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20
1420회. 왜? 달아나게?
늦여름.
호광성.
형산현.
정오 무렵.
형산현으로 열두 명의 무림인들이 들어왔다.
호천맹에서 형산의 도사와 승려 들의 실종 사건을 조사하라고 파견한 현무대다.
선두에 있던 중년 남자, 비룡검 풍자운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직 점심을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니 각자 흩어져 정보를 수집한다. 그리고 한 시진(2시간) 후 정면에 보이는 저 미림각으로 모인다. 질문 없으면 해산.”
현무대는 다섯 개의 조로 구성되어 있고 한 개 조가 열두 명이다.
그중 풍자운은 일 조의 조장이었다.
그가 석경장을 떠나 강호에 나간 지도 어언 십일 년.
눈빛과 말투에서 노련미가 묻어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조장의 말에 조원들은 두 명씩 짝을 지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풍자운의 곁으로 이십 대 후반의 청년 하나가 다가갔다.
“조장님. 날도 더운데 잠시 냉차라도 한잔 마시면서 정보를 수집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풍자운은 속이 뻔히 보이는 벽력도 황산월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정보 수집이라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다관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그곳에서 탐문을 해도 괜찮았다.
“다관(茶館)을 찾아봐라.”
“맡겨만 주십쇼!”
황산월이 씩씩한 걸음으로 앞장섰다.
풍자운은 피식 웃으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황산월은 뺀질거리지만 무공 실력 하나만큼은 수하들 중에 최강이었다.
그런 만큼 그의 오른팔을 자처했고, 놀기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믿음직한 남자였다.
반야다관.
냉차로 목을 축인 황산월이 문득 물었다.
“조장님, 그거 아십니까?”
“말을 해야 알지.”
부지런히 다관 손님들을 살피던 풍자운이 건성으로 답했다.
“사십삼 년쯤 전에 유명교라는 광신도들이 천하를 뒤흔들었다고 하잖습니까. 그때 유명교에서 떨어져 나온 일부가 호광성에 숨어들었다고…….”
“명왕교를 말하는 거라면 이곳이 아니라 여산현 광명촌이다.”
“어? 잘 아시네요?”
“내가 어디 출신인지 잊었냐?”
“아!”
뒤늦게 석경장을 떠올린 황산월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너도 이번 실종의 배후에 명왕교가 있다고 생각하냐?”
“조장님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나는 별로. 대주님이 혹시 모른다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
“아! 대주님은 벌써 거기까지 생각하고 계셨군요. 그렇다면 조사 인원을 더 늘렸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선발대야. 수상쩍다 싶으면 악양으로 연락하라고 하시더라. 현무대를 악양에 대기시켜 놓겠다고.”
악양현에서 형산현까지 거리는 대략 오백팔십 리(약 227킬로미터).
상강(湘江) 뱃길로 사나흘이면 닿는 거리다.
하지만 황산월은 그것도 멀다고 생각했는지 툴툴거렸다.
“이왕이면 장사에 대기시키지 웬 악양이랍니까?”
장사는 악양과 형산의 딱 중간 지점으로 하루 반나절 거리였다.
“악양에 무력시위 할 일이 있나 보더라고.”
“또 남맹과 시비가 붙었답니까?”
“그렇겠지.”
풍자운은 말을 맺고 냉차를 마셨다.
남직례성 출신이라 그런지 남맹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묘했다.
호천맹에 남직례성 출신은 많지 않다.
남직례성 출신 무인들은 대부분 남맹에 투신한 때문이다.
황산월이 조장의 안색을 힐끔 살피며 물었다.
“그런데 조장님은 왜 남맹으로 안 가고 호천맹에 오셨습니까?”
“남직례성 출신이라고 다 남맹에 가는 건 아니다.”
“그래도 조장님이 남맹에 가셨으면 지금쯤 대주가 되셨을 겁니다.”
남맹에서 석경장의 위치는 가히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풍자운이 십일 년간 남맹에 충성했으면 대주가 되고도 남았을 터였다.
그러나 호천맹의 주인은 칠파이문.
칠파이문 출신들이 자리를 나눠 먹느라 그 외의 사람들은 출세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풍자운은 피식 웃기만 할 뿐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뇌운신도 공천백, 신검서생 주무생, 옥녀검 여혜진은 모두 대주거나, 그와 비슷한 지위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보다 삼 년 일찍 입맹했으니 꼭 칠파이문의 후광 덕이라 보기도 어려웠다.
풍자운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황산월은 계속해서 말했다.
“솔직히 조장님 무위면 대주급 아닙니까? 현무대 다른 조장들은 죄다 저와 비슷합니다. 어떻게 보면 조장님이 제 앞길을 막고 계시는 겁니다.”
“그래서? 조장 자리 달라고?”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저야 강한 조장님을 모시고 있어서 행복하죠.”
그때 두 사람이 들어왔다가 풍자운과 황산월을 보고는 급히 되돌아 나갔다.
현무대 일 조원들이었다.
황산월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어허! 어딜. 다른 데로 가라. 여기는 조장님과 내가 조사 중이다.”
“말 잘했다. 주인에게 가서 물어봐. 실종자들에 대해 들은 소문이 있는지.”
“지금요? 조금 더 쉬고 하면 안 되겠습니까?”
“더운데 시장통을 뒤져 볼래?”
“아닙니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황산월이 입구 쪽의 계산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가 말했다.
“장난 아닌데요? 주인장이 들은 것만 열다섯 명쯤 된답니다. 남창과 의춘의 실종자를 합치면 삼십 명이 넘을 거랍니다.”
“남창과 의춘에도 있다고?”
풍자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남창과 의춘에서 조금 더 동북 방면으로 올라가면 여산현, 사십여 년 전 명왕교가 뿌리내렸던 곳이다.
“예, 그렇다는데요?”
“그런데 왜 형산만 알려진 거야?”
“형산파 때문에 그런 거겠죠.”
“흐음.”
풍자운은 대번에 납득이 됐다.
형산파는 호천맹에 속한 도가 문파들 중 하나다.
형산파 도사들이 실종되어 호천맹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리라.
하지만 이내 짜증이 밀려왔다.
“그렇다 해도 형산파에서는 그런 내막을 설명했어야지. 우리는 형산에서 일어난 일로만 알고 있었잖아.”
“악양에 지원을 요청하시죠.”
“일단 조원들의 정보 수집이 먼저다. 지원 요청은 그 후에 해도 늦지 않아.”
풍자운은 거절했다.
다관 주인의 말만 듣고 지원을 요청할 수는 없었다.
조사든 지원 요청이든 조원들이 가져온 정보를 취합한 후에 해야 할 터였다.
잠시 후 풍자운과 황산월은 본격적인 조사를 위해 다관을 나섰다.
미림각.
현무대 일 조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식사 시간을 조금 넘겼기에 풍자운은 일단 식사부터 주문했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뒤 그 자리에서 조원들의 보고가 이루어졌다.
내용은 다관 주인이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원을 요청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풍자운에게 황산월이 말했다.
“조장님.”
“왜?”
“일단 형산파에 가서 그들 말도 좀 들어 보시지요.”
“…….”
“형산파에 우리 현무대가 왔다는 걸 알려야 호천맹의 면도 설 테고요.”
“오! 너 그런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간다?”
풍자운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황산월을 보았다.
칠파이문의 하나인 무극문 출신이라 그런지 나이에 비해 처세술이 뛰어난 것 같았다.
“제가 머리만 잘 돌아가는 건 아닙니다.”
말과 함께 황산월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린애 같은 모습에 풍자운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산파로 간다.”
***
형산.
미림각을 나선 현무대 일 조가 형산 초입에 도착한 때는 해거름 무렵이었다.
한참 산을 오르던 황산월이 조장에게 바싹 붙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조장님, 조금 이상합니다.”
“알아.”
풍자운이 날카로운 눈으로 숲을 살폈다.
너무 조용하다.
마치 형산 전체가 공동묘지인 것 같은 느낌이다.
산짐승의 움직임은 물론 그 흔한 산새의 울음마저 없었다.
너무 조용하다 보니 붉게 타는 석양마저도 불길하게 느껴질 정도다.
산 중턱에 오르자 멀리 형산파의 산문이 보였다.
싸한 느낌에 풍자운은 조원들을 두고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그는 산문 아래 형산파 도사의 시체 앞에서 멈춰 섰다.
격전을 치렀는지 몸통에 무수한 칼자국이 나 있다.
시체와 조금 떨어진 곳에 팔뚝에서 분리된 검 손잡이를 꽉 쥔 손이 있었다.
어느 틈에 달려온 황산월이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조장님!”
“호들갑 떨지 마라.”
“…….”
그제야 황산월은 입을 꾹 다물고 풍자운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보이냐?”
“예. 형산파가 공격을 받은 거겠죠?”
“당연한 소리 말고, 시체를 봐. 몸에 저렇게 칼자국이 많다는 건, 습격자들의 무공 수위가 대단한 게 아니라는 거겠지? 형산파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적과 만날 수도 있으니 다들 긴장하라고 해.”
“예.”
황산월은 두 번 묻지 않고 재빨리 조원들에게 돌아갔다.
곧이어 현무대 일 조는 형산파 산문을 지나쳐 위로 달려 올라갔다.
형산파로 다가가자 날붙이 부닥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순간 풍자운은 두 발에 내력을 밀어 넣으며 더 빠르게 치고 나갔다.
“우우우우―!”
동시에 풍자운의 입에서 형산을 뒤흔드는 장소성이 터져 나왔다.
대체로 알려지기를 호천맹의 대주들은 칠파이문 장로들 보다 강하다.
풍자운은 조장에 불과하지만 무위는 대주급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지금 그의 장소성을 들어 보면 그 평가가 얼마나 박한지 알 수 있다.
황산월을 포함한 현무대 일 조 조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가장 먼저 형산파에 도착한 풍자운은 빠르게 전황을 살폈다.
싸움이 벌어진 곳은 태청전 앞마당.
십여 명의 형산파 도사들이 방진을 짜고 습격자들에 맞서고 있었다.
주변에 쓰러져 있는 도사들을 보니 저들이 최후의 생존자 같았다.
풍자운의 등장으로 싸움이 잠시 멈췄다.
뒤에서 수하들을 독려하던 초로의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너는 누구냐? 형산파 제자가 아니라면 조용히 떠나라.”
풍자운은 초로의 노인과 그 뒤쪽에 있는 남녀 무리를 훑어보았다.
형산파 제자들과 직접 싸우는 무리가 오십여 명인데, 그걸 구경하는 사람도 십여 명이나 된다.
구경하는 자들이 저 오십여 명을 지휘하는 수뇌부라고 생각하면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조용히 떠나라고?’
그건 습격자들의 정체가 알려져도 상관없다는 뜻이 아닌가!
풍자운은 수뇌부의 면면을 살폈다.
하지만 십일 년의 강호행에도 불구하고 누구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남맹은 아닐 테고. 형산파를 몰살시킬 정도의 세력이면 알려졌을 만한데…….’
나이는 중년부터 노인까지 다양한데 죄다 무림 초출인지 알아볼 길이 없다.
얼굴 특징은 물론 복장과 병기까지 모든 게 낯설다.
“나는 호천맹 현무대의 조장인 비룡검 풍자운이오! 당신들은 누구요?”
풍자운의 말이 끝날 즈음, 합류한 조원들이 그의 좌우에 자리 잡았다.
초로의 노인은 불청객이 늘어나자 인상을 찌푸렸다.
호천맹 이름을 듣고 겁먹은 눈치가 아니라 귀찮게 됐다는 태도다.
초로의 노인이 수뇌부들 쪽을 향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것 같았다.
풍자운이 재차 물으려 할 때, 포위 공격을 당하던 형산파 도사 중 하나가 외쳤다.
“저들은 명왕교 놈들이오! 미쳤는지 감히 형산파까지 쳐들어와 도사를 잡아가려 했소!”
순간 명왕교 수뇌부들이 일제히 풍자운과 현무대를 향해 몸을 날렸다.
풍자운은 ‘흥!’ 하는 냉소와 함께 검을 뽑아 들고 명왕교를 향해 짓쳐 들어갔다.
싸움은 초반의 기세가 중요하다.
그는 현무대 일 조 전력이면 십여 명의 수뇌부에 결코 밀리지 않을 거라 믿었다.
선두의 적과 마주치자 풍자운은 처음부터 용무천상(龍武天祥)을 펼쳤다.
빠르게 적의 숫자를 줄여 수하들의 부담을 줄여 줄 요량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차차창―!
붉은 얼굴을 한 남자의 투박한 도에 용무천상의 검로가 차단당했다.
석경장을 나간 이래 구천세법이 처음부터 막히기는 처음이다.
도법의 정교함에 의한 것이 아니다.
남자의 도에 실린 힘은 그가 만나 본 어떤 무림 고수들보다 강했다.
마치 아버지와 검을 맞댄 기분이다.
깜짝 놀란 풍자운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명왕교 팔왕 중 하나인 천산왕, 적면귀 육자강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며 히죽 웃었다.
“왜? 달아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