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25
1425회. 바람이 제법 부나 보오
무턱대고 걷던 연적하는 제법 번듯하게 생긴 객점으로 들어갔다.
저녁 시간대에도 식당에 빈자리가 많은 걸 보니 빈방이 있을 것도 같다.
아니나 다를까?
계산대에서 나온 주인은 굽실거리며 방값을 안내했다.
연적하는 방 두 개 값을 지불한 뒤 창가 자리에 대충 걸터앉았다.
송여량은 그의 맞은편 자리에 앉자마자 조금 전의 상황을 변명하듯 말했다.
“아까는 죄송합니다. 맹주님이 현무대는 어쩌고 혼자 여기에 왔냐고 물어서……. 대협을 모시고 왔다고 했다가 그렇게 됐습니다.”
“뭐가 죄송해? 이야기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게다가 너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건 나잖아. 현무대가 신경 쓰이면 형산으로 가도 돼.”
“아닙니다. 현무대원들이 강호 초출도 아니고. 괜찮습니다. 게다가 풍 대협이 풍 조장을 데리고 있다면……. 대주인 제가 이곳에 있는 게 맞습니다.”
“그럼 됐어. 나는 신경 쓰지 마.”
“예!”
대화를 마칠 즈음 저녁 요리가 나왔다.
두 사람은 묵묵히 차려진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식사 후 차를 마시던 연적하가 문득 물었다.
“호천칠군들 말야. 나를 보는 눈빛들이 조금 이상하던데, 왜들 그래? 예전에 남직례성에서 무극문을 쫓아낸 일로 아직까지 나를 적대시하는 분위기야?”
“아닙니다. 무극문에서도 남천 대협을 원망하지 않는데, 호천맹에서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무극문의 속사정을 네가 어떻게 안다고?”
“제가 무극문의 제자잖습니까.”
그러자 연적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송여량을 보았다.
형산현에서 길잡이로 세운 사람이 하필 무극문 제자였다니 묘한 인연이다 싶다.
“무극문에서 나 때문에 남직례성에서 쫓겨났다는 말 안 해? 장학 문주가 꽤 툴툴거렸을 거 같은데.”
“장 문주님은 십 년 전에 장자에게 문주직을 물려주었습니다.”
“장자면 장경수인가?”
“예, 광풍도라는 별호로 불리고 계십니다.”
송여량은 남천 대협이 문주의 이름을 알아주자 자기 일처럼 뿌듯해했다.
“그랬군. 나는 호천칠군의 눈빛이 불손해서 그 일 때문에 그런 줄 알았는데.”
감정은 상대적이다.
연적하는 호천칠군의 눈빛에서 감정의 편린을 읽을 수 있었다.
“그건 어쩌면…… 아닙니다. 그보다 명왕교도들이 왜 형남현으로 갔을까요?”
송여량이 얼른 말을 돌렸다.
연적하가 그런 그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명왕교가 제일 좋아하는 데가 어딘 줄 알아?”
“그들이 좋아하는 데가 있습니까?”
“도관과 절간이야. 그들에게 도관과 절간은 보물 창고나 다름없어.”
“아!”
그제야 송여량은 남천 대협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수도자들로 인신공양을 하려면 도사와 승려가 필요할 터.
형남현에 있는 도관과 절을 찾아간 것이리라.
“그건 그렇고 방금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만 거야? 뜸들이지 말고 말해 봐.”
연적하의 독촉에 송여량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호천칠군은 호천맹의 살아 있는 전설입니다. 지난 사십여 년간의 무림대회에서 호천칠군보다 더 뛰어난 무인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일곱 명이나 되는 절세고수가 동시에 출현한 것을 두고 기적과 같은 일이라 말합니다.”
“짧게.”
“사십여 년간 호천칠군은 호천맹 최고 고수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을 두고 안팎에서 시기 어린 말도 많이 나왔지요. 그들은 끊임없이 호천칠군과 남천 대협을 비교했습니다. 호천칠군의 의지와 관계없이 수십 년을 말입니다. 오늘날 호천칠군이 남천 대협을 선의의 경쟁자로 여긴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닙니다.”
말이 좋아 ‘선의의 경쟁자’이지 실은 ‘넘어서야 할 산’이라는 소리다.
녹림 총순찰이 된 뒤 질시의 시선을 받아 봤던 연적하는 금방 알아들었다.
“그러니까 나와 붙어 보고 싶을 거라는 말이네?”
저렴한 남천 대협의 표현에 송여량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자와 싸우고 싶어 하는 건 무인의 숙명이 아닙니까.”
“차라리 그렇게 순수한 마음이면 좋겠다.”
연적하가 만나 본 고수들은 대부분 명리(名利)를 탐하는 자들이었다.
“호천칠군도 그럴 겁니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어. 누구라도 까불면 처맞아야지. 안 그래?”
“…….”
송여량은 호천맹 소속이라 차마 그렇다고 답하지 못했다.
맞을 대상이 호천칠군인 까닭이다.
다음 날.
연적하와 송여량은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바로 형남현으로 향했다.
***
형남현.
사시 정(오전 10시) 무렵.
연적하와 송여량은 형남현으로 들어섰다.
늦여름인데 마을 분위기는 한기가 풀풀 날렸다.
외부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두려움과 적의가 깃들어 있었다.
그 모습에 연적하가 황당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분위기 싸하네. 외부인을 상당히 싫어하는 거 같은데?”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송여량이 가까운 노점상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말 좀 물읍시다.”
“예? 예…….”
송여량의 허리춤에 걸린 검 때문인지 노점상은 고분고분했다.
“최근 이곳에 외부인들이 오지 않았소? 그들 중 몇은 장대에 여덟 개의 발이 달린 동경 같은 걸 매어 달았을 텐데.”
“그들을 왜 찾으시는 겁니까?”
노점상이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송여량을 보았다.
송여량이 뭐라고 답하려 할 때, 마을 어귀로 백여 기의 인마가 들어왔다.
때마침 호천맹 토벌대가 온 것이다.
토벌대 선두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명왕교 잔당들을 토벌하러 온 호천맹의 토벌대요! 장대에 이상한 걸 매달고 다니며 악행을 저지르는 무리들이 어디 있는지 알면 가르쳐 주시오!”
송여량과 토벌대를 번갈아 보던 노점상이 토벌대를 향해 부리나케 달려갔다.
뭐라고 한참 떠들던 노점상은 송여량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뒤늦게 송여량을 발견한 호천맹 무인이 피식 웃으며 묵례를 해 보였다.
이윽고 토벌대는 바람처럼 남쪽으로 내달렸다.
흙먼지가 자욱이 일어났다가 가라앉자, 노점상은 쭈뼛쭈뼛 자기 자리로 돌아와 송여량의 눈치를 살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노점상에게 송여량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호천맹 현무대 대주인 강남일검 송여량이오. 그자들이 어디로 갔는지 내게도 가르쳐 주시오.”
“어이쿠! 호천맹의 분이신 줄 몰라뵙고 제가 큰 실례를 했습니다. 그들은 상원사로 갔습니다.”
“상원사는 어디에 있소?”
“남문으로 나가서 길을 따라 반나절쯤 내려가면 불암산이 나옵니다. 상원사는 불암산 중턱에 있습니다.”
“고맙소.”
인사와 함께 돌아선 송여량에게 노점상이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사흘 전 그자들이 마을의 여자들을 눈에 띄는 대로 끌고 갔습니다. 제 딸도 끌려갔습니다. 대협! 부디 제 딸과 마을 여자들을 구해 주십시오!”
“토벌대가 갔으니 좋은 소식이 있을 게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한 송여량은 급히 연적하에게 달려갔다.
“사흘 전 마을 여자들을 끌고 남쪽에 있는 상원사라는 곳으로 갔답니다.”
“여자들까지? 아주 막 나가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로군.”
“그러게 말입니다. 뭘 믿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십두마병을 많이 만들고 기세등등해진 걸 테지. 지금은 눈에 보이는 게 없을 거야.”
잠시 후 마을 밖으로 나간 연적하는 운종술을 펼쳤다.
남쪽으로 반나절이나 가야 한다는 말에 아예 구름을 불러낸 것이다.
이윽고 연적하와 송여량을 태운 하얀 구름이 하늘로 둥실 날아올랐다.
선두에서 말을 달리던 청룡대 대주 추혼검 화선룡이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그와 나란히 가던 총군사 신산자 공손천수가 물었다.
“왜 그러는가?”
“송 대주와 남천 대협 말입니다. 근처에 말도 안 보이던데…….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마구간에 두고 다니겠지. 마을에서 말을 타고 다닐 일이 있겠나.”
“그렇겠지요?”
화선룡은 정면을 응시하며 말에 박차를 가했다.
호천칠군들과 나란히 말을 달리던 검군 신중낙이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렸다.
까마득히 높은 하늘 위로 유난히 하얀 구름 한 덩어리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뭘 그렇게 보시오?”
무료한지 도군 등무령이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신중낙이 눈짓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답했다.
“바람이 제법 부나 보오.”
등무령은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어차피 말을 달리고 있기에 바람의 세기를 확인할 길도 없었다.
“싱겁기는.”
등무령의 말에 신중낙은 더 이상 하얀 구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
한 시진(2시간) 전.
불암산.
상원사.
이른 아침.
한 노인이 관짝을 어깨에 짊어지고 대웅전 앞마당까지 뚜벅뚜벅 들어왔다.
명왕교도들은 그 기괴한 행동에 지켜보기만 할 뿐, 누구도 그 앞을 막지 않았다.
노인은 대웅전에 관짝을 내려놓고는 허리춤에서 도를 뽑아 들었다.
노인과 백여 명의 명왕교도들 간에 싸움이 시작됐다.
노인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마치 농부가 추수하듯, 덤벼드는 명왕교도들을 베어 갈 뿐이었다.
독경 소리 은은해야 할 사찰에 날붙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차차차창―!
짧은 비명과 함께 대여섯 명의 무인이 픽픽 쓰러졌다.
쓰러진 무인들은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피를 쏟아 내며 경련했다.
그렇게 앞마당에 널브러진 무인의 숫자가 무려 칠십여 명이나 된다.
칠십여 명의 무인을 벤 노인의 시선이 다른 무인들에게로 향했다.
그 서슬에 삼십여 명의 무인들은 흠칫 놀란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반 시진(1시간) 만에 교도들의 칠 할이 당하자 잔월왕, 사군자 구사천이 나섰다.
“뭐 하는 늙은이냐!”
온몸에 피 칠갑을 한 노인, 운중룡 풍운비가 갈라진 음성으로 되물었다.
“너는 십두마병이냐?”
구사천은 기이한 눈으로 노인을 보았다.
혼자 몸으로 십두마병을 찾는 걸 보니 당해 내기 어려운 무림의 기인 같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뒤쪽을 힐끔 돌아보았다.
구경하던 천산왕과 감로왕이 마지못한 얼굴로 걸어 나와 잔월왕의 좌우에 자리를 잡았다.
그제야 자신감을 회복한 구사천이 삐딱한 자세로 되물었다.
“늙은이! 십두마병을 찾고 있나?”
“열흘 전 형산파에서 살육을 저지른 게 너희들이냐!”
“형산파? 아, 그 도사 놈들. 그래, 우리가 거기서 재미를 좀 봤지. 왜? 죽은 형산파 도사들 중에 가족이라도 있었나? 설마 복수하려고 우리를 찾아온 거냐?”
“그날 호천맹 고수를 죽인 게 누구냐?”
그러자 천산왕, 적면귀 육자강이 놀리듯 말했다.
“호천맹? 아, 그 분수도 모르는 새끼? 알량한 재주를 믿고 깝치길래 내가 포를 떠 줬지. 칼질을 하는데 아주 손맛이 좋더라고. 왜? 아는 놈이었나? 저 관짝에 그놈이 들어 있는 건 아니겠지?”
풍운비가 핏발 선 눈으로 육자강을 노려보았다.
저런 병신 같은 놈에게 아들이 당했다니, 가슴이 답답하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치밀어 오르는 노기에 이성을 상실한 풍운비가 호랑이처럼 포효하며 육자강에게 달려갔다.
그의 도가 쉴 틈 없이 번득였다.
비룡승천, 용무천상, 운룡풍호가 황하의 격랑처럼 십두마병을 덮쳤다.
콰콰콰콰―!
십두마병들은 석경장에서 사십여 년간 고련한 풍운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비룡승천에 천산왕, 적면귀 육자강의 검이 산산조각 났다.
용무천상은 감로왕, 요마 진주희의 강철로 만든 손톱을 성둥성둥 잘랐다.
잔월왕, 사군자 구사천의 도를 반토막 낸 건 운룡풍호다.
“크윽!”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십두마병들을 풍운비가 성난 호랑이처럼 덮쳤다.
절체절명의 순간, 최근 십두마병이 된 염라왕과 파군왕이 풍운비의 허를 찔렀다.
아직 제대로 된 별호조차 없는 염라왕과 파군왕이었지만 그 초능만큼은 위협적이었다.
풍운비는 하늘로 솟구쳐 기습을 피한 뒤, 감히 자신의 복수를 방해하는 떨거지들에게 도강을 뿌렸다.
휘이잉―! 휘잉―!
반듯하게 잘린 머리 두 개가 날아올랐다.
도강을 본 세 십두마병들은 자신들이 염라대왕과 만났다는 걸 알고 튀었다.
흩어져 달아나는 세 십두마병들 머리 위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천뢰무망이다.
육자강, 진주희, 구사천은 뜻을 채 펼쳐 보기도 전에 머리가 박살이 났다.
십두마병들의 시체 한가운데로 풍운비가 표표히 떨어져 내렸다.
계속해서 육자강의 시체를 도륙내려고 다가가던 풍운비가 멈칫했다.
으드드득― 으득―!
다섯 개의 시체가 부풀어 오르고, 기괴한 방향으로 꺾이며 불길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