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52
352회. 수련을 많이 해야겠어
무오자의 일장 연설 뒤에 문답식이 시작됐다.
천상동의 말대로 가장 앞줄에 앉아 있던 수련자가 일어나 사방진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자 무오자가 품에서 하나의 부적을 꺼내 사방진에 슬쩍 붙였다.
그 뒤로 두 사람의 대화는 들리지 않았다.
최근 입궁한 백화궁의 여제자들 사이에서 가벼운 술렁거림이 일어났다.
경험이 있는 여화조가 백화궁의 여제자들에게 묵음방진에 대해 설명했다.
처음 문답을 한 사람은 반각(약 7분)만에 끝났다.
그는 결과가 좋지 않았는지 축 처진 어깨로 터덜터덜 오룡궁을 벗어났다.
그 뒤로도 사정은 비슷했다.
간혹 일각(15분)까지 문답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반각을 넘기지 않았다.
오전에 삼십 명이 문답을 마쳤다.
그들 모두 문답식에서 떨어진 듯 안색이 좋지 않았다.
정오가 되자 식사를 위해 문답식이 잠시 중지됐다.
수련자들은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모두가 입을 꾹 다물고 식사에 열중했다.
이도주와 식사를 하던 연적하가 중얼거렸다.
“다들 조용하네요. 앞서 문답식을 끝낸 삼십 명에게 묻지도 않고.”
“먼저 끝낸 사람들 얼굴을 보게. 저런 사람들에게 뭘 물어볼 수가 있겠는지.”
그 말에 연적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드문드문 마치 초상집에 온 것처럼 우거지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다가가서 말을 건네기도 어려운 분위기였다.
“설사 물어본다고 한들 제대로 알려 준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무오자의 취향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터라 아예 묻지도 않는 걸세. 그 시간에 오히려 ‘태을금화종지’를 한 줄이라도 더 읽는 게 낫지.”
“무오자는 ‘태을금화종지’를 좋아하나요?”
“그렇다네.”
“이런 젠장. 망했네.”
그동안 ‘남화진경’만 파던 연적하에게는 날벼락 같은 소리였다.
그때 누군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그는 연적하에게 시험관의 정보를 사갔던 ‘남채화’의 수련자였다.
“소형제만 망한 게 아니야. 나도 망했다고. 잘잘못은 나중에 가리고 일단 내 돈 닷 냥부터 내놓게.”
이도주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연적하와 수련자를 번갈아 보기만 했다.
그 뒤로도 여섯 명이 더 모여들었다.
“돈 내놔!”
“연두비. 이 사기꾼 같으니라고. 시험관이 청불노라고? 같은 수련자를 등쳐 먹으려고 해? 돈 내놔!”
“금방 들통날 사기를 치다니 대가리에 똥만 찬 놈이로구나. 좋은 말로 할 때 돈 내놔라.”
“사기꾼!”
일곱 명 모두 연적하에게 정보를 사 갔던 사람들이었다.
연적하는 당혹스러운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난리 났군. 이런 모습을 보이면 좋지 않은데.’
다행히 근처에 오룡궁의 도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네요. 그런데 알고 보면 나도 피해자예요. 만황주와 천상동에게 돈 주고 산 정보였거든요. 일단 돈은 오늘 저녁에 돌려 드릴게요. 돈주머니가 숙소에 있어서 지금은 줄 수도 없어요.”
그러자 의심많은 누군가 말했다.
“개소리. 그러고 달아나면 우린 누구에게 돌려받으라고?”
“달아나긴 누가 달아난다고 그래요? 나도 여러분처럼 오룡궁에 술법을 배우러 왔다고요. 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에요. 준다면 줍니다.”
연적하는 울컥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았다.
천하의 연적하가 이런 곳에서 사기꾼 소리까지 듣게 될 줄이야!
“여러분, 들으셨습니까? 저녁에 준답니다. 이자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잘 감시합시다.”
사내의 말에 몰려왔던 사람들이 투덜거리며 다시 주변으로 흩어졌다.
“젠장, 살다 살다 별 거지 같은 경우를 다 만나네. 오룡궁에서 사기를 치다니. 미친 새끼.”
“달아날 생각하지 마라. 그러다가 잡히면 토막을 내어 버릴 테니까.”
“하! 무당파에 사기꾼이 있다니.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냐. 너 달아나면 진짜 죽는다. 쌍놈아.”
사람들이 욕을 할 때마다 연적하는 빠득빠득 이를 갈았다.
‘만황주, 천상동, 이 개 같은 놈들. 너희를 가만두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연적하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만황주와 천상동은 눈에 띄지 않았다.
별수 없이 그만 홀로 남채화 수련자들의 욕받이가 되어야 했다.
남채화의 수련자들이 걸죽하게 욕을 풀어놓고 떠나자 이도주가 물었다.
“뭐가 잘못된 모양이로군?”
이도주는 남채화 수련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들통날 게 뻔한 사기를 치고 다니기에 연두비는 너무 고수였다.
“하아! 남황주와 천상동에게 시험관이 청불노라고 들었는데 무오자가 나왔네요.”
“그들은 그걸 어떻게 알았기에?”
“돈을 써서 알아냈다고 자랑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들에게 열 냥이나 줬는데…….”
“쯧쯧! 이 일이 오룡궁에 알려지면 쫓겨날지도 모르니 조심하게.”
“이미 알려졌어요.”
“헛! 정말인가?”
“예, 다음에는 국물도 없으니까 앞으로 조심하라고 하더라고요.”
“허! 오룡궁 도사님들은 정말 신선이구먼. 태화궁 같았으면 절대 그렇게 끝나지 않았을 텐데.”
“그렇죠?”
연적하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검왕 숙부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쫓겨나고도 남았다.
남채화는 물론 다른 전각의 수련자들까지도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그들도 한차례 소동을 통해 무슨 일인지 대충 알아차린 얼굴이었다.
문답식이 다시 시작됐다.
뒤쪽에 앉아 있던 연적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미 문답식 통과는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지금은 빨리 문답식을 끝내고 오룡궁에서 나갈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반시진(1시간)쯤 지났을까?
마침내 연적하의 차례가 되었다.
자신의 앞에 사람이 없자 연적하는 서둘러 묵음방진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가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자마자 무오자가 물었다.
“여조께서 호흡과 빛을 섞어서 임독맥 돌리기[回風混合]를 백 날 동안 하면 어떻게 된다고 하셨나?”
기본적인 답은 ‘신령스러운 공령이 생긴다[百日功靈]’이다.
그 정도는 오룡궁의 수련자라면 자다가도 답할 수준이었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질문이 진짜다.
하지만 ‘남화진경’만 읽고 온 연적하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질문이었다.
당황한 와중에도 연적하는 부지런히 머리를 굴렸다.
‘호흡을 돌린다고? 백 일 동안 돌리면 공력이 쌓이겠지. 여조가 쇠똥구리가 어쩌고 한 것도 있으니까, 분명 그 비슷한 말일 거야.’
“신(神)이 담긴……. 공력이 생깁니다.”
무오자가 눈을 찌푸렸다.
‘공령(功靈)’과 ‘공력’은 다르다.
하지만 ‘신이 담겼다’고 했으니 완전히 다르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허면 숨[息]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정답은 ‘스스로의 마음’이다.
스스로의 마음이 ‘숨’인 것은 사람의 본바탕을 이루고 있는 신(神)과 기(氣)와 정(精)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연적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래도 이 와중에 그는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했다.
“살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지요.”
깨달음의 깊이가 깊은 무오자의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마음’과 ‘살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숨’은 곧 ‘마음’이다.
그의 말대로 ‘살기 위해서’는 ‘마음’을 지켜야 한다.
그러니 오답은 아니라 할지라도 ‘태을금화진경’의 가르침과는 달랐다.
그 뒤로도 무오자는 여러 질문을 던졌지만 대답은 미묘하게 어긋났다.
무오자는 자신의 수양이 부족한 건지, 수련자가 틀린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다.
‘허어! 오답을 말하면 분명하게 아니라고 할 터인데…….’
조금씩 미꾸라지처럼 미끄러지니 문답이 길어질수록 마음만 산란해진다.
근 일다경이 지나고 나서야 무오자는 모든 게 자신의 오해였음을 깨달았다.
오룡궁에 와서 수련할 정도의 깊이라고 지레짐작한 게 문제였다.
상대는 끔찍할 정도로 도(道)에 대해 무지했다.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던 무오자는 문득 이 미련한 중생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하아! 자네의 이름은 무엇인가?”
순간 상한 생선 같던 연적하의 눈에 살짝 생기가 돌았다.
‘남화진경’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나서다.
‘이건 내가 좀 알지!’
“도(道)를 도라고 하면 더 이상도가 아니듯 이름을…….”
“헛소리 그만하고 자네 성명 삼 자나 말해 보게.”
“아, 연두비입니다.”
“자네는 수련을 많이 해야겠어. 내가 지금까지만나 본 수련자들 가운데 가장 좋지 않아.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아니, 열 배는 더 노력하게.”
“그 정도나요?”
“세상에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네. 무공의 고수가 되기도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술법도 마찬가지라네. 남들보다 많이 늦은 만큼 부단히 노력해야 할 걸세.”
“저 떨어진 건가요?”
“그래도 우리 오룡궁에서는 계속해서 기회를 주니 포기하지 말게.”
“…….”
연적하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수그렸다.
“그만 가 보게.”
“예.”
연적하는 묵음방진에서 나와 터덜터덜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주위로 일곱 명의 남채화 수련자들이 날파리 떼처럼 달라 모여 들었다.
***
문답식은 밤늦게야 끝났다.
무오자의 문답식을 통과한 사람은 넷에 불과했다.
이도주를 포함한 네 명의 수련자들은 ‘여동빈’으로 숙소를 옮겼다.
그날 밤.
태양각.
무오자는 자신만 바라보는 오룡육사들에게 오늘의 문답식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 넷은 속가제자로 삼아도 될 것 같더군요. 궁주님의 당부도 있고 해서 기준을 낮추었음에도 수련자들이 따라오지 못해, 아쉽습니다.”
천명 도사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역시나 전례는 깨지지 않았다.
한 손에 꼽는 숫자만 거두었으니 수련자들의 원성은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다.
오룡육사들은 무오자의 엄격함에 대해 익히 아는지라 더 케묻지 않았다.
기준을 낮추어 무자격자를 받아들이는 거라면 모를까?
그 반대라면 굳이 뭐라고 할 이유가 없어서다.
심지어 오룡궁 궁주인 천명 도사조차도 안타까워할망정 결과를 두고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딱히 질문이 없자 무오자도 설명을 끝냈다.
오룡칠사들이 하나 둘 숙소로 돌아갈 때 청불노가 무오자에게 다가갔다.
“혹 탈락한 사람 중 기억에 남을 만한 자가 있더이까?”
“딱히 없었습니다.”
“얼굴에 열꽃이 가득한 수련자는 어떻던가요? 외모가 특이해서 기억이 날 법도 한데.”
“아! 연두비. 기억하고 말고요.”
무오자가 피식 웃었다.
“기억하는 걸 보니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예, 도에 대해 무지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무지하다고요?”
“예, 술법이 흥하니 어떻게 한 수 배워 볼까 해서 올라온 사람 같았습니다. 심성은 순후해 보이나 아쉽게도 득도에는 별 관심이 없더군요.”
“아하!”
청불노가 관심을 보이자 무오자가 물었다.
“왜요? 연두비가 마음에 드십니까?”
“먼발치에서 얼굴을 본 게 전부인데 마음에 들고 말고 할 리가요. 다만…….”
“예?”
“멀리서 보니 선기(仙氣)가 얼핏 엿보이는 것 같더군요. 어쩌면 병증 때문에 진면목이 가려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선기가 엿보였다고요? 쩝,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걸 그랬나 봅니다. 워낙 수련자들이 많다 보니…….”
무오자가 변명하듯 말했다.
그러자 청불노는 급히 손사래를 쳤다.
행여나 무오자가 그를 눈여겨 보다 제자로 낚아챌까 봐 두려워서다.
“어이쿠! 아닙니다. 그냥 늙은이의 실없는 소리로 흘려들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