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25
225회.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
하남성.
정주.
칠리하촌.
정의맹 정주 지부가 있는 칠리하촌의 객점들과 일반인들은 때아닌 호황을 누렸다.
두 개의 객점은 남경에서 온 칠파이문의 원로들로 가득 찼다.
칠파이문의 일반 문도들은 다른 군소방파 사람들과 같이 주민들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한겨울에 군웅들이 모여들자 칠리하촌과 인근 마을 사람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일거리가 없는 시기에 외지인들이 몰려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모처럼 생기가 도는 주민들과 달리 무림인들의 얼굴은 침울함 그 자체였다.
정주 지부.
대회의실이 칠파이문과 오대세가의 대표들로 가득 찼다.
회의는 시작부터 삐그덕거렸다.
평소의 근엄한 분위기와 달리 고성이 오고 갔으며, 삿대질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의외로 십두마병의 실체를 잘못 판단한 것에 대한 비난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가 사술이라고 생각했기에 반성하는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사 대를 나누고, 급습까지 당한 것에 분노했다.
독의 무분별한 판매로 정사지간이라 비난받던 당가 가주 암영무흔 당세호의 경우 대놓고 총사인 신기수사 제갈승운을 비난했다.
“제갈가주! 당신도 입이 있으면 말을 해 보시오! 역모가 어쩌고 하면서 겁을 주더니, 사 대를 유명교가 먹기 좋게 조각내 놓은 것이나 다름 없지 않소! 아니 우리가 언제부터 황실의 눈치를 봤다고! 다른 건 차치하고, 사 대의 행로를 적에게 유출시키다니! 일 처리를 그따위로 해도 되는 거요? 당신과 금의위의 탁상공론으로 얼마나 많은 협객들이 죽었는지 아시오? 정주에 오는 동안 생긴 사망자가 육백이 넘소!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절반이 넘게 죽었단 말이오! 그들의 죽음에 대해 누가 책임질 거요!”
칠파이문의 문주들은 당세호를 만류하지 않았다.
오히려 침묵을 지킴으로 간접적으로 그의 의견에 지지를 표했다.
모용세가 가주 경천일검 모용황도 한마디 보탰다.
“당 가주께서 시원하게 말씀 잘해 주셨소. 책임 소재부터 확실히 짚고 넘어갑시다. 굳이 정의맹을 네 개로 쪼개야 했는지, 행로를 유출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 답해 보시오!”
무극문주이자 맹주인 풍뢰도 장강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총사를 위해 수차례 변론을 펼쳐 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오대세가의 경우 지금까지 칠파이문이 내린 결정을 지지하고 따랐다. 그런데 이번 참사로 그런 암묵적인 관행이 깨지고 말았다.
맹주가 침묵하자 총사인 제갈승운이 나섰다.
“협객들의 죽음에는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 제갈가도 여러분과 같은 피해 자라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개소리.”
당세호가 빈정거렸다.
순간 제갈승운의 눈밑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정의맹의 공식 석상에서 서열 이 위인 자신에게 저런 말을 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당세호를 나무라지 않고 있다.
욕한 놈도 짜증 나지만, 그걸 방관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실망도 그 못지않았다.
제갈승운은 화를 삭이며 차분하게 답했다.
“먼저 왜 사 대로 나누었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집결한 장소가 하필 남경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주십시오. 황궁이 있는 곳인지라 금의위와 조율하지 않으면 안 됐습니다. 여러분도 그 점을 충분히 납득하셨기에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팽가 가주 벽력도 팽만호가 반박했다.
“솔직히 나는 총사가 하자고 해서 따랐던 것뿐이오. 당 가주의 말씀대로 우리가 언제부터 황실의 눈치를 봤다고 그러시오? 더구나 남경에서 모였지만 우리가 가는 곳은 정주였소. 남경을 빨리 떠나 주면 될 일이 아니오? 굳이 사 대로 나눈 것에 대한 변명으로는 부족해 보이오.”
뒤이어 선우세가 가주 환우검 선우담이 거들었다.
“하기야 남경을 떠나 주면 해결될 일인데 왜 사 대로 나누었는지 모르겠군. 총사가 남궁세가를 물 먹이기 위해 사 대로 나누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들어는 봤소?”
제갈승운이 황당한 얼굴로 선우담을 쏘아보았다.
“갑자기 저를 왜 남궁세가와 엮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소문 또한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억측은 삼가해 주십시오.”
그러나 선우담은 물러서지 않았다.
“내 억측이 아니라 정의맹 내부에 떠도는 소문을 말한 거요. 총사가 듣지 못했다면 정보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소. 나 같은 사람의 귀에도 들린 이야기를 전혀 접하지 못했다니.”
“저만 그런 소문을 듣지 못했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다른 분들도 혹 그런 해괴한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제갈승운이 군웅들을 둘러보았다.
기대와 달리 칠파이문과 오대세가의 대표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기막힌 상황에 제갈승운은 한순간 망연자실했다.
“아니 제가 남궁세가와 무슨 원한이 있다고 그런 일을 벌이겠습니까?”
선우담이 차갑게 말했다.
“이것 역시 내 말이 아니라 소문이오만. 제갈가주가 이참에 남궁세가를 완전히 주저앉히기 위해서라고도 하고, 화용독심에게 질투를 느껴서라고도 하더이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제갈승운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물론 그런 마음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단지 그런 사사로운 감정만으로 사 대를 나누지는 않았다. 금의위와 회의를 진행하다 내린 결론이 사 대로 나누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금의위와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하면 더 비난받게 될 터.
근거 없는 억측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저는 맹세코 단 한 번도 그런 불온한 감정으로 일을 처리한 적이 없습니다. 저희 제갈가의 생사까지도 달린 일을 그렇게 졸속으로 진행했겠습니까?”
그러자 잠시 물러났던 당세호가 다시 치고 나왔다.
“흥! 아니라니 그렇다고 칩시다. 주머니처럼 그 속을 까뒤집어 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니 도리 없지. 그럼 행로를 유출한 책임은 어쩔 거요? 그것도 금의위의 잘못으로 떠넘기고 넘어갈 거요? 금의위에서 유출됐다는 증거라도 있소?”
“금의위에서 유출했다는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저와 금의위 지휘사 모양(毛驤)입니다. 제가 유출하지 않았으니 금의위에서 흘러나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금의위 지휘사가 자신이 했다고 하겠소? 그도 아니라고 할 게 뻔한데, 그럼 귀신이 엿듣고 흘린 것인가? 그렇군! 총사의 말을 들으니 모두 귀신이 한 짓이네. 씨벌.”
드디어 욕이 나왔다.
보다 못해 화산파 장문인 무극상인이 나섰다.
“당 가주,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욕은 자제하시지요. 이곳은 당가가 아닙니다. 무림의 선배님들 앞이라는 것을 유념해 주십시오.”
천하십대고수인 그의 지적에 당세호는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그러자 남궁세가 가주 검왕 남궁벽이 당세호를 대신해 한마디 했다.
“식솔과 제자들의 죽음을 지켜본 사람인데 쉽게 자제가 되겠나? 비록 거친 표현이지만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네. 잘되면 내 탓이고 잘못되면 죄다 남 탓이라는 건가? 책임질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러면 안 되지.”
“…….”
무극상인의 얼굴에 씁쓰름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실 자신도 당세호의 욕이 거슬렸을 뿐, 그의 주장이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격렬하던 논쟁이 잠시 멈췄다.
천하십대고수들의 대화에 끼어들 사람이 없어서다.
역시 천하십대고수인 의천검존 이의정이 한마디 했다.
“노부 역시 책임 소재는 명확히 했으면 좋겠소. 이렇게 많은 협객들이 죽었는데 유야무야 넘어갈 수는 없지 않소?”
검왕, 무극상인, 의천검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무상도제에게로 향했다.
무상도제 장무덕은 회의에 참석한 네 명의 천하십대고수 중 마지막 일 인이었다.
맹주의 부친이기도 한 장무덕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가급적 맹주와 총사의 편에 서 주려고 했는데 분위기를 보니 틀린 것 같다.
의천검존의 말대로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
“하아! 노부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오. 허나, 예로부터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고 했소. 맹주야 다시 뽑으면 된다지만, 총사를 대체할 만한 사람이 없지 않소?”
직설적인 그의 말에 칠파이문과 오대세가의 대표들은 침묵했다.
맹주를 대신할 사람은 많다.
그러나 총사인 제갈승운을 대체할 사람은 없었다.
화용독심이 지혜로운 것은 인정하나, 나이 어린 그녀에게 지휘를 맡기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이런 큰 전쟁의 지휘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정의맹에서 닳고 닳은 제갈승운이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할 리 없다.
“맹주님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책임을 통감하고, 제가 총사 자리에서 물러나 백의종군하겠습니다.”
제갈승운이 군웅들에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결국 올 것이 왔다.
군웅들이 술렁거리자 소림사 장문인 무법선사가 침중한 얼굴로 말했다.
“승패는 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라 했소. 무상도제 님의 말씀처럼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오. 제갈 총사, 한 번의 잘못에 매이지 말고 다음 전투에서 이길 비책 마련에 집중해 주시오. 적을 앞에 두고 그 무슨 무책임한 말씀이오?”
무당파 장문인 영결상인이 뒤를 이었다.
“선사의 말씀에 동감하오. 천하에 누가 신기수사를 대신할 수 있겠소? 화용독심이 지혜롭다고 하나 어린 나이라 이런 일을 감당하기에는 이르오. 이참에 화용독심을 참모로 세워 총사를 돕게 합시다. 남궁 가주는 빈도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영결상인은 자연스럽게 남궁세가를 대화로 끌어들였다.
“내 여식을 높게 봐 주어서 감사하지만, 말씀대로 감당하기 어려운 나이이니 사양하리다.”
남궁벽은 딸이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싫어한다는 걸 알기에 거절했다.
이번에는 화산파 장문인 무극상인이 입을 열었다.
“우리 화산파 역시 총사께서 물러나는 것에 반대합니다. 무당파 장문인의 말씀처럼 신기수사를 대신할 만한 사람이 없으니까요.”
소림, 무당, 화산은 칠파이문의 중심이다.
그들이 제갈승운의 사임을 반대하자 분위기는 다시 반전됐다.
제갈승운을 대체할 만한 사람이 없으니 처음부터 정해진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가벼운 설전 끝에 제갈승운이 다시 군웅들 앞으로 나섰다.
“여러분들께서 부족한 저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니 분골쇄신 노력하겠습니다.”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은 ‘달리 대안이 없어서 두고 보는 것뿐이다’라는 태를 냈다.
그때 풍뢰도 장강호가 입을 열었다.
“나는 이번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소. 나라도 그렇게 해야 정의맹 동도들의 화가 가라앉을 테니까.”
칠파일문과 오대세가 가주들은 무언으로 그의 발언에 동감을 표했다.
사실 장강호에게는 죄가 없다.
그러나 군소방파 사람들의 분노를 잠재우려면 누군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어찌 보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지만, 의외로 잘 먹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다음 맹주로 무극상인이 거론됐다.
천하십대고수에 이른 무공과 아직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로 인해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무극상인은 몇 차례 사양했지만 결국 받아들였다.
맹주까지 바뀌는 정의맹 역사상 초유의 진통 끝에 회의가 속개(續開)됐다.
맹주가 된 무극상인이 처음으로 던진 말은 ‘총사, 이 전쟁 계속할 수 있겠습니까?’였다.
단도직입적인 그의 질문에 칠파이문 대표들은 일제히 제갈승운을 보았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대로는 불가능합니다. 정주에 모인 정의맹 인원이 오백사십오 명입니다. 낙양으로 되돌아간 유명교 숫자는 오히려 늘어나 현재 칠백여 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허!”
“저런!”
“어찌 그런!”
칠파이문과 오대세가 가주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공동파 장문인 탕마 편운이 분노한 얼굴로 말했다.
“허면 이대로 돌아가자는 말이오? 제자들의 시체를 짊어지고?”
제갈승운이 뭐라 말하려 할 때다.
이번에는 전진파 장문인 무종상인이 버럭 화를 냈다.
“고작 백십 명이 많다고 불가능하다? 대체 무엇을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요!”
지금까지 정의맹은 수적으로 열세인 싸움에서 항상 승리해 왔다.
칠파이문과 오대세가가 워낙 정예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제갈승운이 그런 믿음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제갈승운이 착잡한 표정으로 편운을 보았다.
전진파는 척마대에 있어 이번 급습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유명교를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아직 과거의 영화를 떨치지 못한 사람인 셈이다.
“멸사대와 천추대를 급습한 자들의 숫자는 삼백을 넘지 않았습니다. 거의 대등한 숫자였다는 뜻이지요. 아군이 더 많았다는 증언도 수두룩합니다. 그런 싸움에서 우리가 진 것입니다. 다른 근거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종상인은 ‘끙’하고 앓는 소리만 낼 뿐 반박하지 않았다.
가만히 지켜보던 점창파 장문인 생사판관 금화선인이 입을 열었다.
“총사는 분명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고 했소. 허면 어떻게 해야 가능하다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