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84
184회. 오늘부터 친구인 거예요?
개봉으로 향하는 관도.
안찰사 부사 천량지가 군관 임사성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보냈다.
“예, 대인.”
“무관인 자네라면 알겠지? 그의 무위는 어느 정도나 되는가?”
“그가 대인 앞에 있던 잔을 끌어당긴 게 기억나십니까?”
“기억나다마다.”
“그것은 허공섭물이라는 초상승의 수법으로 칠파이문의 장문인이라도 하기 어렵습니다. 그걸 가루로 만든 것은 더더욱 어려운 것으로, 내공의 수발이 자유로운 경지에 든 것을 의미합니다.”
“믿어지지 않는구먼. 고작 스물한 살의 나이에 그게 가능한가?”
“겉모습이 평범해 보이는 걸 보면 이미 반박귀진의 경지에 든 자입니다.”
“반박귀진?”
“사람이 오를 수 있는 최고 경지를 등봉조극이라 합니다. 그다음은 우화등선하여 이 세상을 떠나는 것만 남게 되지요.”
“우화등선은 나도 알고 있네. 선계로 올라가 신선이 된다지?”
“예, 그런데 때로 우화등선하지 않고도 등봉조극을 초월하는 고수들이 있습니다. 등봉조극을 넘어가면 도리어 처음의 상태로 돌아가 평범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 경지를 반박귀진이라 합니다.”
“허! 그 연적하가 반박귀진이라고?”
“그가 기운을 일으키기 전까지 평범해 보이지 않았습니까? 남초결은 지금도 그를 백수건달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반박귀진의 무서운 점이지요.”
“놀랍군, 놀라워.”
“소관도 말로만 들었지 반박귀진의 경지에 든 자를 보기는 처음입니다.”
“화상촌으로는 발걸음도 하지 말아야겠구먼.”
“잘 생각하셨습니다. 황실에서도 무림의 십대고수들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이 원한을 품으면 금의위(錦衣衛)로도 막기가 어려우니까요.”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던 천량지가 말했다.
“오늘 일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수하들 입단속시키게. 그리고 조용히 그에 대해 조사하게. 상대가 누군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니까.”
“예.”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천량지가 물었다.
“그자의 인성은 어떠해 보이던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고?”
“예, 사파 출신 같은데 남초결을 살려 둔 걸 보면 괜찮은 것 같지만…….”
임사성이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왜?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인을 겁박한 걸 보면 보통 흉악한 놈이 아닌 것 같아서요.”
“그렇군.”
천량지가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남초결을 대하는 것과 자신에게 한 짓은 꽤나 차이가 있었다.
‘대체 어떤 놈이냐.’
***
개봉.
삼보방.
삼보방의 방주 사인검 녹일취가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돈과 술과 여자다. 자연히 삼보방은 고리 대금과 주류 판매, 기녀 관리로 돈을 벌고 있다.
외당 당주 완자경이 상석에 앉아 있는 녹일취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방주님, 천화방에서 화상촌을 접수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녹일취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천화방은 개봉 북부에 있는 정사지간의 방파로 삼보방의 최대 경쟁 상대였다.
“화상촌? 그게 돈벌이가 되나?”
“마을에 객잔도 있고 점포가 십여 개나 돼서 관리만 잘하면 짭짤하기는 합니다.”
“관리하는 방파가 있고?”
“아직 없습니다. 그래서 천화방이 멀리 보고 들어가려는 것 같습니다.”
“그 쥐방울만 한 동네에서 뭐 빼먹을 게 있다고?”
“작다고 무시할 건 아닙니다. 객잔을 드나드는 장사꾼만 해도 한 달에 백 명은 될 겁니다.”
그제야 녹일취는 관심을 보였다.
“그래? 객잔만으로는 부족하고. 어디 보자, 그곳에 창기(娼妓)를 상주 시키면 돈벌이가 좀 되려나?”
“객잔만 운영하는 것보다 훨씬 수입이 늘 겁니다.”
두 사람은 객잔이 마치 자신들의 것인 양 편안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
안찰사 부사 천량지가 방문했을 때 남초결은 슬쩍 자리를 피해 있었다. 행여나 연적하가 자신을 물고 늘어질까 봐 신경이 쓰여서다.
나중에 천량지가 그냥 돌아갔다는 걸 알고 실망한 그에게 남수경이 화를 냈다.
손녀가 펄쩍 뛰자 남초결은 연적하의 무전취식을 눈감아 주기로 했다.
만에 하나 정말 사기를 당한 거면 억울하겠다 싶어서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남초결은 상일운에게 계산대를 계속 맡겼다.
그 대신 하루에 한 차례 장부를 확인했다.
그런 그와 달리 한창 혈기 왕성한 남수경은 하루 종일 객잔일에 매달렸다.
점심 무렵.
객잔을 둘러보던 남초결은 연적하가 보이지 않자 상도에게 물었다.
“요즘 연 공자는 무엇을 하며 지내느냐?”
“자살 바위에서 시간을 보내십니다.”
“달리 가는 곳은 없고?”
“예.”
“수경이가 안 보이는데.”
“아가씨는 조금 전에 연 공자님께 차를 가져다 드린다고 나가셨습니다.”
“쯧! 그깟 놈을 왜 챙겨 주는지 원.”
남초결은 손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울릴 또래가 없어 그러는 것 같아 뭐라고 하기도 뭐했다.
일 잘하고 부지런한 놈이었으면 손녀사위 감으로 딱인데, 그놈은 싹수가 노랬다.
남수경이 신기한 눈으로 연적하 옆에 놓인 검을 힐끔거렸다.
“연 공자님, 혹시 검술을 배우셨어요?”
“조금요.”
“와아! 무림인이셨구나. 어쩐지.”
“왜요? 싸움 잘하게 생겼어요?”
“아니요. 도통 일하는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셔서 조금 의아했거든요.”
남수경은 ‘백수건달인 줄 알았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했다.
연적하가 변명처럼 말했다.
“그냥 놀고먹는 거 아닙니다. 무림인은 칼만 들고 있어도 일을 하는 거예요.”
“알아요. 개봉에서 그런 분들 많이 봤어요.”
“개봉에 나 같은 사람이 많아요?”
“네, 제가 일하던 다관에도 그런 분들이 자주 드나들었어요.”
남수경은 말하다가 녹담평이 떠오르자 인상을 찌푸렸다.
“표정이 왜 그래요?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저를 심하게 괴롭힌 사람이 있었거든요.”
“왜 괴롭혀요?”
“제가 만나 주지 않는다고 괴롭히더라고요.”
“그럼 만나 주지 그랬어요.”
“어머! 어떻게 그래요. 안 만나 준다고 주먹질까지 하던 사람인데, 만났다가 무슨 일을 당하게요?”
“아, 그 정도면 쓰레기네요. 관부에 고발하지 그랬어요? 할아버지가 그런 거 잘할 텐데.”
연적하의 뒤끝 있는 말에 남수경은 고소를 지었다.
“주변에서 말렸어요. 무림인이 관계되면 관부에서 나 몰라라 한다고.”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자객이라도 써서 죽였나요?”
“아니요. 할아버지와 몰래 이곳으로 피했어요. 좀 바보 같죠?”
“모르죠. 사람마다 최선이라는 게 다 다르니까.”
“공자님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뭘 어떻게 해요?”
“누가 따라다니면서 괴롭힌다면요.”
“그런 건 친구가 해결해 줘요.”
“친구가 누군데요?”
“얘요.”
말과 함께 연적하가 옆에 놓여 있던 검을 툭툭 쳤다.
“훗! 저도 연 공자님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물론 검을 두고 한 말이다.
하지만 연적하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나랑 친구 하자고요?”
순간 남수경의 눈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비록 자신의 말이 잘못 전해졌지만 연적하와 친구가 돼서 나쁠 건 없었다.
그는 순하게 생겨 은근 모성 본능을 자극했다.
거액의 사기 피해자여서 더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슬쩍 농담을 걸었다.
“왜요? 싫으세요?”
그녀가 갑자기 훅 들어오자 연적하는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해 보니 의형제도 있고, 누님도 있는데, 친구는 아직 없다.
“남 소저, 친구가 그 뭐냐, 같이 어울려 다니고, 허물없이 대화하고, 그러는 사람 맞나요?”
“풉! 맞아요.”
남수경은 연적하가 아이처럼 친구라는 말뜻에 대해 묻자 웃음이 났
“그뿐 아니라 친구 간에는 어려울 때 서로 돕기도 한답니다.”
“오, 참 좋은 거네요. 그런데 나랑 친구 하면 남 소저 할아버지가 싫어할 것 같은데.”
“아니에요. 우리 할아버지 따뜻한 분이세요. 전에 객잔 할 때는 굶주린 사람들 보면 데리고 들어와서 먹여 보내기도 하셨어요.”
“그럼 나만 싫어하는 건가?”
“서로의 사정을 잘 모를 때는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오해가 풀리면 공자님에게도 잘 대해 주실 거예요. 그래서, 저랑 친구 할 거예요? 말 거예요?”
“합시다. 까짓것.”
“그럼, 오늘부터 우리 친구인 거예요?”
“예.”
“친구한테 ‘예’가 뭐예요. 말씀 놓으세요.”
그러면서도 정작 남수경은 나이 차이가 신경 쓰였던지 말을 올렸다.
“아, 그런 거야? 놓으라면 놓지. 나도 말 놓는 게 편해. 습관이 돼서.”
“어머, 지체 높은 집안의 자제신가 봐요?”
“그런 건 아니고. 강호에서는 강하면 어른이고 약하면 아랫사람이더라고.”
“진짜요?”
“그렇다니까.”
“그럼 공자님은 강해요?”
“최소한 심 노인보다는 강하지.”
“풋! 그 할아버지보다 강하다고요?”
남수경은 ‘심 노인보다 강하다’는 말에 배를 잡고 웃었다.
한창때의 청년이 노인보다 강하다고 하니 웃음이 났던 것이다.
물론 구천노도 심통이 장이유를 들쳐 메고 온 것은 알지만 그게 전부다. 일반인인 그녀에게 그 장면은 조금 충격적인 일에 불과했다.
그렇게 해서 남수경은 연적하의 첫 번째 친구가 되었다.
***
천화방은 삼보방의 예측보다 훨씬 빨리 움직였다.
해거름 무렵, 도검을 찬 다섯 명의 남녀가 화상촌으로 들어섰다.
화상촌을 접수하려고 온 천화방의 무인들이다.
하얀 피부의 미녀, 모란단 단주 백화검 주화영이 마을을 휘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작기는 작네.”
그러자 곁에 있던 청년, 손계영이 한마디 했다.
“방주님이 이런 촌구석에 왜 관심을 두는지 모르겠습니다.”
“참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겠니. 빨리 객잔이나 찾아봐. 해지기 전에 일을 처리하고 돌아가야 하니까.”
“제가 알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이쪽 길로 다닌 적이 있어서요.”
말과 함께 손계영이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갔다.
주화영과 세 명의 무인들이 부지런히 그 뒤를 따랐다.
마을을 벗어나 한참 걷자 멀리 강변에 커다란 건물이 나타났다.
“단주님, 저곳이 그 객잔입니다.”
주화영은 객잔과 그 주변 경관을 분석이라도 하듯 꼼꼼히 살폈다.
그런 뒤에 객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상도가 날아갈 듯한 소리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주화영 일행이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가자 상도가 급히 따라붙었다.
“나리님들, 묵고 가실 건가요? 식사만 하실 건가요?”
자리에 앉은 주화영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천화방의 사람이다. 주인을 만나러 왔으니 잠시 오라고 해라.”
“아, 예…….”
상도가 어색한 얼굴로 물러났다.
또 주인을 찾는 손님들이 왔다.
이제는 누가 주인을 찾으면 가슴부터 철렁거린다.
‘설마 사기꾼들이 또 객잔을 판 건 아니겠지?’
상도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며 남초결을 부르러 안채로 달려갔다.
잠시 후, 남초결이 상도를 따라 객잔으로 나왔다.
천화방이 찾아왔다는 말에 남초결의 안색은 잔뜩 굳어 있었다.
그들이 자신을 찾는 이유란 뻔하다.
대도시의 객잔과 주루는 모두 무림 방파의 관리를 받고 있다. 무림 방파가 없는 지역이라고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곳에는 하오문이라는 건달들이 세를 받는다.
‘화상촌은 외지고 작은 곳이라 하오문도 손을 뻗지 않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