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66
1366회. 뭘 기념하는데?
제도 페트로폴리스 남구.
아도브 마탑.
탑주인 바스코 피오렌자 백작이 황당한 얼굴로 맞은편에 앉은 중년 남자를 보았다.
“지금 나에게 엑시티움과 같은 무기를 만들 수 있냐고 했소?”
중년 남자, 블랙마켓 관리자 마젠타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그렇습니다.”
“엑시티움이 제국에서 엄중히 관리하는 전략 물품이라는 것을 알고도 그런 소리를 하시오?”
피오렌자 백작이 마젠타를 쏘아보았다.
마젠타는 블랙마켓의 관리자면서 소드마스터인지라 함부로 다그치기 어려웠다.
자신도 소드마스터와 동급으로 대우받는 5서클 마법사지만 일단 거리가 너무 가까워 상대에게 유리한 때문이다.
“황태자의 눈치를 보는 건 아닐 테고, 만들기 어려운 겁니까?”
상대가 아랑곳하지 않고 파고들자 피오렌자 백작이 확인하듯 물었다.
“진심으로 원해서 하는 말이오?”
“엑시티움이 농담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까?”
마젠타의 반문에 침묵하던 피오렌자 백작이 설명하듯 말했다.
“아도브 마탑도 엑시티움과 비슷한 병기를 개발하고 있었소. 그런데 타불라 마탑이 먼저 개발을 완료해서……. 어쩔 수 없이 개발을 중단했소. 아마 다른 마탑들도 비슷할 게요.”
서론이 길었지만 마젠타는 재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만들기 어렵냐고 했소? 엑시티움만 구할 수 있다면, 수일 내에 비슷한 무기를 만들 수 있소. 다만 그것으로 인해 우리 아도브 마탑의 미래가 불안정해지지는 않을까 하여……. 지금도 수입이 줄어 마법사를 내보내고 있는데, 제국의 견제까지 받으면 우리는 아예 문을 닫게 될 게요.”
“제국은 모든 총병들에게 엑시티움을 공급할 계획입니다. 이대로라면 엑시티움을 생산하는 삼대마탑만 살아남습니다.”
피오렌자 백작은 부인하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마탑의 전성기는 엑시티움까지다.
엑시티움의 개발로 마탑은 찬란히 빛나겠지만, 그로 인해 몰락하게 될 터였다.
마치 유성처럼 말이다.
마젠타가 계속해서 말했다.
“남부 왕국에 팔 생각입니다.”
“불가하오. 제국은 물론 마탑 위원회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요.”
제국이 마탑을 건드리지 못하는 것은 마탑 위원회 때문이다.
대륙의 모든 마탑은 위원회의 울타리 안에 있었다.
위원회는 마공학의 발전을 위해 개발자의 권리를 보호했다.
그런데 타불라 마탑의 엑시티움과 비슷한 걸 만들어 남부 왕국에 판다?
그거야말로 위험천만한 행위였다.
“아도브 마탑에서는 전에 그와 비슷한 연구를 해 오지 않았습니까? 핵심 재료가 다르다면, 위원회에서도 뭐라고 하지 않을 겁니다. 아닙니까?”
“험, 험. 그렇기는 하오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서.”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물며 이미 연구를 하던 것이라면……. 분명 비슷하지만 다른 결과물이 나올 겁니다.”
“흠…….”
피오렌자 백작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이전처럼 어둡지 않았다.
엑시티움과 비슷하지만 다른 무기의 개발은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엑시티움의 소재와 제작 공정을 알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 아도브 마탑의 연구를 더한다면?
성공 가능성은 더욱 올라간다.
같은 것도 아니고, 새로운 것도 아닌, 어중간한 것이 만들어질 것이다.
망설이는 피오렌자 백작의 귓가로 마젠타의 음성이 들려왔다.
“엑시티움이 제국군에 공급되면 아티팩트의 매출은 급감할 겁니다.”
“…….”
피오렌자 백작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왜 그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르겠다.
마탑 수입의 대부분은 아티팩트 판매에 있다.
기존의 실드 마법이 내장된 아티팩트는 엑시티움을 당해 낼 수 없다.
“아도브 마탑도 버티기 어려울…….”
“해 봅시다.”
피오렌자 백작이 마젠타의 말을 끊었다.
어차피 가만히 있으면 몰락할 게 분명하니 뭐라도 시도해 볼 작정이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말과 함께 마젠타는 품속에서 엑시티움 하나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피오렌자 백작이 엑시티움을 집어 들고 쓰게 웃었다.
“아도브 마탑도 연구하던 분야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요.”
“기왕이면 이 한 가지 일에 집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남부 왕국이 항전을 포기한 뒤에는 생산해 봐야 팔 수도 없으니까요.”
“알겠소.”
이야기를 끝낸 마젠타는 홀가분한 얼굴로 아도브 마탑을 떠났다.
***
제도 페트로폴리스 북구.
역마차 사무소.
다음 날.
점심 무렵, 역마차 한 대가 북구의 역마차 사무소에 정차했다.
잠시 후 역마차에서 승객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 중에는 마젠타도 있었다.
주위를 슬쩍 둘러보던 마젠타의 한쪽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쯧! 어딜 가도 이놈의 인기란…….’
수상한 사람들이 몇 따라붙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을 잡으려면 소드마스터가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소드마스터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으니 정보 수집이 목적이리라.
뚜벅뚜벅 길을 걷던 마젠타가 멈칫했다.
한 청년이 길 정중앙에 서 있었다.
‘뭐지?’
규칙적이던 마젠타의 걸음이 저도 모르게 느려졌다.
그러다 뒤늦게 자신의 실태를 알아차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지옥의 전장을 헤쳐 나온 소드마스터가 애송이 앞에서 흔들리다니?
고개를 젓던 그는 청년과 마주하고 섰다.
“나에게 무슨 볼일이 있나?”
청년, 엘리오가 무심한 얼굴로 물었다.
“당신이 블랙마켓의 관리자인 마젠타입니까?”
“맞네. 그쪽은?”
“젠장, 이 사람도 아니네. 그럼 누구지? 돌겠네.”
청년의 이해 못 할 푸념에 마젠타가 눈살을 찌푸렸다.
소드마스터인 자신을 앞에 두고 저런 시건방진 행동이라니?
“누구냐고 물었네만.”
“엘리오 라고아입니다.”
“…….”
뜻밖의 대답에 눈을 끔뻑이던 마젠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라고아 백작님이셨군요. 누굴 찾고 계시는가 봅니다?”
“전쟁의 불길에 땔감을 계속해서 처넣고 있는 사람요.”
마젠타가 당황한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블랙마켓이 남부 왕국에 무기를 팔고 있으니 뜨끔해서다.
“저는 단지…….”
엘리오가 마젠타의 변명을 끊었다.
“내가 찾는 사람은 당신이 아닙니다.”
“아, 예. 백작님의 모험담은 블랙마켓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습니다. 블랙마켓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마젠타는 소드마스터지만 고개를 숙였다.
상대가 마족 군주와 소드마스터들은 물론, 바탈리온 부대 마저도 깨부순 이 시대 최강의 그랜드 마스터인 까닭이다.
그런 마젠타를 응시하던 엘리오가 뜬금없이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이 전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야 물론 황태자죠. 그가 토플라 공국의 남부 왕국 접경지에 제국군을 대거 파병해서 일어난 전쟁이잖습니까?”
“그 전에 남부 왕국들이 어비스를 독점하려고 한 행동은 괜찮고요?”
어비스 출입 자격을 남부 왕국들이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꾼 걸 두고 한 말이었다.
‘허가제’는 어비스 출입을 위한 승인을 사전에 반드시 받아야 한다.
과거 신고만 하고 자유로이 들락거리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강화된 출입 절차였다.
“허가제를 두고 하시는 말씀 같은데……. 남부 왕국에서 어비스 출입 허가를 거부한 경우가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없었다고 해서 제국이 안심할 수는 없죠. 언제라도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는 법을 제국에서 선선히 받아들이겠습니까?”
“그건 실례지만, 제국에서 주장하는 논리입니다.”
“맞아요. 그리고 당신은 왕국의 입장을 변호하고 있죠.”
“…….”
마젠타는 반박하지 않았다.
자신이 ―최소한 이 전쟁에서만큼은― 왕국의 편에 서 있는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엘리오는 더 묻지 않고 돌아섰다.
마젠타에게서 알아낼 새로운 사실이 없으니 더 이상의 대화는 시간 낭비였다.
페르모사 에스텔라.
마젠타와 헤어져 숙소로 돌아온 엘리오는 침상에 널브러졌다.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갔다.
남부 왕국과 마탑의 의심 가는 인물을 다 만나 봤지만 허탕이다.
바로 뒤까지 따라붙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막막한 결과라니!
한탄하던 그는 복잡한 머리를 식히려 눈을 감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번쩍 눈을 뜬 엘리오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인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침대에서 내려간 엘리오는 혼자서 터덜터덜 식당으로 걸어갔다.
식당은 어느 틈에 저녁 식사를 하러 온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파비안이 곁에 없으니 이런 건 불편하다.
오전에 아리에트 양을 만나러 나간 놈이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좋을 때다.’
쓸쓸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엘리오를 지배인이 빈자리로 안내했다.
엘리오가 식사를 마칠 즈음, 지배인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백작님?”
“왜요?”
엘리오가 손수건으로 입 주위를 닦으며 지배인을 올려다보았다.
“5시쯤 행정국의 발터 베크 남작께서 다녀가셨습니다.”
그래서 뭘 어쩌라고?
엘리오가 눈을 끔뻑이자 지배인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까지의 숙박비를 청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에, 또…… 그런 사실을 백작님에게 꼭 전해 드리라고…….”
“아…….”
참 정 없는 놈들이다.
마젠타를 놓아주었다고 바로 지원을 끊다니!
엘리오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지배인은 조용히 물러갔다.
‘가만 오늘까지라고 했지?’
그는 평소와 달리 술과 각종 안주를 잔뜩 주문했다.
그리고 젊은 남자 바르도스의 노래를 들으며 홀로 술을 마셨다.
살짝 취기가 오를 즈음, 누군가 엘리오의 맞은편에 슬그머니 앉았다.
파비안이었다.
“아니, 왜 혼자서 마시고 계십니까?”
“내가 너냐? 아무하고나 마시게?”
“에이, 지배인이라도 부르시지.”
“지배인은 무슨 죄가 있다고. 귀족들 눈치 보는 게 쉬운 줄 아냐?”
“혼자 마시는 모습이 안돼 보여서 그렇습니다.”
“그럼 빨리 오든가.”
“그게 어디 마음처럼 됩니까? 지금도 억지로 헤어지고 온 겁니다.”
“왜 헤어져? 그냥 같이 살지.”
“하하…….”
어색하게 웃던 파비안이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마젠타는요? 그 사람도 아니었습니까?”
“어떻게 알았어?”
“라고아 경의 옷차림이 아침에 제가 본 모습 그대로라서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니 막막하다.”
“그래도 잘하실 수 있을 겁니다.”
“참, 마젠타를 그냥 놔줬더니 정보부가 바로 지원을 끊더라. 내일부터 숙박비를 우리가 계산해야 한다.”
“치사한 놈들이네요.”
“그래서 마지막 만찬을 즐기고 있다.”
“아하! 저는 라고아 경이 혼자 판을 벌이셨길래 무슨 일인가 했습니다.”
“판은 무슨, 겨우 이 정도를 가지고. 너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시켜라. 내일부터는 주문하기 전에 가격부터 확인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기념비적인 날인데 잘됐네요.”
“뭘 기념하는데?”
“실은 오늘…… 아리에트 양에게 청혼했습니다.”
“진짜?”
순간 엘리오는 세라 양을 떠올렸지만 굳이 입에 올리지 않았다.
사람 인연이 어디 억지로 되던가.
“예.”
파비안이 제 입으로 말하고 쑥쓰러운지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리에트 양이 뭐래?”
“좋다고 했습니다.”
“축하한다. 그래서 언제 할 생각인데?”
“슬래시 랜드로 갔을 때 했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파비안이 라고아 백작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이왕이면 라고아 백작이 슬래시 랜드에서 주례까지 서 줬으면 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벼르는 라고아 백작이 허락할지 모르겠다.
“미안한데 나는 우샤스 운드라를 처리하면 즉시 고향으로 갈 생각이야. 가족들과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다고. 결혼식을 꼭 슬래시 랜드에서 할 필요는 없잖아?”
“그, 그렇기는 하죠. 아리에트 양의 가족들을 생각하면 제도가 낫습니다.”
“두 사람 결혼식이니 알아서 잘 결정해.”
“그렇다면 라고아 경과 제가 제도에 머무르고 있을 때 할까요?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네 가족들은 어쩌고?”
“북부에 가서 결혼식을 한번 더 하면 됩니다.”
“그래도 되면 그렇게 해.”
“그럼, 최대한 빠르게 진행해 보겠습니다.”
“결혼해서 살 집은 있고?”
“당장 합치지는 않을 겁니다. 아리에트 양도 바르도스 계약 기간이 남아 있고, 저도 라고아 경과 함께 다녀야 하잖습니까?”
엘리오는 파비안의 들뜬 얼굴을 보고 피식 웃었다.
변변한 준비도 없이 저돌적으로 추진하는 걸 보니 이번엔 진짜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