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41
1341회. 답해 봐요. 어느 쪽이에요?
파비안은 이제 와 떠나라는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인간이 발을 디뎌 본 적 없는 타메이온과 천공성, 심지어 어비스의 미개척지까지 엘리오 라고아 백작과 동행했다.
그런 일들에 비하면 남부 왕국의 여행은 물 마시는 것처럼 쉬웠다.
비록 아드리아 왕국이 제국과 전쟁 중이기는 하나 엘리오 라고아 백작과 자신의 검술이면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떠나라니?
그건 지금보다 더 위험천만한 곳으로 갈 때도 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나에게는 ‘여섯 개의 마법적인 능력[六神通]’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어쩌다 미래를 보여 주거든.”
“그, 그래서요?”
“미노스에서 네가 죽는 걸 봤다.”
“죽었다고요? 라고아 백작님과 함께 있었는데도요?”
“그래.”
그러자 파비안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어떻게요?”
“가까이서 마력총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엑시티움 수십 개가 우리에게 날아들었어. 그리고 내가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너는 죽고 말았지. 나와 함께 미노스에 있으면 너는 죽을 거다.”
“마력총 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요?”
“엑시티움이 날아들기 전에는…… 듣지 못했어. 그 후로는 엑시티움을 피해 다니느라 나도 확인할 경황이 없었고.”
“총사가 동원됐나 보네요.”
“총사?”
“총사는 1킬로미터 밖에서도 조준 사격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거기다 마력총에 소음기까지 달았다면 소리는 들리지 않았을 겁니다.”
“소음기는 또 뭐냐?”
“취미로 마수 사냥을 다니는 대귀족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마력총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해서 만든 게 소음기입니다. 총구에 부착해서 소리를 흡수하는 장치이지요. 워낙 고가의 물건이라 저도 본 적은 없습니다만.”
총사가 원거리에서 소음기를 부착하고 쐈다면 엘리오 라고아 백작도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터였다.
“별 게 다 있네.”
“마탑이 못 만드는 건 없으니까요. 그러면 백작님도 위험하지 않습니까? 백작님도 손을 쓰지 못할 정도였다면서요?”
“나는 육감이 발달해서 괜찮아. 적어도 멍하니 당하는 일은 없어.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너를 지켜 주기는 어려워. 그래서 떠나라는 거야.”
“알겠습니다. 오마르 백작님 쪽에 가 있으면 되겠습니까?”
“어, 그동안 스타우런 후작의 일을 마무리 지어 놓을게.”
“어떻게 하시려고요?”
“뭘 어떻게 해? 대화로 잘 풀어 봐야지.”
“대화요?”
파비안이 애매한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보았다.
라고아 백작은 매사를 힘으로 해결하는 단순 무식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대화로 안 되면 바로 응징에 들어가는 사람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스타우런 후작을 건드리면 자칫 전선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왜 그런 눈으로 봐? 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야.”
“백작님, 지금 제국군이 몰아붙이고 있지만……. 남부 왕국군에도 강철 골렘이 있다는 거 아시죠?”
“알지.”
“스타우런 후작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전세가 뒤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본론이나 말해.”
“백작님 때문에 전쟁이 격화될 수도 있으니 힘 조절을 잘하시라고요.”
“그런 배려는 후작이 해야지. 왜 내가 그런 걸 걱정해야 돼?”
“‘혼란의 선봉장’은 우샤스 운드라지 백작님이 아니지 않습니까.”
“뭐야? 내가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거야?”
“의도하신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 수도 있어 보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고민은 내가 해야 할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파비안.”
“예?”
“숲길을 가는데 눈앞에 잠든 사자가 있어. 그럼 그걸 보고 누가 고민해야 돼? 지나던 사람이야? 잠자던 사자야?”
“지나던 사람이죠.”
“이제 알겠어?”
“하지만 백작님은 그냥 사자가 아니라, 생각할 줄 아는 사자시잖습니까?”
“흐흐. 네가 아직 초식 동물이라 몰라서 그러는데, 사자는 생각하지 않아도 돼. 생각은 후작이 해야 하는 거라니까.”
“저기요, 제 말은…….”
뭔가를 설명하려는 파비안의 말을 엘리오가 끊었다.
“기사가 왜 검술을 연마하는 줄 알아?”
“강해지려고요?”
“왜 강해지려고 그러는 건데?”
“그래야 작위도 받고…….”
“쓰읍!”
엘리오가 그 대답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면 뭔데요?”
“편하게 살려고 그러는 거야.”
“편하게요?”
“강해지면 골치 아픈 일이 안 생기거든. 너도 강해져 봐. 그럼 알게 돼.”
“아…… 그런 겁니까?”
“어. 내 말 믿어. 그러니까 생각은 누가 해야 한다?”
“스타우런 후작요?”
“이제 말이 통하네. 내가 스타우런 후작을 만나 볼 테니까, 그동안 너는 크라시온에 가서 오마르 백작님의 일이나 돕고 있어.”
“저기, 말씀하신 바는 알겠는데…… 그래도…….”
“봐 봐. 지금도 우리 둘 중에 생각을 누가 하고 있어? 나야? 너야?”
“저요.”
“네가 나보다 강했으면 누가 머리를 굴리고 있었을 것 같아?”
“그야 백작님이죠.”
“나와 후작의 관계도 그렇다니까. 후작이 그걸 모르면 깨우쳐 줘야지. 안 그러면 앞으로도 계속 내가 생각을 해야 하니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아, 예에……. 그런데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인데……. 너무 심하게 깨우쳐 주지는 마십쇼.”
“내 고향에 이런 말이 있어. 매 아래 장사 없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아무리 돌대가리라도 맞으면 알아듣게 되어 있다고.”
“하아! 예, 예. 어련하실라고요.”
파비안은 더 이상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사실 그의 말이 맞다.
지금 고민하고 배려해야 할 사람은 라고아 백작이 아니라 스타우런 후작이었다.
날이 밝자마자 파비안은 조용히 머무르던 샬레를 떠났다.
엘리오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페로무로스 북부로 향했다.
***
페로무로스 북부.
강철 군단 주둔지.
주둔지 입구로 한 남자가 다가오자 경비병들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경비조장은 청년의 복장을 확인하고 정중하게 말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이곳은 강철 군단 주둔지로 외부인은 출입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좀 만나러 왔는데요. 안에 있으면 전해 줘요.”
“만나러 온 사람이 누굽니까?”
“테오 스타우런 후작.”
“이제 보니 군단장님의 손님이셨군요.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엘리오 라고아 백작.”
순간 경비병들은 깜짝 놀란 얼굴로 청년을 다시 살폈다.
그랜드 마스터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경비조장이 급히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라고아 백작님이셨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후작 각하께 백작님이 오셨다고 전해 드리겠습니다.”
엘리오는 고개를 까딱여 보인 후 가까운 나무 그늘로 걸어갔다.
그사이 경비조장은 부리나케 군단 사령부로 달려갔다.
강철 군단 사령부 회의실.
그 시간 군단장 테오 스타우런 후작은 바탈리온 부대장 크라노 바넥 자작과 ‘엘리오 라고아 백작 포획 작전’을 계획하고 있었다.
크라노 바넥 자작이 탁자에 놓인 지도를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 갔다.
“……목표물은 미노스 외곽에 있는 산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현재 미노스 인근 마을에 1소대를 배치했습니다.”
“놈은 그랜드 마스터다. 남부의 소드마스터를 상대하듯 했다가는 도리어 당할 수도 있다. 그에 대한 대비는 확실하게 해 두었겠지?”
“1소대의 총사 30명에게 특별히 소음기를 지급했습니다. 1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마력총을 쏘게 할 예정입니다. 총사의 1차 공격에 운 좋게 살아남은 목표물이 반격하려 할 테지만, 성공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기하던 70명의 총병이 엑시티움을 쏟아 낼 테니까요.”
“총병들의 유효 사거리가 300미터라고 하지 않았느냐?”
“예, 목표물이 반격을 위해 총사들에게 접근할 것으로 가정했습니다.”
“흠…….”
테오 스타우런 후작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소드마스터의 경우 총병들처럼 마나를 이용한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지만, 대부분 단일 타깃이었다.
‘아무리 그랜드 마스터라도 30명이나 되는 총사들에게 반격을 가하려면 거리를 좁히려 들겠지?’
그런 측면에서 볼 때 크라노 바넥 자작의 작전은 꽤 쓸 만해 보였다.
고개를 끄덕이던 테오 스타우런 후작이 문득 물었다.
“오마르 백작의 위치는?”
“크라시온에 머무르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남부 왕국 대귀족들과 빈번하게 접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남부 왕국과 거리를 두던 것을 생각하면, 저들의 방침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이 틀림없습니다.”
“물론 그건 나의 복수를 염두에 둔 것일 테고.”
“그렇습니다.”
“남부 왕국 연합에 손을 내밀 정도로 바탈리온 부대가 두렵다는 뜻이겠지. 지금 1소대를 누가 맡고 있지?”
“중대장인 필로스 하우드 남작이 특별 작전의 지휘를 하고 있습니다.”
“현장 지휘관에게 작전 개시 시점을 일임하겠다. 늦어도 크라시온에 있는 오마르 백작이 합류하기 전까지 끝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회의를 마칠 즈음, 군단 참모가 회의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아직 허락하지 않았음에도 참모가 들어오자 테오 스타우런 후작이 가볍게 눈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냐?”
“라고아…… 백작이 군단장님을 만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찾아왔다고?”
테오 스타우런 후작은 자신도 모르게 그를 ‘백작’이라고 칭했다.
“예. 군단 입구의 경비 초소에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어쩌긴 뭘 어쩐단 말이냐? 놈이 죽을 자리는 여기가 아니라 미노스다. 정중히 안으로 모셔라.”
테오 스타우런 후작은 그랜드 마스터와 직접 싸울 마음이 없었다.
운 없으면 자신이 당할 수도 있는데 왜 그런 위험한 짓을 한단 말인가.
최고 지휘관이 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은 전략의 기본이다.
잠시 후 군단 참모들이 청년 기사 하나와 함께 회의실로 우르르 들어왔다.
만일의 충돌을 대비해 소드 익스퍼트들인 참모들이 몰려온 것이다.
테오 스타우런 후작은 네 명의 참모들이 자신의 좌우에 늘어서자 내심 안도했다.
사자 굴에 들어가도 일행과 함께하면 조금 마음이 놓이는 이치다.
양측이 갈라서 서로를 마주 보자 참모장 커트 바르트너 자작이 나섰다.
“후작 각하,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십니다. 라고아 백작님, 제 옆에 계신 분이 강철 군단 군단장이신 테오 스타우런 후작님이십니다.”
“…….”
소개가 끝났지만 테오 스타우런 후작과 엘리오는 입을 열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상대가 먼저 인사하기를 기다리는 분위기다.
참다못해 먼저 어색한 침묵을 깬 것은 테오 스타우런 후작이었다.
“크나우프 대공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랜드 마스터께서 이 누추한 곳은 어쩐 일이오?”
그러자 엘리오가 가까이 있는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구시렁거렸다.
“그랜드 마스터께서 누추한 곳을 방문해 줬는데, 앉으라는 말도 없으시네. 뭐, 개만도 못한 범죄자 새끼를 아들로 뒀지만…… 그래도 자식은 자식이니까 내가 참아야지. 계속 서서 얘기할 거 아니면 후작님도 앉으시지요?”
뻔뻔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말에 바탈리온 부대장과 참모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들은 바탈리온 부대를 믿었기에 분노의 감정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그건 군단장인 테오 스타우런 후작도 마찬가지였다.
테오 스타우런 후작은 낯빛을 굳힌 채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맞은편에 앉았다.
“제국군 정보부의 치밀한 조사에 의하면 범죄자는 스콜피언 중대장이 아니라 오히려 라고아 백작과 그 일행이던데. 라고아 경의 검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바꿀 수는 없소.”
가만히 듣고 있던 엘리오가 후작의 얼굴을 빤히 보며 말했다.
“거참 이상하다. 군단장쯤 되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정보가 있을 텐데. 진짜 스콜피언 중대가 저지른 범죄 행위를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아니면 알지만 아들이 저지른 일이라 숨기려고 그러는 거예요? 인간적으로 궁금해서 묻는 거니까 답해 봐요. 어느 쪽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