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44
244회.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독심귀랑 양소란이 애써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의천검존만 주의하면 돼요. 그렇다 해도 어느 정도 피해는 감수해야 할 거예요.”
듣고 있던 무쌍귀(은하장의 사대신장)가 물었다.
“고견이 있소?”
“성동격서(聲東擊西). 한쪽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동안, 다른 쪽에서 술사를 칩니다.”
무쌍귀와 무영귀, 혈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수의 힘으로 술사를 척살하려면 그 방법이 가장 좋은 것 같았다.
혈검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양소란을 보았다.
“누구에게 뭘 맡길지도 생각해 두셨소?”
“물론이에요. 신월사에서 오신 분들에게 술사들의 척살을 맡길 생각이에요.”
양소란의 말에 무쌍귀, 무영귀, 혈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해 연적하를 상대로 함께 싸운 뒤로 그들 네 사람은 진한 연대감을 형성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더 위험한 일은 신월사에서 온 십두마병들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나저나 신월사에서 온 두 사람은 어디에 있는 거요?”
무영귀의 질문에 무쌍귀가 답했다.
“그들은 청루(유곽)에 틀어박혀 있소. 아직 청룡대가 하룻길 떨어진 곳에 있으니 쉬다 오겠다고 하더다.”
“미친…….”
무영귀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누군 경공이 빠르다는 이유로 염탐을 다니는데, 거사를 앞두고 청루라니!
유명교의 일 처리는 주먹구구인 경우가 많다.
예컨대 사람을 보내면서 지휘를 임명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술사들의 능력을 확인한 후에 척살하라고 했지만, 상하를 정해 주지 않았다.
그저 은하장, 무산소축, 신월사에서 각각 두 명의 십두마병을 선발하기만 했다.
그럼 양소란의 지휘권은 누가 줬냐고?
양소란의 머리가 가장 뛰어났기에 십두마병들이 그녀에게 떠넘기듯 맡겼다.
그러다 보니 십두마병들은 그녀의 통제를 잘 따르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청루는 미친 짓이지…….’
이의정의 청룡대에서 술사를 척살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걸 알기에 그들이 느끼는 심리적인 압박도 클 것이다.
그렇다 해도 대낮에 청루는 지나친 감이 있었다.
더구나 양소란과 같은 여고수와 함께 움직이면서 보란 듯이 청루에 드나들다니?
무산소축에서 양소란과 함께 온 혈검이 피식 웃었다.
“우리에게는 더 잘된 일일 수도 있으니 너무 화내지 마시오.”
강호에서 닳고 닳은 혈검인지라 핵심을 콕 찍어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무영귀는 말귀를 알아듣고 금방 흥분을 가라앉혔다.
혈검의 말대로 더 잘된 일일 수도 있다.
독심귀랑의 눈 밖에 난다는 것은 ‘제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신월사에서 온 십두마병 적발마군 하지강과 탈혼살적 임전도는 해거름 무렵에야 합류했다.
하지강이 계면쩍은 얼굴로 너스레를 떨었다.
“어이쿠! 깜빡 잠들었는데 벌써 유시(오후 5시-오후 7시)라니 원. 객지 생활에 잠만 늘어서 큰일이라니까.”
곁에 있던 임전도는 얼굴에 철판을 깔았는지 변명도 하지 않았다.
딱히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다.
산중에 있다고는 하지만 십두마병들은 내공이 경지에 이르러 춥고 더운 걸 모른다.
그래서 산속이나 객잔이나 별 차이가 없다.
물론 그들과 함께 온 유명교도들은 추워서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지만 말이다.
양소란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그렇지 않아도 두 분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청룡대를 살피러 갔던 분이 돌아왔거든요.”
그제야 하지강은 무영귀의 임무를 떠올리고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 갔던 일은 어찌 되었소? 술사 놈들이 정말 마신의 상대가 됩디까?”
“제마대의 술사들이 마신을 죽였소. 우리는 그들을 척살하기로 했소.”
“…….”
하지강과 임전도는 흠칫 놀란 얼굴로 잠시 침묵했다.
청룡대와 의천검존의 손에서 술사들을 죽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아서다.
잠시 후 하지강이 양소란을 물었다.
“생각해 두신 묘수가 있소?”
“물론이에요. 이런 일을 대비해 백마사에서부터 세워 둔 방책이 있어요.”
“그게 뭐요?”
“성동격서예요. 한쪽에서 이목을 끄는 동안, 다른 쪽에서 재빨리 술사들을 척살하는 거죠.”
“흠! 과연 독심귀랑다운 묘수로구려. 이목을 끌 사람과 척살할 사람도 나누었소?”
“저와 혈검, 무쌍귀, 무영귀가 시선을 끌기로 했어요. 그동안 신월사의 두 분이 술사들을 제거해 주세요.”
하지강이 슬쩍 임전도와 눈을 맞추었다.
얼핏 들으면 문제가 없는 계획 같다.
그러나 적은 삼백육십오 명이나 되는 청룡대와 천하십대고수인 의천검존이다.
그들에게서 술사들을 죽인다는 건 곶감 빼먹듯 쉬운 일이 아니다.
역시나 임전도는 미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번 작전에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건 어린아이도 알 수 있다.
자신과 하지강이 빠진 자리에서 논의된 것이라면, 손해를 볼 사람이 누구일지는 뻔한 노릇.
이럴 때는 역할을 바꿔야 한다.
“험, 귀랑. 내 별호가 탈혼살적임을 잊었소?”
임전도의 별호는 탈혼살적(奪魂殺笛).
즉 ‘피리로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다.
그는 흔하지 않은 음공의 고수였고, 피리 소리로 사람을 살상할 수 있었다.
양소란은 임전도의 말이 길어지자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럴수록 임전도의 말투는 단호해졌다.
“다수의 이목을 끌기에 음공보다 더 좋은 건 없는 것 같은데. 우리가 이목을 끄는 동안 다른 네 분이 술사를 처리하는 건 어떻소?”
양소란의 제안과 반대되는 배치다.
임전도가 ‘어떻게 하겠냐?’는 얼굴로 양소란을 빤히 보았다.
‘흥! 감히 누굴 사지(死地)로 밀어 넣으려고.’
수적으로 밀리지만 그래도 본진의 이목을 끄는 쪽이 훨씬 안전하다. 술사가 공격받으면 의천검존은 당연히 술사들에게 갈 테니까.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네요. 원하시는 대로 하지요. 두 분이 청룡대의 주의를 끌어 주세요. 그러는 동안 우리 넷이 술사들을 척살할게요.”
양소란의 말에 혈검과 무쌍귀, 무영귀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의 계획과 달리 네 사람에게 위험한 임무가 주어져서다.
하지만 이제 와서 속 보이게 반대할 수도 없는 노릇.
세 사람은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양소란의 결정에 따라야 했다.
***
낙양.
백마사.
서비하로 보냈던 광명장원과 초월산장, 일원도관의 십두마병들이 돌아왔다.
광명장원의 귀검절영 여음도가 다른 십두마병들을 대표해 접인전으로 나아갔다.
접인전(接引殿).
일곱 명의 백두마군들 앞에선 여음도가 공손히 말했다.
“주작대를 은밀히 뒤따라가서 확인한 결과 제마대의 술사들은 유명무실했습니다. 그들이 주문과 부적, 법보를 사용했지만 마신에게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환영신마 웅재귀가 물었다.
“허면 서비하의 마신이 죽었다는 소문은 어찌 된 것이냐?”
“주작대에 연적하가 있었습니다. 놈의 손에 제대로 저항하지도 못하고…….”
“저항하지도 못했다고?”
“예, 채 반 각이 되기도 전에 재로 변했습니다.”
여음도는 마치 자신이 죄를 지은 것처럼 얼굴을 들지 못했다.
백두마군들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아!”
“그놈의 연적하…….”
“씨벌, 그 후레자식을 어떻게 해야…….”
백두마군들이 술렁거리자 월하선자가 냉기를 풀풀 날리며 말했다.
“그놈의 목에 더 많은 포상금을 걸어야 해요. 지금처럼 은자 오천 냥으로는 턱도 없어요.”
그러자 혼세검마 척진경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어디 돈이 부족해서 그러는 거겠소? 무위가 뛰어나니 다들 꺼리는 게지. 놈을 죽이려면 우리 백두마군은 나서야 할 게요.”
척진경의 말에 접인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다른 사람을 시키는 것과 자신이 나서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백두마군들은 연적하를 죽이고 싶어 했지만 누구도 ‘내가 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녹림 총순찰 하나를 죽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서다.
그때 웅재귀가 장승처럼 서 있는 여음도에게 손을 까닥였다.
“너는 그만 나가 보거라.”
“예.”
여음도를 내보낸 후에 웅재귀가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하필 연적하가 끼어들어 계획에 차질이 생겼구려. 그래도 제마대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졌으니 불행 중 다행이오. 서비하에서 마신이 사라진 것은 좀 아쉽게 됐지만 말이오. 그나저나 서비하가 뚫렸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그러자 백두마군들이 일제히 이매화를 보았다.
애초에 ‘마신들로 길목을 막자’는 계획을 세운 게 그녀인 까닭이다.
“천문산으로 갔던 교도들이 돌아오면 그때 생각해 보기로 하지요.”
척진경이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서비하야 여음도가 손을 쓸 상황이 못 됐으니 그렇다 칩시다. 천문산으로 간 교도들을 독심귀랑이 이끌기로 했다고 들었소. 그녀는 믿을 만하오?”
천지맹을 정주에 가두기 위해서는 마신이 필요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십두마병의 희생이 필수다.
백두마군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고육지책(苦肉之策)을 세운 셈이다.
문제는 십두마병인 독심귀랑이 그 일에 동참할지의 여부다.
여음도야 연적하가 있어 시도조차 못 한 것 같지만 독심귀랑은 어떨까?
이매화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독심귀랑의 독심(毒心)은 허투루 생긴 게 아니랍니다. 양소란의 목표는 백두마군이에요. 그걸 위해서라면 내 목도 딸 사람이지요.”
“그렇다면 상구의 마신은 기대해도 되겠구려.”
“기대요? 호호홋! 저는 양소란이 일을 너무 크게 벌일까 봐 걱정이랍니다.”
이매화의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접인전에 울려 퍼졌다.
***
개봉.
정오 무렵.
일백이십육 명의 무인들이 개봉부로 진입했다.
천문산에서 일각마인을 처리하고 정주로 돌아가는 주작대들이다.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지만 주작대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제마단이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술사들에 대한 불신이 큰 만큼 천지맹의 미래도 비관적으로 보았다.
자연히 제마단 술사들을 보는 눈빛에도 날이 서 있었다.
술사들은 점점 뒤로 처지다가 마침내는 후미에 있던 연적하와 뒤섞였다.
연적하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양관출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집에 초상났어요?”
“아, 아닙니다. 그냥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 자신이 한심해서요. 그래도 귀신들이 천뢰신검을 무서워하는 건 사실입니다. 정말입니다.”
듣고 있던 연적하가 불쑥 손을 내밀었다.
“줘 봐요.”
“천뢰……. 아니, 이 목검요?”
양관출은 민망한지 천뢰신검을 얼른 목검으로 정정했다.
“예, 한번 보게요.”
“봐도 뭐 별거 있겠습니까? 귀신이나 겁을 내지 살아 있는 것들은 영…….”
양관출이 천뢰신검을 연적하에게 공손히 바쳤다.
천뢰신검을 손에 들고 살피던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목검보다 무거운 벽조목의 무게 속에 말할 수 없이 강렬한 뭔가가 느껴졌다.
귀신이 두려워한다는 게 영 빈말은 아닌 것 같았다.
혹시나 싶어 구천기를 끌어 올려 천뢰신검으로 밀어 넣어 보았다.
우우웅-.
벽조목으로 만든 검에서 묵직한 검명이 울렸다.
주변에 있던 무인들이 흠칫 놀라 돌아볼 정도로 크고 강렬했다.
연적하는 급히 내력을 거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진짜 법보에 비견되는 물건이었다.
보통의 목검이라면 자신의 구천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버렸을 것이다.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였던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