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67
1367회. 좋은 일요?
남부 왕국의 대반격에 제국군은 쉐이드 왕국까지 밀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선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비록 바탈리온 부대를 주축으로 하는 강철 군단이 괴멸됐지만, 제국군에는 아직 엑시티움으로 무장한 팬텀 부대와 쉐도우 부대가 있다.
두 부대는 페로무로스 전투에서 아르테늄의 위력에 놀라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르테늄의 대처법을 알아낸 뒤로 팬텀 부대와 쉐도우 부대는 미미하게나마 남부 왕국군의 공세를 막아 냈다.
몇 번의 전투를 거치는 동안 아르테늄이 가진 한계도 드러났다.
한 전투에서 같은 자리를 연타당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전투가 길어지면서 한번 피격당한 자리를 또 피격당하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그럴 때면 여지없이 코어가 박살 났고, 궁극의 병기라 불리는 강철 골렘도 기동을 멈추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르테늄의 공급량이 많았다면 해결될 일이었지만, 헤르메티카 마탑은 아르테늄의 생산량을 남부 왕국이 원하는 만큼 늘리지 못했다.
삼대마탑의 하나인 헤르메티카 마탑으로서는 제국과 맺은 엑시티움 공급 계약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남부 왕국은 헤르메티카 마탑이 아르테늄의 제조를 다른 마탑에 넘기기 바랐지만, 마탑 간 면허비 조율 문제로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한편 남부 왕국군이 아르테늄의 부족으로 흔들릴 때 제국군은 ―팬텀 부대와 쉐도우 부대를 가졌음에도― 전장을 지배하지 못했다.
비록 팬텀 부대와 쉐도우 부대가 전략 무기라는 엑시티움으로 무장했지만, 따지고 보면 총병에 불과한 까닭이다.
남부 왕국군이 강철 골렘의 전선 투입을 줄이면서 팬텀 부대와 쉐도우 부대 역시 제국군 주둔지에 대기하는 날이 많았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제국군과 남부 왕국군은 쉐이드 왕국의 북부 도시 라헬을 사이에 두고 무의미한 소모전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드리아 왕국 왕성인 크라시온에서 최전선인 쉐이드 왕국 도시 라헬로 비공정 한 대가 날아갔다.
비공정은 라헬에서 한 사람을 태우고 다시 크라시온으로 돌아갔다.
비공정이 크라시온에 도착한 날, 라울 브로스넌 왕은 쿠스코 성에 머무르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왕성으로 초대했다.
늦은 오후.
왕성 크라시온 중앙 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본 라울 브로스넌 국왕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시오! 백작. 요즘은 궁성 출입이 뜸한 것 같소?”
“손님들로 바쁘신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최근 전쟁에 합류한 남부 왕국의 대귀족들이 크라시온 성을 자주 드나들었다.
북부의 대귀족인 오마르 백작은 과도한 관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궁성 출입을 삼가한 상태였다.
“그래도 내 손님들 중에 귀빈은 백작뿐이외다. 다른 대귀족들은 속이 너무 뻔해서.”
뒤늦게 참전한 남부 왕국들은 강철 골렘에 눈독을 들였다.
어찌 보면 단지 어비스 출입의 자유를 원한 제국보다 더한 짓이다.
“역시 강철 골렘에 욕심을 냅니까?”
“달리 뭐가 있겠소.”
라울 브로스넌 국왕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대수림에서 멀리 떨어진 남부 왕국들은 괘씸하게도 강철 골렘을 원했다.
‘함께 싸워 줄 테니 강철 골렘을 나눠 달라’는 것이 그들의 요청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기로 했습니까?”
현재 강철 골렘을 가진 왕국은 아드리아, 쉐이드, 마스다르, 보스타니아 왕국이다.
쉐이드 왕국은 영토를 빼앗겼지만 군대와 강철 골렘을 가지고 있었다.
“한 왕국당 세 기의 강철 골렘을 원하고 있소. 쉐이드 왕국은 마스다르와 보스타니아 왕국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하는데……. 어찌 될지 모르겠소.”
아드리아 왕국은 최근에야 겨우 발굴에 성공했다.
그래서 다른 왕국들도 직접 발굴하라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마스다르와 보스타니아 왕국은요?”
“마스다르 왕국은 전쟁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분위기고, 보스타니아는 드니로프 왕국에 빚이 있어서 눈치만 살피는 중이오.”
“다른 왕국들은 강철 골렘을 직접 운영한 경험이 없는데……. 괜찮겠습니까?”
“어차피 강철 골렘을 제작하는 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라서 크게 어려움은 없소. 알다시피 강철 파츠를 모아 놓으면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가니까.”
“그래도 부대 운용은 또 다른 문제가 아닙니까?”
“자신들도 경험이 쌓이면 잘할 수 있다는데 무슨 말을 하겠소?”
사실 아드리아, 쉐이드, 마스다르, 보스타니아 왕국도 이번 전쟁에서 처음 강철 골렘을 사용한 터라 반대하기 어려웠다.
몇 년이라면 모를까?
고작 몇 달 먼저 사용하고서 전문가 행세를 하는 것도 우스웠기 때문이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그런 내막까지는 몰랐지만 더 묻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가 괜히 무거워졌구려.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부른 것은 아닌데.”
“무슨 다른 용무가 있으셨습니까?”
“아주 좋은 일이 있어 백작을 오라고 했소.”
“좋은 일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의아한 눈으로 라울 브로스넌 국왕을 보았다.
교착 상태에 빠진 전쟁에서 좋은 일이라니?
게다가 자신은 북부의 대귀족으로 이 전쟁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얼마 전 라헬의 최전선 부대에서 긴급 통신이 들어왔소. 스컬 군단의 지원 부대에 소피아 오를로바 남작이라는 미녀 기사가 있는데, 아 글쎄! 그녀가 임신을 했다고 하는 게 아니겠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고개를 갸웃했다.
소피아 오를로바 남작의 임신을 왜 좋은 일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하, 소피아 오를로바 남작이 누구이기에 그처럼 좋아하십니까?”
“그러고 보니 백작은 아직 모르겠구려. 스컬 군단이 페로무로스에서 멀지 않은 세르보를 수복했을 때, 그곳에 라고아 백작과 클라우드 남작이 머무르고 있었소.”
“설마…….”
“맞소. 클라우드 남작과 소피아 오를로바 남작이 열렬히 사랑을 나누었다고 하더이다. 그 뒤 스컬 군단이 쉐이드 왕국까지 이동했는데……. 얼마 전 스컬 군단 군단장이 소피아 오를로바 남작의 임신 사실을 알려 왔소.”
“듣고 보니 정말 좋은 일이군요.”
“나는 왕가의 비공정으로 소피아 오를로바 남작을 안전한 후방으로 데리고 왔소.”
말끝에 라울 브로스넌 국왕은 집사장에게 손을 까딱였다.
재빨리 밖으로 나간 집사장이 소피아 오를로바 남작과 함께 되돌아왔다.
이윽고 집사장이 국왕과 오마르 백작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소피아 오를로바 남작입니다.”
소피아 오를로바 남작이 라울 브로스넌 국왕에게 귀족의 예를 올렸다.
환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던 라울 브로스넌 국왕이 오마르 백작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를로바 남작, 저쪽은 베일럼 왕국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다. 유명한 기사시니 누군지 소개하지 않아도 알겠지?”
“예, 베일럼의 호랑이라 불리시는 소드마스터가 아니십니까. 만나서 영광입니다. 오마르 백작 각하. 저는 소피아 오를로바 남작입니다.”
“파비안 남작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기사인데, 이제야 정착할 사람을 만난 것 같군.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인사가 끝나자 라울 브로스넌 국왕은 오마르 백작의 맞은편에 소피아 오를로바 남작을 앉게 했다.
그런 뒤 다짜고짜 오마르 백작에게 물었다.
“소피아 오를로바 남작은 우리 아드리아 왕국군의 인재이나, 홀몸도 아닌 그녀를 최전방에 둘 수 없어서 불러들였소. 이제 아홉 달 후면 출산을 할 텐데, 오마르 백작은 소피아 오를로바 남작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국왕의 말속에 담긴 뜻을 바로 알아차렸다.
‘파비안 남작과 결혼시키겠다는 것이구나.’
북부의 남작이 남부의 남작을 임신시켰으니 무리한 요구는 아니다.
아니, 둘 다 미혼일 때는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아무리 당연하다 해도, 그걸 자신이 결정할 수는 없었다.
“전하, 아시겠지만 파비안 남작은 라고아 백작의 가신입니다. 하여 제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는 하나 이대로 보고 있을 수만도 없지 않소?”
“옳으신 말씀입니다. 이 문제는 당사자들이 직접 만나 풀어야 할 줄로 압니다. 우선은 파비안 남작에게 소피아 남작의 임신 사실을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가 이리로 오든지, 소피아 남작에게 제도로 오라고 하든지 할 테지요. 어떻습니까?”
“괜찮은 것 같소. 다만 소피아 오를로바 남작이 임신을 했으니 클라우드 남작 쪽에서 움직이는 게 낫지 않겠소? 제도까지 먼 거리이기도 하지만, 전쟁 중이라 더욱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하는 말이오.”
“저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전하의 말씀대로 파비안 남작이 오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가급적 그리되도록 하겠습니다.”
이야기가 정리되자 라울 브로스넌 국왕은 정보부장을 불렀다.
물론 제도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소피아 오를로바 남작과 더 이야기를 나누다 쿠스코 성으로 돌아갔다.
***
론디니움 제국.
제도 페트로폴리스 북구.
페르모사 에스텔라.
저녁 식사 무렵.
하루 종일 밖으로 돌던 파비안이 페르모사 에스텔라로 돌아왔다.
식당에서 식사를 기다리던 엘리오가 뚱한 얼굴로 물었다.
“오늘은 웬일이냐? 평소보다 빨리 왔네?”
“라고아 경이 쓸쓸하게 식사를 할 것 같아서 일찍 헤어졌습니다.”
“아리에트 양에게 다른 일정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뭐, 그런 것도 있고요.”
“그러면 그렇지. 네가 퍽도 나 때문에 일찍 왔겠다.”
“둘이 붙어 있으면 뭐 합니까? 지금은 제가 필요한 일도 없지 않습니까?”
그건 사실이었다.
마젠타를 끝으로 제국과 남부 왕국 어디에도 우샤스 운드라로 의심할 만한 사람이 없어 손을 놓고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엘리오가 제국의 백작이지만, 황태자와 틀어진 뒤로 제국 대귀족과 관청은 엘리오의 일에 조금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아니, 방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엘리오는 마치 섬처럼 제도를 혼자 떠돌고 있었다.
당연히 혼란의 선봉장(우샤스 운드라)을 찾는 일도 지지부진했다.
제국 백작인 엘리오도 그 정도인데 북부의 남작인 파비안은 오죽할까.
그나마 아리에트 알바노라도 만나지 않았다면 더 끔찍했을 터였다.
잠시 후 저녁 식사가 나오자 엘리오와 파비안은 말없이 식사에 열중했다.
메인 요리가 반으로 줄어들었을 즈음이다.
먼저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엘리오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응?’
부지런히 젓가락질을 하던 엘리오가 멈칫했다.
탁자 위에 조금 전까지 없던 쪽지가 보였다.
방금 우르르 나간 사람들 중에 누군가 던지고 간 게 분명하다.
‘뭐지?’
한순간 ‘자신을 간첩죄로 체포하려는 제국의 수작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주변에 총병 부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기미는 없다.
엘리오가 떨떠름한 얼굴로 쪽지를 집어 들자 파비안이 물었다.
“그건 뭡니까?”
“몰라. 조금 전에 누가 던지고 갔어.”
“조심하십쇼. 저는 그런 것도 없이 체포됐었습니다.”
사람 생각은 비슷한 것 같다.
엘리오는 피식 웃어 보인 후 쪽지를 펼쳐 읽었다.
그가 굳은 얼굴로 쪽지를 노려보자 파비안이 관심을 보였다.
“뭔데 그러십니까? 혹시 미녀 바르도스가 따로 만나자고 합니까?”
“…….”
대답 대신 엘리오는 손에 쥐고 있던 쪽지를 파비안에게 건넸다.
곧이어 파비안의 얼굴이 귀신을 본 것처럼 변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