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74
1474회. 혹시 어딘지 아시오?
엘리오는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반박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마음도 있었다.
악신 샤이틴의 개입이든 자연 현상이든 정면 돌파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쪽은? 낯이 익은데.”
라고아 백작의 물음에 케이사 콜드월 백작이 답했다.
“케이사 콜드월 백작이오. 육 년 전 피에스트라의 하데스 항구에서 만난 적이 있소.”
“아! 고슬링 후작을 물심양면으로 돕던 사람이군. 무슨 특무대장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지금은 정벌군 참모요.”
콜드월 백작은 짧게 대답해 대화를 차단했다.
엘리오는 그러려니 하고 관심을 끊었다.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은 동생의 이름이 나오자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라고아 백작이 아니었으면 피해가 컸을 뻔했소. 감사하오.”
“감사는요, 무슨. 저도 정벌군입니다, 총사령관님.”
“그래도 고맙소. 그리고 마물과 마수 들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더 지켜봅시다. 그것이 정말 자연스러운 현상이면 좋으련만…….”
참모들 역시 복잡한 표정이었다.
정벌군에서 어비스와 마족에 대해 라고아 백작만큼 잘 아는이가 없다.
그런데 그 라고아 백작이 악신 샤이틴의 개입일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참모들 중 하나가 무심코 말했다.
“악신 샤이틴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대답하는 참모가 없었다.
악신 샤이틴은 애초부터 정벌군의 고려 대상이 아닌 까닭이다.
싱크레어는 다시 사격술 연습에 들어갔다.
그녀는 백 보쯤 떨어진 곳에 표적물들을 세워 놓고 방아쇠를 당겼다.
펑! 퍼엉―!
표적물 하나가 뒤로 넘어갔다.
처음과 달리 이제는 곧잘 맞아 기분이 좋았다.
빙글빙글 웃는 그녀의 귓가로 라고아 백작의 음성이 들려왔다.
“두 발 중에 한 발이 명중이구나. 두 발 모두 명중하면 검 대신 마력총을 들어도 된다.”
“그건 너무 엄한 기준 아니에요? 실전을 거쳐야 실력이 늘어난다면서요?”
“엑시티온도 그렇지만 마력탄도 무한한 건 아니다. 마력석을 파괴하기 전에 마력탄이 떨어지면 모두 죽고 말 게다.”
물론 그에게는 공간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구룡번신이 있다.
하지만 어비스와 바깥세상은 오갈 수 없었다.
마치 이세계에서 현세로 공간 이동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바깥세상과 어비스도 그랬다.
“아…….”
싱크레어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들고 있던 마력총을 보았다.
‘보급이 중요하다’는 말을 흘려들었는데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녀는 더욱 신중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펑! 퍼엉―!
표적물 두 개가 넘어갔다.
그 뒤로는 방아쇠를 당기는 족족 표적물이 쓰러졌다.
“그만하면 됐다. 내일부터는 너도 총사 대열에 합류해라. 하지만 최후의 순간에는 뭐다?”
“검이요.”
“그래, 우리가 결국은 기사라는 점을 잊지 마라.”
“기사와 총사는 다른가요?”
싱크레어는 스승의 얼굴을 보았다.
검과 마력총의 차이를 몰라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기사’라는 말에 괜스레 가슴이 뭉클해져서 물어본 것이었다.
“총사는 적의 형상을 보고 싸우지만, 기사는 적의 숨소리를 들으며 싸운다. 다른 사람은 뭐라고 말할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예!”
싱크레어가 씩씩한 어조로 답했다.
흐릿해져 가던 기사로서의 자긍심이 가슴에 차올랐다.
‘그래, 마력총을 사용하지만 나는 기사야.’
흡혈 파리 떼 앞에서 총사들은 몸을 피했지만 자신은 앞으로 돌진했다.
흡혈 파리의 촉수를 자르고, 체액을 온몸에 맞으며 싸웠다.
‘적의 숨소리를 들으며 싸운다’는 것은 그걸 의미하는 것이리라.
밤이 깊어 갔다.
초병을 제외한 정벌군 모두가 잠든 시간.
펑! 퍼엉―!
갑작스러운 마력총 소리에 정벌군 숙영지가 발칵 뒤집혔다.
잠자고 있던 엘리오 역시 마력총 소리에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곧이어 막사 밖에서 싱크레어의 음성이 들려왔다.
“스승님! 마물이 습격했어요!”
엘리오는 침상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언제 쏘았는지 섬광탄 십여 발이 숙영지 주변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마물?”
“예, 테라독이 몰려왔대요.”
“얼마나 왔기에 이렇게 시끄러워?”
“천 마리가 넘는대요.”
“시끄러울 만하네.”
“그렇죠?”
“그런데 데니 로그 자작은 뭐하고 있길래 네가 날 깨워?”
“안 보이던데요? 저는 기사들 막사에 있다가 달려온 거예요.”
“부관이라는 놈이 제멋대로네. 쯧!”
필요 없을 때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더니, 정작 필요할 때는 보이지도 않는다.
혀를 차던 엘리오는 싱크레어와 함께 가장 소란스러운 곳으로 이동했다.
가시철조망 안쪽에 일렬로 늘어선 총사들이 밖으로 마력총을 쏘고 있었다.
퍼퍼퍼펑―! 퍼엉―!
가시철조망 밖으로 죽은 테라독 시체가 즐비했다.
죽은 동료 시체를 밟고 테라독들이 새까맣게 밀려오고 있었다.
끄끄끄끅―!
테라독 특유의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싱크레어는 재빨리 빈자리에 끼어들어 마력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러나 총사들보다 테라독의 숫자가 월등히 많았다.
끝내 수십 마리 테라독들이 가시철조망을 뛰어넘었다.
그걸 본 총사들의 입에서 ‘아!’ 하는 탄식 소리가 흘러나왔다.
순간 뒤에서 대기하던 기사들이 달려 나가 테라독들을 베어 넘겼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싸웠을까?
마침내 테라독들이 슬금슬금 어둠 속으로 물러갔다.
그제야 기사와 총사 들은 초병을 남겨 두고 하나 둘 자리를 떠났다.
엘리오도 싱크레어와 함께 막사로 돌아갔다.
두 사람이 막 막사에 도착한 그때, 엘리오의 막사에서 누군가 나왔다.
부관인 데니 로그 자작이었다.
엘리오가 그를 빤히 보며 말했다.
“이게 누구야? 꼭 필요한 때에 안 보이는 데니 부관이잖아? 그런데 왜 주인도 없는 막사에서 기어나와? 설마 빈집 털이를 하러 왔던 거야?”
“아닙니다. 백작님에게 테라독의 침입을 알리려고 왔는데…… 대답이 없으셔서 잠시 들어갔습니다. 깊게 잠이 드신 줄 알고…….”
“테라독이 물러갔는데 알리러 왔다는 거야? 참 빨리도 왔네?”
“죄송합니다. 백작 각하께 알려야 하나 망설이다 그렇게 됐습니다. 다음에는 늦지 않겠습니다.”
“로그 부관.”
“예.”
“내가 마검사라는 건 알고 있지?”
“예.”
“난 궁금한 게 있으면 참지 못하거든? 나는 로그 부관에게 정신 마법을 사용하고 싶지 않아. 부작용이 좀 비인간적이잖아.”
“주의하겠습니다.”
“주의 정도로는 부족해. 한 점의 의혹도 들지 않게 행동해. 앞으로도 쭈욱 제정신으로 살고 싶다면 말이야.”
물론 엘리오의 언법(言法)에는 부작용이 없다.
하지만 그는 굳이 그런 사실을 밝혀 상대를 안심시키고 싶지 않았다.
데니 로그 부관이 군기가 바짝 든 얼굴로 답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이제 좀 믿음이 가네. 처음부터 그랬으면 좋았잖아? 오래 볼 사이도 아닌데, 괜히 얼굴 붉힐 일 만들지 말자고. 그만 가 봐.”
“예!”
로그 부관이 군례를 올린 뒤 달아나듯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곁에서 지켜보던 싱크레어가 입을 열었다.
“스승님, 하는 짓이 의심스러운데 그냥 정신 마법을 사용하지 그러셨어요.”
“그 정도로 의심스러웠으면 벌써 했지.”
“에? 조금 전에는 금방이라도 정신 마법을 사용하실 것처럼 엄청 다그치셨잖아요?”
“그건 군기가 빠져 보여서 그런 거고. 내가 제국군 감찰대를 만나 봐서 아는데, 저렇게 눈에 띄는 짓은 하지도 않아.”
“그래요?”
“그들은 로그 부관보다 훨씬 수준이 높다고.”
“그럼 부관을 지켜보는 일은 어떻게 할까요?”
“계속해.”
“왜요? 부관은 아닌 것 같다면서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허술해 보이는 점을 역이용할 수도 있잖아.”
“복잡하네요. 하여튼 계속 지켜보라는 말씀이시죠? 그렇게 할게요. 그럼 주무세요.”
싱크레어가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엘리오는 막사로 들어가 다시 눈을 붙였다.
잠시 후, 막 잠들려는 그의 귓가로 로그 부관의 음성이 들려왔다.
“백작 각하! 마물이 습격했습니다!”
“…….”
억지로 잠에서 깬 엘리오는 인상을 찌푸리며 막사 밖으로 나갔다.
“마물이 또 습격했다고?”
“예, 테라울프 떼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테라울프는 조금 전의 테라독보다 더 위험한 마물이었다.
같은 하급 마물이라도 테라울프의 체구는 테라독의 두 배.
그런 만큼 테라독보다 더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테라독은 마력탄 한 발에 제압할 수 있지만, 테라울프를 잡는 데는 두세 발이 필요했다.
엘리오가 부관을 따라 움직일 때 허겁지겁 싱크레어가 달려왔다.
그녀는 로그 부관을 힐끔 보고는 말없이 스승의 뒤를 따랐다.
엘리오와 로그 부관은 가장 전투가 치열해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이미 몇 차례 방어선이 뚫렸는지 철조망 안쪽에 테라울프의 사체가 널려 있었다.
부상을 입고 뒤로 빠진 총사와 기사도 많았다.
가시철조망 너머에 까맣게 몰려온 테라울프를 본 엘리오는 공허의 검을 뽑았다.
이윽고 그가 검을 휘두르자 가시철조망 너머에 검영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콰콰콰콰쾅―!
지축을 울리는 폭발음과 함께 테라울프들이 산산조각 났다.
운 좋게 생존한 테라울프들은 “깨앵! 깨앵!” 울며 꼬리를 말고 달아났다.
단 일검에 치열하던 전투가 종료됐다.
공허의 검을 수습한 엘리오가 막 떠나려 할 때 크나우프 대공 일행이 나타났다.
“백작.”
“대공 전하.”
눈인사를 마친 크나우프 대공이 라고아 백작을 조용한 곳으로 이끌었다.
“두 시간 전에는 테라독이, 그리고 지금은 테라울프가 습격을 했소. 과거와 비교하는 것이 의미가 없지만……. 어비스에서 이게 일상적인 일이오?”
“이처럼 대규모 습격은 전에도 없었습니다.”
“우연이라 생각하시오?”
“한두 번은 우연일 수 있으나……. 하루에 세 번은 의도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악신 샤이틴의 짓이란 말씀이오?”
“그건 모르겠지만 계속 이러다가는 마력탄이 먼저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마력탄이 떨어지면 총사는 무력화되고 만다.
정벌군 전력의 무려 70퍼센트가 사라지는 셈이니 정벌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흐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크나우프 대공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비공정 두 척에 마력탄과 식자재를 가득 싣고 왔다.
그러나 지금처럼 계속해서 마물과 마수의 습격을 받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마력탄이 고갈되고 말 터였다.
“마력석이 있는 곳까지는 얼마나 더 가야 한답니까?”
“모르오. 어비스의 지도를 보고 찾아가는 게 아니라서.”
“예? 사도가 길 안내를 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아니오. 마나 프트라스님이 사도에게 보여 줬다는 산을 찾고 있소.”
“그저 산이라니 막막하네요?”
“눈에 띄는 곳이니 발견만 한다면 지나칠 일은 없을 게요.”
“눈에 띈다고요?”
“화산처럼 연기를 내뿜는 검은 산이라 하더이다.”
순간 엘리오의 눈에서 안광이 번득였다.
과거 어비스에서 화산처럼 연기를 내뿜는 검은 산을 본 기억이 나서다.
그곳에서 어마어마한 어둠의 에테르를 느꼈었는데, 마력석 때문이었을까?
라고아 백작의 표정이 돌변하자 크나우프 대공이 물었다.
“혹시 어딘지 아시오?”
“오 년 전 어비스를 탐사할 때 그런 산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오! 그곳이 어디요? 얼마나 가야 하오?”
“마족의 언어로 카르나크 산지라 불리는 곳입니다. 걸어서 보름 정도 이동했으니……. 비공정으로는 사나흘이면 도착할 거리입니다.”
“라고아 백작이 아는 곳이라니 마나 프트라스님의 가호가 분명하오.”
크나우프 대공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위치만 안다면 마물이나 마수의 습격쯤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잠시 과거를 회상하던 엘리오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런데 왜 안나 사도는 그런 신탁을 공개하지 않았을까요? 그랬다면 조금 더 계획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을 텐데.”
“기밀을 요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마나 프트라스 교단의 위상을 높이기 위함이 아니겠소? 제국군이 마력석의 위치를 알았다면, 마나 프트라스 교단은 정벌군에 포함되지도 않았을 게요. 하지만 지금은 정벌군의 선두가 마나 프트라스 교단이오. 내일부터는 백작의 비공정에 그 자리를 내어 줘야 할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