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61
161회. 나쁜 놈이라 고마워
동호수채를 향해 이두 마차 한 대가 미친 듯 질주했다.
수채를 드나들던 수적들에게 폭주하는 이두 마차는 날벼락과도 같았다.
수적들은 메뚜기 떼처럼 길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마차가 지나간 뒤에 길 위로 튀어나와 목이 쉬도록 소리 질렀다.
“야! 이 미친놈아!”
“거기 서! 이 새끼야!”
수적들의 걸쭉한 욕설을 뒤로하고 이두 마차는 동호수채로 들어갔다.
“워! 워! 워!”
정문을 앞에 두고 이사가 고삐를 잡아채자 마차의 속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정문을 통과한 마차는 장원 앞마당에서 요란하게 멈춰 섰다.
히히힝! 히힝!
흥분한 말들이 앞발을 쳐들고 난리를 쳤다.
그 소란에 동호수채의 수적들이 꾸물꾸물 몰려나왔다.
가장 먼저 마차 밖으로 나온 구천노도 심통이 좌우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녹림 총순찰님이 오셨다! 동호수채의 채주는 어디에 있느냐!”
녹림 총순찰이라는 말에 수적들은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하고 거리를 두었다.
잠시 후 부채주 혈비도 정상백이 허겁지겁 달려 나왔다.
“속하는 부채주인 혈비도라 하옵니다. 채주님께서는 물놀이를 가셨습니다. 새벽이나 돼야 돌아오실 것 같은데……. 그때까지 제가 모시겠습니다.”
연적하가 마차 위에서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나더러 오 채주가 놀다 올 때까지 멍하니 기다리고 있으란 말이야?”
“여, 연회라도 즐기시다 보면…….”
정상백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총순찰에 관한 흉악한 소문을 떠올리자 심장이 다 벌렁거렸다.
알고 보면 녹림만큼 사람이 많이 죽어 나가는 방파도 없다.
지금까지 자신의 손에 죽은 수하들도 여럿 된다.
그래도 누구 하나 그런 일로 자신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녹림은 원래 사람을 잘 죽이고, 또 잘 죽어 나가기도 하는 곳이었다.
“쳇! 주인도 없는 빈집에서 무슨 연회. 그냥 당신이 오 채주의 배까지 안내나 해. 어차피 동호에서 흥청거리고 있을 테니까.”
연적하의 말에 정상백은 허리를 굽실거렸다.
“예, 예. 허면 속하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그런데 채주님의 배를 찾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 봤자 한 시진(2시간)은 안 넘어갈 거 아냐?”
“어이쿠! 그러믄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알았으니까 준비나 해.”
“그런데…….”
“뭐가 자꾸 그런데야?”
연적하가 짜증을 내자 정상백이 급히 설명했다.
“큰 배를 채주님이 타고 나가서 작은 배로 모셔야 할 것 같아서요.”
“내 일행이 여덟 명이야. 그것도 못 태워?”
“어이쿠! 그 정도는 아닙니다. 충분히 다 타실 수 있습니다. 그저 모처럼 방문해 주신 총순찰님을 더 큰 배로 모시지 못해서 송구한 마음에…….”
“알았으니까 빨리 준비나 해.”
“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준비가 되는 대로 모시러 오겠습니다.”
씩씩하게 말을 마친 정상백은 수하들과 함께 호수로 달려갔다.
이사가 연적하의 귓가에 속삭였다.
“공자님, 또 지난번처럼 배가 폭발하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요?”
“이들은 내가 왜 왔는지 모르니 그럴 일 없을 거예요.”
“그, 그렇겠지요?”
이사는 영 불안한 얼굴이었다.
일각(15분)쯤 지나자 정상백이 숨을 헐떡이며 돌아왔다.
“총순찰님! 배가 준비되었습니다. 속하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연적하 일행을 태운 배가 동호로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지만 정상백은 미리 뱃전에 등불을 달았다.
연적하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자 정상백이 변명하듯 말했다.
“헤헤, 더 어두워지면 불을 밝히기가 쉽지 않아서요. 원래 이 시간이면 등불을 달곤 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던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다른 배들도 뱃전에 희미한 불을 하나씩 달고 있었다.
“어두워지면 찾기 힘든 거 아냐?”
“아! 그렇지는 않습니다. 채주님의 배는 오히려 어두워질수록 찾기가 쉽습니다.”
“그건 또 왜?”
“화려하게 불을 밝힌 배가 보이면 십중팔구 채주님의 배니까요.”
“아하!”
연적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어두울수록 더 찾기 쉬운 게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심오한 느낌이다.
동호를 떠다닌 지 반 시진(1시간)쯤 지났을까?
멀리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배가 보였다.
꽤나 먼 거리였음에도 금 타는 소리와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선수(船首)에서 목을 길게 빼고 주위를 살피던 정상백이 소리쳤다.
“총순찰님! 찾았습니다! 저 배입니다!”
연적하가 온 이유도 모르고 정상백은 빨리 찾아 다행이라며 싱글벙글했다.
***
동호수채의 채주 탈명혈장 오진웅은 취기가 적당히 오르자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갑판 중앙에서 금을 타고 있는 기녀에게 다가갔다.
금소리가 흔들리더니 이내 멈췄다.
“은월이라고 했더냐?”
“예.”
“벌써 반 시진이나 계속 금을 탔는데 손은 괜찮으냐?”
“예.”
은월이 몸을 움츠렸다.
예기(藝妓)로 딸려 온 그녀는 술에 취한 손님과의 대화가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보는 내가 괜찮지가 않다. 어디 손 좀 보자.”
오진웅이 은월에게 손을 내밀었다.
주변에 있던 기녀들이 깔깔거리며 오진웅과 은월을 손가락질했다.
그녀들은 은월에게 수작을 거는 오진웅이 재밌기만 한 모양이다.
“너 내 별호가 무엇인지 아느냐?”
“탈명혈장이시라고…….”
“그래, 이 손바닥으로 동호에 처넣은 사람이 몇 명인지 모르겠구나. 나는 그저 장법의 고수로 손에 관심이 있을 뿐이니 두려워할 것 없다.”
오진웅의 협박과 설득에 은월이 손을 내밀었다.
그때부터 그는 은월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놓아주질 않았다.
“아주 곱구나.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있는 게 장법을 익히면 금방 고수가 되겠어. 너 나에게 탈명구장을 배워 볼 생각이 있느냐?”
오진웅이 끈적한 눈으로 은월을 훑었다.
탈명구장은 오늘날의 그를 있게 한 절학으로 기녀에게 가르칠 무공이 아니다. 그는 단지 재미로 이런저런 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곧이어 그의 손이 은월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에 깜짝 놀란 은월은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장법의 고수인 오진웅이 손에 들어온 여자를 순순히 놓아줄 리가 없다.
그는 자연스럽게 은월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순간 마혈이 찍힌 은월은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굳어 그의 품에 안겼다.
“이게 무슨 짓인가요! 놓아주세요! 저는 단지 금을 타러 왔어요!”
“놀랄 것 없다. 다들 처음에는 너처럼 그런 소리를 하곤 한다. 하지만 본좌와 한차례 일을 치르고 나면 좋아서 떨어지려 하질 않지. 그렇지 않으냐?”
오진웅의 말에 구경하던 기녀들이 이구동성으로 “네에!”라고 답했다.
심지어 오진웅을 위해 바닥에 이부자리를 깔아 주는 여자도 있었다.
초록이 동색이라고, 오진웅이나 그와 어울리는 기녀들의 언행은 비슷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제발요.”
은월의 애원에 기녀들은 더 크게 “깔깔” 웃었다.
함께 온 악사들은 감히 나서지 못하고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오진웅이 한창 은월의 옷을 풀어 헤칠 때다.
선수에서 주변을 감시하고 있던 수적 하나가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채주님! 우리 수채의 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허!”
한껏 달아올랐던 오진웅이 김빠진 얼굴로 일어섰다.
“본좌의 흥취를 깨트리다니. 어떤 놈인지 몰라도 죽고 싶어 환장을 했나 보군. 분명히 오늘 밤은 뱃놀이를 하겠다고 했거늘.”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앉은 오진웅은 살기 어린 눈으로 어둠을 응시했다.
잠시 후 중형 크기의 배가 다가왔다.
곧이어 두 배 사이에 널빤지가 걸 쳐지고, 십여 명의 사람들이 넘어왔다.
가장 먼저 채주의 배로 건너간 정상백이 오진웅 앞으로 달려갔다.
“채주님! 녹림 총순찰님께서 채주님을 만나야겠다고 해서 모셔 왔습니다!”
“뭐라고?”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난 오진웅은 누워 있는 은월에게 손을 흔들었다.
한 줄기 손바람이 은월의 상체를 쓸고 지나갔다.
순간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부르르 떨던 은월이 벌떡 일어나 한쪽으로 몸을 피했다.
연적하는 마치 뱃놀이를 나온 대갓집 공자처럼 느긋하게 나타났다.
연적하가 나타나자 정상백이 오진웅을 소개했다.
“총순찰님, 이분이 동호수채의 채주이신 탈명혈장이십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오진웅이라 합니다. 제가 순찰이 된 뒤로 처음 뵙는군요. 진즉에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 건데. 하하하!”
오진웅은 자신도 ‘순찰’의 직위에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알렸다.
순찰은 총순찰의 아래지만 채주보다는 위에 있다.
그러니 자신이 아주 낮은 위치가 아니라는 걸 돌려서 말한 셈이다.
연적하의 시선이 바닥에 깔린 이부자리로 향했다.
다섯 명의 기녀와 보란 듯 깔려 있는 이부자리를 보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응?’
문득 그의 눈에 금을 안고 웅크리고 있는 기녀가 보였다.
반쯤 벗은 채로 덜덜 떨고 있는 여자를 보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것도 같다.
연적하가 오진웅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도 개처럼 놀았나 보구나.”
“…….”
오십 대 후반인 오진웅은 아들뻘인 연적하가 다짜고짜 반말을 하자 멍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그는 굳은 얼굴로 받아쳤다.
“개처럼 놀다니요. 아무리 총순찰이라 해도 말씀이 지나친 거 아닙니까?”
“어쭈? 무조건 용서를 빌어도 시원치 않은데, 감히 눈알에 힘을 주고 날 노려봐? 동호수채는 아래위도 없고 완전 개판이구만.”
그제야 오진웅은 연적하가 단단히 틀어져 있음을 알았다.
‘무슨 일이지?’
재빨리 총순찰의 비위를 거스른 일이 있는지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당혹스러운 얼굴로 서 있던 오진웅이 한풀 꺾인 어조로 말했다.
“오해입니다. 제가 어찌 총순찰님을 노려봤겠습니까? 속하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가르쳐 주십시오.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연적하가 떨고 있는 기녀를 가리켰다.
“저 아가씨 뭐야. 싫다는데 이불 깔고 덮친 거 아냐?”
“그럴 리가요. 저 여자는 몸 파는 기녀입니다. 돈 받고 하는 일이 그런 건데, 싫다고 할 리가 있습니까?”
뻔뻔한 그의 거짓말에 은월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녀의 곁에 있던 악사들이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동호수채의 후환이 두려웠던 것이다.
연적하의 뒤에 서 있던 남궁연이 금을 안고 있는 기녀를 보며 말했다.
“거짓말. 금을 타는 예기들은 창녀가 아니야.”
“닥치거라! 동호의 기녀들에 대해 모르면 함부로 나서지 마라!”
오진웅이 사나운 얼굴로 남궁연을 쏘아보았다.
그때다.
연적하가 오진웅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번개처럼 손을 휘둘렀다. 남궁연에게 큰소리를 쳐서 귀싸대기를 날리려는 것이다.
놀란 오진웅은 반사적으로 탈명구장을 펼쳤다.
타닥. 탁. 탁.
두 사람의 손이 허공에서 얽혔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구천세법은 오묘하지만 평생 장법에 매진한 오진웅도 만만치 않았다.
맨손 다툼은 금방 끝났다.
총순찰과 싸우는 게 부담스러웠던 오진웅이 슬쩍 한 걸음 물러섰던 것이다.
그러자 연적하는 지체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공평하게 각자 잘하는 것으로 하자고. 난 칼질을 잘해.”
“허! 나는 동호수채의 채주이자 순찰이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요?”
“아! 내 정신 봐라. 중요한 걸 말하지 않았네. 총채주님이 녹림에 있는 십두마병을 정리해 달래. 그래서 온 거야. 오 채주, 나쁜 놈이라 고마워. 이번에는 부담 없이 보내 줄 수 있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