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66
1466회. 백작님은 그런 이상한 기술을 왜 배우셨습니까?
엘리오에게 히르헤라는 특별한 곳이다.
처음 이세계에 발을 내디딘 곳일 뿐 아니라, 기사 서임은 물론 작위까지 받은 곳이다.
그에게는 히르헤라가 두 번째 고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연히 히르헤라에 대해서는 남다른 애착이 있다.
처음으로 얻은 이명도 ‘히르헤라의 수호자’가 아니었던가.
그는 히르헤라의 수호자답게 ‘도살자’를 잡기로 마음먹었다.
도살자에 대한 정보는 가지고 있다.
한쪽 볼에 칼자국이 있는 남자다.
히르헤라에 북부 왕국군이 거의 다 몰려와 있지만, 볼에 칼자국이 난 사람은 많지 않을 터였다.
파비안이 절반쯤 비운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짧은 시간에 인기척을 숨길 정도면 보통 놈은 아닐 겁니다.”
“그래도 결정적인 단서가 있으니까 잡힌다.”
“그런데 백작님, 그놈 뺨에 칼자국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군사 작전이 얼추 끝나자 파비안은 ‘사령관’ 대신 ‘백작’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죽은 사람들에게 물어봤지.”
“생전 하지 않던 농담을 다 하시네요?”
“농담 아니다.”
“에이, 죽은 사람과 어떻게 대화를 하십니까? 죽으면 그만인데.”
“그러게. 나도 이 세계에서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굉장히 궁금했거든? 그런데 이젠 안 궁금해.”
“죽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파비안의 질문에 엘리오가 반문했다.
“그 전에 여기서는 뭐라고 가르치냐?”
“마나 프트라스님에게 돌아간다고 가르칩니다.”
“응, 안 돌아가.”
“그럼요? 어떻게 되는데요?”
“죽은 사람에게 물어봤거든? 뭐라고 한 줄 알아?”
“뭐라는데요?”
“내가 불러내기 전까지 기억이 없다더라. 잠들었던 것처럼. 내가 불러냈을 때, 잠에서 깬 것처럼 정신이 들었대.”
“헐!”
“놀랍냐?”
“그게 말입니다. 그 죽은 사람의 말이 사실이라 쳐도, 마나 프트라스에게 돌아간 상태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어차피 모른다면서요?”
“다른 건 몰라도 네가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건 알겠다.”
“농담이시죠?”
“뭐가?”
“죽은 사람과 대화를 했다는 거요. 그런 건 고위 샤먼들이나 가능한 거잖습니까. 게다가 샤먼이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자세한 건 불가능합니다. 그랬다면 못 잡는 살인범이 없었을 겁니다. 치안대장도 샤먼이 맡았을 테고요. 현실은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얼마 전에 마족 군주에게 배웠어.”
엘리오는 그로네미아의 군주인 무르모르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파비안이 황당한 눈으로 라고아 백작을 보았다.
“시체가 있으면 죽은 이의 영혼을 불러올 수 있다고요?”
“무르모르가 가르쳐 준 대로 하니까 진짜 영혼이 스윽 하고 나타나던데?”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잖습니까?”
“뭐, 그렇기는 하지. 그런데 살인범의 묘사가 비슷한 걸 보면……. 진짜 아닐까?”
“그건 또 그렇네요.”
파비안은 선선히 인정했다.
거짓이었다면 둘의 이야기가 달랐을 테니까.
죽으면 잠든 것처럼 사후 세계에 대한 기억이 없다니.
알쏭달쏭한 느낌이다.
안주로 배를 채운 두 사람은 맥주로 입가심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위를 가볍게 둘러보던 파비안이 지나가듯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실 겁니까?”
“치안대.”
“또 시체랑 대화하시게요?”
“어, 도살자에 대한 단서를 더 얻게 될 수도 있잖아.”
“저도 같이 가도 됩니까?”
“그러든가.”
시큰둥하게 답한 엘리오는 히르헤라의 치안대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잠시 후 시체가 보관된 창고에서 나온 파비안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이건 진짜, 말이 안 됩니다.”
“놀랐냐?”
“놀란 정도가 아니라 끔찍합니다. 죽으면 잠든 것처럼 기억이 없다니. 그런데 백작님이 불러내면 깨어나는 건 또 뭡니까? 그냥 쭈욱 잠들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나도 원리는 몰라. 딱히 알고 싶지도 않고. 우주의 신비를 내가 다 알 필요는 없잖아.”
“그거 말입니다. 저도 배울 수 있습니까?”
“배워서 뭐 하게? 치안대에서 살인범들 잡게?”
“아뇨. 그냥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해서요.”
“너는 안 배우는 게 나아.”
“왜요? 배워 둬서 나쁠 게 있습니까? 백작님만 해도 도살자를 잡는 데 쓰고 있잖습니까?”
“너의 빈약한 카르마로는 후과를 감당하지 못해. 네가 불러낸 영혼들의 무게에 압도당할 거야.”
“후유증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어. 약하면 꿈자리가 뒤숭숭하지만, 세게 오면 네 몸에 여러 영혼이 깃들 수도 있어. 다시 잠들고 싶지 않은 영혼도 있을 수 있거든.”
“어이쿠! 말씀만 들어도 오싹하네요. 배우지 않겠습니다. 못 들은 것으로 해 주십쇼.”
“잘 생각했어. 영주가 됐으면 영지를 잘 다스릴 생각만 해. 범인 잡는 건 치안대에 맡기고.”
“그런데 백작님은 그런 이상한 기술을 왜 배우셨습니까?”
“혹시나 해서.”
“혹시나요?”
“어.”
사실 엘리오는 ‘남궁연을 불러낼 수 있을까?’ 싶어 배워 둔 것이었다.
물론 남궁연이 죽은 게 아니라 상계로 간 것이기 때문에 결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말이다.
영혼 소환술을 배웠다고 그녀를 불러 본 적은 없다.
궁금한 건 구천현녀에게 물으면 되기도 하거니와, 자신을 떠난 그녀를 불러서 뭐 한단 말인가.
파비안은 라고아 백작이 사망한 부인을 만나기 위해 배웠다고 생각해 더 묻지 않았다.
때마침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각자 생각에 잠겨 묵묵히 걷던 두 사람의 걸음이 빨라졌다.
***
그날 밤.
파비안은 눈을 감았지만 쉽게 잠들지 못했다.
몇 번이나 몸을 뒤척이던 그는 어느 순간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아아! 미치겠네.”
잠이 오지 않았다.
잠에 들려고만 하면 트레이시 골드의 반투명한 영혼이 떠올랐다.
죽으면 당연히 마나 프트라스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라 믿던 그에게 그건 충격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마나 프트라스 신전에 다니지 않더라도, 마나 프트라스를 믿는다.
그런데 마나 프트라스의 품이 아니라, 그냥 잠들어 있다니?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걸 깨워서 불러내는 건 또 뭐란 말인가.
머리를 벅벅 긁던 파비안은 한기가 느껴지자 난로에 파이어 스톤 한 조각을 넣었다.
그래도 오싹했다.
이건 설마 라고아 백작이 말한 후유증 같은 것일까?
그는 자꾸 시려 오는 어깨를 양손으로 비비며 다시 침상에 올라갔다.
‘내가 영혼 소환술 하는 근처에 가면 사람이 아니다.’
이 무시무시한 걸 가르쳐 달라고 했었다니, 잠시 미쳤던 것 같다.
***
다음 날.
날이 밝자 엘리오는 북부 왕국 연합군 총사령부를 찾아갔다.
그는 총참모에게 도살자의 인상착의를 가르쳐 준 뒤, 히르헤라에 주둔한 부대들에게 전파하라고 지시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랜드 마스터가 관심을 가진 일이다.
한 시간도 안 돼서 히르헤라 전역에 도살자의 인상착의가 알려졌다.
엘리오는 반나절이면 도살자의 신원이 밝혀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도살자를 봤다는 신고가 없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엘리오는 결과가 궁금해서 치안대를 방문했다.
치안대장의 집무실.
치안대장 데니스 호프 남작이 면목 없다는 얼굴로 설명을 이어 갔다.
“……지금까지 의심자 신고가 세 건 들어왔습니다. 확인해 보니 칼자국이 아니라 단순한 흉터에 불과했습니다. 얼굴에 칼자국을 가진 사람은 아직 한 건도 신고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얼굴이 생각보다 깨끗하네. 마족과 전쟁을 치러서 그보다 훨씬 많을 줄 알았는데.”
“마족의 칼을 얼굴에 맞고 살아난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마 사람들끼리 칼부림하다가 생겨난 것일 겁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없었습니다. 범인이 어떤 놈인지 몰라도 꼭꼭 잘 숨은 것 같습니다.”
“수고가 많다.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놈 있으면 나에게 연락해라.”
엘리오는 데니스 치안대장의 어깨를 다독여 준 뒤 돌아섰다.
치안대를 나서는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잡을 것 같았는데 의외다.
“허! 거참! 오다 가다 본 사람이 있을 텐데…….”
히르헤라는 좁은 도시니 몰라서 신고를 하지 않은 건 아닐 터였다.
엘리오는 터덜터덜 서부군 주둔지로 돌아갔다.
도살자의 검거에 대한 진전 없이 날짜만 하루하루 지나갔다.
제막식을 사흘 앞두고 엘리오는 북부 왕국 연합군에 공지를 돌렸다.
과거 빙벽이 깨졌던 자리에 거대한 비석도 세워 놓았다.
비석에는 아직 아무 글자도 새기지 않았다.
마족 군주들이 오면 마족과 대륙 공용어로 글자를 새길 요량이었다.
북부 왕국 연합군은 모이기만 하면 비석과 제막식 이야기를 했다.
“마족 군주들이 오겠나? 안 온다는데 내 왼손을 걸지.”
“와도 문제다. 마족 군주들이 급습해서 북부 왕국 연합군 지휘부를 궤멸시키면 어떡하나?”
“라고아 백작이 너무 순진한 것 같다. 마족을 인간 귀족처럼 여기다니. 설사 몇몇 군주들이 참석한다 해도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글자를 모르는 마족은? 그들은 언제라도 비석을 넘어올 수 있잖나?”
“총체적으로 무리야.”
“나는 비석에 반대야. 비석만 믿고 있다가 마족들이 쳐들어오면? 일단 두드려 맞고 전쟁을 벌여야 하잖나. 우리 북부 왕국 연합군이 모였을 때 선제적으로 밀고 들어가 제압해야지.”
“라고아 백작이 무력은 뛰어나지만 전략 전술에는 약한 것 같아.”
“야인 출신 지휘관의 한계야. 지휘관은 무력이 아니라 지력으로 임명해야 한다니까.”
엘리오는 종종 숙영지 밖의 식당을 찾아갔다.
그의 얼굴은 대륙을 뒤흔드는 명성에 비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 이유로 그는 제막식과 비석에 대한 대중의 신랄한 비판을 들어야 했다.
엘리오는 딱히 그들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족 군주가 어떤 존재고, 또 자신이 얼마나 무자비해질 수 있는지 모르니 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제막식 하루 전.
엘리오는 비석을 점검하기 위해 주둔지 최전선으로 향했다.
그는 몇 개의 방어선을 넘어 마침내 비석 앞에 우뚝 섰다.
집채만 한 크기의 비석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내일이면 북부는 안정을 되찾게 되리라.
그다음은 제도로 가서 마나 프트라스의 사도를 만날 계획이다.
마나 프트라스의 사도가 무슨 말을 할지는 짐작이 간다.
‘악신 샤이틴의 마력석이 어디 있는지 알려 주려나?’
십중팔구는 그럴 것이다.
마나 프트라스는 모노리스 안에서 마력석이 어디 있는지 알려 주지 않았다.
그 일에 자신의 사도를 앞세운 것은 잃어버린 신위를 되찾기 위함일 터.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인간만큼이나 정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악신 샤이틴의 마력석을 부수면 검은 태양이 사라질까?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마나 프트라스와 악신 샤이틴의 전쟁에 깊게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비석을 보고 있노라니 남궁연의 무덤에 세운 비석이 떠올랐다.
그녀가 신선이 된 것도 꽤 오래전의 일이다.
어쩌면 신선계에서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이 지났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이세계에 온 뒤로 시간을 세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사랑이라……. 젠장.”
사랑을 떠올리니 욕부터 나왔다.
사랑은, 섬광처럼 짧은 인생에서나 영원하다.
자신만 해도 가는 곳마다 여자다.
남궁연과의 연이 끊어진 지금, 손만 뻗으면 여자를 안을 수 있다.
얼마간은 남궁연에 대한 미련으로 참을 수 있겠지만 수십, 수백, 수천 년은 못 참는다.
그때가 되면 남궁연에 대한 감정도 티끌처럼 변해 있을 터였다.
“이곳을 떠나기 전에 도살잔지 뭔지 하는 새끼를 잡아야 하는데…….”
엘리오는 애써 도살자를 떠올려 남궁연의 생각을 떨쳐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