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16
416회. 사람 맞아요?
탈혼마검 노도경이 입가에 남아 있는 핏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되물었다.
“무당파 술사라고 하지 않았느냐?”
“술사에 대한 편견을 버려요.”
“속가제자는 맞고?”
“본래 내가 다소 부풀리거나 줄이는 건 있어도 없는 말은 안 하거든요?”
“그래, 그럴 것 같다. 그건 그렇고 나를 죽일 게 아니라면 그만했으면 하는데, 어찌 하겠느냐?”
“그럼 그만해요. 뭐 좋은 일이라고.”
연적하는 청사를 품에 갈무리했다.
뒤이어 노도경도 장검을 납검함으로 두 사람의 싸움은 일단락됐다.
노도경은 그 자리에서 진기요상(眞氣療傷)에 들어갔다.
연적하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다.
삼진상방의 차금손 방주와 신지의 행수가 쭈뼛쭈뼛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저어…….”
“왜요?”
연적하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차금손은 황급히 눈을 내리 깔았다.
“저는 삼진상방의 방주 차금손이라 합니다. 어디까지 아시는지 모르겠으나, 악적들에게 선대로부터 일군 재산을 몽땅 빼앗겼습니다. 한 번만 도와주시면 그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아, 권리증 뭐 그 얘기 하는 거예요?”
“예, 예, 맞습니다. 운학상방의 용 방주가 제가 본 적도 없는 가짜 권리증으로 삼진상방을 빼앗았습니다. 삼진상방이 위태로워지자 단심표국까지 끼어들어 차용증을 강탈해 가려 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연적하가 단심표국의 총표두 낙성검 추성래를 힐끔 보았다.
추성래는 변명도 하지 못하고 어깨를 움츠렸다.
신지의 행수가 한마디 거들었다.
“소협, 저희 삼진상방은 정직과 신뢰로 일군 상방이에요. 한 번만 도와주세요.”
연적하가 차금손과 신지의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사정은 딱한데 나도 갈 길이 바쁜 사람이라……. 경비도 넉넉하지 않고…….”
돈을 달라는 소리다.
다행히 장사꾼인 차금손은 개떡 같은 소리를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저희 삼진상방과 운학상방, 단심표국의 본점은 모두 무한에 있습니다. 소협께서는 어디로 가시는지요?”
“아, 무한을 지나기는 해요.”
“같은 방향이군요! 그럼 소협의 일정에 차질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경비 문제라면 저희 삼진상방에서 넉넉히 챙겨 드리겠습니다.”
“넉넉히라면 얼마나?”
연적하가 차금손을 빤히 보았다.
나중에 서로 얼굴 붉히지 않으려면 돈 문제는 확실히 해야 했다.
잠시 생각하던 차금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지금 삼진상방의 상황이 좋지 않아 많이 드릴 수는 없습니다. 제가 최대한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은 은자 이천 냥 정도입니다만…….”
“괜찮네요.”
연적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곤란한 상황에 처한 차금손을 돕는 건 적선 수행과도 같았다.
베풀기만 하는 적선 수행으로 돈을 벌다니.
손해만 보던 적선 수행에 뭔가 새로운 길을 연 것 같은 느낌이다.
연적하가 돕겠다고 하자 차금손과 신지의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윽고 신지의가 슬쩍 물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은인께서 무당파 속가제자라고 하신 것 같은데……. 사실인가요?”
“예. 오룡궁의 제자로 도호(道號)가 남천입니다.”
“속가제자도 도호를 받으시나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연적하는 대충 얼버무렸다.
자신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말해 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다행히 차금손과 신지의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삼진상방 사람들이 별말 없자 연적하는 추성래 일행에게 걸어갔다.
“아이고, 오래 기다렸지요?”
천연덕스러운 연적하의 인사에 추성래는 오체투지 했다.
그게 이미 다 알고 온 천외천의 고수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용서해 주십쇼.”
함께 있던 표사들도 덩달아 이마를 땅에 처박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용서해 주십쇼!”
그러자 연적하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이고! 내가 뭘 용서해요? 나한테 뭐 잘못한 게 있다고. 잘못은 저 쪽에 하고 왜 나한테 빌어요?”
추성래가 이마를 땅에 힘껏 처박으며 소리쳤다.
“저희는 소협에게 굴복한 것이지 삼진상방에 굴복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삼진상방이나, 운학상방이나, 오십보백보입니다. 장사꾼들이 언제 손해 보는 짓 하는 거 보셨습니까?”
추성래는 은근 상방을 불신하는 것 같았다.
멀리서 보고 있던 차금손이 ‘저 사람이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소리쳤다.
그래도 추성래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소협! 용서해 주십쇼!”
곰곰 생각하던 연적하가 입을 열었다.
“용서는 참 좋은 말인데, 표사가 강도짓을 하려고 했으니 그냥 넘어가 줄 수는 없겠네요. 어떻게 해야 두고두고 잘했다는 소리가 나오려나.”
그 말에는 추성래도 찍소리 하지 못했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신들이 강도짓을 하려던 건 사실인 까닭이다.
“일단 못된 짓에 사용한 저 말들은 전부 압수. 그리고 또 뭐가 있으려나.”
연적하는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노도경처럼 표사들을 때려죽일 생각은 없으니 이익이라도 취할 생각이다.
추성래는 상대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았지만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총표두 월봉이라고 해 봐야 한 달에 은자 네 냥.
그나마도 생활비로 처에게 다 건네고 수중의 돈은 백 문이 전부였다.
천외천의 고수 앞에 용서해 달라고 백 문을 들이밀 수는 없지 않은가!
머리를 숙이고 있던 표사들이 급히 시선을 교환했다.
하지만 고작 표사인 그들의 주머니 속 사정은 추성래보다 나빴다.
몇몇이 십 문, 이십 문을 꺼냈다가 슬그머니 도로 집어넣었다.
금액이 부끄러워 감히 연적하 앞에 내밀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그런 표사들의 귓가에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들어 봤는지 모르겠네. 내가 지난해에 낭인으로 일한 적이 있는데, 하루 종일 칼질하고 오십 문을 받았어요. 그런데 고생해서 그런지 그 돈이 그렇게 커 보이더라고.”
연적하의 말에 표사들은 푼돈을 긁어모았다.
잠시 후 추성래 앞에 이백 문이 쌓였다.
추성래가 이백 문이 든 돈 주머니를 공손히 연적하에게 내밀었다.
“소협, 부끄럽지만 받아 주십쇼.”
연적하는 사양하지 않았다.
“내가 이런 돈은 받지 않는데 그쪽 사정이 딱해서 받는 겁니다. 원래 관부에 넘기려고 했는데, 그래 봐야 금방 풀려날 테고. 이쯤에서 봐주지요.”
“감사합니다!”
추성래는 죽다 살아난 얼굴로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그의 말대로 관부에 넘겨져도 국주가 힘을 쓰면 바로 풀려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외부에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
단심표국은 신뢰를 잃을 테고, 최악의 경우 문을 닫게 될 수도 있다.
그럼 자신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세상을 떠돌아다녀야 한다.
자기 한 사람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딸린 가족들까지 생각하면 실로 끔찍한 후과(後果)가 아닐 수 없다.
‘국주님에게 차 방주와 신 행수의 입단속이나 시키라고 해야겠다.’
추성래와 표사들은 행여나 연적하의 마음이 변할까 봐 서둘러 말을 넘기고 떠났다.
차금손을 지키던 하신우 표두와 두 명의 표사는 계속 남기로 했다.
그들은 마부를 도와 마차 수리에 매달렸다.
진기요상으로 위기를 넘긴 노도경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쳐 죽이려던 표사들은 벌써 떠났는지 보이지 않고, 세 명의 표사만 남아 있었다.
‘이거 참…….’
다들 바쁘게 움직이는데 자신만 하는 일 없이 앉아 있다.
눈치 줄 사람도 없건만 괜히 민망해진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마차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가 미처 한 손 거들기도 전에 표사들이 손을 털고 일어났다.
수리가 끝난 것이다.
표사들은 돌아다니며 흩어진 말을 수습하고, 마부는 마부석으로 올라갔다.
얼추 출발 준비가 끝난 듯하자 차금손과 신지의는 마차로 향했다.
이윽고 차금손이 마차에 타려고 막 발을 걸칠 때다.
언제 다가왔는지 연적하가 그를 불러 세웠다.
“방주님.”
“예.”
“말 탈 줄 알아요?”
“소싯적에 부지런히 탔지요.”
이번에는 연적하가 신지의를 보았다.
“그쪽은요?”
“저도 상행을 다닐 때 종종 탔어요.”
“잘됐네요. 나는 말이 영 불편해서. 마을에 드는 놈으로 골라 타세요.”
마차를 양보하라는 소리다.
차금손과 신지의는 감히 반대하지 못하고 뒤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막 마차에 오르려던 연적하가 멀찍이 뻘쭘한 얼굴로 서 있는 노도경에게 말했다.
“아저씨는 나랑 같이 가요. 아직 뼈마디가 쑤실 텐데.”
“험, 그러지.”
이미 볼 꼴 못 볼 꼴 다 보여 준 노도경은 사양하지 않았다.
아직 내상이 다 낫지 않아 말보다는 마차가 편했다.
노도경과 연적하가 마차에 오르자 마부가 긴 채찍을 가볍게 휘둘렀다.
덜그럭 덜그럭.
꽤 오랫동안 미동도 않고 있던 마차가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다.
노도경이 옆자리에 앉은 연남천을 힐끔거렸다.
“왜요?”
“이상해서 그러네.”
“뭐가 이상해요?”
“방금까지 죽기 살기로 싸운 사람에게 지나친 배려가 아닌가 싶어서.”
“풋! 누가 죽기 살기로 싸웠다고 그래요? 설렁설렁했구만.”
‘제길…….’
노도경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뒤늦게 격전 중에 웃고 있던 그의 축 쳐진 눈매가 떠올랐다.
착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저씨를 마차에 태워 주는 이유는요. 그동안 나에게 함부로 하지 않아서예요. 지내 보면 알겠지만 내가 계산이 좀 확실한 사람이거든요.”
“그건 인정하지.”
진기요상 중에도 귀는 열려 있다.
노도경은 연남천이 차금손이나 추성래와 흥정하는 소리를 모두 들었다.
그는 표사들의 동전까지도 털어 먹을 정도로 집요했다.
“내가 워낙 뒤통수 맞는 걸 싫어해서요.”
“믿어지지 않는군. 자네의 뒤통수를 치는 사람이 있었다니.”
“내가 원래부터 계산적인 사람은 아니었어요. 순수 그 자체였다고나 할까. 그런데 각박하고 더러운 세상이 나를 이렇게 만드네요.”
“각박하고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네. 우리가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어서 그런 걸세. 이걸 완전히 깨부수면 새 하늘이 열리지. 우리 마교의 교리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뭐가 어때요?”
“마교에 입교하게. 자네라면 천인(天人)의 자리에 바로 오를 수 있을 걸세.”
“천인요?”
“마교에서는 교주님과 육문(六門)의 문주들을 천인이라 부른다네. 가히 하늘 아래 다시없는 지고한 자리이지.”
“교주는 알겠는데 육문은 뭐에요?”
“마교를 받치고 있는 여섯 개의 가문을 육문이라 한다네. 교주님도 육문에서 나왔으니 선택받은 가문이라 할 수 있지. 자네라면 육문의 문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걸세.”
“아니, 고수가 그렇게 많다고요?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을 왜 난 모르고 있죠?”
연적하는 기가 막혔다.
마교 교주야 그렇다 치고, 육문의 문주가 자신에 버금가는 고수라니?
유명교 교주, 천하십대고수, 백두마군들은 알아도 마교육문은 처음 듣는다.
“마교가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지 오래라 그런 걸세. 생각해 보게. 유명교가 분탕질을 치지 않았다면 천하가 유명교주와 백두마군들에 대해 알았겠는가?”
“와아…….”
연적하는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대로다.
유명교가 사고를 치지 않았다면 팔황신모가 그처럼 무서운 사람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마교 교주는 어떤 사람이에요?”
“어떻다니?”
“육문의 문주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나 되냐고요.”
“아하. 난 또 뭐라고. 교주님이 태양이라면 육문의 문주는 반딧불이네.”
“사람 맞아요?”
연적하가 반신반의한 얼굴로 노도경을 보았다.
대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그의 말만 들어서는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