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73
1473회. 왜 그런다고 생각하시오?
엘리오의 바람과 달리 와이번들은 비공정을 그냥 지나칠 마음이 없어 보였다.
와이번들이 비공정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온 것이다.
갑판에 나와 있던 기사와 총사 들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 갔다.
하늘에서 와이번은 무적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전투력을 가진 때문이다.
그때 와이번 무리에서 기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꾸아아아―!
꾸아아아―!
섬뜩한 소리에 싱크레어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하더니, 몸이 뻣뻣하게 굳어 온 탓이다.
몸에 이상이 생긴 사람은 싱크레어뿐이 아니었다.
갑판 위의 소드 비기너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몸을 움찔거렸다.
엘리오는 즉시 영기를 발산해 비공정을 감쌌다.
그제야 굳어 있던 소드 비기너들의 몸이 스르륵 풀어졌다.
싱크레어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스승님,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죠?”
“피어에 당한 거다.”
“아!”
싱크레어가 질린 눈으로 와이번을 보았다.
피어는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 저 와이번들은 소드 비기너보다 강하다는 뜻이었다.
그때 비공정들이 우측으로 선회했다.
곧이어 비공정의 측면에 뚫린 십여 개의 구멍에서 마력포가 불을 뿜었다.
쾅! 쾅! 쾅! 쾅! 콰앙―!
무려 열두 척의 비공정에서 쏘아 대는 마력포다.
그중 절반은 빗나갔지만 오십여 발의 마력 포탄이 와이번들을 때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오십여 마리 와이번들 중에 단 한 마리도 추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화만 돋운 듯 와이번들의 움직임이 더 빨라졌다.
그래도 비공정들은 쉬지 않고 마력포를 쏘아 댔다.
사실상 마력포를 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다.
쾅! 쾅! 쾅! 쾅! 콰앙―!
두 번째 포격이 끝나자 변화가 생겼다.
드디어 와이번이 추락한 것이다.
비록 숫자는 십여 마리에 불과했지만 기사와 총사 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와아!”
“죽는다!”
“계속 쏴!”
그러나 상황은 비공정에 유리하지 않았다.
두 번의 포격을 가하는 동안 와이번들이 비공정에 접근한 것이다.
와이번들이 삼십여 미터 앞에 육박하자 기사와 총사 들이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지켜보던 엘리오도 공허의 검을 뽑았다.
총사들이 한발 빨랐다.
퍼퍼퍼펑―!
마력탄이 와이번의 몸통과 날개를 직격했다.
열두 척의 비공정 중에 두 척만 병참이고, 나머지 열 척은 전투용이다.
전투용 비공정 한 척당 총사가 칠십 명, 기사가 삼십 명이 탑승했다.
그중 좌측 면에 배치된 총사가 삼십오 명.
비공정이 열 척이니 삼백오십 명의 총사가 마력탄을 쏘고 있는 셈이다.
다시 근접한 이십여 마리의 와이번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래도 남은 와이번의 숫자는 무려 백여 마리나 됐다.
하늘 위에 검영(劍影)이 맺히는가 싶더니 이내 비처럼 아래로 쏟아졌다.
엘리오의 천산검영이다.
콰콰콰콰콰―!
천산검영에 직격당한 오십여 마리 와이번이 전열에서 이탈했다.
순간 엘리오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천산검영에 맞고도 멀쩡한 와이번들이 생각보다 많았던 까닭이다.
‘하기야 마력포에 맞고도 버텼으니…….’
천산검영을 한번 더 펼치고 싶었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자칫 비공정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 이젠 제국군에 맡겨야 했다.
마침내 살아남은 오십여 마리 와이번과 비공정이 맞부닥쳤다.
와이번은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인간을 덮쳤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공포에 사로잡힌 총사들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간헐적으로 총성이 울렸지만 대부분 쪼그려 앉아 피하기에 바빴다.
각 비공정에 탑승한 삼십여 명의 기사들이 총사들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이른바 역할 교대다.
꾸아아아―!
꾸아아아―!
지근거리에서 내뿜는 와이번의 피어에 몇몇 기사들이 휘청거렸다.
그래도 대부분의 기사들은 자리를 지키며 힘차게 칼을 휘둘렀다.
카카캉! 카앙―!
와이번의 부리, 발톱과 롱소드가 마주치며 기이한 쇳소리가 울렸다.
대부분의 비공정이 방어에 성공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중간에 위치한 비공정의 경우 운이 없었다.
습격한 와이번의 숫자가 많아 기사들이 다 막아 내지 못한 것이다.
와이번들이 부리로 총사를 물거나, 갈퀴 같은 발로 낚아채 하늘로 날아갔다.
“으아악!”
“살려 줘!”
십여 명의 총사가 와이번에게 끌려갔다.
잔뜩 흥분한 와이번들은 공중에서 낚아채 온 인간들을 찢어발겼다.
거리를 벌린 오십여 마리 와이번들을 향해 다시 비공정의 마력포가 불을 뿜었다.
쾅! 쾅! 쾅! 쾅! 콰앙―!
그간 누적된 상처로 이번에는 삼십여 마리 와이번의 몸이 터졌다.
살아남은 이십여 마리 와이번들이 급히 방향을 돌려 달아났다.
달아나는 와이번들 위로 천산검영이 한번 더 떨어졌다.
콰콰콰콰콰―!
모두가 죽고 오직 한 마리 와이번만이 위태롭게 날갯짓하며 멀어져 갔다.
비공정에 타고 있던 기사와 총사 들이 팔을 휘두르며 ‘와아!’ 소리쳤다.
어비스에서 벌어진 첫 전투는 인간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났다.
모두가 환호할 때 엘리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런 스승의 안색을 본 싱크레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러세요? 스승님?”
“와이번이 너무 강해.”
“그래도 우리가 이겼잖아요. 백 마리 넘게 와서 한 마리만 겨우 도망쳤는걸요?”
“마족도 아니고 고작 마물인데…… 너무 강해.”
지금까지 천산검영에 맞고 멀쩡한 마물은 없었다.
이것도 검은 태양의 영향일까?
만약 어비스의 마물이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면 정벌은 순탄치 않을 터였다.
“너무 강하다고요?”
싱크레어가 고개를 갸웃했다.
와이번은 고작 한 마리만 겨우 도망쳤는데 너무 강하다니?
“마력포에 거의 대부분 추락했어야 하는데…… 절반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느냐? 이전 같았다면 근접전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게다.”
“…….”
그제야 싱크레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비록 마물을 격퇴했지만 상황이 인간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잠시 후, 열두 척의 비공정이 넓은 들판에 내려앉았다.
저녁 식사와 취침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기사와 총사 들은 빠르게 자신의 할 일을 찾아 흩어졌다.
정벌군에서 엘리오의 직위는 ―그의 존재감과 어울리지 않게― 참모였다.
그에게 배속된 부관은 데니 로그 자작.
이름뿐인 참모와 부관이라 둘 사이에 대화는 거의 없었다.
그래도 로그 자작은 그림자처럼 라고아 백작을 따라다녔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임무에 충실한 것 같았지만, 싱크레어의 눈에는 영 이상해 보인 모양이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라고아 백작에게 사격술을 배우던 싱크레어가 속삭이듯 말했다.
“스승님, 부관이라는 사람 좀 이상해요.”
“왜?”
“하는 일도 없이 스승님을 따라다니잖아요.”
“너도 그러잖아.”
“저는 제자니까 당연하죠.”
“로그 자작은 명목상 내 부관이잖아.”
“하여튼 수상해요.”
“그럼 네가 잘 지켜봐.”
“제가요?”
“그래, 따로 누굴 만나고 다니는지. 수상하다며?”
“네.”
싱크레어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제야 스승을 위해 뭐라도 하게 된 것 같아 뿌듯했다.
“그런데 스승님은 여기가 어딘지 아세요?”
“에브리마 평원이다.”
“와아, 역시!”
“돌아다닐 때 땅바닥을 잘 봐라. 여기는 노천 금광으로 유명한 곳이니까.”
“어머, 그럼 땅 위에 금덩어리가 있겠네요?”
“옛날에는 주운 사람이 좀 있었다더라. 요즘은 없는 것 같지만.”
“오! 저는 운이 좋은 사람이니까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누가 그래? 운이 좋다고?”
“그러니까 그랜드 마스터들의 제자가 됐죠. 크나우프 공작가에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그런 말을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금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일리 있는 말이네. 내일 아침까지 잘 찾아봐.”
“아침이 되면 바로 떠나겠죠?”
“그러겠지.”
엘리오가 주위를 가볍게 둘러보았다.
좌측에 보이는 게 파르톤, 우측이 페트라 산이다.
오랜만에 왔지만 에브리마 평원과 산그림자는 변함이 없었다.
그의 시선이 다시 싱크레어와 제국군을 향했다.
세월이 흐르면 저들 또한 고향의 가족들처럼 사라질 터였다.
그런 사람들이 왜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모르겠다.
엘리오가 한가하게 그런 생각을 할 때, 어둠 속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부우웅―!
그것은 마치 벌 떼의 날갯짓 소리 같았다.
‘벌 떼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엘리오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있는 데니 로그 자작에게 소리쳤다.
“로그 자작! 흡혈 파리 떼가 오고 있다! 대비하라고 전파해라!”
그 말에 깜짝 놀란 로그 자작이 숙영지를 뛰어다니며 ‘흡혈 파리 떼가 온다!’ 소리쳤다.
평화롭게 휴식을 취하던 숙영지가 발칵 뒤집혔다.
기사들이 총사들 사이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싱크레어가 마력총으로 정면을 겨누자, 엘리오가 총구를 슬쩍 아래로 밀었다.
“왜요?”
“아직 총을 잡기에 이르다. 검을 들어라.”
“예.”
싱크레어는 군말 없이 마력총을 반납하고 롱소드를 뽑았다.
부우우우―.
벌 떼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장승처럼 서 있던 엘리오가 돌연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선제적으로 천산검영을 펼친 것이다.
어둠 속에서 묵직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쿠쿠쿠쿵―!
폭발음은 금방 가라앉았다.
부우우―.
이전보다는 약했지만, 날갯짓 소리는 여전했다.
뒤늦게 비공정에서 쏘아 올린 섬광탄이 어둠을 밝혔다.
퍼엉―!
코앞까지 다가온 흡혈 파리 떼를 발견한 총사들이 마력총을 쏘았다.
퍼퍼퍼펑―! 퍼엉!
마물도 아닌 마수들이라, 마력탄에도 날개와 몸통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흡혈 파리들이 우수수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흡혈 파리들은 불나방처럼 정벌군을 향해 날아들었다.
근접한 흡혈 파리를 향해 기사들이 검을 휘둘렀다.
마나 유저인 기사들에게 마수를 상대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흡혈 파리 떼는 10분 만에 토벌됐다.
하지만 총사와 기사 들 중 십여 명이 흡혈 파리의 촉수에 목숨을 잃었다.
고작 마수 따위에게 상급 마물인 와이번을 상대로 한 만큼이나 피해를 입은 셈이다.
싱크레어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헉! 헉! 저도 두 마리나 베었어요.”
“쯧쯧! 소드 비기너 끝자락이 고작 마수 두 마리를 베고 그렇게 헐떡이느냐?”
책망하는 듯했지만 엘리오의 눈은 웃고 있었다.
첫 실전의 긴장으로 몸이 굳어 그렇게 된 것을 아는 까닭이다.
“저도 총사가 되는 게 낫겠죠?”
“그렇다고 검술 수련을 게을리하지는 말아라.”
“검은 최후의 수단이니까요?”
“그래. 너도 마물과 마수 앞에서 총사들이 얼어붙는 것을 봤겠지?”
“네.”
싱크레어가 다부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총이 검보다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검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그때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이 참모들을 이끌고 다가왔다.
“라고아 백작.”
“대공 전하.”
크나우프 대공과 라고아 백작이 가볍게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이윽고 크나우프 대공이 말했다.
“나는 어비스가 처음이라 모르겠소. 원래 이렇게 마물과 마수를 자주 만나오?”
“아닙니다. 전에 어비스를 여행할 때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허면 왜 그런다고 생각하시오?”
“어둠의 에테르가 더 농후해져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고…….”
“또 뭐가 있소?”
“악신 샤이틴이 우리가 하려는 일을 막기 위해 보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악신이?”
“만약 악신의 농간이라면…… 조만간 마족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크나우프 대공의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본래 정벌군의 목적은 빠르게 마력석을 부수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누구도 악신 샤이틴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악신 샤이틴의 상대는 오직 마나 프트라스뿐이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침울해지자 정벌군 참모로 따라온 케이사 콜드월 백작이 반론을 제기했다.
“총사령관님, 어비스는 본래 마물과 마수가 들끓는 곳이었습니다. 용병과 모험가 들이 철수한 지 오래되어 본래대로 돌아간 것에 불과합니다. 그걸 악신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