 것도 같고.”
“조용히 ‘혼란의 선봉장’을 찾으려 했는데……. 갑자기 일이 꼬였네요.”
“다른 곳에 가서 ‘혼란의 성봉장’ 이야기는 하지 말게.”
“왜죠?”
“백작을 ‘혼란의 선봉장’이라 말하는 사람이 나올 것 같아서 그러네.”
뜻밖의 말에 엘리오가 황당한 얼굴로 되물었다.
“제가 ‘혼란의 선봉장’이라고요?”
“백작의 적들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당장 총사령관인 황태자와 강철 군단 군단장인 스타우런 후작이 백작과 충돌하면 전황은 손쓰기 어려울 정도로 꼬이고 말 걸세.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혼란의 원인으로 백작을 지목할 수도 있네.”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라 엘리오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괜히 자신으로 인해 ‘혼란의 선봉장’을 찾는 일이 꼬이면 안 되니 공작의 말에 따르는 게 나은 것 같았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자 엘리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킬리언 헤일 공작도 착잡한 얼굴로 보기만 할 뿐 그를 잡지 않았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혹시라도 제국군 내에 이상한 조짐이 보이면……. 제게 알려 주십시오. 당분간 미노스에 머무를 예정입니다.”
미노스는 램지 마을에서 가까운 도시다.
엘리오는 그곳에서 라르바 오마르 백작 등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알겠네. 그리고…… 가급적 황태자와는 충돌하지 않도록 하게. 한순간의 감정으로 그를 건드리면 자칫 제국의 적이 될 수도 있으니.”
제국이 작정하고 나서면 엘리오 라고아 백작은 하루도 편히 살 수 없을 터였다.
어쩌면 바탈리온 부대에만 지급되던 엑시티움을 제국군 총사들에게 뿌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기사와 마법사 들이 지배하던 세계도 끝이다.
바탈리온 부대가 견고한 둑에 난 작은 구멍이라면, 총사들에게 지급된 엑시티움은……. 둑을 터뜨리는 것과도 같은 효과를 가져오리라.
엑시티움이 총사들에게 보급되면, 영주만 돼도 다른 이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된다.
아니, 오히려 그때부터는 모든 기사와 마법사 들이 ―엑시티움을 손에 쥔― 영주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다.
거기까지 생각한 킬리언 헤일 공작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엘리오는 킬리언 헤일 공작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슬그머니 자리를 떠났다.
밖으로 나가자 조금 막막한 감정이 밀려왔다.
우샤스 운드라를 찾기도 바쁜데 황태자와 스타우런 후작에게 발목이 잡힐 판이다.
과거 같았으면 터럭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을 테지만, 바탈리온 부대가 문제다.
엑시티움으로 무장한 바탈리온 부대는 자신에게도 큰 위험이었다.
‘하아! 쉬운 일이 없다니까.’
천자마(카마 데비아스)를 죽였을 때만 해도 곧 가족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금사(우샤스 운드라)를 찾는 일도 예상보다 어렵지 않았다.
평탄하게 잘 흘러가던 일이 어비스부터 격랑으로 바뀌었다.
본의 아니게 신들의 비밀을 알게 됐고, 전쟁에 휘말리기 직전이다.
그렇다고 바탈리온 부대가 두려운 건 아니다.
몸 안에 깃든 구천검령들이 자신의 죽음을 방관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는 치료든, 호신이든, 절체절명의 순간 구천검령들이 무슨 수를 낼 것이라 믿었다.
얼마 전 파비안이 루나 마일러스가 헌신적으로 치료하지 않았다면 죽었을 것처럼 말할 때, 오해라고 한 것도 그래서다.
자신은 물론 루나 마일러스도 구천검령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구천검령이 다른 사람에게는 파괴적이지만, 자신에게는 일종의 선침(仙針) 역할을 한다.
자신에게 구천검령은 살리는 검이다.
사기를 내쫓고, 막힌 경혈을 뚫어 주고, 생기를 북돋워 준다.
엑시티움에 몇 번 데였지만 두렵지는 않다.
왠지 엑시티움에는 죽을 것 같지 않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터덜터덜 걷는 엘리오를 뒤에서 누군가 불렀다.
“엘리오 백작님!”
귀에 익은 음성에 돌아보니 애슐리 넬슨 남작이었다.
굳어 있던 엘리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애슐리 경.”
달려오느라 힘들었는지 애슐리 넬슨 남작은 잠시 숨을 골랐다.
이윽고 호흡이 안정되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오셨다는 말씀 듣고 달려왔어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네. 애슐리 경은 어때요? 강철 골렘 때문에 코르보 마법 병단도 피해를 입었다고 들었는데. 괜찮아요?”
“기사들 중에 사상자가 조금 나왔지만 단장님께서 용단을 내려 주셔서, 더 큰 피해 없이 잘 빠져나왔어요.”
“킬리언 헤일 공작님이 용단을 내렸다고요?”
“네, 다른 마법사들 같았으면 체면 때문에 기사들이 다 죽을 때까지 버텼을 텐데……. 단장님은 마법 공격이 통하지 않자 바로 후퇴를 명령하셨어요. 덕분에 최전방의 기사들을 제외하고 모두 무사할 수 있었죠.”
“최전방 기사들은 강철 골렘에게 당한 건가요?”
“네, ‘죽음의 빛’에…….”
“강철 골렘의 눈에서 나오는 붉은 빛이 그렇게 무서운가요?”
“네, 강철로 된 방패는 물론 중갑도 두부 자르듯 잘라 버려요. 녹인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죽음의 빛은 모든 걸 잘라요. 그러니 백작님도 나중에 강철 골렘의 붉은 빛을 보면 무조건 피하세요. 방패나 칼 따위로 막으려 하지 마시고요.”
“그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네요. 명심하겠습니다.”
엘리오는 속으로 ‘강철 골렘의 붉은 빛을 조심해야겠다’고 되뇌었다.
강철 골렘이 티탄족의 유물이니 붉은 빛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할 터였다.
“어비스로 가셨다는 소문은 들었어요. 어비스는 어떻던가요?”
그러자 엘리오가 되물었다.
“아카데미에서 어비스에 대해 가르친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네. 어비스를 연구한 교수님들이 기사와 마법사 들에게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쳐 줘요. 지리적 특성과 생태, 마수와 마물의 종류와 대처법 등 같은 거요.”
“그럼 한 달에 한 번씩 밖으로 나갸야 한다는 것도 아시겠네요?”
“네. 어비스에 오래 머무르면 사람이 조금 난폭해진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그런가요?”
어비스에 가 본 적 없는 애슐리 넬슨 남작의 눈이 반짝였다.
천공성과 어비스는 세계의 2대 신비라 불리니 그럴 만도 하다.
“어비스의 대기는 땅 위와 다르더라고요. 어비스가 땅 밑에 있다는 건 아시죠?”
“어비스의 입구가 노천 광산 아래에 있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런데 어비스도 지하에 있었나요?”
“…….”
순간 엘리오는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어비스 입구가 땅 밑에 있어서 어비스도 지하에 있으려니 했다.
그런데 어비스가 지하에 있을까?
어비스의 밤과 낮을 떠올려 보면 그게 얼마나 이상한 소리인지 알 게다.
“아, 제가 착각했네요. 당연히 지하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겠네요.”
“네에, 교수님들도 어비스에 대해서는 알면 알수록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여하튼 어비스의 공기는 땅 위와 달라요. 그곳에는 어둠의 에테르가 녹아 있어서……. 마나로 가득 찬 땅 위 세상과 정반대예요.”
“어비스의 공기에 어둠의 에테르가 녹아 있다고요? 와아! 저 그런 소리는 처음 들어요. 그런 건 아카데미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그녀의 말에 엘리오는 ‘아차!’ 했다.
어비스를 만든 게 악신 샤이틴이라 그렇다는 걸 말하다 보면 이단적인 발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속도 모르고 애슐리 넬슨 남작은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엘리오는 대충 이야기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어비스에 오래 머무르면 사람이 조금 이상해진다고 하더라고요.”
“어비스에 왜 어둠의 에테르가 있는 거예요? 혹시 그래서 지하라고 생각하셨던 건가요?”
그녀의 말에 엘리오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맞아요. 탁하고 음습한 기운은 가라앉으니까. 지하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영기 수련을 하셔서 기운에 예민하신가 봐요. 저는 ‘마나의 축복’을 받아서 그런 데 좀 둔감하거든요. 혹시 페트라 산의 광산도 둘러보셨어요?”
“물론 가 봤습니다.”
“어머! 그래요? 그러시다면 강철 골렘이 출토되는 광산도 가 보셨어요? 남부 왕국에서 거기까지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죠?”
그러자 엘리오가 턱을 치켜들고 짐짓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쉐이드 왕국이 소유하고 있던 페르돔 광산에 들어가 봤습니다. 물론 쉐이드 왕국이 패망하기 전에요.”
“그러시면, 혹시 강철 골렘이 출토되는 것도 보셨어요?”
애슐리 넬슨 남작은 숨까지 참고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녀의 그런 모습에 문득 루나 마일러스가 떠오른 엘리오는 피식 웃고 말았다.
“왜, 왜요? 제 질문이 조금 이상했나요?”
“아니요. 궁금한 걸 못 참는 누군가가 떠올라서요. 강철 골렘은 완성체로 발견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강철 파츠’라고 불리는 조각들이…….”
엘리오는 페르돔 광산의 저장소에서 자신이 목격한 것을 들려주었다.
***
코르보 마법 병단을 떠난 제국군 정보부 참모들은 곧바로 페로무로스 북부에 주둔하고 있는 강철 군단으로 돌아갔다.
그곳에 정보부 특별 수사 본부가 설치되어 있는 탓도 있지만, 그보다 강철 군단 군단장인 테오 스타우런 후작을 만나기 위해서다.
강철 군단 지휘 본부.
칼 바무트 백작이 강철 군단 군단장 테오 스타우런 후작에게 그간의 경과를 ―보고하듯 서류까지 참조해 가며 자세히― 들려주었다.
“……라고아 백작은 모든 혐의를 인정하였으나, 압송은 거부한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후작 각하와 황태자 전하께 불경스러운 언행을 내보였습니다.”
칼 바무트 백작은 노련한 대귀족답게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발언을 그대로 전하지 않았다.
당사자 면전에서 그런 말을 꺼내 봐야 기분만 상하기 때문이다.
“그자가 뭐라고 했기에?”
후작의 질문에 칼 바무트 백작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개소리 말아라, 나를 건드리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다’는 등의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테오 스타우런 후작은 크게 역정을 내지 않았다.
“그자가 북부에서 한 언행과 비교하면 수위가 약하군. 하기야 북부 왕국과 제국은 다르니까. 조금쯤은 몸을 사리기로 한 모양이지?”
칼 바무트 백작은 속으로 ‘그럴 리가요’라고 중얼거리며 결정적인 말을 덧붙였다.
“너무 기가 막힌 발언이라 이것까지는 말씀드리지 않으려 했는데……. 그는 자기를 건드리면 바탈리온 부대는 물론, 스타우런 후작님과 황태자 전하도 죽이겠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