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60
160회. 밤이 길면 꿈도 길다[夜長夢多]
눈치 없는 연적하도 말 속에 담긴 뜻을 알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하하. 별일도 아닌데 뭘 그렇게까지. 유 문주님, 아우를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연 방주님도 떠나기 전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연적하는 사양하지 않았다.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갚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
산동성.
추성 후와촌.
정오 무렵.
노도사 세 사람이 마을 어귀로 들어섰다.
곤륜산을 떠난 곤륜삼선들이다.
그들은 오늘도 추마팔괘판(追魔八封板)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평화로운 마을의 전경을 둘러보던 태을 선인이 중얼거렸다.
“허어. 추마팔괘판이 잘못된 것은 아니냐? 가도 가도 마물과 무관한 곳만 나오니 원…….”
추마팔괘판을 담당한 태령 선인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드문드문 돌아가는 것을 보면 고장이 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움직인 방향이 이쪽이니 믿어 보시지요.”
태무 선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추마팔괘판이 지금까지 서너 차례 방향을 바꾸었지만 최근에는 일정하게 남쪽을 가리키고 있지 않습니까? 길은 제대로 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태령 선인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지요? 길만 제대로 들었으면 된 겁니다. 허허.”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세 기인은 마침 눈에 보이는 객잔으로 들어갔다.
음식을 시키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 세 사람의 귓가로 묘한 소리가 들려 왔다.
장삼이 맞은편의 친구 이신에게 말했다.
“자네, 한 달쯤 전 마을 어귀에서 있었던 무림인들의 큰 싸움 기억나는가?”
“그걸 모를까. 왜?”
“며칠 전에 상인들이 하는 말을 들었거든. 그런데 그 이야기가 우리 마을에서 난 일과 너무 비슷해. 아무래도 그날 죽은 자들이 유명교 고수들 같아.”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데?”
“산동성에서 녹림 총순찰이 유명교 십두마병을 죽였다네?”
“그런데? 무림인들 죽고 죽이는 게 하루 이틀인가.”
이신은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잘 들어 봐. 그런데 그 십두마병이 죽자마자 이상한 괴물로 변했다는구먼. 도깨비처럼 정수리에 뿔이 나고 손끝에는 칼날까지 달렸대. 그걸 녹림 총순찰이 다시 쳐 죽이니까, 이번에는 가루가 돼서 사라졌다 하더라고.”
“헉! 정말?”
“그렇다니까. 하협점촌 사람들 여럿이 봤다 하더라고. 그 인근에서는 녹림 총순찰을 구천신장이라고 부른대. 그 마을에 구천신장의 사당도 생겼다면 말 다한 거 아냐?”
“그 괴물이 정말 십두마병이었대?”
“아, 그렇다니까. 화적 떼 우두머리가 십두마병이 되더니 그 인근에서 못된 짓만 골라 했나 봐. 그러다가 녹림 총순찰에게 당한 거지.”
“세상에!”
“놀랐지? 우리 마을에서도 그 비슷한 일이 벌어졌었잖은가.”
“그랬지. 키가 일 장(약 3미터)이 넘는 시커먼 괴물과 머리에 뿔 난 괴물. 그 괴물들도 죽자마자 먼지처럼 사라졌다면서.”
이신은 그 이야기를 촌장에게 들었다.
촌장과 밭일을 하던 마을 사람 십여 명이 함께 목격한 일이라 했다.
“그래도 모르겠나? 여기서도 녹림 총순찰과 십두마병이 싸운 거야. 틀림없다니까. 상인들의 말을 들어 보니까 올해 들어 그런 싸움이 한두 번 난 게 아니라는구먼.”
“그럼 녹림과 유명교가 전쟁이라도 하는 건가?”
“그거야 모르지. 어쨌든 다들 쉬쉬하는데, 그 괴물의 정체가 십두마병인 건 맞는 것 같아.”
멀찍이서 듣고 있던 태을 선인이 그들의 자리로 불쑥 다가갔다.
“말씀 나누시는 중에 실례 좀 합시다.”
장삼과 이신은 누군가 갑자기 끼어들자 흠칫 놀란 얼굴이었다.
무림인들, 특히 유명교와 관계된 이야기를 하던 중이라 뜨끔했던 것이다.
장삼은 온화한 인상의 도사를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십 년 감수했네. 도사님, 무슨 볼일이라도 있습니까?”
“허허, 옆자리에 있다가 두 분께서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마을에 괴물이 나타났었다고요?”
“하하. 도사님이라서 그런 이야기에 관심이 많으신가 봅니다. 맞습니다. 한 달쯤 전에 무림인들의 큰 싸움이 있었는데, 그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촌장님과 마을 사람들이 봤다고 하더라고요.”
“무림 고수 둘이 죽어서 괴물로 변한 겁니까?”
“예, 지나던 상인들의 말을 들으니 그 비슷한 일이 전에도 몇 번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허! 키가 일 장이나 되고, 머리에 뿔도 났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러믄요. 우리 마을 사람들은 죄다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친구야, 자네도 뭐라고 말 좀 해 봐.”
장삼의 채근에 이신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저도 들었습니다. 촌장님과 마을 분들이 밭일을 하다가 보았다고 하 더군요.”
“허어! 알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태을 선인은 두 사람에게 읍을 해 보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태을 선인이 다가오자 태무 선인이 못 참고 엉덩이를 들썩였다.
“사형, 추마팔괘판이 제대로 가르쳐 준 것 같습니다. 허면 남쪽에서 계속 마물이 출현한다는 말인데. 서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태을 선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지 싶다. 십두마병이 죽은 뒤에 괴물로 변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 말은 죽지 않으면 마물도 없다는 소리와 같다. 추마팔괘판이 왜 저리 움찔움찔 움직였는지 이제야 알겠다.”
당장이라도 떠날 것처럼 굴던 태무 선인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흐음! 십두마병이 죽을 때마다 그 자리를 가리켰던 것이군요.”
“그렇지. 다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녹림 총순찰이 왜 십두마병을 죽이고 다니는가 하는 점이다.”
태무 선인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예삿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녹림은 사파의 종주라 할 수 있는데, 유명교 십두마병을 죽이고 다닌다니.”
그가 알기로 유명교는 종파이지만 그 맥을 따져 보면 사파에 가까웠다.
정의맹이 지난해 유명교를 무림공적으로 선언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태을 선인이 두 사제를 보며 말했다.
“처음 대륙에 왔을 때 추마팔괘판이 가리킨 곳은 동쪽이었다. 그 뒤 조금씩 남쪽으로 이동했고. 상인과 마을 사람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녹림 총순찰이 십두마병을 찾아다닌 것인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허! 그가 왜?”
태무 선인과 태령 선인은 태을 선인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확실히 지금까지의 여정을 보면 목표가 움직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녹림의 총순찰을 만나 봐야겠다. 그러면 추마팔괘판의 움직임이 그와 관계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게다. 왠지 이 바늘이 가리키는 곳에 그가 있을 것 같지 않으냐?”
태을 선인의 말에 태령 선인이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가 마물의 우두머리라는 말입니까?”
“허헛! 그럴 리가. 그가 십두마병을 죽여 마물이 나타나니, 바늘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히 그를 만날 수 있을 거란 소리였다.”
“옳커니!”
뒤늦게 태령 선인이 제 무릎을 철썩 후려쳤다.
어딘지 어수룩해 보이는 그를 보며 태을 선인이 피식 웃었다.
곤륜삼선의 성정과 특기는 각기 다르다.
예컨대 자신은 이성적이고 각종 술법에 능하다.
태무 선인은 성격이 조금 급하지만 검술의 극에 도달해 있다.
그리고 태령 선인.
그는 아둔해 보이지만 도(道)에 가장 근접한 자다.
곤륜파 장문인이 그에게 추마팔괘 판을 맡긴 것도 그래서다. 오직 그 만이 추마팔괘판의 방향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있으니까.
자신의 술법만큼이나 태무 선인의 검술은 높고, 태령 선인의 깨달음은 깊다.
새외에서 곤륜삼선을 반인반선(半人半仙)으로 부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
오월 초.
호광성 무한 동호.
초천태.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교량촌을 떠난 연적하 일행의 이두 마차는 동호의 초천태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고 출발했으니 반나절 정도 걸린 셈이다.
마침내 마차가 멈춰 서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차분히 밖으로 나왔다.
“으아아! 드디어 동호로구나!”
연적하가 잠에서 깨려는 듯 기지개를 켜며 요란하게 소리 질렀다.
큰 소리에 주위를 오가던 사람들이 힐끔거렸다.
그럴 때마다 구천노도 심통이 포악하게 눈알을 부라렸다.
보다 못해 연적하가 한마디 했다.
“심 노인, 눈에 힘 좀 빼. 왜 그렇게 다른 사람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공자님, 이렇게 하지 않으면 볼거리인 줄 알고 계속 기웃거립니다요.”
“그런 거야? 그럼 더 눈에 힘주고 있어.”
“예.”
매 같은 눈으로 주위를 쏘아 보던 심통이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수채 비슷한 게 보입니다.”
“수채면 수채지. 비슷한 건 뭐야?”
연적하가 툴툴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언덕 아래 바다처럼 넓은 호수와 맞닿은 곳에 거대한 장원이 하나 서 있었다.
그런데 정작 배는 안 보이고 활짝 열린 정문으로 병장기를 든 무림인들만 들락거렸다.
확실히 저것만 봐서는 수채인지, 세력가의 산장인지 알기 어려웠다.
결국 연적하는 화용독심 남궁연을 찾아갔다.
“누님, 저게 동호수채 맞아요?”
“맞는 것 같아. 초천태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동호수채가 있다고 했거든.”
“의외로 평화로워 보이네요?”
“호수라서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남궁연이 아련한 눈으로 석양에 붉게 물든 동호를 바라보았다.
남궁세가도 호숫가에 인접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동호에 오니 오늘따라 더 남궁세가가 그립다.
“아! 그러고 보니 남궁세가가 소호 근처에 있었다고 했죠?”
“응.”
남궁연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남궁세가와 무산소축은 같은 지역에 있었다. 무산낭랑이 백두마군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멸문지화를 피해 갈 수 있었을까?
그때 마부 이산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공자님, 저 아래에 있는 게 동호수채라고 합니다. 일다경(약 20분)만 더 가면 된다는데, 지금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가까운 곳의 객점을…….”
연적하는 즉답을 하지 못했다.
시간이 너무 애매해서다.
땅거미가 내려앉는 지금 수채로 가도 괜찮은 걸까?
“누님, 어떻게 할까요?”
“밤이 길면 꿈도 길다고 했어[夜長夢多]. 네가 교량촌에 왔다는 소문이 곧 돌 거야. 장강일괴를 겪어 봐서 알겠지만 수적들은 교활해. 그가 대비하기 전에 몰아쳐서 끝내려면 지금 가는 게 좋을 거야.”
“갈게요. 아저씨, 서둘러 주세요.”
연적하는 남궁연의 말이라면 무조건이다.
이사는 굳은 얼굴로 왔던 길을 돌아갔다.
그는 남궁연의 말에 십분 공감했다.
수적들이 뭔가 준비하기 전에 몰아쳐서 끝내야, 안전하다!
더 이상은 폭발하는 배에 탄다거나, 물속에서 떨고 싶지 않았다.
마차가 움직였다.
이번에는 연적하가 이사의 옆자리로 나왔다.
이사는 남궁연의 말대로 몰아쳐서 끝낼 일념으로 거칠게 마차를 몰았다.
두두두두.
연신 의자에 엉덩이를 찧던 연적하가 소리쳤다.
“아저씨! 너무 빨라! 이러다가 마차 뒤집어지는 거 아니에요?”
“그 정도로 경사가 심하지는 않습니다! 염려 붙들어 매십쇼!”
평생 마차를 끈 이사의 솜씨는 예사롭지 않았다.
마차는 눈 깜짝할 사이에 고갯길을 내려갔다.
평지에 내려오자 마차는 속도를 더 올려 질풍처럼 동호수채로 달려갔다.
콰드드드득.
‘어이쿠! 이 아저씨 무섭네.’
연적하는 이러다 혹시나 마차 바퀴가 부서지는 건 아닌지 바짝 긴장했다. 십두마병과 싸울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