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43
243회. 기다려라. 곧 간다
공산거사와 마룡 간에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진언의 음률에 따라 마룡의 몸이 오르락내리락했지만 착실하게 조금씩 내려왔다.
‘관세음보살 보검수 진언’에서 ‘관세음보살 바아라수 진언’, ‘관세음보살 금강저수 진언’까지 단숨에 읊조리던 공산거사가 재빨리 소리쳤다.
“빈승의 법력으로는 일다경(약 20분)이 한계입니다! 그 전에 끝을 봐야 합니다!”
그 말에 화들짝 놀란 의천검존 이의정이 다시 검을 던졌다.
쉬이익-.
허공을 크게 한 바퀴 돈 검이 마룡의 등에 박혔다.
퍽-.
마룡의 몸이 그 충격으로 일 장이나 아래로 뚝 떨어져 내렸다.
이의정은 쉬지 않고 이기어검으로 마룡을 내리찍었다.
공산거사의 항마보리신주에 잡힌 마룡은 벗어나지 못하고 아래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캬아아아아-.”
참다못한 마룡이 괴성을 내질렀다.
땅 위에 서 있던 청룡대의 대부분이 충격을 받은 듯 휘청거렸다.
오 장(약 15미터)여 거리까지 끌려 내려온 마룡은 안 되겠는지 입을 쩍 벌렸다.
다시 화염을 뿜으려는 모양새다.
깜짝 놀란 이의정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다.
이번에는 성화선원의 마조가 ‘관세음보살 방패수 진언’과 함께 금강령을 세차게 흔들었다.
“옴 약삼나나야 전나라 다노 발야 바사바사 사바하!”
탱- 탱- 탱- 탱-.
솥뚜껑 두드리는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캬악-.”
마룡은 화염을 토해 내려다 말고 머리를 미친 듯 좌우로 휘저었다.
마치 듣기 싫은 소리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
금강령이 합류하자 마룡이 하강하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이의정은 그제야 마룡이 화염을 토해 내지 못한다는 걸 알고 검공에 집중했다.
콰앙! 콰앙! 콰앙!
그는 마치 천신이 못질이라도 하듯 이기어검으로 마룡의 등짝을 연거푸 찍어 댔다.
금강령까지 가세하자 마룡은 더 버티지 못하고 지면에 ‘털썩’ 내려앉았다.
이의정은 검결지를 세워 검을 하늘 위로 높게 올려 보냈다.
검은 이의정의 공력이 허용하는 높이까지 올라간 뒤에 천천히 방향을 틀었다.
무려 삼십 장(약 90미터)의 높이였다.
“차핫!”
짧은 기합과 함께 이의정이 검결지를 아래로 내리그었다.
햇빛을 받은 검기로 충만한 검이 유성처럼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콰앙!
이의정의 검이 마룡의 머리를 때렸다.
마룡의 머리가 지면으로 처박힐 듯 꺾였다.
어느새 마룡의 뒤로 돌아간 예담 백화심이 대라금강검을 쾌속하게 내밀었다.
“옴 마니 반메 훔!”
‘훔’ 소리와 함께 대라금강검이 마룡의 등줄기로 파고들었다.
콰드득-.
“캬아아악!”
마룡의 입에서 처음으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백화심은 잡고 있던 대라금강검을 놓고 ‘육자대명왕진언’만 암송했다.
“옴 마니 반메 훔! 옴 마니 반메 훔…….”
그러자 대라금강검은 누구의 힘도 없이 스스로 마룡의 몸통으로 파고들었다.
대라금강검은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캑!”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마룡은 움직이지 않았다.
곧이어 마룡의 몸은 재로 변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푸스스스-.
철그렁.
마룡의 몸에 들어갔던 대라금강검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며 쇳소리를 냈다.
백화심과 공산거사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대라금강검과 항마보리신주를 회수했다.
이의정도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자신의 검을 집어 들었다.
납검을 하는 이의정의 표정이 묘했다.
지금 그는 실질적으로 마물을 퇴치한 게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란 상태였다.
사실상 마물을 퇴치한 것은 술사들이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자신은 그저 거든 정도에 불과하다.
천하십대고수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자신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쓴웃음을 짓던 그는 제마단의 술사들에게 다가갔다.
“수고들 하셨네. 자네들이 아니었다면 큰 낭패를 볼 뻔했구먼.”
이의정의 칭찬에 공산거사가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의당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저희가 큰일을 한 것 같지만 실상은 상대가 마물이라 효과를 보았던 것뿐입니다.”
그러자 백화심도 웃으며 한마디 보탰다.
“공산거사의 말씀이 맞습니다. 보십시오. 이처럼 날도 제대로 안 선 대라금강검으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백화심이 대라금강검의 칼날로 자신의 손바닥을 쓱 훑어 보였다.
무딘 칼날 덕분에 손에는 흠집도 나지 않았다.
“허! 실로 믿어지지 않는구려. 나의 보검으로는 거죽도 뚫지 못했는데…….”
이의정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런 대라금강검으로 거죽은 물론 살과 뼈까지도 꿰뚫었다니 놀라울 뿐이다.
멀리서 이제나저제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연승백이 아깝다는 듯 탄식했다.
“아! 술사들이 저렇게 일을 잘할 줄이야! 우리에게도 기회가 올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렇게 끝나서 다행이다. 조금만 늦었으면 피해가 클 뻔했다.”
연무백도 와룡검을 사용하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청룡대에는 잘된 일인지라 기뻐했다.
“아쉽네. 다음에는 형이 먼저 나서 봐. 계속 순서에서 밀리다가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아.”
“이런 일은 서두르지 않는 게 낫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다가 술사들에게 공을 다 빼앗긴다고. 이런 때일수록 앞으로 치고 나가야지. 우리가 받아야 할 찬사를 술사들에게 다 넘겨줄 참아야?”
“찬사를 받자고 위험한 짓을 할 수는 없지 않느냐?”
“형, 그렇게 몸을 사릴 거면 차라리 나에게 맡겨. 왜 그렇게 쫄보가 된 거야?”
“말이 심하구나.”
연무백이 가볍게 주의를 줬지만 연승백은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그는 청룡대 후기지수들의 눈에 들기 위해 조바심이 난 상태였다.
“적하를 생각해 봐. 그 검으로 칠파이문의 장문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됐어. 그런데 형은 왜 법보를 손에 들고도 휘두르려 하지 않는 건데?”
“지금은 술사들의 역량을 확인하는 자리였지 않느냐.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술사들이 가진 법보의 힘을 확인하는 자리였잖아. 형도 법보를 들고 있으니 낄 자격이 충분했다고.”
“네 마음은 알겠지만 기회는 많으니 서두르지 마라.”
“지금처럼 청룡대의 주목을 끌 기회는 좀처럼 없어. 형도 알면서 왜 그래?”
“하아, 알았으니 그만해라. 다음에는 나서 보마.”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음에도 또 청룡검을 묵혀 둘 거면 나에게 넘겨. 나도 그 검을 가질 자격이 있으니까.”
동생의 계속된 채근에 연무백은 은근 불쾌했다.
‘와룡검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아무래도 한 번은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나중에 딴소리를 하지 않을 것 같다.
“그게 무슨 소리냐?”
“뭐가?”
“와룡검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한 거 말이다. 설마 진심은 아니겠지?”
“당연한 거 아냐? 연 숙부님에게는 자손이 없어. 그러니 그 검은 우리 연씨 거야. 설마 형만 연씨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니까 너도 와룡검의 주인이다?”
“혹시 그 검을 형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내 검과 맞바꾼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와룡장의 가주니 당연하지 않으냐?”
“무슨 소리야 형? 와룡장이 어디 있다고 아직도 와룡장 타령이야? 게다가 연씨도 멸문당하고 몇 남지 않았어. 가주니 뭐니 내세울 상황이 아니잖아.”
“너…….”
연무백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하지 못했다.
자신은 와룡장을 재건하기 위해 정의맹에 투신했건만 이게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
“형은 장자라고 지금까지 특별 대우 많이 받았잖아. 남궁세가에서 무공도 익히고. 하지만 이제 와룡장은 사라지고, 연씨마저 뿔뿔이 흩어졌어. 언제까지 혼자 특별 대접을 받으려고 그래? 이제 좀 내려놓을 때도 됐잖아?”
“와룡장을 재건하지 않겠다는 거냐?”
“하! 답답하네. 형, 현실을 직시해. 형이 와룡장을 세워 봤자 누가 알아 주겠어? 월하선자에게 밟히고, 그 잘난 적하에게 작살났는데. 비웃음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럼 지금까지 왜 나를 따라온 거냐?”
“형제니까 힘을 합쳐 먹고살아야지. 이 험한 세상에서 혈육 외에 믿을 사람이 어디 있다고? 당연한 거 아냐?”
“그러는 놈이 와룡검에 눈독을 들여? 고작 법보 하나에 눈이 돌아가서 자격 운운한 거야?”
“형이야말로 법보를 독차지하려고 그러는 거잖아. 있지도 않은 와룡장 운운하면서.”
“내가? 내가 법보를 차지하려고 와룡장을 내세웠다고?”
“전혀 아니라고는 말 못 할 텐데.”
“너, 너…….”
연무백이 부들부들 떨었다.
그동안 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동생이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한시도 내가 와룡장의 가주임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네가 나를 너무 부끄럽게 만드는구나.”
“돈도 없고, 연씨도 없는데 무슨 와룡장? 그리고 왜 내 탓을 해? 사실은 와룡검을 독식하려다가 이렇게 된 거면서. 아니야?”
철썩!
연무백이 동생의 따귀를 후려쳤다.
두 형제가 일으킨 갑작스러운 소란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뭐야 지금! 와룡검을 갖겠다고 나를 때린 거야?”
연승백의 눈이 분노로 불타올랐다.
장자라고 온갖 특혜를 다 누리더니, 이제는 와룡검에 눈이 멀어 손찌검까지?
연승백이 검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청룡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맞았으니 이런 개망신도 없었다.
아무리 형제라 해도 이건 아니다.
분기탱천한 연승백이 어깨를 들썩이며 씩씩거리고 있을 때다.
우두커니 서 있던 연무백이 와룡검을 풀어 연승백 앞으로 내던졌다.
“가지고 가라. 신외지물(身外之物)을 두고 너와 칼부림할 생각 없다.”
잠시 머뭇거리던 연승백은 행여나 형의 마음이 변할까 봐 서둘러 와룡검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즉시 자신의 검을 풀어 연무백 앞에 던졌다.
“고마운데, 신외지물 때문에 나를 때리기까지 하고서 이제 와 대인배인 척하지 마.”
연무백은 연승백의 검을 주섬주섬 허리에 찼다.
“알겠다. 너를 때린 건 미안하다. 사람들 눈이 있으니 그만하자.”
“흥! 그렇다면 확실히 말해. 와룡검에 더 이상 욕심내지 않겠다고.”
“그래, 그 검은 이제 너와 설주의 것이다. 됐냐?”
“여기서 설주 이름이 왜 나와?”
“네 말대로 연씨의 것이라면서? 설주는 연씨가 아니냐? 더구나 그 검을 되찾아 오라고 한 것도 설주인데. 설주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설주는 출가(出嫁)하면 그만이야.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형은 신경 쓰지 마. 형도 와룡검이 연씨 이외의 사람들에게 넘어가기를 바라는 건 아니겠지?”
연무백이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쯧쯧! 나는 더 이상 그 문제에 관계하지 않을 테니 너희들 마음대로 해라.”
말을 마친 연무백은 허탈한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
와룡검을 차지한 연승백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청룡대 무사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힐끔거렸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그의 시선은 일반 무사들 너머에 있는 한 무리를 향하고 있었다.
칠파이문과 오대세가의 후기지수들이다.
용과 봉인 그들은 청룡대 내에서도 따로 뭉쳐 다녔다.
이소민의 아름다운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연승백은 속으로 다짐했다.
‘기다려라. 곧 간다.’
***
하남성.
상구.
도시 외곽의 산등성이.
백여 명의 무림인들이 공동묘지에 은신해 있다.
천지맹 제마대를 감시하고 척살하기 위해 나온 십두마병들과 그 수하들이다.
정오 무렵.
은하장의 사대신장 중 하나인 무영귀가 유령처럼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는 곧바로 독심귀랑 양소란의 앞으로 뚜벅뚜벅 다가갔다.
“청룡대의 술사들이 마룡을 죽였소.”
“쯧! 결국 그렇게 됐군요. 아무 일도 없이 백마사로 돌아가기를 바랐는데. 술사와 그들의 호위가 몇이나 되던가요?”
“술사는 열다섯. 호위는 서른이 조금 넘어 보였소. 청룡대가 붙기 전에 술사를 치고 빠질 수 있을지…….”
무영귀의 표정은 어두웠다.
숨어서 청룡대 대주인 의천검존 이의정의 무위를 목격했으니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