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19
1419회. 백두마군들이 아직 살아 있을까요?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연적하가 은거한 지도 어언 삼십 년이 지났다.
십 년 전 남궁연은 ‘앞으로 십 년이 더 지나면 석경장을 두려워하는 무림인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그녀의 말대로 되었다.
사람은 대체로 남을 깎아내리기를 좋아한다.
삼십 년 전의 고금제일인도 뒷담화를 피해 갈 수는 없다.
남천 연적하와 십전무후 남궁연의 비현실적인 능력은 ‘날조된 전설’ 내지는 ‘무림 특유의 과장’쯤으로 인식됐다.
물론 바쁜 일상에서 거론되지는 않았다.
술자리에서 시시껄렁한 음담패설이 다 떨어지고, ―축 늘어진 분위기 속에― 어쩌다 아버지 세대를 거론할 때 잠깐 등장하는 정도였다.
사람들의 팍팍한 삶 속에 석경장의 위치는 딱 그쯤이었다.
그러다 보니 엉뚱한 부작용이 생겨났다.
명성을 얻기 위해 석경장에 도전하는 무인이 하나 둘 생겨난 것이다.
새외에서 활동하다 대륙에 진출한 삼존도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때로는 뇌운신도 공천백 일행처럼 호기심에 석경장을 찾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총관 운중룡 풍운비의 벽을 넘지 못했다.
연적하는 구제 불능의 대악인은 그 자리에서 죽였고, 삼존처럼 어정쩡한 인물은 붙잡아 종살이를 시켰다.
공천백 일행처럼 호기심으로 방문한 사람은 풍운비가 잘 타일러 돌려보냈다.
십 년쯤 그 짓을 반복하자 더 이상 석경장을 파헤치겠다고 덤벼드는 사람은 없었다.
손님 대접 잘 받고 나간 사람들에 의해 석경장의 일들이 까발려졌기 때문이다.
“석경장? 가 봐야 별거 없소. 거기에 운중룡 풍운비라는 고수가 있는데, 전대 고수답게 무공이 뛰어나더이다. 일검에 산을 쪼개는 건 옛날 사람들 허풍이고, 딱 우리가 익히 아는 전대 고수라고 생각하면 되오.”
“석경장에서 남천 대협과 십전무후 여협이라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얼굴이 아직도 이십 대로 보입디다. 본인인지 그들의 자손인지는 하늘만 알겠지. 괜히 분위기 어색해질까 봐 물어보지는 않았소.”
“남천 대협과 십전무후 여협이 살아 있다면 칠십 대인데, 아직도 이십 대라는 게 말이 되오? 주안술을 익히면 되잖냐고? 그건 어느 주점에서 파는 술이오?”
신비함이 벗겨지자 석경장을 찾는 발길도 자연 사라졌다.
어느 가을날, 한채연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그해 하소백도 평생을 함께하던 언니를 따라갔다.
두 사람의 죽음과 함께 약제당은 자연스럽게 문을 닫았다.
석경장에 어린아이라도 있었다면 약사를 들어앉혔을 것이다.
하지만 석경장에 남은 사람이라고 해 봐야 칠십 대의 연적하 부부와 육십 대의 풍운비가 전부다.
그들 모두 내외공의 고수라 몸이 튼튼한 데다, 남궁연의 의술이 뛰어나 약제당을 따로 운영할 필요가 없었다.
이듬해, 손녀 이설아(연지안의 딸)가 자기를 꼭 닮은 아들을 낳았다.
증손자를 안고 찾아온 손녀에게 연적하와 남궁연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합비의 점포 중 이 할을 떼어 주었다.
그리고 내친김에 남은 절반을 딸인 연지안에게 넘겼다.
연지안은 극구 사양했지만 연적하의 고집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슬픈 낯빛으로 점포를 받았다.
부모의 나이가 어느덧 칠십을 넘었으니 사실상 유산인 까닭이다.
나머지 절반은 풍운비 내외에게 물려주었다.
의형의 아들인 풍운비와 딸의 몫을 똑같이 나눈 것이다.
연적하 내외에게 합비의 점포 소유권을 넘겨받은 날 밤, 풍운비는 조용히 남경의 서풍표국을 찾아갔다.
***
남경.
서풍표국.
늦은 밤, 서풍표국의 안채에 세 사람이 마주 앉았다.
풍운비와 연지안 내외다.
야심한 밤에 찾아온 풍운비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 숙부님이 나에게 남아 있던 합비의 점포 소유권을 넘기셨다.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가 않구나.”
풍연초의 아들인 풍운비는 사석에서 연적하를 숙부로 호칭했다.
이만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님, 느낌이 좋지 않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연지안도 궁금한지 빤히 풍운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일이 없다면 갑자기 왜 재산을 상속하겠나.”
“에이, 설마요.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살아 있는 신선이시잖습니까. 그렇지 않소? 부인?”
이만양이 연지안에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연지안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아버지는 반신(半神)의 경지에 이르셨지만…… 어머니는 달라요. 영기를 잃으신 어머니는 내외공의 고수지만…… 세월을 이기지 못하실 거예요. 나도 점포를 받으면서 내내 그게 마음에 걸렸어요.”
“장인어른이 반신의 경지라면 굳이 상속하지 않으셔도…….”
연지안이 이만양의 말을 끊었다.
“어머니가 없는 이 세상은 아버지에게 아무 의미도 없어요.”
“…….”
이만양은 반박하지 못했다.
확실히 장인은 그 대단한 능력에도 장모님밖에 몰랐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풍운비가 가볍게 날숨을 내뱉었다.
“하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은 없다. 이전까지 하지 않던 일을 하셔서 그런 것이니. 숙모님도 건강하시고.”
연지안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말씀은 잘 알겠어요. 왜 우리를 찾아왔는지도요. 당분간 아버지 어머니를 잘 지켜봐 주세요. 두 분 다 계획없이 일을 하실 분들은 아니니까.”
“그러마. 너와 설아도 자주 석경장을 찾아왔으면 한다.”
“그럴게요.”
연지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들어 절기 때만 찾아뵀는데 아무래도 더 자주 찾아가 봐야 할 것 같았다.
풍운비가 이만양을 향해서도 한마디 했다.
“자네도.”
“예, 형님. 그런데 요즘 자운이에게서 연락은 좀 옵니까?”
이야기가 대충 끝날 무렵, 이만양이 문득 풍자운의 이야기를 꺼냈다.
“자운이는 왜?”
“저도 호광성을 드나드는 행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호광성 형산 인근에서 도사와 승려 들의 실종 사건이 빈번하다고 합니다. 그걸 조사하기 위해 호천맹에서 고수들을 파견했는데……. 파견 나간 조직이 현무대라고 하더군요.”
현무대라면 풍자운이 속한 조직이다.
어쩌면 풍자운이 동원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물어본 것이었다.
“무슨 임무가 있어서 호광성으로 간다는 연락은 받았네. 그런데 그게 도사와 승려 들의 실종을 조사하러 간 것이었나?”
“예. 호광성이면 유명교 잔당인 명왕교가 숨어 지내는 곳 아닙니까. 별일이야 없겠지만 조금 신경이 쓰여서요.”
“명왕교가 사라진 지도 사십 년이 넘었는데 설마 관계있을라고.”
“그렇기는 합니다만 하필 도사와 승려 들이 사라진다니…….”
“흐음!”
풍운비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말로는 아니라고 했지만 그도 은근히 불안했다.
정말 명왕교 잔당들의 소행이라면 현무대가 상대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고맙네. 내가 따로 알아봐야겠구먼.”
“형님도 조심하십쇼. 정말 명왕교 놈들의 소행이라면…….”
이만양이 말끝을 흐렸다.
그가 만약 평범한 표국 주인이라면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명교와 명왕교의 일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장인·장모가 유명교와 어떻게 싸웠었는지를 수차례 들어서 알기에 마음이 무거웠다.
오싹한 옛날이야기가 갑자기 현실로 닥쳐 온 느낌이랄까.
풍운비는 아들의 소식을 접한 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기를 바라지만, 만에 하나 명왕교의 소행이라면 현무대만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
합비.
여강현 석경장.
다음 날.
풍운비는 아침 식사를 마친 직후 연적하에게 말했다.
“장주님, 제가 잠시 장원을 비워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어디 가게?”
머뭇거리던 풍운비는 이만양에게 들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정말 명왕교 잔당들의 소행이라면 현무대만으로는 조사가 어려울 겁니다. 위험할 수도 있고요.”
“자운이가 현무대에 있다고 했지?”
“예.”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조화인지 석경장 식솔들은 자손이 귀했다.
그러니 풍운비가 외아들 걱정에 호광성으로 직접 가려는 것이다.
“다녀와.”
“예, 그런데 장주님. 만에 하나 그게 명왕교 짓이라면…… 제가 마물이 된 저들을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걱정하지 마. 실종자 문제가 이제 대두된 거면 아직 백두마군까지 못 갔을 거야. 지금의 너라면 십두마병 하나 정도는 문제없어.”
“하나만입니까?”
풍운비가 살짝 아쉬워하자 연적하는 피식 웃었다.
“혹여 형산에서 적과 싸우게 되더라도 단숨에 둘 이상 베지는 마.”
“십두마병으로 변할까 봐 그러시는 거군요?”
“그렇지. 너에게 둘은 무리거든.”
“주의하겠습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지면 달아나야겠지요?”
“당연하지. 너도 자운이 장가가는 건 봐야 하잖아. 참! 자운이가 마음에 둔 여자는 있냐?”
“십 년 전 석경장에 찾아왔던 당돌한 녀석들을 기억하십니까?”
“그 핏덩어리들?”
“예, 그때 알게 된 여자를 지금도 만나고 있습니다.”
“그 정도면 혼인 얘기가 나와야 되는 거 아니야?”
“저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여자 집안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두 사람만 좋으면 그만이지 집안은 무슨.”
“하하핫! 세상 사람들이 다 장주님처럼 살지는 않지 않습니까.”
오랜만에 풍운비가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덕분에 자칫 무거워질 수도 있던 분위기가 가볍게 변했다.
문득 연적하가 물었다.
“형산에는 언제 갈 거야?”
“현무대가 출발한 지 여러 날 되었다니 저도 오늘 가려고 합니다.”
“그래, 조심하고.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몸을 빼. 미련하게 버티다가는 진짜 죽을 수도 있으니까. 생사가 달린 싸움에서 자존심을 세우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하물며 상대가 사람도 아닌 마물이면 말할 것도 없지.”
“예,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연적하는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더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마치 어린애를 물가에 풀어놓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덧 육십 줄에 접어든 풍운비였지만 지겨워하지 않고 다 받아 주었다.
그에게 연적하는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 풍운비는 여행 준비를 끝내고 석경장을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조용하던 석경장이 더욱 고요해졌다.
날이 저물자 연적하와 남궁연은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에 모였다.
찬모들이 여느 때처럼 음식을 내왔다.
남궁연과 단둘이 음식을 먹던 연적하가 문득 물었다.
“누님, 명왕교 말이에요. 백두마군들이 아직 살아 있을까요?”
연적하는 둘밖에 없다고 말투가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
남궁연도 분위기에 취해 말을 놓았다.
“글쎄. 살아 있다면 이렇게 조용하지는 않았을 거야. 설사 살아 있다 해도 이전처럼 힘을 쓰지는 못할 테고. 아직 살아 있다면 나이가 백이십 살은 넘었을 테니까.”
아직까지 이 갑자(120년)를 산 사람은 없었기에 하는 소리였다.
“죽어서 마물이 튀어나오면요?”
“왜? 운비와 자운이가 걱정돼?”
“혹시나 싶어서요.”
“그렇게 걱정이 되면 네가 직접 형산에 가 보면 되잖아.”
“에이, 확실하지도 않은 일인데요 뭐.”
무림인은 도산검림 속에서 사는 존재다.
아무리 자신이 풍운비와 풍자운 부자를 아낀다 해도 과보호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랬다면 딸과 사위가 하는 표국 일도 못 하게 막았을 게다.
“그렇기는 하지.”
남궁연도 연적하의 마음을 알고 더 권하지 않았다.
‘연적하가 현무대를 도우러 움직였다’는 게 알려지면 호천맹과 남맹의 인사들이 다시 석경장을 제집처럼 드나들 터.
인생 말년에 그런 일을 또다시 겪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순간의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돌아올 줄은, ‘지혜가 하늘에 닿았다’는 남궁연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