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24
1424회. 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
현무대주 강남일검 송여량은 절강성 항주의 무극문 출신이다.
칠파이문은 유명교와 관계된 역사를 두루뭉실하게 넘겼는데 무극문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원로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요약하면 ‘사십여 년 전 유명교주가 세상을 도탄에 빠트렸는데, 정사 양도가 힘을 합쳐 물리쳤다’는 정도다.
그 과정에 남천 연적하의 이름은 여러 차례 등장한다.
“유명교 백두마군을 단독으로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은 녹림의 연적하밖에 없었다.”
“연적하는 십전무후 남궁연과 혼인한 뒤로 녹림을 떠나 석경장에 은거했다.”
“고금제일인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젊은 나이에 무공의 성취가 높았다.”
“당시 남맹의 맹주가 그를 이용해 무극문을 남직례성에서 몰아냈다.”
마지막 말을 언급할 때 원로들의 표정에는 회한이 가득했다.
하지만 딱히 연적하를 원망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떤 원로는 봉문시키지 않은 게 어디냐며 연적하의 아량을 칭찬할 정도였다.
무극문은 남맹의 등쌀에 남직례성에서 절강성으로 옮겼지만, 결과적으로 항주에서 이전보다 더 세를 키웠다.
오죽하면 무극문의 뿌리를 항주로 아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그런 분위기로 인해 송여량도 연적하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송여량과 같은 후대에게 연적하는 전전 대의 전설적인 고수였다.
그가 놀란 것은 고희(70세)를 넘긴 연적하가 이십 대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만약 연적하가 오십 대로 보였다면 의심하지 않고 극진히 받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십 대는 말이 안 됐다.
전설적인 주안술을 익혔다 해도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런 의심도 연적하가 구름을 불러낸 순간 씻은 듯 사라졌다.
해거름 무렵.
구름을 타고 날아가는 도중에 송여량은 제 허벅지를 꼬집었다.
아프다.
이 모든 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소리다.
벅찬 감동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송여량의 귓가로 연적하의 음성이 들려왔다.
“강이 너무 구불구불한데 꼭 이렇게 가야 하냐?”
“예, 조금 돌기도 하지만 그래도 상강(湘江) 줄기를 따라 내려가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강줄기를 무시하고 직선 거리로 가다 보면 자칫 엉뚱한 길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젠장. 시간 없는데 무슨 강이 양 곱창처럼 아래위로 돌아치네.”
“그래도 조금 전에 칠리촌 나루를 지났으니 곧 형양에 도착할 겁니다. 칠리촌 나루에서 형양은 두 시진(4시간)이면 닿는 거리라서요.”
“그래? 이대로 형양에 들어가면 소란스러울 테니까, 외곽에서 내리게 보이면 바로 말해라.”
“예! 적당한 지점이 보이면 말씀 올리겠습니다.”
사십 대의 현무대주 송여량은 강호 초출처럼 큰 소리로 답했다.
잠시 후.
멀리 형양성 성벽이 보이자 송여량은 관도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대협! 저쪽으로 내려가면 될 것 같습니다!”
이윽고 하얀 구름 한 덩어리가 지면에 내려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적하와 송여량이 형양성으로 향하는 관도로 올라갔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형양성으로 들어가는 무리에 섞여들었다.
성문을 통과한 직후 연적하가 송여량에게 말했다.
“노점상들에게 물어봐. 장대에 이상한 걸 매달고 가는 놈들을 봤는지.”
“예!”
송여량은 갓 군문에 든 신병처럼 재빨리 노점상들에게 달려갔다.
그는 현무대주에 오를 만큼 경험 많은 무인이다.
짧은 시간에 노점상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어낸 그가 바람처럼 돌아왔다.
“며칠 전에 형남현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았답니다.”
“형남현?”
“형양성 남쪽에 있습니다.”
연적하가 애매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풍운비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밤이 되기 전에 숙소부터 정해야 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쉬고 내일 다시 움직여야겠다. 객점이나 알아보자.”
“예!”
힘차게 대답한 송여량이 앞장서 걸어갔다.
마치 무관을 보는 듯한, 무극문의 기풍이 묻어나는 행동이었다.
번화가를 뒤지던 송여량은 형양성에서 가장 큰 객점 앞에서 멈춰 섰다.
일 층 창문으로 객점 식당을 들여다보던 송여량이 멈칫했다.
“왜?”
“객점에 호천맹 토벌대가 있는 것 같습니다.”
“토벌대가 확실해?”
“예, 호천칠군을 봤습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잠시 생각하던 연적하는 번거로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 돌아섰다.
자신과 일면식도 없는 호천칠군이 호승심에 도발을 해 오면 그것처럼 귀찮은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앞서가는 연적하의 뒤를 송여량이 뒤따랐다.
그렇게 몇 걸음 내디뎠을까?
객점 문이 벌컥 열리더니 누군가 큰 소리로 송여량을 불렀다.
“송 대주!”
송여량이 마지못한 얼굴로 돌아섰다.
그를 불러 세운 청룡대 대주 추혼검 화선룡이 말을 이었다.
“아니 이 사람아! 여기서 우리를 봤으면 들어와야지, 왜 돌아서 가나?”
“일행이 있어 그렇게 되었습니다.”
화선룡이 송여량보다 나이가 많은지라 송여량은 말을 높였다.
“일행?”
그제야 화선룡은 몇 걸음 앞서 있는 청년을 힐끔 보았다.
하지만 무장도 하지 않은 일반인의 모습에 그는 이내 관심을 끊었다.
“그래도 맹주님을 봤으면 들어와서 인사는 드리고 가야지. 그냥 가면 쓰나. 다른 호천칠군들께서도 기다리고 계시니 잠시 들어오게.”
화선룡이 호천칠군을 거론하자 송여량도 쉽게 거부하지 못했다.
그는 슬쩍 연적하의 안색을 살폈다.
호천칠군에게 잘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남천 대협의 심기를 살피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일인 까닭이다.
호천칠군과 얽히고 싶지 않았던 연적하는 고개를 까딱여 보인 뒤, 먼 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신경 쓰지 않을 테니 알아서 처신하고 나오라는 뜻이다.
그제야 송여량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 다시 객점으로 걸어갔다.
화선룡은 송여량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에 살짝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내 송여량을 데리고 객점으로 들어갔다.
보월객점.
“맹주님과 호천칠군 님들을 뵙습니다.”
현무대주 강남일검 송여량은 호천맹 맹주와 호천칠군들에게 읍을 해 보였다.
딱히 할 말이 없었기에 인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어색한 대면식은 끝났다.
잠시 멀뚱멀뚱 서 있는 송여량에게 문득 맹주가 물었다.
“현무대는 어쩌고 대주가 형양에 있나? 현무대의 임무는 잘 마쳤나?”
“형산현과 인근을 샅샅이 뒤졌으나 풍 조장의 흔적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석경장의 총관인 풍운비 대협께서 명왕교의 소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들인 풍 조장을 돕기 위해 나서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풍운비 대협의 행적도 묘연합니다.”
“허어! 그것참!”
“현무대보다 풍운비 대협이 형산파에 먼저 들른 것 같습니다. 정황상 풍운비 대협이 풍 조장을 데리고 있거나…… 시신을 수습했다고 생각됩니다.”
“풍운비 대협이 나섰다는 말을 누가 해 주던가?”
“형산현에 남천 대협을 만났습니다.”
“…….”
한순간 객점 안이 침묵에 빠져들었다.
무려 사십여 년 만에 고금제일인이 은거를 깨고 모습을 드러낸 때문이다.
토벌대의 고수들은 반사적으로 호천칠군의 눈치를 살폈다.
세대교체를 ‘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长江后浪推前浪]’고 표현한다.
무림사에서 뒤 물결은 호천칠군이고, 앞 물결이 남천 연적하다.
호천칠군들은 사십 년 동안 남천 연적하와 비교당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때마다 매번 ‘우리가 어찌 감히……’라고 겸양을 떨었다.
속마음도 그럴지는 하늘만 알 일이지만 말이다.
무려 사십 년 동안 자기 분야에서 최고수 소리를 듣다 보면 없던 웅심도 생기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니던가.
호천맹에서 사십 년이나 구른 신중낙이 그런 사람들 속마음을 모를 리 없다.
그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물었다.
“남천 대협이 다른 말씀은 없으시던가?”
“풍운비 대협이 십두마병들을 한꺼번에 참살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셨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허면 현무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아직 형산 일대에서 풍 조장을 찾고 있습니다.”
“응? 그런데 대주인 자네는 왜 이곳까지 왔나?”
허를 찌르는 질문에 머뭇거리던 송여량이 마지못해 답했다.
“남천 대협의 길 안내를 해 주고 있었습니다.”
“…….”
다시 한번 객점이 조용해졌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이번에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총군사 신산자 공손천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남천 대협이 밖에 계시오?”
“그렇습니다.”
공손천수는 마치 뛰어가듯 빠른 걸음으로 식당을 가로질렀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토벌대 고수들이 앞다퉈 그의 뒤를 따랐다.
의자가 넘어가면서 ‘우당탕!’거렸지만 누구 하나 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객점 식당에 있던 토벌대 수뇌부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검군 신중낙이 호천칠군들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이거야 원. 무림의 인사라는 사람들이 저렇게 엉덩이가 가벼워서야.”
몇 년 전에 맹주가 된 신중낙과 다른 호천칠군들은 연적하와 일면식도 없었다.
그들 역시 무림의 대선배이자 고금제일인 소리를 듣던 남천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호천칠군이 자타가 공인하는 당금 무림의 최강자이기 때문이다.
이윽고 맹주인 검군 신중낙을 필두로 다섯 명의 호천칠군이 객점 밖으로 나갔다.
발정난 개처럼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간 토벌대 수뇌부들이 애매한 표정으로 한 청년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런데 약속이나 한 듯 표정이 좋지 않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호천칠군들의 시선이 송여량을 향했다.
순간 송여량의 손가락이 멀뚱멀뚱 서 있는 청년을 가리켰다.
“저분이 남천 연적하 대협이십니다. 남천 대협, 이분들이 호천칠군이십니다.”
청년을 살피던 호천칠군의 눈이 다시 송여량에게로 향했다.
특히나 맹주인 검군 신중낙은 잡아먹을 듯 쏘아보았다.
하지만 송여량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순간 신중낙의 뇌리에 오래전 전임 맹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이십 년쯤 전 남천 대협의 딸이 혼인을 할 때 석경장에 갔다가 두 번 놀랐네. 남천 대협을 만났는데 얼굴이 이십 년 전과 똑같더군. 잠시 후 십전무후와 만났는데 십전무후의 얼굴도 이십 년 전 그대로였네. 세월을 비껴 가는 그들의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두렵더군. 유명교주가 살아 있었다면 남천 대협의 종복이 되기를 자처했을 걸세.
어쩌면 눈앞의 이 청년이 진짜 남천 연적하인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한 신중낙은 정중하게 운을 뗐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호천맹 맹주이자, 검군이라 불리는 신중낙입니다. 제 옆으로 도군 등무령, 창군 고관천…….”
신중낙이 호천칠군을 한 사람씩 소개했다.
토벌대 수뇌부들의 얼굴에 깃들었던 의심이 조금씩 걷혔다.
그래도 수뇌부들은 감히 남천 연적하의 근처에 다가가지 못했다.
호천칠군의 소개를 끝낸 신중낙이 남천 대협을 빤히 보았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정상이다.
기묘한 침묵이 호천칠군과 연적하 사이에 흘렀다.
참다못해 도군 등무령이 한마디 하려는 순간, 연적하의 입이 열렸다.
“반갑습니다. 남천이라 불리는 연적합니다. 시간이 없어 길게 이야기는 못 나눌 것 같군요. 인연이 되면 다음에 또 봅시다.”
연적하는 호천칠군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돌아서 휘적휘적 걸어갔다.
송여량은 당황한 맹주에게 읍을 해 보인 후, 허겁지겁 연적하를 따라갔다.
남천 연적하가 사라지자 수뇌부들도 하나 둘 객점으로 돌아갔다.
창군 고관천이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내 눈에 남천 대협이 우리를 피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도군 등무령도 한마디 거들었다.
“기도도 시원치 않아 보이더이다. 고금제일이 주안술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소.”
그 말에 근엄한 얼굴로 서 있던 호천칠군들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