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70
170회. 궤계가 하늘을 찌른다.
칠월 초.
신현 서하촌.
연적하 일행의 마차가 마을로 접어 들었다.
마부 이사의 옆자리에 나와 있던 진설하가 신기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드디어 최종 목적지인 서하촌에 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처음 정주를 떠날 때만 해도 이런 일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정의맹의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으리라.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서하촌에서 작별하기로 했으니 자신들의 임무는 끝났다.
대별산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지만 목숨 걸고 참관하고 싶지는 않다.
괜히 휘말려 목숨을 잃게 되면 지난 반년간의 고생이 수포로 돌아가는 까닭이다.
한편으로 연적하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은월과의 일 이후로 왠지 그를 보는 눈이 전과 조금 달라졌다. 애틋함이 사라지고 이제는 그냥 괜찮은 사람 정도로 남았다.
물론 며칠 전 남궁연에게 그날의 진실을 듣기는 했다.
그래도 전처럼 설렌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냥 모든 게 시들했다.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정의맹의 여협과 녹림 총순찰은 어울리지 않으니까.
철이 든 건지, 요즘은 오히려 청운검 남궁천에게 관심이 간다.
그에게서는 진정한 대협의 풍모가 엿보인다.
남궁세가가 멸문하지 않았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남궁천은 보통의 무림인들과 처지가 비슷하다.
이젠 오대세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앞에서는 남궁세가라고 하지만 단지 예우상 그렇게 부를 뿐이다.
덜커덩.
마차가 서자 진설하는 생각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돌리자 제일 먼저 무하객잔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진설하는 가볍게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마차에서 나온 일행들과 함께 객점으로 들어갔다.
아직 한낮이라 객잔은 한산했다.
그래도 마지막 자리라고 유근식이 탁자 두 개를 붙여 자리를 만들었다.
잠시 후 점소이가 주문을 받고 돌아갔다.
그때부터 묘한 침묵이 흘렀다.
한참 눈치를 살피던 설차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 소협, 이 자리까지 수고 많으셨습니다. 능력이 된다면 끝까지 함께했을 테지만, 그러지 못해 아쉽습니다. 정의맹을 대신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가 고개를 숙이자 연적하는 멋쩍은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에이, 뭘 그렇게까지. 고생들 많았습니다.”
구천노도 심통이 불퉁한 얼굴로 말했다.
“공자님, 정말 혼자 가실 겁니까? 달아나는 거라면 저도 자신이 있는데요.”
“됐어.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이나 잘 지키고 있어. 한 푼이라도 잃어 버렸다가는 그냥…….”
연적하가 표독스러운 눈으로 심통을 쏘아보았다.
그제야 심통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사실 그간 모은 돈이 많아 그걸 지키는 것도 큰일이었으니까.
***
황산.
대별산채.
신시(오후 3시-오후 5시) 무렵.
부채주 귀영살도 연파강이 허겁지겁 삼왕각으로 달려갔다.
“채주님, 연적하가 서하촌을 떠났다고 합니다.”
상석에 앉아 있던 채주 추혼혈도 이무진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놈의 일행은?”
“함께 왔던 자들도 서하촌을 떠났는데 서로 다른 길로 갔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서하촌까지만 동행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한쪽에 앉아 있던 독심귀랑 양소란이 냉소를 쳤다.
“흥! 혼자서 올 모양이로군.”
“우리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 알 텐데, 혼자 온다는 거요?”
이무진은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들 중 몇 사람의 무공이 뛰어나지만 십두마병에 비할 바가 아니에요. 함께 와 봐야 짐만 된다고 생각했겠지요. 서하촌에서 황산까지 얼마나 걸리지요?”
“늦어도 반 시진(1시간)이면 올 거요.”
“지금이 신시(오후 3시-오후 5시)이니 어두워지기 전에 그자를 만날 수 있겠군요.”
이무진이 연파강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는 나가서 산채 주변을 살피고 있거라. 수상한 자가 나타나면 바로 알려야 할 것이다.”
“예.”
연파강은 즉시 전각을 떠났다.
수하가 나가자 이무진이 슬쩍 양소란의 눈치를 살폈다.
상인들 사이에 괴담처럼 떠도는 십두마병의 최후가 영 신경 쓰여서다.
“그건 그렇고 내가 이상한 소문을 들었는데…….”
“소문요?”
양소란은 대충 짐작했지만 시치미를 뚝 뗐다.
“연적하의 손에 죽은 십두마병이 이상한 모습으로 변했다나 뭐라나.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있소? 귀랑께서 그놈과 싸워 보았다니 알 것도 같은데.”
은하장에서 나온 삼대신장들도 양소란을 보았다.
그들 역시 대력귀의 죽음에 관한 기이한 소문을 들어 여간 궁금한 게 아니었다.
양소란의 얼굴에 씁쓰름한 미소가 번졌다.
어지간하면 피하고 싶은 질문인데 분위기를 보니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어차피 곧 알게 되실 테니 가르쳐 드리지요. 네, 소문이 맞아요. 십두마병들이 죽으면 괴물로 변하더군요. 일반의 괴물이라기보다는 마물에 가까웠어요.”
그녀는 자신이 목격한 절정도 이초량과 무영검 백산의 최후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들은 죽자마자 용과 뱀의 모습으로 변했어요.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들은 마룡과 뇌신이라 하더군요. 그들의 실체가 무엇이건 한 가지 분명한 건, 인간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은 스스로의 목숨을 잘 간수하기를 바라요.”
“허…….”
이무진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설마설마했는데 양소란에게 직접 들으니 기가 막혔다.
이번에는 여주의 은하장에서 온 무쌍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도 대력귀가 이상한 모습으로 되살아났다는 소리를 들었소. 우리가 치른 대법의 결과가 그런 것이라니 정말 끔찍할 뿐이오.”
“…….”
그의 말에 다들 침묵했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자 옥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맙시다. 그 정도면 마공치고 부작용이 없는 편 아니오? 당주님께서 백두마군들과 그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하셨으니 좋은 소식이 있을 게요.”
양소란이 재빨리 주제를 돌렸다.
“옥불의 말이 맞아요. 지금은 연적하를 죽이는 일만 생각하기로 하지요. 그는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에요. 어쩌면 우리 중에 몇은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몰라요.”
그녀의 말에 이무진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정말 총순찰의 무위가 그렇게 뛰어나오? 일곱이나 되는 십두마병이 목숨을 걱정할 정도로?”
“그래요. 그의 무위는 이미 칠파이문의 장문인들을 넘어섰어요. 우리가 뭉치면 그를 죽일 수 있겠지만 얼마간의 희생은 피할 수 없을 거예요. 그리고…….”
양소란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 말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망설였지만 결국 해야 할 것 같다.
지금 믿을 건 십두마병들밖에 없었다.
“가급적 서로를 지켜 주는 게 좋을 거예요. 죽어서 전혀 다른 존재가 되면, 피아의 구별이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또 누구라도 십두마병의 죽음을 기회로 이용하게 해서는 안 돼요.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지면 우리는 이용당하다 죽게 될 거예요.”
삼대신장과 이무진은 그녀의 마지막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십두마병의 죽음을 기회로 이용하게 해서는 안 된다니?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무진이 물었다.
“십두마병의 죽음이 기회가 될 수도 있소?”
“십두마병은 죽어서 더 강한 존재로 되살아나요. 그걸 노리고 동료의 죽음을 방치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랬다가는 똑같은 꼴로 죽임당하게 될 테니까.”
“되살아난 마물이 십두마병보다 강하다는 말이오?”
“그래요. 십두마병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강한 존재가 된답니다.”
“설마 연적하가 그런 존재조차 죽였다는 거요?”
“아주 수월하게 죽이더군요. 그런 자인지라 희생이 따른다고 말한 거예요.”
이무진과 삼대신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연적하의 무위가 그 정도라면 정말 몇 사람 죽어 나갈 수도 있겠다 싶다.
***
서하촌에서 황산까지는 반 시진(1시간)이면 닿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다.
그건 연적하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아직 해가 많이 남아 있을 때 그의 눈앞에 거대한 산이 나타났다.
그는 드디어 황산에 도착한 줄로 알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당연히 잔뜩 긴장한 채로 산에 올랐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산중턱에 도달할 때까지 개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그는 꾸역꾸역 산 정상에 오른 뒤에야 자신의 잘못을 알았다.
“젠장! 이 산이 아닌가 보네.”
아무래도 어딘가에서 길을 잘못 들었던 모양이다.
해가 지려는지 멀리 보이는 산 뒤 편의 구름이 붉게 물들어 갔다.
답답해진 연적하는 산꼭대기에서 공력을 끌어 올려 힘껏 소리쳤다.
“야! 황산이 어디야! 대별산채 어딨냐고!”
그러나 메아리만 돌아올 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중에 심통이 알면 꽤나 놀려 먹을 텐데…….’
숨긴다고 숨겨질 일도 아니다.
지금쯤 대별산채에서 일전을 벌였어야 한다. 그 시간에 엉뚱한 산에서 헤매고 있으니, 그만큼 돌아갈 시간이 늦어지는 건 자명한 사실.
“미치겠네.”
솔직히 오늘 대별산채에 가기는 틀렸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니 일단 마을부터 찾고, 다시 길을 물어야 할 판이다.
한동안 자학하던 연적하는 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갔다.
산을 거의 다 내려갈 즈음 해가 떨어졌다.
그는 ‘홀로 노숙을 해야 하나’, ‘더 움직여야 하나’를 두고 고민했다.
***
황산.
대별산채.
산채 앞마당 곳곳에 불이 밝혀졌다.
이무진은 십두마병들과 마당에 나와 목이 빠져라 연적하를 기다렸다.
총순찰과의 싸움을 수하들이 알까 봐 아무도 숙소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데 오지 않으니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산채 입구를 지켜보던 음산귀가 이무진에게 물었다.
“허어! 지금쯤이면 왕복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혹시 달아난 것 아니오?”
“그랬다면 수하들이 보고했을 게요. 분명 황산으로 가는 중이라 했소.”
양소란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교활한 놈이니 우리의 진을 빼 놓으려고 그러는 것일 수도 있어요. 분명히 새벽쯤 돼서 우리가 지칠 즈음에 나타날 거예요.”
그러자 이무진이 얼굴을 찌푸렸다.
“허면 새벽까지 뜬눈으로 기다리고 있어야 한단 말이오?”
“자다가 목이 잘리고 싶지 않다면 그래야겠지요.”
“미치겠군. 총순찰이라는 놈이 그렇게까지 치졸한 수법을 쓰다니.”
내심 화끈한 싸움을 준비하고 있던 이무진은 어이가 없었다.
혈검, 옥불, 음산귀, 무쌍귀, 무영귀 들은 벌써부터 지친 얼굴이다.
십두마병들이 조바심을 낼수록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술시(오후 7시-오후 9시)를 넘기자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불태울 나무가 슬슬 떨어져 간 것이다.
결국 이무진은 숙소에 틀어박혀 있던 연파강을 다시 불러내야 했다.
연파강은 수하들과 함께 마당에 장작을 산처럼 쌓아 두고 돌아갔다.
십두마병들은 긴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날이 밝자 이무진은 충혈된 눈으로 양소란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안 왔다면 오지 않는 게 아니오?”
“당신은 분명히 연적하가 황산으로 가는 중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끙!”
이무진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를 본 수하들이 그렇게 보고했으니 분명히 황산에 왔어야 한다.
평소 느물거리던 옥불마저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시작부터 놈에게 당한 것 같소. 내 스승은 피로를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독’이라 했소. 우리는 이미 중독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요. 놈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앞으로도 쉴 수 없으니 큰일이오. 강호 초출로 알았는데 실로 궤계가 하늘을 찌르는 놈이었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