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74
374회. 좋은 일을 해야 법력이 높아진다.
도교가 추구하는 것은 불로불사(不老不死)다.
신선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도 알고 보면 이 불로불사를 위해서다.
불로불사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련을 해야 한다.
예컨대 조식(調息, 호흡법), 도인(導引, 체조), 복이(服餌, 단약을 복용), 내사(內思, 내관법), 제사를 지내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중 최고는 적선(積善, 착한 일을 하는 것)이다.
도사들에게 선행은 최고의 덕목이자 수련법이기도 했다.
선행을 하면 수명과 법력이 점차 늘어나는 반면, 악한 짓을 하면 그간 쌓은 공마저도 물거품이 된다.
그런 이유로 불도(佛道)의 무인들이 ‘강호행’을 한다면 도사들은 ‘적선수행’에 나섰다.
오룡궁의 궁주인 천명 도사가 연남천에게 ‘적선수행’을 명한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한창 배워야 할 연남천이 돌연 ‘적선수행’에 나선 것을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다.
오룡궁에는 많은 도사와 속가제자, 수련생들이 있기에 연남천의 ‘적선수행’도 금방 잊혀졌다.
정오 무렵.
관도 위를 대나무 등짐을 진 도사 하나가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오룡궁을 떠난 연적하다.
도복과 목검, 대나무 등짐은 모두 오룡궁에서 지급받았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등짐 속에는 적선수행에 필요한 부적 재료들(괴황지, 주사, 산초 기름, 붓)이 들어 있었다.
“이거야 원, 이래서는 누가 봐도 도사인데.”
투덜거리면서도 연적하는 도사복을 벗지 않았다.
그는 이참에 적선수행으로 자신의 법력을 키워 볼 생각이었다.
초겨울이라 그런지 관도를 오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조금 무료했다.
한참을 걷던 그는 허기가 지자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그러나 오늘따라 관도 변의 허름한 객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별수 없이 그는 적당한 자리를 잡고 불을 피웠다.
몸이 추워서가 아니라 입에 들어갈 먹거리를 요리하기 위해서다.
“그래도 등짐이 좋은 게 있네.”
연적하는 벗어 놓은 대나무 등짐 속에서 무쇠솥을 꺼내 모닥불 위에 걸쳐 놓았다.
그리고 솥이 달궈지는 동안 근처에서 얼음 한 덩어리를 주워 왔다.
얼음이 녹아 보글보글 끓자 쌀을 넣고, 잠시 후에는 육포도 잘게 찢어 위에 뿌렸다.
일다경(약 20분)쯤 지나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어 보니 좀 심심하다.
그는 등짐에서 소금을 꺼내 솥단지에 적당량 털어 넣고 휘휘 저었다.
하얀 김과 함께 육포 죽 냄새가 솔솔 올라왔다.
정식 요리와 비교할 수 없지만 허기가 반찬이라고 입안에 침이 한가득 고였다.
연적하가 솥단지를 내려놓고 막 한 숟가락 뜰 때다.
관도 저편에 오 남 이 녀가 나타났다.
병장기를 휴대한 걸 보면 무림인인데 칠파일문이나 사대세가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연적하는 식은 죽을 떠먹으며 관도를 힐끔거렸다.
모처럼 만에 보는 사람들이라 호기심이 일었던 것이다.
채 몇 숟가락 뜨기도 전에 정체불명의 무림인들이 가까워졌다.
그 정도로 그들의 걸음이 빨랐다.
“사형, 추운데 우리도 몸 좀 녹이고 가죠?”
“대사형, 잠깐 쉽시다. 추워서 손이 곱았어요. 이대로는 싸우지도 못합니다.”
사매와 사제의 말에 오월락이 멈춰 섰다.
아직 노하구(老河口)까지는 거리가 많이 남았으니 쉬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는 재빨리 관도 옆에 피운 모닥불과 도사를 살폈다.
‘응? 옷은 도복인데 머리가 덥수룩 해? 도사 흉내를 내는 속인인가?’
세상이 어수선하니 도사 흉내를 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나 천지맹에서 술사를 대대적으로 모집한 뒤부터 더 그랬다.
도사를 자세히 살피던 오월락이 인상을 찡그렸다.
얼굴의 부스럼이 왠지 두창 같아서다.
“잠깐, 몇 가지 확인해 볼 게 있으니 기다리거라.”
오월락은 사제들을 그 자리에 멈춰 세우고 모닥불로 천천히 다가갔다.
“나는 삼절문의 오월락이라고 합니다. 그쪽은 행색이 도사 같은데, 맞습니까?”
마침 숟가락을 입에 물고 있던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겸사겸사 적선수행 중이니 도사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니, 지금은 무당파의 도사라고 하는 게 맞았다.
“실례가 아니라면 어느 도관의 도사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쩝, 쩝. 무당파의 속가제자입니다만.”
무당파라는 말에 오월락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그러고 보니 도복이 눈에 익었다.
확실히 저 도복은 무당파의 것이 분명했다.
“아, 그러시군요.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요즘은 속가제자분들도 도복을 입습니까?”
“제가 오룡궁의 기명제자라서 입은 겁니다. 적선수행을 나왔거든요.”
오월락이 반신반의한 눈으로 청년을 보았다.
아무리 간덩이가 부었어도 십언에서 무당파 도사를 사칭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거짓은 아닐 텐데 속인이 기명제자라니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시군요. 존성대명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연남천이라고 합니다.”
“연…… 소협이셨군요.”
쭈뼛거리던 오월락은 슬며시 돌아섰다.
본래는 부스럼의 전염 여부를 확인하려 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감히 무당파의 기명제자에게 그런 걸 물을 수는 없지 않은가!
돌아선 오월락을 연적하가 잡았다.
“날도 추운데 잠시 불이라도 쬐고 가세요. 내 얼굴의 부스럼은 전염병이 아니에요. 독성이 있는 걸 집어 먹고 화기가 솟구쳐서 이렇게 된 거예요.”
다소 구차한 설명이지만 적선수행이 별건가?
좋은 일을 해야 법력이 높아진다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오 남 이 녀가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았다.
서로 간에 간단한 통성명이 끝나자마자 이화가 연적하의 목검을 보며 말했다.
“연 소협은 그럼 술사신 건가요?”
오룡궁의 도사들은 세간에 술사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검조차 보이지 않으니 술사일 거라고 지레짐작한 것이다.
오룡궁의 제자로 적선수행에 나선 연적하는 부인하지 않았다.
“맞아요.”
그러자 오 남 이 녀는 긴장을 풀었다.
같은 무당파 제자라고 해도 무인과 술사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무인은 감히 눈도 마주 보기 어렵지만 술사는 다르다.
무당파의 술사는 일반 방파 출신 대접을 받는 게 현실이었다.
“아하, 그러시구나. 지금은 수행 중이신 건가요?”
“그런 셈입니다.”
“그럼, 혹시 우리를 위해서 부적 하나 만들어 주실 수 있으세요?”
“부적요?”
“네, 지금 노하구로 가는 중인데 분위기가 좀 살벌하거든요.”
이화가 슬쩍 오월락의 눈치를 살폈다.
말을 해도 되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오월락은 알아서 하라는 듯 못 본 척 외면했다.
무당파 속가제자와 교분을 나누면 언제고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노하구의 포구(浦口) 관리를 두고 신주상방과 월산상방이 다투고 있거든요. 정확히는 본래 신주상방이 관리를 하던 곳인데 월산상방에서 빼 앗으려는 형국이지요. 저희 삼절문은 신주상방을 도와 포구를 지키고 있어요.”
“아하.”
연적하는 단번에 이화의 말을 알아들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두 상방 간의 상권 다툼이 벌어진 모양이다.
“이럴 때 쓸 만한 부적이 있을까요?”
“‘호신’이나 ‘악살소멸’, ‘극난(克難)’의 부적이 있기는 한데…….”
“어머, 그럼 그중에 하나 써 주세요. 오룡궁의 부적이 그렇게 좋다고 하던데.”
이제 십팔 세의 이화는 손벽까지 치며 좋아했다.
풋풋한 소녀의 생기발랄한 행동에 연적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좋은 일을 하려고 나선 마당에 부적 하나쯤 못 써 주랴.
연적하는 대나무 등짐에서 괴황지와 주사가 든 통을 꺼냈다.
그리고 붓에 산초 기름을 먹인 뒤 주사를 묻히고 정성껏 ‘극난’이라는 글자를 적어 나갔다.
삼절문의 사람들이 기웃거렸다.
처음에는 모두가 관심을 보였지만 어설픈 필법에 하나 둘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악필인 연적하가 부적을 만들자 묘하게 그럴싸해 보였다.
연적하가 완성된 ‘극난부’를 이화에게 내밀었다.
“‘극난부’라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부적입니다. 지니고 있으면 도움이 될 거예요.”
“감사해요.”
이화가 화사하게 웃으며 부적을 받았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인지라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녀가 부적을 접어 갈무리하자 구경만 하고 있던 설지영이 끼어들었다.
“저어 도사님, 저도 한 장 만들어 주시면 안 돼요?”
“그럴게요.”
연적하는 내친김에 ‘극난부’ 하나를 더 만들어 설지영에게 건넸다.
하지만 남자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생김새도 별 볼 일 없는 데다가 초짜로 보여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삼절문의 오 남 이 녀는 일각(15분)쯤 머무르다가 떠났다.
우두커니 앉아 모닥불을 응시하던 연적하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정말 효과가 있는지 봐야겠다.”
처음 만들어 본 두 장의 ‘극난부’는 구천현녀와 무관한 평범한 부적이다.
연적하는 부적의 힘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대나무 등짐을 둘러메고 삼절문이 사라진 방향으로 걸어갔다.
어차피 가는 방향이 같으니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었다.
반 시진(1시간)쯤 걸어가니 관도 한쪽에 ‘노화구’라는 표시목이 보였다.
거기서 조금 더 걸어가자 제법 넓은 강이 나타났다.
저 정도 크기의 강이라면 포구를 두고 다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포구를 놓고 싸운다고 했으렷다.’
그는 포구가 있음 직한 곳으로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일다경(약 20분)쯤 가자 희미하게 날 선 악다구니 소리가 들려왔다.
‘제대로 왔구나!’
과연!
한참 걸어가니 양편으로 갈라서서 서로에게 욕을 퍼붓는 사람들이 보였다.
각각 이십여 명으로 머릿수는 비슷했다.
연적하는 포구에서 가까운 반점으로 들어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뭘 드릴까요?”
점소이의 물음에 연적하는 돌아보지도 않고 답했다.
“따끈한 소면 하나.”
“다른 건 필요 없으시고요?”
“어.”
연적하가 쳐다보지도 않자 점소이는 입을 삐죽이며 돌아섰다.
고작 소면 하나로 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다니!
요리를 한 가지씩 주문한 다른 손님에 비하면 너무 좀생이였다.
잠시 후 점소이는 소면 하나를 가져다가 ‘탁’ 소리가 나도록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래도 연적하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육포 죽을 먹어서 배가 고프지 않았기에 소면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거참, 안 싸우네.’
양측은 아까부터 서로 ‘이놈 저놈’ 욕만 해 댈 뿐 칼을 뽑지 않았다.
서로 간의 전력이 비슷하니 선뜻 싸움을 시작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기다리던 연적하는 결국 젓가락을 뽑았다.
뒤이어 그가 막 소면 한 젓가락을 입에 문 순간이다.
말싸움만 하던 양측이 흥분한 소떼처럼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와아!”
“쳐라!”
“죽여라!”
난전이 시작되자 연적하는 소면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싸움에 집중했다.
그들 속에서 삼절문의 오 남 이 녀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연적하는 그중에서도 이화와 설지영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자신의 부적을 가져서 그런지 두 사람이 영 남 같지 않았다.
그는 이화와 설지영의 움직임에 따라 젓가락 든 손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그렇지! 그래, 아니야. 아냐. 어? 어? 그러다 죽어!’
흥분한 연적하의 팔꿈치에 스친 소면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직-.
그릇 깨지는 소리와 함께 국물과 소면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래도 연적하는 돌아보지 않았다.
처음 제작한 ‘극난부’의 주인이 칼에 맞아 죽을 판이니 그럴 만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