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
2회. 좋은 일은 혼자 오지 않는다
장하은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선우세가의 가주가 남궁세가에 쏟는 정성은 손으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남편인 남궁벽은 같은 무림 세가임에도 불구하고 선우세가와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언젠가는 하도 이상해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가관이다. 더 친해지면 선우세가에서 혼인 이야기를 꺼낼 것 같아서 그런다나?
부인의 지적에 남궁벽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가 못마땅해 한다고 해서 내가 그의 뜻대로 살아 줄 수는 없지 않소?”
“아, 네에. 알아 모시겠습니다. 그런데 칠 일 만에 의형제를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허허허.”
부인의 말에 남궁벽은 그저 웃기만 했다.
참다못해 남궁천까지 가세했다.
“아버지, 저도 상당히 궁금합니다. 세상에서 아버지의 의형제는 연 숙부 한 분뿐이시잖아요. 어떻게 의형제가 되신 거예요?”
“글쎄다. 딱히 신비하거나 복잡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우리는 한 번씩 상대방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신뢰할 수 있게 되었고, 뜻을 합칠 수 있었지.”
“와아! 연 숙부님이 아버지를 구해 주었다고요?”
남궁천이 놀란 눈으로 부친을 바라보았다.
검왕이라 불리는 아버지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연 숙부의 무공이 그렇게 뛰어난 걸까?
“강호에 소문이 나기로는 아버지께서 연 숙부님과 함께 유명교를 물리쳤다고 하던데…….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본래 소문은 절반만 믿으라고 하지 않더냐.”
“예에? 정말 그 정도였어요?”
남궁천은 어지간히 놀란 얼굴이다.
남궁벽이 그런 아들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유명교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보통의 사교가 아니었다. 그들은…… 상상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지. 그때 연 숙부와 함께 그들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정말로 우리들의 운이 좋아서였다.”
남궁벽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연 숙부님의 참월검법이 그토록 뛰어난가요?”
“참월검법? 쯧! 어디서 이름도! 연 숙부의 검공은 참월검법 따위가 아니다.”
“예? 그럼? 뭔가요?”
궁금해하는 가족들 앞에서 남궁벽은 육 년 전의 그 일을 다시 기억해 냈다.
유명교의 다섯 장로가 퍼붓는 연환 공격은 다시 생각해도 오싹할 정도로 절정의 수준이었다.
사교의 잡배들이라고 경시하던 마음은 버린 지 오래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자신이 먼저 죽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계속해서 닥쳐왔다.
그러다 체력의 고갈로 죽음을 각오한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연무룡이 한 마리 호랑이처럼 뛰어든 것이다.
그가 달려온 길 뒤로 유명교의 호교무사들이 볏단처럼 쓰러져 있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자신이 유명교 교당을 쉽게 보았던 것처럼, 그들도 무명(無名)의 연무룡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았음을.
그 결과 양쪽의 생사가 갈렸다.
연무룡의 활약에 치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던 연환 공격이 흐트러졌다.
유명교 장로들이 주춤하던 때, 그 기세를 몰아 연무룡은 장로 하나의 목을 날렸다.
지금도 그 장면이 잊히지가 않는다.
분명히 창천 하늘에서 아홉 가닥의 검기가 떨어져 내렸다.
여덟 개는 팔방을 점하고 나머지 하나가 유명교 장로의 몸에 꽂혔다.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실로 천의무봉(天衣無縫)의 검공이었다.
나머지 네 명의 장로가 그의 검공에 놀라 멈칫한 그 짧은 순간, 자신도 마지막까지 아껴 두었던 제왕(帝王)의 검학을 쏟아 냈다.
그 자리에서 다섯 장로를 잃은 유명교 교당은 지리멸렬했다.
당주인 월하선자는 연무룡의 검기에 맞고 달아났다.
비록 혼전 중에 당주를 놓쳤지만, 강남의 유명교는 그날 이후로 세상에서 사라졌다.
유명교와의 싸움 뒤 연무룡은 참월검객이라 불렸다.
거기엔 월하선자가 다시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유명교 교당의 현판을 불태우던 날, 그에게 전날 본 검공이 무엇인지 물었다.
“구천검(九天劍)이라고 합니다. 연씨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검공이지요.”
지금도 그날의 일을 떠올리면 가슴이 설렌다.
“연 아우가 익힌 검공은 구천검이다. 그것은 실로 우리 남궁세가의 가전 절기와 비교할 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헉! 그렇게 뛰어난가요?”
부친의 말에 남궁천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날 내가 본 검공은 그랬다.”
“그런데 왜 연 숙부님의 절학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나요?”
남궁천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간 남궁벽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유명교의 성전(聖殿) 앞에서 자신이 연무룡에게 던진 것도 같은 질문이었다.
“그건 구천검과 현녀경(玄女經)이 완전하게 전해지지 않아서다.”
“아! 그게 연 숙부님의 무공인가요?”
“그래, 그 두 개의 절기가 상고(上古)로부터 연씨 일족에게 전해져 내려왔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유실되었다고 한다.”
“아아! 아깝다!”
남궁천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구천검과 현녀경.
이름만 들어도 뭔가 신묘한 느낌이 든다.
가만히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장하은이 중얼거렸다.
“절학의 이름을 들으니 왠지 도가 계열 같네요.”
“당신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럴지도.”
남궁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하은은 무당파 장로의 딸로 무당 파에서 자라면서 어릴 때부터 도가의 공부를 했다. 그런 그녀가 하는 말이니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후훗! 구천현녀(九天玄女)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가 봐요. 구천검과 현녀경이라니.”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니 비슷한 것도 같구려.”
어린 남궁연이 장하은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구천현녀가 누군지 어지간히 궁금했던 모양이다.
장하은이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구천현녀가 누군지 알고 싶으냐?”
“네.”
“구천현녀는 상고 시대의 선녀란다. 황제(黃帝, 헌원씨)가 치우(黃尤)와 싸울 때 그에게 병법을 주었지. 그리고 양산박의 영웅인 송강을 구해 준 뒤 그에게 세 권의 천서(天書)를 주기도 했고.”
“와! 병법과 천서요?”
남궁천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그래, 그래서 도가의 사람들은 구천현녀가 황제나 영웅을 도와서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고 믿고 있지.”
“어머니, 그런 선녀가 있다면 저도 한번 만나 보고 싶습니다.”
남궁천의 말에 장하은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좋은 일은 홀로 오는 법이 없단다.”
장하은의 말에는 묘한 여운이 있었다.
그래서 마차 안에 타고 있던 남궁세가의 식솔들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
네 명의 아이들이 백미주의 앞에 섰다.
백미주는 아이들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폈다. 피부의 상체기와 옷의 구김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열네 살인 연무백은 흠잡을 곳이 없을 정도로 준비가 완벽했다.
백미주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연무백을 바라보았다.
“알았지? 오늘은 네가 제일 잘해야 된다.”
“넷.”
연무백의 얼굴에는 긴장의 빛이 역력했다.
“그렇게 딱딱하게 굳어 있지 말고. 그리고 또래 중에는 네가 제일 오빠니까, 남궁연을 보면 친절하게 잘 대해 줘야 해.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아니야. 지금처럼 너무 딱딱하게 굴면 여자애들이 싫어해. 말은 항상 친절하고 부드럽게. 알겠니?”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연무백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며칠 전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어머니는 남궁연에게 무조건 잘 보여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남궁세가에 가서 백부님에게 무공을 사사받을 때 좋다나?
어린 계집애한테 잘 보이는 게 남궁세가에서 무공을 배우는 것과 어떤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그래야 한다고 하니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다.
연무백의 결의에 찬 눈빛을 확인하고서야 백미주는 고개를 돌렸다.
열한 살의 연승백도 나뭇가지에 얼굴이 조금 긁힌 걸 빼면 봐 줄 만했다.
“너도 백부님의 딸에게 잘 대해 줘야 한다. 장난치지 말고 무조건 해 달라는 대로 해 줘. 알았지?”
“네.”
백미주는 남궁연이 누구를 마음에 들어 할지 모르니 둘째에게도 주의를 주었다.
그다음 시선이 간 사람은 이제 아홉 살인 연설주다. 설주는 타고난 말괄량이로 잠시 잠깐도 가만히 서 있지를 못했다.
백미주는 그런 연설주에게 몇 번이고 주의를 주었다.
“설주야, 백부님 가족이 올 때까지 옷매무새를 흐트러뜨리면 안 된다.”
“응.”
“‘응’이 뭐야! 이제 컸으니까 ‘네’라고 대답해야지.”
“아이, 알았어.”
“어허! 또 그런다. ‘알았어요’라고 해.”
“네, 알았다고요!”
“이게 어디서 소리를 질러? 백부님 가족이 오면 얌전하게 행동하고. 알았지?”
“아, 네에~.”
여전히 건성이었지만 백미주는 역효과가 날까 봐 더 이상 지적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백미주는 연적하를 힐끔 쳐다보았다.
자그마한 면상은 보기만 해도 저절로 주먹이 쥐어진다.
연무룡의 인생을 말아먹고, 와룡장의 미래까지도 시궁창에 처박은 몸종의 아이는, 주제에 맞게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서 있었다.
그 주눅 든 모양새를 보니 화가 더 난다.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에 백미주는 연적하의 팔을 힘껏 꼬집으며 말했다.
“너는 왜 그렇게 병신처럼 서 있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누가 널 괴롭히는 줄 알잖아. 똑바로 서지 못해?”
“윽!”
연적하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성에 안 차는지 백미주는 연적하의 작은 양쪽 어깨를 움켜잡고 사납게 흔들었다.
“뭐가 아프다고 엄살이야! 허리에 힘을 주고 똑바로 서라고! 똑바로!”
어른의 힘에 휘둘린 여섯 살짜리 아이의 머리통이 미친 듯 요동쳤다.
격렬하게 흔들리는 와중에 연적하는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뒤늦게 연적하의 입술이 터진 것을 발견한 백미주가 아이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퍽.
“입술은 왜 물어뜯고 난리야! 손님들 보라고 자학하는 거야? 어린놈이 벌써부터 그래서 사람 되겠니? 네 어미가 사람 구실 못 했으면 너라도 잘해야 되는 거 아냐!”
“잘못……했어요…….”
별이 번쩍이자 연적하의 머리가 자라처럼 움츠러들었다.
“사람이 말을 하려면 분명하게 해야지! 몇 번 말해! 남이 잘 알아들을 수 있게 똑바로 말하라고 했어? 안 했어? 응? 대답해!”
백미주가 검지 손가락으로 연적하의 상체를 사정없이 푹푹 찔렀다. 그럴 때마다 연적하의 작은 몸이 태풍을 만난 나무처럼 휘청거렸다.
“했……어……요.”
“뭐라고 하는 거야? 똑바로 말하지 못해! 지금 반항하는 거야?”
흥분한 백미주가 연적하의 귀밑머리를 잡아 힘껏 위로 들어 올렸다.
자라처럼 쏙 들어갔던 연적하의 머리가 이번에는 하늘로 솟아올랐다.
여린 살이 뜯기는 고통에 연적하는 까치발을 해 가며 머리를 들어 올렸다.
“아야! 아야!”
“뭐가 아프다고 엄살이야! 누가 널 때리니? 대답을 하라고! 대답을!”
연적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했어요! 했어요! 잘못했어요!”
숨넘어가는 듯한 비명에야 백미주는 손에서 힘을 풀었다.
그러자 연적하의 머리는 다시 자라처럼 어깨 사이로 파묻혔다.
백미주는 손가락에 붙어 있는 연적하의 여린 머리털을 탁탁 털어 냈다.
그런 뒤 연적하의 구겨진 옷을 이리저리 매만져 주며 차분하게 말했다.
“너도 사람 새끼라면 말썽 부리지 마. 네가 잘못하면 사람들이 아빠 욕을 해. 알겠니?”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