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13
213회. 누가 누구를 죽인대?
수구촌은 삼십 호 남짓 되는 작은 마을로 음식점이 없다.
별수 없이 척마대는 길에서 벗어나 직접 음식을 해서 먹어야 했다.
척마대가 잠시 쉬어 가는 듯하자 눈치 빠른 상인들이 재빨리 나섰다.
곳곳에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솥단지가 걸렸다.
겨울철의 이동에는 따뜻한 국수가 제격이다.
상인들은 순천부의 편인탕(片儿汤, 수제비와 비슷), 산서식 도삭면(刀削麵), 사천식 단단면(坦坦面), 하남식 회면(烩面), 항주의 편아천(片儿川) 등을 끓여서 팔았다.
척마대주인 의천검존 이의정은 딱히 상인들의 장사를 막지 않았다.
오히려 상인들 덕분에 어울리지 않는 호사를 누린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청성파와 전진파 장문인들과 함께 회면을 사서 먹었다.
비록 한서불침의 몸이지만 따뜻한 국물이 들어오자 한결 편안해졌다.
청성파 장문인인 원양 진인이 국물을 마시다가 중얼거렸다.
“이것도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겠지요? 조금 아쉽습니다.”
전진파 장문인 무종상인이 웃으며 화답했다.
“허허. 그래도 최소한 정주까지는 상인들이 따라올 것 같습니다.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할 일이지요. 이 추운 날씨에 얼어붙은 건량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어휴!”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그는 다시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뒤늦게 팽가의 가주 벽력도 팽만호가 한 손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편인탕을 들고 다가왔다.
그는 이의정 옆에 털썩 앉으며 한마디 했다.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기는 한데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은밀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너무 드러난 것 아니냐는 소리다.
무종상인이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정의맹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적들도 알고 있을 게요. 우리 행로만 드러나지 않으면 되지 않겠소.”
“쩝쩝. 상인들에 의해 그게 알려질까 걱정이 돼서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대주께서 정주에 도착할 때까지 상인들이 대열을 이탈하지 못하게 하라 하셨소. 저들도 당분간은 우리 일행이나 마찬가지이니 너무 신경쓰지 마시구려.”
“아! 그러셨다니 안심입니다. 아직 강소성이라 별일도 없겠지만요.”
걱정 운운하던 팽만호는 느긋한 얼굴이었다.
낙양과 서주는 말을 갈아타며 쉬지 않고 달려도 오 일은 걸린다.
걷는다면 대략 이십 일 이상 소요되는 어마어마한 거리.
서로의 움직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사실 대주인 이의정이 상인들의 합류를 허락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아직은 낙양에서 멀어 안전하다 여긴 것이다.
그건 최소한 하남성에 진입한 뒤에나 다시 생각해 볼 문제였다.
척마대는 든든하게 식사를 마치고 다시 이동했다.
수구촌에서 벗어나자 길은 왼편에 야트막한 절벽을 끼고 돌았다.
만약 이곳이 정주 인근이었다면 다들 긴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머나먼 강소성에서 적의 기습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선두의 척마대원이 먼저 진입하고, 잠시 후 본진이 뒤를 따랐다.
***
남직례성.
숙주.
천문산.
신시 말(오후 5시).
삼백오십 명의 무림인들이 질서 정연하게 산길을 걷고 있다.
천하십대고수이자 화산파의 장문인인 무극상인이 대주로 있는 멸사대 고수들이다.
원칙론자인 무극상인은 상인들이 따라다니는 것을 엄금했다. 덕분에 기강은 바로 섰지만 대원들의 사기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공동파 장문인 탕마검 편운이 굳은 얼굴의 무극상인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대주, 여기가 천문산 아니오? ‘공자가 학문을 닦았다’는 천문사도 근처에 있을 텐데.”
“그렇습니까.”
무극상인은 무덤덤하게 흘려들었다.
그는 천하십대고수의 일인이지만 검왕 남궁벽과 동년배라 젊은 축에 든다.
편운이 그에게 하오체를 사용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사실 대부분의 장문인들이 무극상인과 비슷한 나이였다.
옆에서 보고 있던 점창파 장문인 생사판관 금화 선인이 한마디 거들었다.
“탕마검 도우께서 공자에게 관심이 있으신 줄 몰랐습니다그려.”
“하하. 관심은요 무슨. 그냥 주워들은 게 생각나서 말해 본 것뿐이외다.”
“유명교만 아니었으면 빈도가 천문사로 모셨을 텐데. 아쉽게 됐소이다.”
금화 선인이 인사치레로 말을 했다.
공동파는 머나먼 감숙성에 있어서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다.
“어이쿠! 말씀만이라도 감사하오.”
담소를 나누며 걷고 있는 세 도사에게 당가 가주 암영무흔 당세호가 다가왔다.
“어두워지기 전에 숙영지를 정해야 할 것 같은데. 천문사가 어떻습니까?”
천문사 이야기가 나오자 금화 선인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방금까지 우리가 천문사 이야기를 했는데 들으신 모양이오?”
“…….”
당세호는 도사들과 친분이 두텁지 않은 관계로 그냥 수염만 매만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무극상인에게로 향했다.
숙영지를 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대주인 그에게 달린 일이었다.
“천문사는 우리를 다 수용하지 못할 겁니다. 누구는 지붕 아래서 쉬고 누구는 풍찬노숙을 한다면 말이 안 되지요. 모두가 노숙을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다소 고지식한 결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장문인들과 당가 가주는 선선히 받아들였다.
별것도 아닌 일로 그와 대립하고 싶지 않아서다.
나이가 비슷하다지만 그는 엄연히 천하십대고수의 일인.
그의 눈에서 벗어나면 위태로운 순간 도움을 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노숙은 선두에 있던 척후조에게 바로 전달됐다.
척후조는 삼백오십여 명이 묵을 수 있는 공지를 찾아 바쁘게 움직였다.
다행히 산세가 험준하지 않아 해지기 전에 숙영지를 정할 수 있었다.
***
천문산 동편 사당.
도검으로 무장한 세 노인이 사당 한가운데 불을 피우고 앉아 있었다.
유명교 백두마군인 악불 방천각, 혼천혈귀 강상피, 혼세검마 척진경이다.
그들은 지척에 멸사대가 있었지만 전혀 신경 쓰는 눈치가 이니었다.
멸사대의 진로에서 벗어난 장소이기에 마음 편히 쉬고 있는 것이다.
해가 떨어져 어두컴컴해졌을 때 한 사람이 사당 앞에 떨어져 내렸다.
은하장의 사대신장인 무영귀였다.
“장주님, 멸사대가 천문산에 숙영지를 만들었습니다.”
불 앞에서 손바닥을 비비고 있던 척진경이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천문사로 가지 않고?”
“예.”
방천각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기야. 천문사가 그놈들을 다 수용하기는 어렵지. 그래도 이승에서의 마지막 밤이 노숙이라니 애처롭구먼. 나무 관자재보살…….”
악불 방천각은 사천성 성도에 있는 신월사의 주지다.
유명교가 불교와 도교를 혼합했기에 주지인 그는 염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자 강상피가 피식 웃었다.
“이승을 고해(苦海)라고 하면서 뭐가 애처롭소. 빨리 보내 주면 고마워해야 할 일이지.”
“그렇기는 하오만. 그래도 살생의 대상에게 측은지심을 가져 나쁠 건 없소.”
악불이라는 별호답게 방천각은 남다른 살생관을 가지고 있었다.
척진경은 백두마군들의 잡담을 듣다가 무영귀에게 주의를 줬다.
“무극상인은 고지식한 놈이라 경계심이 남다를 것이다. 교도들에게 천문산 인근에 얼씬거리지 말라 이르고, 잘 감시하고 있거라.”
“언제까지 감시해야 합니까?”
“날이 밝기 전에 놈들을 치기로 했다. 다른 십두마병들이 교도들을 일찍 재울 것이니 너도 그때 잠깐 눈을 붙이도록 해라.”
“존명.”
무영귀가 유령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곧이어 세 명의 백두마군들은 누가 어느 방향으로 진격할 것인가를 두고 설왕설래했다.
***
천문산.
인시(오전 3시-오전 5시) 무렵.
모두가 깊게 잠든 시간, 차가운 바람 소리만 어쩌다 한차례씩 들려왔다.
그때 희미한 달빛을 받으며 삼백여 명의 사람들이 조용히 움직였다.
유명교도들이다.
그들은 마치 품자(品字) 모양으로 세 방향에서 멸사대를 향해 다가갔다.
아직 남직례성이라는 안도감 때문일까?
아니면 고된 행군에 지친 탓일까?
번을 서야 할 열 명의 무사들은 모닥불 주변에 모여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덕분에 유명교도들은 오 장(약 15미터) 거리까지 소란 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그래도 본능이라는 게 있나 보다.
한창 졸던 의천문 제자 하나가 흠칫 놀라 눈을 떴다.
뻑뻑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그의 입에서 놀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누구냐!”
순간 고양이처럼 소리를 죽이고 다가오던 유명교도들이 미친 소 떼처럼 내달렸다.
“죽여라!”
“죽어!”
유명교도들은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멸사대원들의 목을 찍었다.
그래도 오 장의 거리가 수많은 사람을 살렸다.
적지 않은 무인들이 ‘누구냐!’는 외침과 동시에 병장기를 집어 들고 벌떡 일어났던 것이다.
마치 조용하던 벌집을 칼로 쑤신 것 같았다.
유명교도들은 서로 뒤엉키지 않게 삼면에서 멸사대를 밀어붙였다.
그 바람에 멸사대의 피해는 더욱 컸다.
일각(15분)쯤 지났을까?
아비규환의 소란도 잠깐, 싸움은 조금씩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멸사대가 워낙 정예인 까닭에 유명교는 더 이상 상대를 몰아치지 못했다.
그렇다 해도 멸사대의 입장에서는 끔찍한 피해였다.
정면으로 맞붙었더라면 열 명도 죽지 않았을 싸움에서 무려 백여 명이나 사망한 까닭이다.
싸움은 호흡과 기세다.
무극상인과 세 백두마군 사이에 오가던 격렬한 칼부림이 잠시 멈췄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무극상인이 혼세검마 척진경에게 소리쳤다.
“척진경! 감히 내 앞에 나타나다니! 오늘 내가 반드시 네 목을 취하겠다!”
척진경은 과거 녹림삼존 시절에 자신을 피해 다녔다.
그런데 지금 뻔뻔하게 나타나 멸사대를 죽이니 열불이 치솟았다.
그러자 무극상인의 좌우에 있던 방천각과 강상피가 웃으며 조롱했다.
“무슨 흰소리냐! 이 냄새 나는 도사 놈아! 지금 누가 누구를 죽인대?”
“크크!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 지금 이 자리에서 네놈 협박이 먹힐 것 같으냐! 주위에서 고수라고 떠받들어 주니까 상황 파악이 안 되지? 네놈 목이나 잘 간수해! 이 병신아!”
무극상인은 두 마인의 조롱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려서부터 화산파 기재로 대접받다가 마침내 장문인이 되고, 천하십대고수까지 올랐다.
지금까지 어떤 마두들도 자신에게 저런 막말을 하지 못했건만!
“이 무도한 마두들 같으니…….”
평생 화산파에서 고아하게 지내 온 무극상인은 차마 육두문자를 내뱉지 못했다.
단칼에 목을 베어 버리고 싶지만 마음처럼 쉽지가 않았다.
척진경은 물론 저 둘의 공력도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만약 저들의 초식이 조금만 더 현묘했더라면 이미 자신은 쓰러졌을 것이다.
“네놈들은 모두 백두마군이냐!”
척진경이 히죽 웃으며 답했다.
“염라대왕 앞에 가서 물어보거라. 너를 그곳에 보낸 분이 누구신지.”
한편 공동파 장문인 편운과 점창파 장문인 금화 선인, 당가 가주 당세호도 십두마병들과 밀고 밀리는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의 싸움은 그야말로 백중지세였다.
무쌍귀와 무영귀, 그리고 초월산장에서 온 냉혈마도 태경림은 칠파이문의 장문인들에 뒤지지 않았다.
특히나 당세호의 상대인 태경림은 오래전 서안 제일 고수 소리를 듣던 마두.
무공보다 독과 암기에 치중한 당세호에게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절정의 암기술이 아니었다면 당세호는 벌써 쓰러졌을 것이다.
촤아아아-.
암기를 한 줌 뿌리고 뒤로 물러나는 당세호의 귓가에 연이은 비명이 들려왔다.
“으악!”
“악!”
깜짝 놀라 돌아보니 웬 놈이 무자비하게 당가의 문도들을 죽이고 있었다.
박도 끝에서 도기가 쭉쭉 뻗어 나오는 게 또 다른 십두마병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