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75
375회. 선의(善意)와 좋은 일
쉬이익-.
이화는 상대의 도가 허리를 쓸어오자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노호방의 전어풍은 그녀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전어풍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며 도를 세 차례나 휘둘렀다.
채채챙-.
마지막 일격에 이화의 검이 뒤로 튕겨 났다.
전어풍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그녀의 앞으로 불쑥 다가갔다.
그리고 열려 있는 어깨를 박도로 힘껏 내리찍었다.
죽일 생각은 없다.
그저 어디 한 군데 베어 다시 싸움에 끼어들지 못하게 할 생각이다.
이화는 숨을 멈추고 어깨로 떨어져 내리는 도를 바라보기만 했다.
챙-.
뭐에 맞았는지 전어풍의 박도가 뒤로 젖혀졌다.
위기와 기회는 동시에 온다.
이화는 힘에 밀려 젖혀졌던 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녀의 검 끝이 전어풍의 어깨를 찔렀다.
“윽!”
전어풍의 입에서 묵직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이화는 전어풍이 도를 떨구고 뒷걸음질 치자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설지영에게 노호방의 방도 둘이 달라붙었는데 위태위태해 보였다.
막 설지영에게 달려가려는 이화의 앞을 칠 척 장신의 남자가 가로막았다.
노호방의 부방주 천화엽이었다.
“이화! 시만 잘 쓰는 계집인 줄 알았는데 제법 검술이 뛰어나구나.”
“…….”
이화는 감히 대꾸하지 못하고 눈만 끔뻑거렸다.
노호방의 부방주가 왜 자신에게 싸움을 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천화엽이라면 오월락도 감당하기 어려운 고수였다.
그런 사람이 왜 이름도 없는 자신의 앞에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그녀가 의아하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천화엽은 대도를 휘둘렀다.
부웅 붕-.
벌써 바람 가르는 소리부터가 달랐다.
이화는 나비처럼 가볍게 이리저리 몸을 피해 다녔다.
반격은 꿈도 꾸지 못했다.
하지만 포구에서 양쪽이 뒤섞여 싸우다 보니 피하기도 마땅치가 않다.
어느새 그녀의 옷은 땀으로 흠뻑 젖고 말았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고 무릎도 후들거렸다.
“헉! 헉!”
헐떡거리던 이화는 천화엽을 향해 돌아섰다.
더 이상 달아날 힘이 없으니 이젠 죽든 살든 정면으로 승부를 내야 했다.
계속 그녀의 뒤만 쫓던 천화엽의 눈에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죽어라!”
천화엽의 대도가 단순무식하게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슈각-.
이화는 머리 위로 검을 들어 올렸다.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지만 누가 봐도 검과 몸이 양단될 상황이었다.
대도와 검이 맞닿는 순간.
쩡-.
얼음장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대도가 홱 돌아갔다.
대경실색한 천화엽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한순간 막강한 잠력이 대도를 후려쳐 상반신까지 반 바퀴나 돌았다.
‘헉! 삼절문의 이화가 이 정도 고수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저 정도 고수라면 십언에 소문이 나고도 남았다.
가만히 숨을 조절하던 천화엽은 슬며시 자신의 대도를 살폈다.
‘헉!’
대도 중간에 젓가락 두께의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이화의 검에 맞은 게 아니구나!’
소름이 오싹 돋았다.
벼락처럼 떨어지는 자신의 대도에 저런 구멍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건 천외천의 영역이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절대고수가 삼절방을 돕고 있는 게 분명했다.
천화엽은 즉시 대도를 거두고 한 걸음 물러났다.
“이 소저! 여기까지만 합시다.”
이화는 호랑이처럼 날뛰던 천화엽이 그만 싸울 뜻을 보이자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그와 싸울 자신도 없었다.
그녀는 천화엽이 왜 갑자기 상체를 비틀고 물러났는지 알지 못했다.
싸움을 진두지휘하던 부방주 천화엽이 멈추자 노호방 사람들도 칼을 거두었다.
그러자 삼절문 문주 주채심이 소리쳤다.
“천화엽! 노하구의 포구는 신주상방에서 관리할 것이다! 동의하느냐!”
천화엽이 씁쓰름한 얼굴로 답했다.
“알겠소. 우리 노호방은 삼절문의 일에 관여하지 않겠소.”
조마조마한 얼굴로 지켜보던 삼절문도들이 ‘와아!’ 환호성을 내질렀다.
잠시 후 천화엽은 노호방의 방도들을 이끌고 포구를 빠져나갔다.
싸움이 끝나자 이화는 급히 설지영을 찾았다.
두 명의 노호방 방도와 싸우던 것을 마지막으로 본 터라 걱정이 돼서다.
“사매. 괜찮아?”
“네, 사저는요? 천화엽은 어떻게 한 거예요?”
설지영의 물음에 이화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몰라. 미친 사람처럼 날뛰더니 갑자기 멈추더라고. 아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어. 사매는? 두 명하고 싸우는 걸 봤는데 하나도 안 다쳤네?”
“마음이 약한 건지, 결정적인 순간에 멈칫거리길래 제가 반격해서 겨우 물리쳤어요. 그중에 한 사람은 갑자기 달아나더라고요.”
신기한 얼굴로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에게 오월락이 다가왔다.
“모두 잘 싸웠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네.”
“괜찮아요.”
두 사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던 오월락이 이화에게 시선을 돌렸다.
“천화엽은 노호방 최고의 고수다. 네가 그를 꺾다니 믿어지지 않는구나. 무슨 기연이라도 있었던 거냐?”
“아뇨. 아무것도 없어요. 사형도 잘 아시잖아요.”
“대사형, 사저가 그러는데 천화엽이 혼자서 날뛰다가 돌아간 거래요. 혹시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요? 포구가 아니라 다른 걸 노릴 수도 있잖아요?”
“다른 거라고?”
오월락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생각해 봤지만 노호방이 노릴 만한 게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설지영이 웃으며 이화를 가리켰다.
“오늘 이 사저를 가까이서 보고 한 눈에 반한 건지도 모르죠. 누가 알겠어요?”
“어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화가 손사래를 쳤다.
그제야 오월락도 설지영의 농담임을 알고 피식 웃었다.
“천화엽이 왜 오늘 물러갔는지 모르겠으나 월산상방은 포기하지 않을 게다. 특히 이화, 너는 천화엽의 속셈을 알기 전까지 조심하도록 해라. 오늘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했으니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게다.”
“예. 사형.”
이화의 대답을 듣고서야 오월락은 자리를 떠났다.
문득 설지영이 말했다.
“사저, 이게 다 무당파 속가제자가 준 부적 때문은 아닐까요?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 준다고 했잖아요.”
“그런가? 어라? 그러고 보니 이번 싸움에서 우리만 멀쩡하네?”
이화가 놀란 얼굴로 설지영을 보았다.
문주는 물론 오월락조차도 자잘한 자상을 입었는데 자신들만 무사했다.
두 사람은 지니고 있던 부적을 꺼내 보았다.
분명 괴발개발 쓴 글자인데 부적이라 생각하니 신묘해 보인다.
“오룡궁의 술사들이 신통하다더니 정말 그러네.”
“이럴 줄 알았으면 몇 장 더 받아 둘 걸 그랬어요.”
“어디에 쓰려고?”
“부적이라고 꼭 ‘극난부’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돈을 벌게 해 준다거나, 좋은 남자를 만나게 해 주는 부적도 있다고 하던데.”
부적을 조심조심 갈무리하는 설지영의 눈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건 이화도 마찬가지였다.
‘연남천이라고 했나? 다음에 만나면 꼭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겠다.’
점소이가 다가와 활짝 열린 창문을 거칠게 닫았다.
“손님, 날도 추운데 왜 문을 열고 그러세요? 청소는 제가 하면 되는데, 깨진 소면 그릇은 어떻게 하실 거에요?”
“얼마냐?”
“삼십 문은 주셔야 할 거예요.”
“헛소리. 낭인이 하루 오십 문을 받는데 그릇 하나가 삼십 문이라고?”
건원표국의 소지웅 덕분에 돈 개념이 제대로 박힌 연적하가 쏘아붙였다.
“그럼 열 문만 내세요.”
연적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구에서의 싸움도 끝났으니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소면은 얼마야?”
“이십 문요.”
연적하는 전낭에서 이십오 문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돈을 확인한 점소이가 잔뜩 부은 얼굴로 쏘아붙였다.
“다섯 문이 비잖아요.”
“쓰던 그릇이 무슨 열 문이나 해? 다섯 문이면 충분하지.”
“쳇!”
점소이는 툴툴거렸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사실 쓰던 그릇값으로 열 문은 조금 심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연적하는 대나무 등짐을 짊어지고 밖으로 나갔다.
포구에 있던 삼절문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관도를 따라 터덜터덜 걷던 연적하가 중얼거렸다.
“젠장, 부적의 효험을 확인하려고 했는데.”
위기의 순간 젓가락을 던졌다.
이화와 설지영은 무사했지만 그걸 부적의 효과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좋은 일을 했으니까 법력이 좀 쌓였으려나.”
살면서 작정하고 좋은 일을 해 본 적이 없는지라 괜히 싱숭생숭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그게 진짜 좋은 일이었는지 의심스러웠다.
따지고 보면 삼절문에만 좋은 일이지 노호방에는 몹쓸 짓이 아니던가!
“아 몰라.”
그는 선의를 가지고 부적을 준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 주변일까지 생각하는 건 지금 자신의 수준에서 너무 벅찼다.
***
일월 오 일.
하남성.
개봉.
정오 무렵.
추레한 몰골의 남자가 개봉성으로 들어왔다.
도사복을 보면 영락없는 도사지만 머리에 도관(道冠, 머리에 쓰는 건)이 없어 애매한 청년, 연적하다.
그는 출출했지만 허기를 꾹 누르고 발걸음을 북쪽으로 돌렸다.
개봉까지 왔으니 화상촌의 남연객점부터 들리려는 것이다.
경신술을 펼치지 않고 반 시진(1시간) 정도 걷자 마침내 화상촌의 표지목이 보였다.
화상촌으로 접어들자 연적하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조금 더 걷자 저 멀리 황하강 변을 끼고 서 있는 남연객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반가운 마음에 걸음을 재촉할 때다.
‘꽝!’ 하고 문짝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객점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헉!’
남연객점에 사달이 난 모양이다.
자신이 공동 주인이고, 구천노도 심통과 삼보절명 당운망까지 있는 객점에서 싸움이라니?
멍하니 보고 있는데 길바닥에 처박혔던 남자가 일어나 옷을 툭툭 털었다.
점입가경이라고 얼굴을 보니 당운망이다.
그런 꼴을 당하고도 그는 휘적휘적 걸어 객점 안으로 들어갔다.
“우웩!”
심통이 계산대 앞에서 허리를 꺾고 연신 속에 있는 걸 게워 냈다.
눈자위가 시퍼렇게 멍든 당운망이 그런 심통을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놈! 앞으로 사흘간은 입으로 토하고, 그 뒤로 사흘간은 뒤로 줄줄 쏟아 내야 할 게다! 살려 준 것을 고맙게 생각해라. 연 공자가 아니었으면 네놈은 죽었다.”
순간 심통이 ‘어헝!’ 소리와 함께 당운망에게 몸을 날렸다.
뒤이어 시퍼런 유엽도 날이 벼락처럼 당운망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사락-.
당운망의 정수리에 있는 머리털 몇 가닥이 잘려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일도양단할 것 같던 유엽도는 당운망의 정수리에 멈춰 있었다.
“이 개 후레자식! 씨벌 놈! 이, 이 곰팡이 같은 새끼를! 으아아아!”
얼마나 원통했던지 심통의 눈에서 파르스름한 안광이 줄줄 흘러내렸다.
연적하의 해독약만 아니라면 진즉에 쳐 죽였을 것이다.
처음 볼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날이 지날수록 점점 더 꼴도 보기 싫다.
배에 힘을 줘 그런지 또다시 명치에서 뭔가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다.
무슨 독인지는 몰라도 앞으로 육 일간은 고생을 해야 할 모양이다.
심통이 원독 어린 눈으로 당운망의 시큼털털한 두피를 노려볼 때다.
덜커덩 소리와 함께 객점 문이 열리며 기괴한 몰골의 사내가 들어왔다.
피곤한 얼굴로 토사물을 치우던 상도가 걸레를 밀어 놓고 쪼르르 달려 나갔다.
“손님, 어서 오세요.”
연적하는 상도를 지나쳐 심통과 당운망 앞으로 걸어갔다.
마음대로 하라고 뻗대던 당운망이 새로 등장한 인물에게 시선을 돌렸다.
“응? 연 공자? 약사여래 백일운을 못 만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