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503
1503회. 아빠, 연적하는 어떤 사람이에요?
연적하가 가볍게 손을 털자 마장청의 몸이 탁자 위로 털썩 떨어졌다.
마장청의 머리에 난 구멍에서 흘러나온 피가 탁자를 붉게 물들였다.
시체를 둘러보던 연적하가 변명하듯 말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죽이겠다고 덤비다가 저렇게 된 거잖아. 안 그래?”
“…….”
장락방의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괴청년이 변덕을 부려 갑자기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사장실에 기이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의 압도적인 무력과 미쳐 날뛰는 마장청보다 더 잔인한 손속.
사람을 파리 죽이듯 하는 괴청년 앞에서 장락방 사람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무심한 얼굴로 사람을 죽이던 괴청년에 비하면 마장청은 오히려 인간적이었다.
한편 아무런 반응이 없자 연적하는 뻘쭘한 얼굴로 장락방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만약 그가 현대인이었다면 살인에 대한 가책으로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390년 전의 도산검림에서 살다 온 남자다.
어디 그뿐인가.
구주에서 죽인 인간은 숫자를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았다.
사실 그에게 범죄자 열둘의 죽음은 걷다가 똥을 밟은 것보다 못했다.
그때 문득 그의 뇌리로 사장과 보안팀장의 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쯧쯧! 법 무서운 줄 모르는 자로군. 백주 대낮에, 그것도 배주대곡 사장실에서 살인이라니. 이거 대화로 풀어 보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 장 팀장!
―예.
―경찰에 신고해. 모르는 사람이 회사에 난입해 보안 직원을 살해했다고.
맞다.
현대라 불리는 이 시대에서 살인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중죄였다.
‘이놈들이 내가 난입해서 죄 없는 직원들을 죽였네 어쩌네 하면 귀찮아지겠지?’
경찰이 두려운 건 아니다.
하지만 괜히 경찰과 얽혀 구천현녀경을 찾는 일이 꼬이면 안 된다.
거기까지 생각한 연적하는 시체들을 차례로 마하담에 넣었다.
열한 구의 시체가 들어갔어도 마하담은 여전히 광활했다.
시체를 처리한 연적하는 흡족한 얼굴로 사장실을 살폈다.
사장실 곳곳에 핏자국이 남았지만 청소까지 할 마음은 없었다.
장락방의 고문인 왕주천은 괴청년의 치밀함에 혀를 내둘렀다.
‘아니 그보다…… 도대체 시체를 어떻게 한 거지?’
그가 시체를 집어 등 뒤로 휙 던지면, 거짓말처럼 시체가 사라졌다.
차원력으로 설명할 수 없는 괴사였다.
저런 식으로 뒤처리를 하면 경찰도 잡을 수 없는 진짜 완전 범죄가 된다.
가공할 차원력과 무자비함, 그리고 시체를 사라지게 하는 능력까지.
왕주천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어쩌면 저 사람은 돌연변이 세상의 정점에 올라선 사람인지도 모른다.
공포심이 경외감으로 변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슬쩍 강무 부사장의 안색을 확인했다.
자신과 달리 괴청년을 적대시했던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왕주천이 속으로 혀를 찰 때, 그의 귓가로 괴청년의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크리스티 양을 돌려보내고, 진과월도 건드리지 마. 그 두사람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장락방은 다 죽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강무 부사장과 왕주천 고문은 목이 부러져라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두 사람이 태세를 전환하자 연적하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처음부터 이랬으면 좋았잖아. 앞으로는 서로 얼굴 붉힐 일 만들지 말자고. 이게 뭐야? 잘못은 당신들이 했는데 나만 나쁜 사람 같잖아.”
강무가 잃은 점수를 만회하려는 듯 아부성 발언을 했다.
“대인!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왕주천도 지지 않으려는 듯 한발 더 나갔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저희들의 잘못입니다! 어떤 벌을 내리셔도 달게 받겠습니다!”
다 끝난 일에 벌받기를 자처하자 강무가 힐끔 왕주천을 곁눈질했다.
‘이 늙은이가…….’
사장이 사망했으니 이제 새로운 사장을 뽑아야 한다.
권력 서열상 차기는 왕주천이지만, 강무는 이번 기회에 장락방을 싹 갈아엎고 싶었다.
마화동 사장이야 전부터 모셨으니 일반인이어도 거부감이 덜했지만, 왕주천은 아니다.
차원력도 없이 꼬장꼬장하기만 한 왕주천을 사장으로 모시고 싶지는 않았다.
누가 그랬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맞는 말이다.
서기 2034년을 D.G.(Dimension Gate) 1년으로 바꾸자는 운동도 벌어졌다.
D.G.는 돌연변이가 세상의 중심인 시대다.
고문의 입에 발린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연적하는 돌아섰다.
막 걸음을 내디디려던 연적하가 멈칫했다.
“참! 제일 중요한 걸 말하지 않고 그냥 갈 뻔했네. 내 얘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마라. 나에 대한 말이 나돌면 너희가 내 뒤통수를 친 것으로 생각할 거야. 먼저 간 사장과 만나고 싶지 않으면 부하들 입단속 잘해야 할 거다. 그럼 난 간다.”
괴청년이 바람처럼 훌쩍 떠나자 강무의 얼굴에 한 겹 서리가 내려앉았다.
왕주천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짐짓 못 본 척하며 소파로 걸어가 앉았다.
강무 역시 말없이 맞은편에 걸터앉았다.
두 사람의 눈치를 보던 장우검 보안팀장은 보안 요원들에게 사장실 청소를 지시했다.
빌딩 청소부가 핏자국을 보면 나중에 자신들이 덤터기를 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보안 요원들은 익숙하게 핏자국을 지워 나갔다.
왕주천과 강무는 보안 요원들이 청소를 마칠 때까지 침묵했다.
잠시 후 장우검은 청소를 마친 보안 요원들을 본래의 자리로 돌려보냈다.
사장실에 네 사람만 남았다.
아직 깨어나지 못한 크리스티를 힐끔 보던 왕주천이 먼저 입을 열었다.
“홍련상회와는 내가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겠다. 그것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나?”
장우검이 강무 부사장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장락방의 서열상 왕주천이 높지만, 배주대곡의 운영권은 강무 부사장에게 있는 까닭이다.
엄격하게 말해 이번 일은 배주대곡과 홍련상회 간 사업상 마찰로 시작되었다.
그러니 협상 자리에 강무 부사장이 나가는 게 맞았다.
게다가 고문은 장락방의 일이나 알지 배주대곡의 사업에 대해서는 어두웠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강무가 이의를 제기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주류 유통 문제를 두고 홍련상회와 조율해야 할 게 많습니다. 고문님은 우리 사업에 대해 잘 모르시니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
“조율할 게 뭐 있나. 어차피 홍련상회가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줘야 할 판이구만.”
왕주천 역시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장락방이 사업체를 만들어 양지로 나온 뒤로 원로들의 입지는 줄어들었다.
자신도 이름만 고문이지 월급은 임원들보다 덜 받았다.
이참에 자연스럽게 사장 자리를 이어받지 않으면 눈치만 보다가 잊혀질 신세였다.
그런 왕주천의 속내를 파악한 강무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고문님.”
“왜? 무슨 할 말이 있나?”
“지금이 몇 년인 줄 아십니까?”
“그야 2034년 아닌가.”
“아니요. D.G. 1년입니다. 아까 그 남자를 보고도 느껴지는 바가 없습니까? 앞으로는 돌연변이들이 세상을 좌우할 겁니다. 고문님은 돌연변이들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으실 자신이 있습니까? 있다면 하시고 싶은 대로 하십쇼. 말리지 않겠습니다.”
“……혹시 그 싸움에 자네도 포함되는가?”
“그걸 꼭 제 입으로 말해야 합니까?”
“아닐세. 생각해 보니 배주대곡과 홍련상회의 일이 맞는 것 같군. 내가 너무 충격을 받아서 정신이 좀 나갔었네. 이해해 주게.”
“감사합니다.”
두 사람 간의 암투는 5분이 되기 전에 끝났다.
때마침 잠들어 있던 크리스티가 가벼운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으음……. 여긴 어디죠? 당신들은 누군가요?”
거듭된 크리스티의 질문에 장우검이 말했다.
“이곳은 배주대곡 본사입니다. 저는 보안팀장이고, 이분은 부사장님, 그리고 고문님이십니다.”
장우검은 눈치 빠르게 새로운 서열대로 소개를 했다.
“장락방?”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크리스티가 사나운 눈으로 남자들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강무가 진정하라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워! 워! 진정하시고 잠시만 제 말을 들어 주십쇼. 크리스티 양을 납치한 사람은 마화동 사장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책임으로 마화동 사장은 배주대곡 사장직을 내려놓았습니다. 납치에 대해서 후임자인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저는 마 사장처럼 무도한 사람은 아닙니다. 크리스티 양을 돌려보내고, 진과월 부사장님에게도 마 사장을 대신해 용서를 구할 생각입니다. 물론 홍련상회와의 갈등 상황도 이후로는 없을 겁니다.”
“말씀은 고마운데요,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 당장 저를 내보내 주세요.”
“알겠습니다. 장 팀장, 아가씨를 홍련상회까지 모셔다드리게.”
“예.”
자리에서 일어난 장우검이 정중하게 출입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시지요, 아가씨. 홍련상회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
크리스티는 잠시 장락방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다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문득 강무가 왕주천에게 물었다.
“그런데 고문님, 생각보다 아가씨가 침착한 것 같지 않습니까?”
“요즘 아가씨들은 당돌하지 않나.”
“그래도 매음굴에 끌려갔던 걸 생각하면 길길이 날뛸 줄 알았는데…….”
“성격이 차분할 수도 있지.”
“…….”
강무는 동의하기 어려웠지만 여자에 대해 더 거론하지 않았다.
그래 봐야 그녀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아예 생각을 접은 것이다.
***
십언시 장완구.
홍련상회.
정오경.
고급 외제 승용차가 홍련상회 앞 도로에 멈춰 섰다.
이윽고 승용차에서 캐주얼한 복장의 아가씨가 빠르게 내렸다.
어제 오후 장락방에 납치되었던 크리스티였다.
그녀가 하차하자 승용차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크리스티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재빨리 홍련상회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무사 귀환으로 홍련상회가 또 한번 발칵 뒤집혔다.
홍련상회 동자건 사장은 무사히 돌아온 크리스티를 사장실로 불렀다.
크리스티는 동자건 사장과 아버지 앞에서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말했다.
“……마화동 사장은 그 일로 사장직을 내려놓았대요. 부사장이라는 사람이 저에게 미안하다고 하면서, 아버지에게도 용서를 구하겠다고 했어요. 아, 그리고 앞으로 홍련상회와 배주대곡의 갈등 상황이 없을 거라고 했으니까…… 이제는 별일 없겠죠?”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자 동자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너를 풀어 준 걸 보면 그럴 것 같구나. 그런데 장락방이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꿨는지 짐작 가는 게 있느냐?”
“그건 저도 잘……. 다만 부사장이 자기는 마 사장과 다른 사람이라고 했어요. 사장이 새로 바뀌면서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요?”
“강무 부사장이? 그는 마화동보다 더 독사 같은 놈이다.”
그러나 진과월은 사장과 보는 눈이 조금 달랐다.
“강무가 독사 같은 놈이라는 건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마화동을 제치고 자기가 사장이 됐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와 싸우고 싶지 않을 겁니다. 지금은 내부 기반을 다져야 할 테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군.”
진과월의 날카로운 지적에 동자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금으로서는 그게 장락방의 돌변한 태도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었다.
“고생했다. 진 아우는 크리스티를 데리고 먼저 퇴근하도록 해라.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을 텐데…… 미안하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힘이 되어 주지 못해서.”
“아닙니다, 형님. 제가 형님이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동자건은 그만 나가 보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잠시 후 진과월이 운전하는 고급 승용차가 홍련상회의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조수석에서 오래도록 창밖을 응시하던 크리스티가 문득 물었다.
“아빠, 연적하는 어떤 사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