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86
286회. 꼴리는 대로 살아야 녹림입니다.
기루 초연.
유시 초(오후 5시).
“어이쿠! 어서 오십쇼!”
기루 주인 차중래의 입이 귀에 걸렸다.
아직 해가 지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기루는 만석이었다.
정의맹이 천지맹으로 바뀐 뒤부터 장사가 잘되긴 했지만 오늘은 유독 더했다.
나중에는 기녀들이 부족해서 손님들의 원성을 살 정도였다.
그렇다고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손님의 팔 할이 녹림이라 마치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어휴, 오늘따라 손님이 많네요.”
기녀 하나가 계산대 앞을 지나며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애들에게 손님 잘 모시라고 해라. 이런 날일수록 더 조심해야 된다.”
“예.”
기녀는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차중래는 촉각을 곤두세워 분위기를 살폈다.
모두가 각 산채에서 날고 기는 고수들인지라 비위를 잘 맞춰야 하는 까닭이다.
그때 복도 안쪽의 방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악!”
기녀의 비명 소리다.
차중래는 서둘러 복도로 달려갔다.
하필 어제 월아가 들어갔다가 얻어 맞은 방이었다.
‘마가 꼈나. 왜 저 방에서만 일이 생기지?’
복도 끝의 외진 구석방이라 남녀가 거사를 치르기에 적당하기는 하다. 아주 드물게 밝히는 기녀가 주인 모르게 큰손님과 붙어먹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비명 소리가 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손님이 강제로 기녀에게 손을 댔다는 뜻이니까.
차중래가 막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이다.
방에서 누군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 순간 차중래는 문틈으로 안쪽의 상황을 엿볼 수 있었다.
하필이면 또 월아다.
월아가 두 손으로 상체를 감싸안은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상의는 거지반 찢겨져 나간 상태였다.
짝!
덜컹.
뺨을 후려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어이쿠! 어르신. 우리 월아가 무슨 실수라도 저질렀습니까?”
차중래의 물음에 황룡수채 부채주 절영수 송하청이 실실 웃으며 답했다.
“아무 일 없다. 조용한 걸 보면 모르겠느냐? 신경 쓰지 말고 가서 일이나 해라.”
“나으리. 사정 좀 봐주십쇼. 저희 기루의 기녀들은 몸을 팔지 않습니다.”
순간 송하청이 주먹으로 차중래의 얼굴을 후려쳤다.
‘억!’ 소리와 함께 차중래가 주저앉자 송하청이 그의 머리에 발을 척 올렸다.
“월아라는 년이 왜 그렇게 버르장머리가 없나 했더니 네놈 때문이었구나. 감히 황룡수채의 행사에 기루 주인 놈이 왈가왈부하다니? 죽고 싶으냐?”
말과 함께 송하청은 발에 힘을 실었다.
그는 차중래의 머리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지그시 밟았다.
머리가 바닥에 닿은 뒤에는 더욱 더 세게 밟았다.
마치 이대로 머리를 부술 기세였다.
“사, 살려 주십쇼. 잘못했습니다.”
공포를 느낀 차중래는 살려 달라고 빌었다.
그제야 송하청의 발이 떨어졌다.
“채주님께서 운우지락을 즐기시는데 피를 볼 수는 없지. 가서 금아라는 년을 데리고 오너라. 이 몸은 금아를 품어야겠다.”
“……예.”
정신없이 물러난 차중래는 계산대에서 갈팡질팡했다.
금아를 바치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판이다.
그렇다고 몇 년이나 함께 일한 예기(藝妓)를 창기처럼 대할 수도 없는 노릇.
망설이고 있는 그에게 기녀들의 대모(代母)인 유월이 넌지시 말했다.
“주인님, 월아와 금아는 심 어르신이 아끼는 아이들이잖아요. 그분에게 말해 보면 어떨까요?”
“그래도 될까?”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에요. 손도 안 써 보고 그냥 당할 수는 없잖아요.”
“그, 그렇기는 하지.”
차중래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월의 말대로 밑져야 본전이었다.
그는 믿을 만한 잡부 백토를 불러 구천노도 심통에게 보냈다.
하지만 시간은 차중래의 편이 아니었다.
방문 앞에서 기다리던 송하청이 그새를 참지 못하고 계산대로 온 것이다.
“이런 개만도 못한 놈을 봤나! 금아를 데려오라 했더니 여기서 노닥거리고 있어? 내가 기다리고 있는 줄을 뻔히 알면서? 네놈이 정말 뒈지려고 작정을 했구나!”
“그, 그게 아닙니다. 지금 금아가 자리에 없어 찾으러 사람을 보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쇼. 찾는 대로 나리께 데리고 가겠습니다.”
“당장 찾아 와. 지금부터 일각(15분) 기다려 준다. 일각 후에도 금아가 내 앞에 없으면, 네놈의 사지 중 하나를 자르겠다. 오늘 몇 개가 잘리는지 보자.”
살기등등한 차중래의 말에 차중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일단은 금아가 있는 위치를 알아두기 위해서다.
심통이 제때 와 준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눈물을 머금고 금아를 송하청에게 데려다 줄 생각이다.
자신의 팔다리를 자를 수는 없으니까.
***
그 시간 연적하와 심통은 칠리하촌의 중심가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번거로움을 피해 도망치듯 산에서 내려온 뒤로 함께 다니는 중이다.
“공자님, 오늘 저녁은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쌓아 둔 건량은 어쩌고? 요즘은 날이 따뜻해서 오래 못 갈 텐데.”
“하아! 그거 뭐 얼마나 한다고 그러십니까? 까짓거 먹다가 상하면 버려도 그만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까운데…….”
연적하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십 년이나 창고에 갇혀 지내는 동안 겨우 목숨이 붙어 있을 정도의 음식만 공급받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음식을 대하는 태도도 남달랐다.
아끼는 것과 식탐이 어우러져 건량조차도 특별했다.
“아깝긴요. 그래 봐야 은자 한 냥도 안 됩니다. 공자님이 가진 돈이 얼만데요. 신경 쓰지 마십쇼. 정 아까우면 귀영자군에게 먹이면 되잖습니까?”
“오! 그래! 그게 좋겠다. 귀영자군이 있었지? 심 노인은 정말 나쁜 쪽으로는 머리가 잘 돌아간다니까. 하여간 주옥 같은 사람이야.”
“그거 칭찬이죠?”
“주옥이 뭔지 몰라? 보석이라고. 당연히 칭찬이지.”
“흐흐.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나저나 오늘은 어디서 먹을까? 뭐가 맛있으려나?”
연적하는 가벼워진 마음으로 주위를 기웃거렸다.
음식점을 찾아다니고 있는 연적하와 심통의 앞에 십전무후 남궁연이 불쑥 나타났다.
“어? 누님?”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야? 당분간 건량만 먹겠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 그게 뒷산에서 수련을 하다가 귀찮은 일이 생겨서요. 점심때 내려와서 지금까지 이러고 있네요.”
“아하! 그 천룡음의 주인이 너였구나?”
“천룡음요?”
“사람들이 낮에 칠리하촌을 뒤흔들었던 이상한 소리를 천룡음이라고 하더라. 천지맹 기찰대가 소리의 주인을 찾아다니고 있어.”
“맞아요. 천둔검을 수련하다가 답답해서 소리 좀 질러 봤어요. 설마 지금까지 찾아다니는 건 아니겠죠?”
“대충 네가 한 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이젠 좀 뜸할 거야.”
“다행이네요. 누님은 혼자 어딜 가시는 길이세요?”
“그냥 산책이랄까?”
그녀는 말을 얼버무렸다.
택산함(澤山咸)의 괘에 용기를 내 나온 것이지만 그걸 말할 수는 없었다.
“잘됐다. 그럼 같이 저녁이라도 먹어요.”
“그래.”
남궁연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일 때다.
저 멀리 사람들 틈 속에서 누군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흘러내린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은 그는 초연 기루의 잡부 백토였다.
***
기루 초연.
땅거미가 질 무렵.
연적하와 심통, 남궁연은 도와 달라는 백토를 따라 기루로 갔다.
기루 안은 여전히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침통한 얼굴로 계산대를 지키고 있던 차중래가 후다닥 달려나왔다.
“아이고! 심 어르신, 저쪽입니다. 월아와 금아가……. 빨리, 빨리 좀 가 주십시오.”
복도 끝 방을 가리키는 차중래의 손이 덜덜 떨렸다.
심통이 성큼성큼 복도를 따라 끝방 쪽으로 걸어갔다.
대연회장에 있던 사파 고수들은 숨을 죽이고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았다.
그들도 저 복도 끝 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있었다.
한 식경(약 30분) 전부터 황룡수채의 채주 혈해마도 적무인과 부채주 송하청이 난리를 쳐 댄 까닭이다.
방문 앞에 도달한 심통이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열어젖혔다.
“……뭐야?”
“누구냐!”
강제로 기녀들을 범하고 있던 적무인과 송하청이 고개를 돌렸다.
심통은 대답 대신 그들의 아래에 깔려 있는 월아와 금아를 보았다.
둘 다 피멍이 든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제법 큰 소란에도 미동하지 않는 걸 보니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뒤늦게 심통의 얼굴을 확인한 적무인과 송하청이 상체를 일으켰다.
빠드득 이를 갈던 심통이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다.
남궁연이 가볍게 연적하의 등을 떠밀었다.
얼떨결에 등이 떠밀린 연적하가 심통을 젖히고 방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총순찰님?”
“어이쿠!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적무인과 송하청은 황급히 일어나 벗어 두었던 바지를 꿰입었다.
연적하는 일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발가벗겨진 여체는 물론, 방사 중이던 남자를 보는 것도 처음이다.
음양의 교합이 어쩌고, 운우지락이 어쩌고 하는 말은 들었지만 이건 너무했다.
처참한 몰골의 소녀들과 퀘퀘하고 끈적한 냄새.
그동안 들었던 남녀 간의 즐거움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 아닌가 말이다.
이건 불쾌하다 못해 역겨울 정도였다.
무거운 침묵이 방 안을 맴돌았다.
뒤따라온 유월이 얼른 방으로 들어가 월아와 금아의 몸을 옷가지로 가렸다.
“어머나, 이를 어째? 그래도 숨 쉬는 걸 보니 죽진 않은 모양이네.”
유월의 넋두리가 울려 퍼졌다.
연적하가 여자들 옆에 쪼그리고 앉아 호들갑 떠는 유월을 불렀다.
“아줌마.”
“예?”
“깨워요.”
“예? 예.”
유월은 의아했지만 시키는 대로 월아과 금아의 볼을 톡톡 건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월아와 금아가 눈을 떴다.
두 어린 기녀는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을 알고 숨죽여 흐느꼈다.
머리를 긁적이던 적무인이 변명처럼 말했다.
“쩝, 술김에 흥이 올라서 좀 데리고 놀았습니다. 화대는 넉넉히 줄 생각입니다.”
눈치를 보고 있던 송하청도 한마디 거들었다.
“손찌검은 했지만 절대 심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벌써 죽었을 겁니다.”
“이놈의 말이 맞습니다. 저년들 얼굴을 보십쇼. 저만하면 멀쩡한 편 아닙니까? 계집들이 너무 지랄 발광을 해 대서, 닥치고 있으라고 몇 대 쥐어박은 게 전부입니다.”
적무인과 송하청은 자신들의 행동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녹림에서 강간과 겁탈은 일상다반사로 오히려 자랑할 만한 일인 까닭이다.
묵묵히 듣고 있던 연적하의 입이 열렸다.
“싫다는 사람 패서 정신을 잃게 만들고, 강제로 그 짓을 했다고?”
그러자 적무인이 도발적으로 되물었다.
“예, 뭐가 잘못됐습니까? 녹림은 본래 그런 짓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아, 그래?”
“꼴리는 대로 살아야 녹림입니다. 우린 겉으로만 착한 척하는 정파 위선자 새끼들과 다릅니다. 그 개새끼들은 뒤에서 호박씨를 까지만, 녹림은 호걸답게…….”
“대놓고 나쁜 짓을 한다?”
“그렇죠.”
“원래 그런 거라니까 나도 할 말이 없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 말은 없는데, 내가 기분이 좀 젓 같은데 어쩌지?”
“예?”
“가르침 잘 받았어. 나도 녹림답게 꼴리는 대로 해 볼게. 썅! 어린 기녀를 때리고, 기절까지 시켜서 강제로 그 짓을 하는 거, 정말 역겹다. 이 개새끼들아! 오늘 한번 내 손에 죽어 보자!”
연적하의 전신에서 무형의 기운이 뻗어나와 적무인과 송하청을 덮쳤다.
이른바 의형살인의 수법이다.
“컥!”
“크윽!”
적무인과 송하청은 가공할 힘이 짓누르자 벗어나기 위해 사지를 버둥거렸다.
하지만 전신을 조여 오는 힘은 더 강해져 오줌과 똥까지 지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