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42
1342회. 또 보게 될 일 만들지 마요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질문을 테오 스타우런 후작은 조롱으로 받아들였다.
순간 ‘울컥!’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고 애써 무덤덤한 얼굴로 답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구려. 제국군 정보부의 조사보다 더 정확한 것은 없소. 스콜피언 중대는 금은보화가 적국으로 유출되는 현장을 급습했고, 그것을 방해한 사람이 라고아 백작 일행이오. 라고아 백작은 심지어 임무 수행 중인 스콜피언 중대를 몰살하기까지 했소.”
“아! 강도 행각이 제국군의 임무인 줄은 몰랐네요. 강도 짓 하다가 처맞아 죽은 아들의 죽음을 미화하는 아버지의 눈물겨운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제국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라고아 경 한 사람뿐이오. 역사는 스콜피언 중대를 ‘전쟁 중에 친남부 왕국 연합의 그랜드 마스터에게 살해당한 불쌍한 제국군들’로 기억할 거요.”
테오 스타우런 후작은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그런 어린아이 같은 후작의 태도에 엘리오는 피식 웃고 말았다.
너무 근엄한 얼굴이라 표정만 봐서는 진심인지, 그저 반대를 위해 하는 말인지 알기 어려웠다.
엘리오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테오 후작님.”
“내 이름은 테오 스타우런이오. 굳이 부르고 싶다면 스타우런이라 불러 주시오.”
테오는 이름이고 스타우런이 성이다.
그리고 이름은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부르지 않는 게 예의다.
그래서 테오 스타우런 후작은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호칭을 바로 지적했다.
하지만 엘리오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알았어요, 테오 후작님. 스타 어쩌고가 길어서 입에 붙질 않네요.”
“스타우런 후작이라 불러 주시오.”
테오 스타우런 후작도 고집스럽게 날을 세웠다.
참모장 커트 바르트너 자작이 당황한 얼굴로 후작과 백작의 눈치를 살폈다.
마음 같아서는 ‘무례하다!’ 호통치고 싶었지만, 상대가 그랜드 마스터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건 후작의 좌우에 늘어선 다른 참모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때 같았으면 진즉에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상대는 마족 군주들보다 강하다고 소문난 그랜드 마스터.
손에 엑시티움이 장전된 마력총을 들고 있지 않는 한 눈 마주치기도 두려운 존재라, 다들 굳은 얼굴로 상황을 주시하기만 했다.
“아무튼 그건 중요하지 않고. 테오 후작님, 나한테는 말이죠. 진실을 말하게 만드는 몇 가지 기술이 있어요. ‘힘줄을 나누고 뼈를 어긋나게[分筋錯骨]’ 한다거나, 정신 마법을 건다거나 하는 거죠. 효과는 완전 만족이에요. 알고도 모른 척? 그런 일 없어요. 자기 마음속에 있는 은밀한 욕망까지 술술 털어놓는다니까요. 어때요? 테오 후작님. 내가 여기서 한번 사용해 볼까요? 진짜 몰라서 그런 개소리를 하셨는지, 알고도 나를 물 먹이려고 그러신 건지.”
“…….”
순간 회의실이 침묵에 잠겼다.
황태자의 최측근이자 강철 군단 군단장인 테오 스타우런 후작에게 고문과 정신 마법을 사용하겠다고 하다니?
참다못한 커트 바르트너 자작이 버럭 소리쳤다.
“라고아 백작님! 그건 지나친 발언이십니다! 아무리 라고아 백작님이 그랜드 마스터시라 해도! 강철 군단 군단장님에게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러자 엘리오가 참모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신, 이름이?”
“강철 군단 참모장 커트 바르트너 자작입니다.”
“조금 전에 후작님이 하신 말씀 들었죠? 역사는 스콜피언 중대를 ‘전쟁 중에 친남부 왕국 연합의 그랜드 마스터에게 살해당한 불쌍한 제국군들’로 기억할 거라는.”
“……들었습니다.”
“참모장이면 당신이 정보를 취합해서 우리 테오 후작님에게 보고했겠군요. 말해 봐요. 테오 후작님이 진실을 몰라서 그런 병신 같은 소리를 한 건가요? 아니면 알고도 나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그런 건가요?”
“…….”
커트 바르트너 참모장은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노려보았다.
어떤 걸 선택하더라도 후작에게 모욕적이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곤경에 처한 참모장을 구한 건 테오 스타우런 후작이다.
“그랜드 마스터가 좋기는 좋구려. 후작에게도 고문과 정신 마법을 사용하겠다고 하니. 나는 오늘의 일을 결코 묵과하지…….”
“닥치세요.”
엘리오가 간단하게 후작의 말을 막았다.
아까부터 노기를 꾹꾹 참았더니 몸에서 사리가 생길 것 같았다.
참모장과 참모들은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말투가 사나워지자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테오 스타우런 후작조차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눈치를 살필 정도였다.
“스콜피언 중대장인 후작의 아들에게 직접 들었어. 페로무로스 인근 마을을 약탈하고 주민은 싹 다 죽였다더군. 몇 번이나 그랬냐니까 열 번을 넘긴 뒤로는 세지도 않았대. 그래서 죽였어. 죽은 놈이 후작의 아들이 아닌 다른 중대장이었으면, 당신도 나를 물고 늘어지지 않았겠지. 아닌가?”
이를 악물고 듣던 테오 스타우런 후작이 답했다.
“그대는 약탈이라 말하지만 그것은 징발이다. 원정군 총사령관이신 황태자 전하께서 현지에서의 징발을 명하셨다. 그 과정에서 적국의 마을 몇 개를 날렸다고 제국군 중대를 살해한 것은! 총사령관인 황태자 전하와, 제국에 대한 중대한 도발이다!”
“아들이 한 짓을 알고 있었다는 고백으로 해석해도 되지?”
“그래 알고 있었다! 전쟁 중에 적국의 마을을 없앴다고 제국군 중대를 살해하다니! 그러고도 그대가 제국의 백작이라 할 수 있나!”
“제국 백작이 뭐 대단한 거라고. 당신 조상들은 뭐 태어날 때부터 후작이었는 줄 알아?”
“…….”
“좆도 아닌 것들이 후작이네, 황태자네, 거들먹거리기는. 젠장. 당신들 조상들도 처음에는 죄다 헐벗고 굶주린 주민이었다고. 어쩌다 선조들이 ‘마나의 축복’을 받고 나서 지금의 그 자리까지 올라온 거잖아. ‘마나의 축복’을 빼면 당신들이 살해당한 페로무로스 인근 주민들과 뭐가 다른데?”
천박한 라고아 백작의 욕설에 테오 스타우런 후작은 기가 막혔다.
북부의 야인 출신이라더니 과연 저급한 인간이다.
다른 건 몰라도 제국의 후작가를 적국의 주민과 동일시하는 건 참아 줄 수 없었다.
“제국의 귀족들은 그대의 말에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마나의 축복’이야말로 선택받은 자들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마나 프트라스가 당신들을 선택한 것은 맞아. 하지만 그건 당신들이 특별해서 그런 게 아니야. 당신들은 단지 마나 프트라스를 대신해서 악신 샤이틴과 싸울 사람으로 선택된 것뿐이라고. 그러니까 당신들만 인간이고 다른 사람들은 개돼지인 것처럼 말하지 마. 당신들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저 용병일 뿐이야. 돈 대신 ‘마나의 축복’을 받은.”
“이젠 반역을 넘어 신성 모독적인 발언까지 하는군.”
“됐고. 당신도 아들이 한 짓을 안다니까 ‘힘줄을 나누고 뼈를 어긋나게’ 한다거나, 정신 마법을 건다거나 하지는 않을 게.”
“합법적인 징발 과정에서 마을 몇 개를 없앤 게 죽을죄는 아니지.”
“와, 씨발. 대가리를 열어 보고 싶네.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지. 목격자 앞에서 아들의 범죄 사실을 자기 좋은 쪽으로 각색하는 거야?”
“각색이라고? 그대야말로 착각하지 마라. 나는 단지 론디니움 제국에서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라고 말한 것뿐이니까. 오히려 그대의 반역적 발언과 신성 모독이 더 큰 죄다.”
“알았어. 반역은 좀 빼자고. 제국의 백작 반납한다니까? 내가 제국과 관계가 없는데 왜 자꾸 반역이래? 붙일 말이 없으면 앞으로는 ‘적대적’이라고 해 줘. 이후로 나는 당신 때문에 제국의 작위를 반납했다고 할 거야. 무슨 뜻인지 알지?”
테오 스타우런 후작은 라고아 백작이 모든 걸 자신의 탓으로 돌리자 흠칫했다.
하지만 이미 황태자도 그를 처리하기로 한 터라 반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술 더 떠서 작위 반납을 공식화하기로 했다.
“그대에게 그럴 용기가 있나? 지금 제국 백작의 작위를 반납하면 곤란해질 텐데.”
“야아, 잔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그래, 머리는 당신이 굴려야지. 그게 맞는 거지. 작위증을 반납하면 되겠어?”
엘리오는 마하담에서 제국 백작의 작위 증명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이미 그가 마검사임을 알고 있던 후작과 참모들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테오 스타우런 후작이 참모장에게 눈짓하자, 참모장이 재빨리 작위 증명서를 챙겼다.
이윽고 테오 스타우런 후작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황제 폐하의 재가가 떨어지면 그대에게 통보해 주지.”
후작은 속으로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대화가 끝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엘리오가 문득 후작과 눈을 맞췄다.
“미리 말해 둘게. 나는 이 웃긴 전쟁의 향방에 관심이 없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를 건드리면 당신은 먼저 간 아들과 만나게 될 거야.”
“명심하지.”
테오 스타우런 후작의 태연한 반응에 엘리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꼭 관을 봐야 눈물 흘리는 자들이 있다.
파비안이 살살 하라고 해서 참아 줬더니 후작 행세를 톡톡히 하려고 한다.
“다 자기 팔자대로 사는 거지. 나 갑니다. 부탁인데 또 보게 될 일 만들지 마요. 나라고 좋아서 사람 죽이는 거 아니니까.”
테오 스타우런 후작은 남의 일인 것처럼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최후의 경고마저 먹히지 않자 엘리오는 어깨를 으쓱해 보인 후 돌아섰다.
그가 떠나자 테오 스타우런 후작은 거칠게 탁자를 뒤엎었다.
쿠당탕―!
자리를 지키고 있던 참모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후작의 안색을 살폈다.
테오 스타우런 후작이 바탈리온 부대장을 향해 힘주어 말했다.
“현장 지휘관에게 전해라. 놈이 미노스에 돌아오는 즉시 작전을 시행하라고.”
“예!”
바탈리온 부대장 크라노 바넥 자작은 후작의 분노 앞에 자세를 바짝 낮췄다.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맡기자’는 말은 입안에서 맴돌다 스르륵 녹아 없어졌다.
***
페로무로스 동부.
미노스.
강철 군단을 떠난 엘리오는 그날 바로 미노스의 샬레(남부의 산장)로 돌아갔다.
홀로 저녁 식사를 마친 그는 적적한 마음에 밤 산책을 나갔다.
따라다니며 떠들어 대던 파비안이 없으니 허허로웠다.
이래서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고 하나 보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파비안과 수련하던 산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지난밤 꿈속에서 파비안이 죽은 자리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건만 진짜인 것처럼 가슴이 먹먹하다.
육신통으로 경험한 미래라 그런 모양이다.
그의 입에서 날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이세계는 개판이다.
마족은 인간을 가축으로 대하고, 귀족은 평민을 개돼지로 여긴다.
신들의 세계도 만만치 않다.
창조신으로 알려진 마나 프트라스는 사실 침략자고, 악신 샤이틴은 창조주다.
신들의 전쟁에 인간이 휘말렸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몇 안 된다.
문득 묘한 생각이 들었다.
‘가만, 이렇게 되면 악신 샤이틴이 천자마(카마 데비아스)와 금사(우샤스 운드라)를, 마나 프트라스가 나를 이용한 거라고 봐도 되나?’
그래서 우샤스 운드라처럼 자신도 ―결과적으로― ‘혼란의 선봉장’ 노릇을 한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때, 밤공기를 가르며 붉은 빛줄기들이 날아들었다.
쐐애애액! 쐐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