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83
183회. 기침만 해도 놀라 달아날 겁니다.
다음 날.
남수경은 아침 햇살이 침상까지 흘러들어 올 무렵에야 눈을 떴다.
상체를 벌떡 일으킨 그녀는 낯선 광경에 놀라 급히 좌우를 둘러보았다.
‘아! 할아버지 객잔으로 왔었지.’
긴장이 풀려서 그랬던지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말았다.
문득 어제의 일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태풍이 몰아친 것처럼 정신없는 하루였다.
심 노인은 사기꾼들을 잡겠다며 떠났지만 연 공자는 끝내 객잔에 남았다.
할아버지는 연 공자가 수상하다며 개봉부에 고발하러 가겠다고 했었다.
‘벌써 개봉부로 가셨나?’
궁금해진 그녀는 서둘러 침상에서 내려와 옷을 갈아입고 문밖으로 나갔다.
뒷마당에서 간단하게 씻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식당으로 들어가자 상도라는 점소이가 쪼르르 달려와 꾸벅 인사를 했다.
“아가씨, 아침 드셔야지요?”
남수경의 눈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눈치 빠른 점소이는 벌써 자신에게 주인 대접을 하고 있었다.
“회면과 만두를 줄래?”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곧이어 점소이는 주방으로 달려가 “아가씨가 회면과 만두를 달래요!”라고 소리쳤다.
남수경은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거리를 내다보았다.
이 년 전에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제법 북적거렸다.
‘정말 다행이다.’
만약 객잔에 손님이 없었다면 할아버지와 살아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회면과 만두는 금방 나왔다.
남수경은 막 돌아서 가려는 상도를 불러 세웠다.
“네?”
“연 공자라는 사람은 몇 살이니?”
“스물한 살이라고 들었어요.”
남수경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얼굴이 앳돼 보여 자신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두 살이나 많았다.
“그는 아직 안 떠났지?”
“네, 자살바위에 계실 거예요. 아침이면 꼭 그곳으로 가시더라고요.”
“그래. 가 봐.”
상도가 묵례를 하고는 멀어져 갔다.
남수경은 재빨리 회면과 만두를 먹은 뒤에 밖으로 나갔다.
자살바위에 있다는 연 공자가 걱정이 됐다.
‘어제 꽤나 충격을 받은 얼굴이던데 설마…….’
객잔 옆의 큰 너럭바위가 자살바위로 불리게 된 것은 그 아래 급류 탓이다. 한번 빠지면 나오지 못하기에 해마다 한두 명씩 투신을 했다.
그녀는 연 공자가 나쁜 마음을 먹지 않기를 바랐다.
자신도 이 년간 녹담평에게 시달릴 때 죽으려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죽으면 할아버지가 충격으로 돌아가실까 봐 꾹 참았다.
남수경은 할아버지를 찾는 건 잊고 자살바위가 보이는 곳까지 달려갔다.
역시나!
상도의 말대로 연 공자는 자살바위 위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녀는 일부러 발소리를 내며 바위로 다가갔다.
“연 공자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연적하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남수경이라는 아가씨가 입가에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네?”
남수경은 바위로 올라가 연 공자 가까이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고 보니 자신도 어릴 때 이 바위에 자주 나와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가 달려와 위험하다고 야단을 치며 데려가곤 했다.
“아, 산책하러 나왔다가 아는 분이 계시길래 인사한 거예요.”
“아 네.”
연적하는 다시 황하로 고개를 돌렸다.
“어릴 때 저도 이 자리를 좋아했어요. 황하가 흘러가는 걸 구경하다 보면 시간이 잘 가더라고요.”
“…….”
연적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여기 앉아 물 흘러가는 걸 보고 있노라면 하루가 빨리 갔다.
남수경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어제는 많이 놀라셨죠?”
“네.”
연적하는 부인하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 사기라는 걸 당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힘들어도 나쁜 마음은 먹지 마세요. 지나고 나면 곧 좋은 날도 오더라고요.”
“감사합니다.”
“달리 갈 곳은 있으세요?”
“왜요?”
그걸 ‘빨리 떠나라’는 소리로 받아들인 연적하가 불퉁하게 되물었다.
“아니, 갈 곳이 없으시면 당분간 함께 지내도 어떤가 싶어서요.”
“남 소저 할아버지가 싫어하실 텐데요?”
“제가 잘 말씀드려 볼게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돼요. 나는 누가 하란다고 하고 말란다고 말 사람이 아니니까.”
‘어차피 내 맘대로 할 거다’라는 소리다.
남수경은 그의 말을 알아듣고 배시시 웃었다.
남자라서 그런지 이런 와중에도 오기를 부리는 것 같다.
“네, 그래도 할아버지께 공자님 입장을 잘 말씀드려 볼게요. 할아버지는 모진 분이 아니라서 공자님 형편을 이해해 줄 거에요.”
연적하는 그녀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그도 남수경이 나쁜 뜻으로 저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녀는 거액을 사기당한 자신의 처지를 동정하고 있었다.
‘감히 나를 시궁창에 처박다니!’
그녀가 호의를 베풀수록 사기꾼들에 대한 적의가 활활 불타올랐다.
‘이 개만도 못한 놈들을…….’
그 시간 남초결은 개봉성의 안찰사 부사 천량지를 만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신원 불명의 사내가 당신의 객잔을 차지하고 있다 이 말이오?”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웬 노인과 함께 있었으나 지금은 청년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는 일 없이 놀고 먹는 게 천생 백수건달입니다. 그런 자에게 일만 이천 냥이라는 거금이 있었을 리도 없거니와, 오천 냥짜리 객잔을 일만 이천 냥에 샀다고 주장하는 것도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내가 들어도 수상쩍구먼. 그런데 노인이 무림인으로 보였다고?”
“예, 개봉에서 장이유를 잡아 오는 데 한 식경(약 30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천량지의 이마에 주름이 깊어졌다.
“당신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무림인은 스스로를 강호인이라 부르오. 강과 호수처럼 땅에서 벗어났다는 소리요. 그들은 이 땅의 법을 따르지 않소. 법 대신 칼로 살아가는 실로 무도한 자들이라오.”
“하지만 노인은 사기꾼들을 잡겠다고 떠났습니다. 정말 잡으러 간 건지, 주인이 나타나자 슬쩍 몸을 뺀 건지는 하늘만 알겠지요. 남아 있는 건 백수건달 하나뿐입니다.”
“무림인들 문제라면 차라리 개봉의 표국에 의뢰를 해 보는 건 어떠시오?”
남초결의 입가에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고 싶지만 남아 있던 돈을 부사를 만나기 위해 다 써 버렸다.
“그 어린 녀석은 그냥 놀고먹는 놈입니다. 부사 나으리께서 기침만 해도 놀라 달아날 겁니다.”
남초결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지라 천량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내 오늘 오후에 관병들을 이끌고 가서 처리해 드리리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별말씀을.”
남초결은 수도 없이 감사 인사를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
화상촌 객잔.
미시(오후 1시-오후 3시) 무렵.
개봉성 안찰사 부사 천량지가 관병 열 명을 거느리고 객잔에 들이닥쳤다.
놀란 상일운은 급히 객실에서 빈둥거리고 있던 연적하를 불러왔다.
식탁에 앉아 있던 천량지는 앳된 얼굴의 청년을 보고 내심 안도했다.
어쩌면 무림인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한눈에 봐도 그냥 일반인이었다.
“개봉부에 남초결의 탄원이 들어왔다. 네가 연 공자라는 사람이냐?”
“그런데 그쪽은 누구신지?”
연적하의 말에 관병 중 하나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이놈! 무엄하구나! 개봉성의 안찰사 부사이신 천량지 대인이시다!”
“아, 깜짝이야.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어디 귀먹은 사람 있나?”
태연한 연적하의 언행에 천량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수건달이라고 들었는데 하는 짓이 너무 당당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연적하라고 합니다.”
“네가 거액의 사기를 당했다고 들었다. 맞느냐?”
“그렇다고들 하는데, 사기꾼들을 잡아야 진짜 당한 건지 아닌지 알 수 있겠죠?”
천량지가 인상을 찌푸렸다.
가만 보니 그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정말 된통 사기를 당해서 충격을 받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게 분명했다.
“이런 일에는 내가 전문이다. 계약서를 가져와 봐라.”
연적하가 품에서 계약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관인이 왔다는 소리에 혹시나 하고 계약서부터 챙겼는데 잘한 것 같다.
꼼꼼하게 계약서를 살피던 천량지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허어! 실력이 뛰어난 자들의 솜씨다. 이렇게 정교하니 네가 당할 만도 했겠다.”
“정말 가짜 계약서인가요?”
연적하가 풀 죽은 음성으로 물었다.
상방의 행수에 이어 개봉성 안찰사 부사라는 사람까지 가짜라고 하니 정말 당한 모양이다.
“그렇다. 최근 천하 각지에 이와 유사한 사기가 많다. 이쪽에서 일을 저지르고 저쪽으로 자리를 옮겨 다니는 식이지. 그런 자들은 대도시와 성을 옮겨 다녀서 알면서도 잡기가 쉽지 않다.”
“하아! 정말 당한 거구나.”
“네가 사기를 당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고 죄 없는 객잔 주인이 피해를 봐서야 쓰겠느냐? 진짜 주인이 돌아왔으니 너는 객잔을 떠나야 할 것이다.”
“나도 만 이천 냥이나 이 객잔에 꼴아박았다고요. 돈 한 푼 없는데 가긴 어딜 가라고 그래요? 심 노인이 사기꾼을 잡아 오면 나가지 말래도 나갈 거예요.”
“어허! 그래도! 네가 사기를 당한 것은 객잔 주인과 아무런 관계가 없느니라. 객잔에서 나가지 않으면 국법으로 너를 다스릴 수밖에 없다.”
“법대로 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어떻게 되기! 그야 당연히 옥에 갇히는 게지.”
“거기 가면 밥은 주나요?”
“허허! 너 옥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게냐?”
천량지는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왔다.
나이가 스물이 넘은 놈의 말치고는 너무 순진했다.
“모르니까 묻죠.”
“나쁜 짓 한 사람을 잡아다가 가두는 곳이 옥이다. 당연히 먹을 것은 준다. 허나 발에 무거운 족쇄를 차는 건 물론, 사방이 꽉 막혀 있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니라.”
“창고 같은 곳인가 보네요?”
“옥에 비하면 창고는 객잔이니라.”
“내가 가면 안 되는 곳이구나. 알았으니까 그만 돌아가 봐요.”
“네가 이 객잔에서 떠나지 않으면 나는 너를 압송해 옥에 가둘 것이다.”
“부사 나으리.”
연적하의 음성이 착 가라앉았다.
그 묘한 박력에 천량지는 저도 모르게 의자 등받이에서 등을 뗐다.
연적하가 손을 뻗자 탁자 위에 있던 찻잔이 그의 손으로 빨려 들었다.
천량지는 그 기괴한 광경에 숨도 쉬지 못했다.
자기로 만든 찻잔은 연적하의 손에서 가루가 되어 흘러내렸다.
“나 험한 과거를 청산하고 조용히, 마음 편하게 살아 보려고, 객잔을 샀어요. 그런데 전 재산을 사기당했다네? 그냥 다 때려 부수고 싶은데, 꾹 참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더 건드리지 마요.”
후우웅.
한순간 태풍 같은 기운이 천량지를 향해 몰아쳐 갔다.
‘크허억!’
천량지의 몸이 연적하가 내뿜은 기운에 휘말려 거칠게 요동쳤다.
잠시 후 기의 태풍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놀란 천량지는 감히 일어서지도 못하고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뒤늦게 상대가 무림의 고수라는 걸 알아차린 군관 임사성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험, 부사 어르신, 연 공자의 형편을 고려하여 객잔에서 지내도록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그게 좋겠구먼. 연 공자, 내가 실언을 했네. 연 공자가 거금을 쏟아부었으니, 일이 해결될 때까지 남초결과 함께 객잔을 운영하도록 하게. 내 남초결에게도 단단히 말해 둘 터이니 앞으로 얼굴 붉히는 일은 없을 걸세.”
말을 마친 천량지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말이 통하지 않는 무림 고수의 앞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사실 법이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