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59
159회. 우리가 가는 길
연적하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리가 가는 길 있잖아. 내 맘대로(路). 알면서 뭘 물어?”
“풋!”
화용독심 남궁연이 실소를 흘리자, 다른 사람들도 피식 따라 웃었다.
살천도 곡문상은 한참 뒤에야 그게 자신을 놀린 말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도 의외로 처음과 같이 부글거리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 손을 쓰기로 작정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네놈은 누구냐?”
곡문상은 이 한 놈의 정체를 알면 나머지도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알면 다쳐.”
“미친놈.”
그의 말에 구천노도 심통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늙은이가 감히! 공자님, 제게 맡겨 주시면…….”
“안 돼.”
자리에서 일어난 연적하가 곡문상을 쏘아보았다.
“늙은이가 감히 내 아우를 죽이려고 했으니 죗값을 받아야겠지?”
“개소리하지 말고……. 크윽!”
말하다 말고 곡문상은 부들부들 떨었다.
몸 쓰는 게 귀찮은 연적하가 의형살인의 수법으로 그를 찍어 누른 것이다.
가공할 살기가 전신을 조여 오자 당황한 곡문상은 버둥거렸다.
내력을 끌어 올려 저항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숨통을 조여 오는 압력은 더욱 강해졌다.
곡문상은 핏발 선 눈으로 입에게 거품을 물고 꺽꺽거리기만 했다.
그 광경을 본 삼괴가 “사술이다!”라고 외치며 연적하를 덮쳐 갔다.
순간 연적하는 삼괴를 향해 살기를 쏟아 냈다.
“커헉!”
“윽!”
“악!”
삼괴가 요란한 비명과 함께 굳었다.
삼괴도 곡문상처럼 거미줄에 걸린 곤충같이 용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곧이어 곡문상과 삼괴의 발목을 타고 누런 오줌이 흘러내렸다.
객잔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칠상문도들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연적하와 자신들의 문주를 번갈아 보기만 했다.
그때 눈치 없이 계단 위로 점소이가 음식을 들고 올라왔다.
양손에 음식을 든 점소이는 뒤늦게 곡문상과 삼괴를 발견하고는 움찔했다.
손님들로 가득한 이 층이 공동묘지처럼 적막하다.
모든 사람의 시선은 눈을 까뒤집고 경련하는 곡문상과 삼괴를 향해 있었다.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점소이를 향해 연적하가 말했다.
“이봐! 빨리 오지 않고 뭘 해? 기다리는 손님들 안 보여?”
“아, 예, 예…….”
뒤늦게 점소이는 연적하 일행의 탁자에 음식을 깔았다.
가만히 보고 있던 연적하가 중얼거렸다.
“이거 우리가 주문한 거랑 약간 다른 거 같은데? 심 노인, 우리 거 맞아?”
음식을 확인한 심통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물고기찜은 시킨 적이 없는데요. 덤으로 준 건가? 꼬마야, 이거 덤이냐?”
“더, 덤은 없는데요.”
당황한 얼굴로 심통과 요리를 번갈아 보던 점소이가 말했다.
“아, 저쪽 자리로 가야 할 음식인 것 같습니다.”
점소이가 활인검 유진원의 자리를 가리켰다.
유진원을 힐끔 보던 심통이 제 머리를 툭 쳤다.
“아, 내가 시킨 게 맞네. 이제야 기억이 나는구먼. 늙으면 죽어야 한다니까. 뭘 시켰는지도 깜빡깜빡하고.”
점소이는 감히 아니라고 말을 못 하고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음식을 더 내오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말을 마친 점소이는 도망치듯 후다닥 자리를 빠져나갔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던 연적하가 뒤늦게 생각난 듯 몸을 돌렸다.
곡문상과 삼괴가 물에서 갓 건져 올린 사람들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연적하가 중얼거렸다.
“운 좋은 사람들이네.”
점소이와 음식을 두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의형살인이 풀렸다. 그게 아니라면 이들은 지금까지도 고통받고 있었을 것이다.
연적하가 이철산에게 고개를 돌렸다.
“철산아.”
“예.”
“천검문에 있다고 했지?”
“예.”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가서 하던 일이나 마저 해. 무한을 떠나기 전에 찾아갈게. 그때 형제들만 따로 만나자.”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꼭 들러 주세요.”
이철산은 연적하와 남궁천 남매에게 인사를 하고 유진원이 있는 곳으로 갔다.
연적하가 삼괴를 보며 물었다.
“무식하게 사술이라고 한 사람 누구야?”
“아, 아니외다. 눈이 멀어 고인을 알아보지 못했소. 용서해 주시오.”
일괴 담인한이 눈을 내리깔았다.
‘제길, 의형살인의 수법인 줄 알았으면 뒤도 안 보고 달아났을 텐데…….’
처음 곡문상의 상태만 보고는 사술에 당한 줄 알았다. 그러나 직접 경험해 보니 진기에 의한 것이었다. 상대가 젊어 그런 쪽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게 천추의 한이다.
“용서라…….”
연적하가 고민된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까는 죽든 말든 신경 안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살의가 한풀 꺾였다. 지금 이들을 죽여도 뭐라 할 사람이 없겠지만 내키질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봐줄 수는 없었다.
이들은 정말 이철산을 죽이려고 했다. 자신이 오늘 이 자리에 없었다면 먼 훗날 이철산의 부고(計告)를 받았을 게다.
“살려는 줄게. 대신에 앞으로 ‘내 맘대로’ 살기는 힘들 거야. 가는 길을 바꿔.”
연적하는 끝까지 농담을 던졌다.
곡문상과 삼괴가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
벌떡 일어난 연적하가 곡문상과 삼괴에게 다가갔다.
곡문상과 삼괴는 흠칫 놀랐지만 손가락 들어 올릴 힘도 없는지라 피하지 못했다.
연적하는 그런 네 사람 사이를 돌아다니며 검지 손가락으로 기해혈을 찔렀다.
“악!”
“윽!”
네 사람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잠시 후 진기를 끌어 올리던 네 사람의 얼굴이 한껏 일그러졌다.
상대의 손가락이 기해혈에 박힐 때 ‘아차!’ 싶었다.
그런데 정말 단전이 박살났는지 단 한 점의 내력도 느껴지질 않았다.
곡문상이 핏발 선 눈으로 부르짖었다.
“이놈! 차라리 죽여라! 죽이란 말이다!”
칠상문의 문주로 지내면서 수많은 은원을 만든 그로서는 죽느니만 못했다.
그건 삼괴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원수가 이 소문을 들으면 복수하려고 찾아다닐 것이었다.
“죽고 싶으면 장강에라도 가서 빠져 죽어. 그 귀찮은 일을 왜 나에게 해 달래? 단전이 박살 났다고 장강까지 갈 힘도 없는 건 아니겠지? 두 다리는 아직 멀쩡하잖아?”
연적하의 말에 곡문상과 삼괴는 빠드득 이를 갈았다.
지금 그가 한 말을 천검문의 사람들이 들었으니 이제 곧 천하에 소문이 날 것이다.
“스스로 죽기 귀찮으면 말해. 조금 번거롭지만 그 소원 내가 들어줄 테니까.”
말과 함께 연적하가 두 손으로 의자를 집어 들었다.
“개싸움을 했으니까 개처럼 쳐 죽여 줄게.”
“…….”
곡문상과 삼괴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청년을 노려보았다.
그래도 무한에서 알아주는 고수인 자신들을 의자 따위로 쳐 죽인다니 기가 막혔다.
악에 받친 곡문상이 막 욕하려고 할 때다.
“내가 누군지 물었지? 나 연적하야. 누구한테 죽는지는 알아야 덜 억울하겠지?”
연적하라는 말에 곡문상은 바로 눈을 내리깔았다.
정주에서 알려지기 시작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녹림 총순찰 연적하.
자신의 외가까지도 말살시켜 버린 희대의 악마.
요즘은 유명교 십두마병도 그의 손에 걸리면 가루가 된다는 소문이 있다.
녹림의 이름만으로도 부담스러운 판국에 총순찰이다.
원독 어린 눈으로 노려보던 삼괴의 눈에서도 힘이 쏙 빠졌다.
저놈에게는 독기가 통하지 않을 걸 알아서다.
평소 녹림의 악행을 생각하면 여기서 저놈에게 죽여 달라는 건 미친 짓이다. 의자가 아니라 젓가락으로라도 죽일 수 있는 놈이니까.
연적하가 의자를 머리 위로 쳐들고 확인하듯 물었다.
“소원 들어 드려?”
곡문상이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답했다.
“……살려 주십쇼.”
그제야 연적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의자를 내려놓고 앉았다.
“그래야지. 죽는 거 쉬운 일 아니야. 벽에 똥칠할 때까지 열심히 살아. 가 봐. 가면 목욕부터 해. 왜 대낮에 객잔에서 오줌을 싸고 그래. 누가 개들 아니랄까 봐.”
곡문상과 삼괴가 비칠거리며 걸어갔다.
칠상문도들이 곡문상의 주위로 우르르 몰려들어 그를 부축했다.
유진원은 옆구리에 칼 맞은 제자를 급히 의원으로 보냈다.
그리고 흐트러졌던 분위기가 대충 수습되자 이철산에게 슬쩍 물었다.
“이 사범, 저분이 정말 녹림의 총순찰이신가?”
“예.”
“자네의 의형이시고?”
“그렇습니다.”
이철산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녹림 총순찰의 의제(義弟)라는 이유로 쫓겨날지도 모르지만 숨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이철산의 착각이다.
유진원은 물론 일대제자 유의민과 그 깐깐한 유소운의 입에서도 탄성이 흘러나왔다.
특히나 유소운의 경우 급격하게 관심을 보였다.
“와아! 정말 저분과 의형제세요? 이 사범님, 대단하세요.”
“대, 대단하다고?”
유진원의 딸로 평소 그를 본체만체하던 유소운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럼요. 녹림 총순찰과 의형제면 천하제일의 인맥이잖아요. 칠상문의 곡문상이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걸요?”
유진원이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소운의 말이 맞네. 나도 소개를 받고 싶지만 내 욕심이겠지? 험, 험.”
그는 멋쩍은 듯 헛기침을 터뜨렸다.
상대가 그냥 녹림의 도적이라면 알고 지내는 것만으로도 수치다. 하지만 총순찰쯤 되는 인물과 의형제라면 자랑거리가 되는 게 세상의 인심이었다.
이철산은 뜻밖의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저는 계속 사범 일을 해도 되는 겁니까?”
“어이쿠! 그 무슨 섭한 소리를. 농담으로라도 그런 소리는 하지 말게. 내 당장 월봉을 더 올려 주겠네.”
태평상방 방주 연해평이 웃으며 말했다.
“허허, 유 대협. 이 사범님과 같은 분을 모셨으니 좋으시겠습니다. 이 사범님, 제발 천검문에 오래오래 계셔 주십시오. 저희도 천검문과 이 사범님 덕을 좀 보게요.”
상행을 다녀야 하는 태평상방의 경우 이철산은 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와 알고 지낸다는 것만으로도 도적들이 함부로 못 할 터였다.
“하하, 예.”
이철산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쫓겨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가 이게 무슨 횡재인지 모르겠다.
그 자리에서 태평상방과 천검문은 계약을 맺었다.
식사 후에 연해평과 함께 차를 마시던 유진원이 넌지시 운을 뗐다.
“이 사범.”
“예.”
“자네 의형께 감사 인사를 드리는 게 사람의 도리일 듯싶은데…….”
말이 그렇고 실은 안면을 트게 해 달라는 소리다.
연해평이 옆에서 부채질을 했다.
“험, 험. 사람이라면 응당 그래야겠지요. 저도 구명의 은혜를 입었는데 그냥 있으려니 영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입니다.”
이철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 문주의 욕심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그게 도리인 것도 사실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먼저 가서 말씀을 드려 보겠습니다.”
“그래 주면 정말 고맙겠네.”
유진원과 연해평에게 등 떠밀리다시피 한 이철산은 다시 연적하의 자리로 갔다.
“형님, 천검문 문주님과 태평상방의 방주님께서 형님께 감사 인사를 꼭 하고 싶으시답니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모시고 와. 너와 함께 일하는 분들인데 인사해서 나쁠 건 없지.”
“예, 그럼 모시고 오겠습니다.”
희희낙락한 얼굴로 돌아간 이철산은 유진원과 연해평을 데리고 왔다.
느긋하게 앉아 있던 연적하가 엉거주춤 일어났다.
“형님, 천검문 문주 유진원 대협과 태평상방 방주 연해평 대인이십니다.”
“유진원입니다. 오늘의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태평상방의 연해평이라 합니다.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총순찰님이 아니었으면 큰 낭패를 볼 뻔했습니다. 아무 때라도 찾아 주시면 은혜를 갚겠습니다.”
연해평이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으려고 그는 온몸을 던질 기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