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77
177회. 일만 이천 냥에 팔겠습니다
오봉산.
오봉산채.
이른 아침.
상화각에 네 명의 사내가 모였다.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 그리고 이제는 채주가 된 마형도와 부채주 허임달이다.
마형도가 섭섭한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정말 오늘 내려갈 생각이냐?”
“예. 자리 잡으면 바로 알려 드릴 테니 시간 날 때 놀러 오세요.”
“그러마. 너도 생각 바뀌면 아무 때나 돌아오거라.”
“그럴게요.”
연적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풍연초와 탁고명이 자리를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채주와 부채주가 바뀌었다. 다행히 두 사람은 풍연초와 탁고명처럼 마음이 잘 맞아 산채는 안정적으로 굴러갔다.
“아우가 객잔을 하겠다니. 나는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물론 장사만 잘된다면야 사람을 사서 맡기면 될 일이긴 하다. 그래도 꿈지럭거리기 싫어하는 연적하가 객잔을 하겠다고 할 줄은 몰랐다.
“하하. 저는 그냥 주인이고, 운영은 적당한 사람에게 맡길 거예요.”
보고 있던 허임달이 한마디 했다.
“형님, 연 아우는 뭘 해도 잘할 겁니다. 연 아우가 어디 보통 사람입니까.”
“그렇기는 하지. 심 노인, 우리 연 아우 잘 좀 부탁합시다.”
마형도의 당부에 심통이 고개를 끄덕였다.
“염려 붙들어 매시오. 공자님 손끝에 물 한 방울 묻을 일 없게 할 테니.”
자신만만한 그의 말에 마형도와 허임달은 마음을 놓았다.
심통은 세상 물정 모르는 연적하와 달리 노회(老會)한 사람인 까닭이다.
잠시 후 연적하와 심통이 전각을 나섰다.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보며 마형도가 중얼거렸다.
“단지 놀고먹기 위해서라면 산채에 있어도 되는데. 왜 어려운 일을 자처하는지 모르겠네.”
“아우에게 깊은 뜻이 있겠지요. 객잔이 한두 푼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역시 그렇겠지?”
마형도는 자신이 미처 모르는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연적하의 객잔 운영은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
구월 초.
개봉.
정오 무렵.
연적하와 심통은 장사꾼들 무리에 섞여 개봉성으로 들어갔다.
오 일간의 여정 끝에 도달한 것이라 지칠 만도 한데 두 사람 눈은 생기로 반짝였다.
지나치는 도시가 아니라 살아갈 터전을 마련하려고 온 것인지라 그렇다.
“심 노인,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일단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가서 거간꾼을 찾으면 끝입니다.”
“거간꾼?”
“예, 집이나 땅을 소개해 주고 약간의 소개비를 받는 자들이지요.”
“아하!”
“저 주루가 괜찮아 보입니다.”
심통의 손끝이 배가 둥둥 떠다니는 운하(運河) 옆 주루를 가리켰다.
운하 주변을 둘러보던 연적하가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경치도 이만하면 훌륭해서 놀고먹기 딱 좋아 보였다.
한낮임에도 주루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두 사람이 대충 빈자리에 앉자마자 점소이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무엇을 드릴까요?”
점소이는 연적하와 심통이 도검을 찬 걸 보고 살짝 긴장한 얼굴이었다.
연적하가 기다렸다는 듯 한마디 했다.
“난 소홍주.”
심통이 별스럽다는 듯 연적하를 힐끔 보았다.
주루에 모시고 다닌 지 오래됐지만 술의 종류를 지정하기는 처음이었다.
“소홍주와 이 집에서 잘하는 요리 몇 가지를 내오거라. 그리고, 너 혹시 알고 지내는 거간꾼이 있느냐?”
“예, 저희 주루를 찾는 손님들 중에 그런 일을 하는 분이 계시긴 합니다요.”
“그를 데리고 오면 너에게도 따로 수고비를 주겠다.”
“예, 예. 그럼 소홍주와 양고기탕면[羊肉烩面], 통닭요리[料子全鷄], 돼지고기볶음을 내오겠습니다. 혹시 요기도 겸하실 거라면 볶음밥도 드실 만할 겁니다.”
“그래, 다 내오거라. 거간꾼 데리고 오는 것 잊지 말고.”
심통은 다시 한번 거간꾼을 강조했다.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빨리 객잔과 주루를 사야 하기 때문이다.
“예, 예.”
점소이는 굽실거리다가 급히 돌아갔다.
수고비를 주겠다는 말의 힘일까?
뺀질거리게 생긴 점소이는 주문한 요리보다 거간꾼을 먼저 데리고 왔다.
오십 대로 보이는 중후한 인상의 사내가 심통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소삼에게 거간꾼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달려왔습니다. 무엇이 필요하신지요? 원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구해 드리겠습니다.”
심통은 약속대로 점소이에게 은자 한 냥을 던져 주었다.
점소이가 희희낙락한 얼굴로 돌아가자 심통이 말했다.
“험, 험. 공자님과 나는 개봉에서 객잔과 주루를 사려고 한다. 연결해 줄 수 있겠느냐?”
“예, 마침 제가 전문적으로 그런 것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른 물건이라면 인근의 상방으로 안내하려고 했는데, 잘됐군요. 지금 바로 보러 가시겠습니까?”
“서두를 것 없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주문한 것은 먹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
“예, 허면 소인이 먼저 가서 팔겠다는 주인들을 만나 보고 오겠습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새 마음이 변한 건 아닌지 확인하는 거라서요.”
“알겠다.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다시 찾아오거라.”
“예.”
남자는 일어나서 다시 한번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야아. 심 노인 아주 일 처리가 확실한데?”
“흐흐. 연륜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둘이 웃고 떠드는 동안 기다리던 술과 요리가 나왔다.
거간꾼은 반 시진(1시간)이 지나기 전에 돌아왔다.
마침 소홍주 한 병을 막 비운 참이라 연적하와 심통은 지체 없이 일어났다.
거간꾼이 운하를 따라 걸으며 좌우에 보이는 건물들을 가리켰다.
“저 아래부터 이곳까지가 제일 목이 좋은 곳입니다. 보시다시피 대낮에도 주루에 빈자리 찾기가 힘이 들 정도지요. 저기 홍운객잔이라는 간판이 보이십니까?”
“저곳이 팔겠다는 객잔인가?”
“예, 주인이 정주 사람인데 낙향을 하려고 한다더군요.”
“오오!”
홍운객잔을 본 연적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근처의 건물들 중 가장 크고 화려해 보였다.
저 정도 규모면 객잔이 아니라 궁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홍운객잔으로 들어가자 주인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말씀 들었습니다. 객잔을 구하신다고요?”
심통이 연적하를 대신해 나섰다.
“그렇다.”
“잘 오셨습니다. 마침 제가 객잔을 내놓았습니다. 최대한 가격을 맞춰 드리겠습니다.”
“이 정도 객잔이면 얼마나 하느냐?”
“예, 싸게 드리겠습니다. 오만 냥만 주십시오. 본래 오만 오천 냥은 받아야 하는데 제 사정이 급하다 보니…….”
오만 냥이라는 말에 심통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연적하가 가진 돈은 은자 팔천 냥 정도다.
그 정도면 사고도 남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만 냥이라니 놀라울 뿐이다.
“험, 험, 알겠다. 좀 더 생각해 보고 다시 오겠다.”
가격 차이가 너무 심해 심통은 차마 흥정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예, 예. 최대한 나으리께 맞춰 드릴 테니 꼭 찾아 주십시오.”
상원의 배웅을 받으며 세 사람은 거리로 나왔다.
잠시 심통의 눈치를 보던 거간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객잔이 마음에 안 드셨나 봅니다. 다른 곳을 더 보여 드리겠습니다.”
“마음에 안 들었다기보다는 너무 규모가 크다. 저래서야 일에 치여서 어디 살겠느냐? 우리 공자님에게는 쉬엄쉬엄 할 만한 객잔이 맞느니라.”
“아, 예. 그런 거라면 멀지 않은 곳에 적당한 게 있습니다.”
거간꾼은 일다경(약 20분)쯤 걸어가 또 하나의 객잔을 보여 주었다.
규모는 홍운객잔보다 작았지만 가격은 사만 냥이나 했다.
심통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불퉁한 얼굴로 객잔을 나왔다.
그 뒤로도 해가 질 무렵까지 거간꾼은 개봉성의 객잔과 주루로 쉬지 않고 안내했다.
땅거미가 뉘엿뉘엿 질 무렵까지도 심통의 얼굴은 펴지질 않았다.
무슨 놈의 객잔과 주루가 손바닥만 한 것도 이만 냥이나 한단다.
연적하와 자신의 돈을 합쳐 봤자 만 이천 냥.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돌아다녀 봤지만 이만 냥 아래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런 젠장. 뭐가 이렇게 비싸?’
연적하에게 큰소리를 팡팡 쳤는데 시작부터 된통 꼬였다.
그때 거간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어, 작은 것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시니……. 혹시 어느정도 선에서 찾으시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팔천, 아니, 만 이천 냥짜리는 없느냐?”
“…….”
심통의 말에 거간꾼은 기가 막힌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이런 씨뻘. 처음부터 만 이천 냥 밖에 없다고 했으면 이 고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개봉성에서 객점을 만 이천 냥에 사려고 하다니?
세상 물정 모르는 인간들임에 틀림없다.
그는 속에서 열불이 났지만 상대가 무림인들인지라 꾹 참았다.
“하하, 어르신. 개봉성에서 만 이천 냥으로는 객잔을 살 수가 없습니다.”
심통과 연적하의 얼굴이 굳자 거간꾼은 급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외곽으로 나가면 그 정도에 살 수 있는 객잔이 더러 있습니다.”
“외곽이라면 어디를 말하는 게냐?”
“성에 있는 운하 주변은 본래 상권이 발달해서 매우 비싼 편입니다. 하지만 황하 강변이라면 싸게 구할 수가 있습니다.”
“황하 강변?”
“예, 개봉에서 북쪽으로 반 시진(1시간)정도 가면 화상촌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황하를 끼고 있는 마을이지요. 그곳에 객잔이 하나 있는데 판다는 소리를…….”
“안내해라.”
“지, 지금요?”
거간꾼은 해가 지고 있어서 그런지 영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다.
“어차피 하루 묵어야 하니 겸사겸사 가겠다는 게다.”
“아, 예…….”
거간꾼은 차마 싫다는 말을 못 하고 마방으로 터덜터덜 앞장섰다.
***
마차가 화상촌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완전히 진 뒤였다.
희미한 달빛이 전부였지만 거간꾼의 안내로 마차는 어렵지 않게 객잔을 찾아갔다.
객잔을 팔려고 한다더니 초저녁인데 불이 꺼져 있었다.
거간꾼이 문을 두드리는 동안 연적하와 심통은 객잔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 사람이 여행 중에 묵었던, 작은 마을의, 고만고만한 객잔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다.
쿠르르르-.
바로 옆에서 황하의 격류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정말 강변의 객잔답다.
아닌 게 아니라 몇 걸음 나가자 달빛에 번들거리는 시커먼 강물이 보였다.
고요한 운하 옆의 객잔들을 보다 와서 그런지 상당히 거친 느낌이다.
잠시 후 객잔의 불이 밝혀졌다.
“누구요!”
퉁명스럽던 객잔 주인은 거간꾼이 몇 마디 건네자 나긋나긋하게 바뀌었다.
“어서 오십쇼. 해가 졌는데도 객잔을 보러 오시다니. 고생이 많으십니다.”
주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간 연적하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객잔은 한눈에 봐도 개봉성에 있던 것과 격이 달랐다.
지나치게 낡은 것은 물론, 벽과 가구들은 찌든 때로 본래의 색깔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 층의 방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진동을 했고, 식당도 속이 뒤집힐 듯 퀴퀴했다.
객잔을 한 바퀴 둘러본 연적하와 심통은 다시 일 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거간꾼과 말을 맞췄는지 주인은 자리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일만 이천 냥에 팔겠습니다.”
연적하는 허탈한 얼굴이고, 심통은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움켜잡았다.
어딘지도 모를 촌구석의, 손바닥만 한 썩은 객잔을, 일만 이천 냥에 판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