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65
365회.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좋은 기회
단체 생활을 하다 보면 자의든 타의든 경쟁이 따르기 마련이다.
‘여동빈’의 속가제자들도 그랬다.
문답식을 거친 탓에 뒤처지는 사람은 없었지만 백설연과 청천석이 두각을 나타냈다.
그중에서도 백설연은 발군의 실력을 자랑했다.
그녀의 성취는 오룡궁 도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다.
백설연은 ‘흑암법’으로 고학 도사를 놀라게 한 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연남천을 힐끔거렸다.
의식하지 않으려 했지만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여서다.
그에 대한 소문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문답식의 정보를 팔아먹다 걸린 협잡꾼이지만 청불노의 눈에 들어 기명제자가 된 남자.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되지만, 추한 얼굴만큼이나 하는 짓도 구질구질했다.
‘실력으로 기명제자가 된 걸까? 아니면 그저 운일까?’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지만 곧 알게 되리라.
낭중지추(囊中之雉)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
실력이 있다면, 마치 지금의 자신처럼 사람들 눈에 띄게 될 것이다.
한편 연남천의 실력이 궁금하기는 고학 도사도 마찬가지였다.
“연남천.”
고학 도사의 호명에 연적하가 앞으로 나섰다.
속가제자들은 반감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연적하가 검결지를 눈앞에 세우며 낭랑하게 외쳤다.
“공허무상불견시(空虛無象不見視) 건곤일색간불변(乾坤一色看不見) 옴급급 여율령 사바하!”
은형술 중에 가장 어렵다는 ‘공허법’이다.
순간 연적하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경공술로 움직인 것이 아니라 그야 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몇 차례 눈을 끔뻑이던 고학 도사가 반신반의한 얼굴로 물었다.
“거기 있느냐?”
고학 도사도 확신하지 못할 정도로 연적하의 은형술은 완벽했다.
‘예’ 소리와 함께 은형술이 풀렸다.
그 자리에 연적하의 모습이 드러나자 고학 도사가 탄복한 얼굴로 손뼉을 쳤다.
짝짝짝-.
“과연! 청불노 노사의 기명제자답다. 내가 지금까지 가르친 사람 중에 너와 같은 이는 없었다.”
이윽고 그는 속가제자들을 향해 일갈했다.
“보았느냐! 저것이 바로 오룡궁의 은형술이다. 너희가 배우는 술법에 자부심을 가지도록 해라!”
멍하니 보고 있던 속가제자들이 큰 소리로 ‘예!’라고 답했다.
백설연은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완벽한 연남천의 술법에 기가 질리면서도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은형술로 인해 연남천을 향한 조롱과 질시의 시선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청불노가 괜히 그를 기명제자로 거둔 게 아니라는 말도 나왔다.
***
오룡궁.
금정각.
정오 무렵.
금정각으로 대원각의 각주 소요자가 찾아왔다.
“무슨 일이오?”
궁주인 천명 도사가 소요자를 응시했다.
대원각은 오룡궁 출신이거나 오룡궁과 관계된 도관을 총괄하는 곳이다.
그가 불시에 찾아올 정도로 골치 아픈 일이 발생한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소요자가 떨떠름한 얼굴로 되물었다.
“궁주님, 혹시 서안의 태청도관이라고 아십니까?”
“알다마다요. 퇴마로 유명한 능지 선인이 있는 곳 아닙니까?”
능지 선인은 오룡궁 출신의 도사다.
그의 퇴마는 꽤나 유명해서 일반 백성들에게 신선으로 불릴 정도였다.
“능지 선인이…… 하아!”
소요자는 차마 말하기 거북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서안의 거상인 용 대인에게 경국지색의 처가 있답니다. 그런데 그 처가 자은사에 백일기도를 다니다가 귀접(鬼接)을 했다고 하는군요.”
해괴한 소리에 천명 도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귀접이란 귀신과의 교접, 즉 성교를 뜻하는 까닭이다.
“그래서요?”
“자은사에서 해결이 되지 않자 용 대인은 그의 처를 태청도관으로 보냈던 모양입니다.”
천명 도사는 장단이라도 맞추듯 고개를 끄덕였다.
능지 선인이 퇴마로 유명하니 태청도관에 의뢰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능지 선인이 퇴마 의식을 하다가 돌연 쓰러졌다고 합니다. 다음 날 정신은 차렸는데 귀신들린 것처럼 행동을 한다고…….”
“그러니까 능지 선인이 퇴마에 실패하고, 오히려 귀신들렸다는 겁니까?”
“태청도관에서 온 도사의 말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태청도관에서는 오룡궁에서 이번 일을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끄응!”
천명 도사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본래 지관에서 문제가 생기면 본관에서 해결해 주는 게 맞다.
하지만 그게 퇴마와 관계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때로는 본관보다 지관에 있는 도사의 술법이 더 뛰어날 때가 있다.
예컨대 능지 선인이 그랬다.
언법을 수련한 청불노가 살아 있다면 모를까?
현재 오룡궁에 능지 선인보다 뛰어난 퇴마사는 없었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소요자가 말을 덧붙였다.
“용 대인의 처가 무림인인데 태청도관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나 봅니다. 하루라도 빨리 해결을 해 달라고 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천명 도사는 얼굴로 열기가 치솟자 두 손으로 맨손 세수를 했다.
귀접도 골치 아픈데 하필 무림인이란다.
능지 선인이 왜 퇴마에 실패를 했는지 알 것도 같다.
무인과 술사는 상극이라면 상극이다.
무인은 뼛속 깊이 술사를 무시하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말을 마친 소요자는 천명 도사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오룡궁의 궁주가 아니라는 게 참 다행스럽다.
고민하던 천명 도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청불노 노사께서 살아 계셨어도 좋았을 텐데……. 그분 다음가는 퇴마사가 장춘 진인이 아닙니까?”
“그렇기는 합니다.”
소요자가 애매한 얼굴로 답했다.
장춘 진인의 경지가 능지 선인과 비슷해서다.
‘능지 선인이 실패한 일에 장춘 진인을 투입해도 괜찮으려나? 그마저 실패하면 세인들이 오룡궁을 조롱할 텐데.’
그렇지 않아도 술사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 그런 일은 피해야 했다.
근심하고 있는 소요자의 귓가로 천명 도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물론 술사로서 장춘 진인과 능지 선인의 경지는 비슷합니다. 하지만 장춘 진인은 무공에도 일가견이 있으니 기대해 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소요자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퇴마 실력은 비슷하지만 확실히 장춘 진인은 무인 출신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건 대단한 장점이었다.
“허면 장춘 진인에게 맡기실 생각이십니까?”
“장춘 진인과 그의 제자, 그리고 보조할 속가제자들 정도면 될 것 같군요.”
“인원은 몇으로 조절하면 되겠습니까?”
“장춘 진인의 제자는 장춘 진인에게 맡기고, 속가제자들은 셋을 선발하세요. 아, 속가제자들 중에 연남천을 포함시키면 좋겠군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소요자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퇴마로 유명한 청불노 노사의 기명제자이니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서다.
그렇게 해서 서안으로 가는 퇴마사 모임이 결정됐다.
***
팔선각 여동빈.
오후 수련이 끝난 시간.
여동빈의 관리자인 무위 도사가 연남천, 청천석, 백설연을 불러 모았다.
“내일 아침 장춘 진인과 그분의 제자들이 서안으로 갈 것이다. 너희도 함께 가기로 되어 있으니 준비하도록 해라.”
“무슨 일로 가는지 알 수 있을까요?”
청천석의 물음에 무위 도사가 간단히 답했다.
“서안의 도관에서 퇴마 의식이 열릴 것이다. 너희는 그 준비를 돕게 될 것이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좋은 기회이니 열심히 배우도록 해라.”
“예!”
청천석과 백설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무위 도사의 말대로 오룡궁의 퇴마 의식은 유명해서 배워 두면 살이 되고 피가 될 것이었다.
연적하만 무덤덤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하고 많은 일 중에 퇴마라니!
어째 점점 자신의 공부가 이상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무위 도사가 돌아가자 세 사람은 짐을 꾸렸다.
대충 준비가 끝나자 셋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한자리에 모였다.
퇴마라는 말에 중압감을 느껴서다.
청천석이 연남천에게 지나가듯 물었다.
“연 사제, 자네는 퇴마의 경험이 있나?”
“없는데요? 사형은요?”
“나도 없네. 백 사매는 어때?”
“저도 마찬가지예요. 구경해 본 적도 없어요.”
셋이 난감한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퇴마 준비를 도우라는데 구경조차 해 본 적이 없으니 난감했다.
“파사(破邪)의 주문이라도 몇 개 더 외워 둬야 하려나. 두 사람은 외워 둔 게 있나?”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청천석이 연적하와 백설연에게 물었다.
연적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백설연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세 개를 외우고 있어요. 연 사제, 사기(邪氣)의 침탈을 막으려면 파사 주문 하나쯤은 알고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험한 꼴을 당하게 된다고.”
“험한 꼴요?”
“퇴마가 뭐야? 귀신을 쫓는 거잖아. 귀신이 쫓겨나면 어디로 가겠어?”
“어디로 가는데요?”
“귀신의 집은 사람이야. 집에서 쫓겨나면 가까이 있는 다른 사람을 찾아간다고.”
“헉! 정말요?”
“당연하지. 퇴마식 구경하다가 미친 사람이 한둘인 줄 알아?”
그 말에 연적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귀신에 대한 남다른 공포심을 가진 연적하에게 그건 정말 끔찍한 소리였다.
백설연이 점잖게 충고했다.
“빨라도 칠 일은 걸릴 테니 시간 날 때 외워 두는 게 좋을 거야.”
“예.”
대화의 주제는 이내 부적으로 옮겨 갔다.
연적하는 청천석과 백설연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두 사람 모두 오룡궁의 속가제자가 된 지 오래라 배울 게 많았다.
***
다음 날.
아침 일찍 네 명의 도사와 세 명의 속가제자가 오룡궁의 문을 나섰다.
장춘 진인과 그의 제자 셋, 그리고 속가제자 셋이다.
하산한 직후 관도를 따라 걷던 장춘 진인이 연남천을 곁으로 불러들였다.
“청불노 노사의 기명제자라지?”
“예.”
“쯧쯧! 세월을 이길 수는 없다더니, 아까운 분이 가셨어. 노사께 많이 배웠느냐?”
“조금요.”
“노사를 모신 기간이 얼마나 되느냐?”
장춘 진인은 연남천에게 관심을 보였다.
청불노의 ‘언법’은 오룡궁에서도 유명했다.
그의 말 한마디면 풍운조화가 일어나고 온갖 잡귀들이 떠나갔다.
‘언법을 배웠으면 도움이 될지도…….’
솔직히 데리고 나온 세 명의 제자보다 연남천에게 거는 기대가 더 컸다.
“한 달 정도요.”
“흐음!”
한 달이라는 말에 장춘 진인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오 년 이상 술법을 가르친 내 제자들도 불안불안한데…….’
고작 한 달 배운 법력으로 퇴마에 도움이 될까?
그것도 상대는 유명한 퇴마사인 능지 선인까지 잡아먹은 악귀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잔심부름 이외에는 쓸모가 없을 것 같다.
다른 두 명의 속가제자들처럼 말이다.
“언법은 전수받았느냐?”
“예.”
“다행이구나. 퇴마식을 본 적은 있고?”
“없는데요?”
‘없다’는 말에 장춘 진인은 완전히 마음을 비웠다.
이래서는 도움은커녕 방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속가제자들 가운데 네 술법이 가장 뛰어나다고 들었다. 혹 언법의 영향이었더냐?”
“아뇨. 언법은 사용하는 법이 조금 달라서요.”
“그렇지. 내가 깜빡했구나. 여하튼 너에게 거는 기대가 크니 어디를 가건 오룡궁의 제자임을 잊지 말거라.”
“예.”
“그만 가 보거라.”
연적하는 꾸벅 인사를 하고 속가제자들에게 돌아갔다.
그 뒤로 장춘 진인은 두 번 다시 연적하를 가까이 부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