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42
242회. 도우(道友)를 만난 느낌이오
연적하를 보는 화용독심 남궁연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왠지 그는 뭐라도 해낼 것 같았다.
그의 손에 법보가 없다는 걸 알아도 기대하게 된다.
부친의 말처럼 반 시진 넘게 싸워서 퇴치한다 해도 믿기 어려운 성취다.
천하십대고수 중에 가장 젊은 무극상인만 해도 연적하와 사십 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나니까.
그걸 생각하면 연적하의 존재는 마물들 만큼이나 비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연적하는 쑥쓰러운 얼굴로 남궁연을 지나쳤다.
그러다 문득 전해지는 은은한 꽃향기에 저도 모르게 ‘후읍!’ 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아직 겨울이라 꽃이 피려면 멀었는데 향기라니?
순간 남궁연은 급하게 돌아서 술사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멈칫했던 연적하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 나갔다.
서비하 주위를 빙빙 돌며 일각마인과 싸우던 검왕 남궁벽은 연적하가 달려오자 훌쩍 뒤로 몸을 뺐다.
일각마인이 그런 남궁벽을 쫓아가려는 순간이다.
쏜살같이 달려온 연적하가 검을 뽑자마자 번개처럼 휘둘렀다.
콰자자작!
마른하늘에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일각마인의 등으로 뇌전이 뻗어 나갔다.
구천세법 육 식 천뢰무망(天雷無望)이다.
꽈광!
우렛소리와 함께 일각마인의 상체가 앞으로 꺾였다.
일각마인은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렸지만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다.
남궁벽을 따라가던 일각마인이 거칠게 상체를 틀었다.
어찌나 분노했던지 일각마인의 검은 동공에서 귀화가 타올랐다.
일각마인이 양손을 휘저었다.
휘잉 휘잉 휘잉 휘잉-.
반월형 강기가 파도처럼 연적하를 향해 밀려갔다.
연적하의 검에서 쏟아져 나온 뇌전이 강기를 부수고 다시 일각마인을 때렸다.
꽈광!
뇌전에 강타당한 일각마인의 가슴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크아아아!”
일각마인의 입에서 괴성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포효가 아닌 비명이었다.
남궁벽의 검기에 맞고도 덤덤하던 일각마인을 생각하면 기이한 현상이다.
그 뒤로 일각마인은 이전처럼 과감하게 덤벼들지 않고 머뭇거렸다.
그걸 보고만 있을 연적하가 아니다.
그는 마치 광분한 황소처럼 저돌적으로 일각마인을 향해 달려갔다.
“죽어! 죽어! 죽어!”
‘검을 왜 바꾸었냐’는 주위의 타박에 쌓였던 분노가 터져 나왔다.
일각마인은 칼날 같은 손톱으로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양쪽 손을 뒤로 튕겨 낸 검날이 활짝 열린 일각마인의 가슴에 박혔다.
채챙- 쾅! 쾅! 쾅!
수차례 검으로 일각마인을 난타하던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와룡검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구천구검이다!’
연적하는 지면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비틀거리던 일각마인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때 현녀강림이 펼쳐졌다.
하늘을 향했던 검첨이 부드럽게 일각마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아지랑이 같은 검기가 연적하의 발밑에 짙게 깔려 마치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남궁연이 펼쳤다면 정말 하늘에서 구천현녀가 내려오는 것 같았을 것이다.
콰직-.
검첨이 일각마인의 뿔을 부수고 정수리에 박혔다.
“끄아아아-.”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던 일각마인은 서서히 재가 되어 흩날렸다.
연적하는 흡족한 표정으로 검을 갈무리했다.
역시나 와룡검은 법보가 아니었다.
하도 주변에서 법보라고 주장해 자신도 깜빡 넘어갈 뻔했다.
‘역시 남의 말을 들으면 안 돼.’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젓고 있는 연적하에게 남궁벽이 너털웃음을 흘리며 다가갔다.
“허허! 그렇게 빨리 일각마인을 처리하다니 놀랍구나. 연이에게 듣던 대로 실로 신묘한 검법이로다. 그것이 구천구검이더냐?”
남궁벽은 기가 막히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했다.
자신도 반 시진(1시간)이나 걸린 일을 그는 반 각(약 7분) 안에 끝냈다.
그제야 남궁연의 말이 이해가 됐다.
연적하의 검공은 마물과는 상극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검에서 뇌전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놀랍지만,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듯한 모습이라니!
“아, 예. 현녀강림이라는 초식이에요.”
“과연! 좀 전에는 네 발밑에 검기가 운무처럼 쌓여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 같았다.”
“그 정도는 아닌데…….”
연적하는 쑥쓰러운 얼굴로 머리를 긁어 댔다.
그때 멀리서 무당파 장문인 영결상인과 장로들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영결상인은 오자마자 눈을 크게 뜨고 연적하의 아래위를 연신 살폈다.
“왜 그러세요?”
“아! 실례했소이다. 다들 연 공자의 검공에서 선기(仙氣)가 느껴진다고 해서. 물론 내 눈에도 그렇게 보였고. 혹시 도문(道門)의 진전을 이으셨소?”
천지맹의 원로들은 구천노도 심통처럼 그를 ‘연 공자’라고 불렀다.
정파의 어른들이 녹림도인 그에게 ‘소협’이나 ‘대협’이라 부르기 민망해서다.
“혹시 구천현녀가 도문의 신선인가요?”
“그렇소만.”
“그럼 도문 맞을 거예요.”
연적하도 눈치가 있는지라 구천현녀에게 배웠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무당파 고수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오오!”
“과연! 도문의 힘이로다!”
그들도 연적하가 힘들이지 않고 일각마인을 격살하는 걸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이내 절망했다.
천하십대고수인 무상도제도 감당하지 못한 마물을 이제 이십 대 초반인 그가 손쉽게 해결해 버렸으니, 정파의 미래가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이내 반전됐다.
원로들이 ‘그의 검공에서 선기가 느껴진다’고 해서다.
그러고 보면 연적하가 익힌 무공은 녹림이 아닌 와룡장의 것.
협객 참월검객 연무룡의 무공을 이었다면 뼛속까지 악인은 아니라는 소리다.
도문을 내세워 친근하게 구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연적하는 한참 동안 무당파 고수들에게 둘러싸여 신선에 대한 강론을 들어야 했다.
그가 지루해하자 영결상인은 서둘러 본론으로 들어갔다.
“연 공자와 있으니 심신이 상쾌해지는 것이 도우(道友)를 만난 느낌이오. 우리가 다 같은 도문이니 앞으로는 동문처럼 가까이 지내도록 하십시다.”
영결상인은 실로 낯 뜨거운 소리를 했다.
무당파 장문인의 입에서 그런 제안이 나올 정도로 연적하의 검공은 충격적이었다.
“아, 예. 그렇게 할게요.”
“허허. 내 귀로 똑똑히 들었으니 다른 말 하기 없기요.”
영결상인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검왕과의 인연으로 주작대에 왔다가 천하를 경동시킬 대물을 낚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
남직례성.
숙주.
소현(萧具).
오시 초(오전 11시).
마침내 청룡대가 천문산이 있는 소현에 도착했다.
주작대가 서비하에서 일각마인을 처치한 날로부터 사흘이 지난 뒤였다.
삼백육십오 명이나 되는 무인이 왔지만 현령과 관원들은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다.
리신현의 현령처럼 인사를 빙자한 압박을 할 법도 한데, 그들은 오히려 숨었다.
천지맹이 정사파 연합이기에 행여나 봉변이라도 당할까 봐 아예 피한 것이다.
청룡대는 마을에서 이른 점심 식사를 한 뒤 곧바로 천문산으로 출발했다.
미시 말(오후 3시)경.
마침내 청룡대는 천문산에 도착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의천검존 이의정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마치 화적 떼가 쓸고 지나간 것처럼 사방이 잿더미다.
입에서 지옥의 겁화를 뿜어낸다는 마룡의 짓이리라.
이의정은 제마단의 술사들을 불러들였다.
“다들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마룡의 입에서 나오는 불을 조심하시게. 닿은 것이 재가 되기 전까지는 꺼지지 않는다고 하니.”
“예.”
“알겠습니다.”
술사들은 전설적인 대협객의 주의에 공손히 답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이의정이 아들 군자검 이연익에게 손짓을 보냈다.
“예.”
“제마단의 술사들을 의천문과 팽가가 맡아야 할 것 같구나. 벽력도(팽가의 가주)에게 내 뜻을 전하고, 술사들과 함께 움직이도록 해라.”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이의정이 술사들에게 물었다.
“이보시게들. 이제 곧 마룡이 나타날 터인데, 마룡을 상대할 복안이 있는가?”
그는 술사에 대해 모르는지라 그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잠시 설왕설래하던 술사들은 대림사의 공산거사를 대표로 세웠다.
“대주님, 저희는 경신의 재간이 없으니 마룡을 일단 저희들 쪽으로 유인해 주십시오. 그러면 저희가 술법으로 마룡을 상대해 보겠습니다.”
“마룡은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할 수 있겠는가?”
“제가 가진 항마보리신주는 마물을 포박하는 공능이 있습니다. 하늘 위건 하늘 아래건 항마보리신주의 권능에서 달아날 곳은 없습니다.”
겸손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그의 대답에 이의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들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렇게 하지. 자네들은 술법에만 전념하시게. 의천문과 팽가의 무사들이 목숨 걸고 자네들을 지켜 줄 것이네.”
“감사합니다. 좋은 결과로 보답하겠습니다.”
공산거사와 술사들이 절도 있게 머리를 숙였다.
그때 멀리서 귀에 거슬리는 괴성이 은은하게 들려왔다.
캬아아아.
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청룡대는 삼백육십오 명이나 되는 숫자와 술사를 믿고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아직 마물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곧이어 산을 비스듬히 끼고 뭔가가 날아왔다.
박쥐의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는 그것은 마룡이었다.
툭 튀어나온 입 좌우에 코끼리의 상아처럼 돋은 이빨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마룡은 등장과 동시에 입을 쩍 벌렸다.
청룡대의 고수들이 미처 방비하고 말고 할 틈도 없었다.
화르르륵-.
한 아름이나 되는 불덩이들이 우박처럼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후두둑- 쿠웅- 펑-.
화르르륵-.
사방이 불바다로 변했다.
청룡대 고수들은 불덩어리를 피해 메뚜기처럼 사방으로 튀어 달아났다.
청성파 장로들의 머리 위로도 불덩이가 떨어졌다.
청성파 장로들은 지체없이 몸을 날렸지만 지옥의 겁화(劫火)를 완벽하게 피하지 못했다.
퍼어엉-.
불덩어리가 지면에 닿아 폭발하면서 작은 불씨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몇몇 장로들의 몸에 불씨가 달라붙자 지옥도가 펼쳐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크게 일어난 불꽃이 장로들의 몸을 휘감아 버린 것이다.
“끄아악!”
“아악!”
“사, 살려 줘!”
불에 휩싸인 장로들은 비명을 지르며 청성파 고수들이 모인 곳으로 달려갔다.
운 없게 그들의 손에 스친 청성파 제자들도 이내 화염 기둥이 되었다.
삽시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해 버린 청룡대를 보며 탄식하던 이의정이 하늘로 검을 던졌다.
쉬이이익-.
검은 화살처럼 마룡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그걸 본 마룡이 날개를 펄럭이며 위로 올라가자, 검도 수직으로 솟구쳤다.
퍽!
검이 마룡의 하체에 박혔다.
아니, 박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검은 맥없이 튕겨 지면으로 떨어졌다.
‘아!’
이의정은 속으로 탄식하며 검결지를 다시 세웠다.
땅으로 곤두박질치던 검이 독수리처럼 다시 힘차게 날아올랐다.
몸통이 안 된다면 날개다.
이의정의 검이 마룡의 커다란 날개를 관통했다.
퍼억-.
구멍이 뚫렸지만 마룡은 여전히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을 둥둥 떠다녔다.
이기어검으로도 어쩔 수 없다니?
그 자존심 강한 무극상인이 마룡을 피해 달아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이의정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 고심할 때다.
공선거사가 ‘관세음보살 보검수 진언’과 함께 들고 있던 묵빛의 염주를 던졌다.
“옴 데세데야 도미니 도데 삿다야 훔 바탁!”
그걸 본 이의정은 ‘하나 마나 한 짓을 한다’고 생각했다.
이기어검의 수법으로도 안 되는데 저런 게 통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게 웬일?
그 볼품없어 보이는 염주가 마치 승천하는 용처럼 꾸물꾸물 하늘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마룡의 다리를 휘감았다.
“캬아아아!”
마룡은 마치 보이지 않는 그물에 걸린 것처럼 버둥거리며 천천히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