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26
426회. 우리는 모두 염마왕의 권속이오
호광성.
여산.
명왕교.
광명정은 광명촌에서 가장 큰 전각으로 제의(祭儀)를 위해서나 가끔 사용되는 곳이다.
그 광명정에 모처럼 명왕교의 백두마군들이 모여들었다.
모두 특별한 손님인 마교 동방사자 탈혼마검 노도경을 접대하기 위해서다.
혼세검마 척진경이 조금 들뜬 얼굴로 입을 열었다.
“허허허! 오래 살다 보니 천하에 위명이 쟁쟁한 마교 순찰사자를 다 만나게 되는구려. 아무쪼록 본교와 마교가 좋은 관계를 맺기 바라오. 본교가 지금은 세가 작지만 곧 천하에 우뚝 서게 될 게요.”
노도경이 담담한 어조로 화답했다.
“마교와 명왕교가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명왕교에 네 분의 백두마군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 적월 진인이 잠시 포양호에 나가 있소.”
“그렇군요.”
아까부터 노도경을 힐끔거리던 혼천혈귀 강상피가 슬쩍 끼어들었다.
“그런데 사자께서는 나이가 어떻게 되시오? 탈혼마검의 명성은 이전부터 들었는데 얼굴이 너무 젊어 보여서…….”
“하하! 그래도 내일모레가 환갑입니다. 젊게 봐 주어서 감사합니다.”
“아! 마교의 신공이 깊어 다시 젊어지셨나 봅니다. 까딱 잘못했으면 말실수를 할 뻔했소. 사자의 외형이 사십 대로 보여서……. 허어.”
조금 거칠던 강상피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내공이 깊어지다 보면 종종 나이를 거꾸로 먹을 때가 있다. 그 과정을 반로환동이라 한다. 그가 볼 때 노도경은 반로환동에 든 사람이었다.
‘마교의 신공이 대단하구나.’
외부에서 힘을 끌어오는 백두마군들은 반로환동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아무리 수련이 깊어져도 육체의 나이를 속일 수가 없다.
유명교에서 반로환동에 가까운 사람은 팔황신모뿐이다.
같은 진언(眞言)을 익혔음에도 유독 그녀만 처음 만나던 날의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대화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노도경은 슬쩍 운을 뗐다.
“본교는 강호 활동을 접은 지 오래입니다. 부끄럽습니다만 명왕교의 소식을 얼마 전에야 들었지요. 명왕교가 욱일승천의 기세로 떠올랐는데,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말이 명왕교지 실은 유명교에 대한 질문이었다.
명왕교는 여산에 처박혀서 강호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악불 방천각이 의미심장한 미소로 노도경을 보며 답했다.
“명왕교의 비법은 이미 천하에 공개가 되어서 비결이라고 할 것도 없소.”
“내가 폐관수련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많이 알지 못합니다. 천하에 공개된 비법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드리기 전에 사자께서는 왜 그게 알고 싶으신 거요? 마교의 이름만 들어도 천하인들이 벌벌 떠는데, 무엇이 더 필요해서 그런지 궁금하구려.”
“하하, 거두절미하고 솔직하게 말씀드리지요. 지금의 마교는 동면 중인 곰과 같습니다. 마치 오래된 공동묘지처럼 고요하기 이를 데 없지요. 긴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합니다. 명왕교를 벌떡 일으켜 세운 그런 힘처럼 말입니다.”
노도경의 말에 백두마군들은 시선을 교환했다.
말하는 걸 들어 보니 초능을 얻기 위해 찾아온 모양이다.
하기야 다른 공법에 비하면 쉽고 간단하니 마교가 눈독을 들일 만도 하다.
척진경은 마교의 사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살짝 고개를 저었다.
거부의 뜻이다.
마교는 유명교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무서운 세력이었다.
유명교 진언이 마교에 넘어가면 명왕교의 자리가 더 좁아질 터였다.
‘노괴야 욕심이 지나치구나. 우리가 너희들 손에 진언을 넘겨줄 것 같으냐?’
만약 마교의 손에 진언이 넘어가면 명왕교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만다.
팔황신모를 배신한 것은 천하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다.
그런 자신들이 진언을 넘기고 마교의 들러리 신세가 될 수는 없었다.
팔주령의 수급에도 문제가 생긴다.
지금도 구하기 어려운 게 팔주령이다.
여기에 마교가 뛰어들면 명왕교는 팔주령을 구경도 하지 못할 공산이 높다.
진언을 알아도 팔주령이라는 기물이 없으면 십두마병은 만들 수 없다.
유명교와 명왕교의 근본은 십두마병.
근본이 막히면 명왕교는 꽃도 피워 보지 못하고 지고 말 게 분명하다.
노도경을 보는 강상피와 방천각의 표정도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유명교가 ‘태산’이라면 마교는 ‘대해’와도 같았다.
백두마군들 입장에서 노도경의 말은 ‘가진 자가 더 가지려는 욕심’에 불과했다.
물론 자신들도 같은 이유로 교주인 팔황신모의 뒤통수를 쳤지만 말이다.
척진경이 먼저 말했다.
“사자의 말씀을 들으니 답답한 심정이 이해가 가오. 하지만 본교의 공법이 대단하다 해도 마교의 신공만큼이나 하겠소? 본래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하더이다. 여담이오만 내 평생 소원이 마교의 신공 한 자락을 얻는 것이었소.”
완곡한 거절이다.
노강호인 노도경도 그걸 알았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본교의 신공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나 명왕교처럼 단시일 내에 삼류를 절정으로 바꿔 주지는 않습니다. 아시겠지만 본교의 신공은 뼈를 깎는 인고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 면에서 명왕교의 공법은 가히 천하제일이라 할 만하지요.”
그러자 다혈질인 강상피가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사자는 지금 우리 밑천을 빼 가려고 하는데,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시오. 마교라면 아무 상관도 없는 상대에게 신공을 호락호락 내어 주겠소?”
“마교와의 교분으로 부족하다는 말씀이십니까?”
노도경이 묵직한 시선으로 강상피를 보았다.
태산 같은 노도경의 기도에 강상피는 한순간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마교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마교 동방사자인 그는 자신보다 강했다.
분위기가 싸해지자 방천각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중재에 나섰다.
“허허허!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 같구려. 혼천혈귀(강상피)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오.”
“그럼 무슨 뜻인지요.”
“그가 상관 운운한 것은 교분을 두고 한 말이 아니외다. 본교가 삼류를 절정으로 바꾸어 준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오. 하지만 한 가지가 빠져있소. 그건 그 힘의 출처요.”
“출처라 하심은?”
“톡 까놓고 말씀드리리다. 우리는 모두 염마왕의 권속이오. 마교의 공법은 마신(魔神)에게서 나왔다고 들었는데, 맞소?”
“그런 부분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노도경은 선선히 인정했다.
‘상생’이나 ‘하생’과 달리 ‘천인’들은 마신 ‘천자마’가 남겼다는 신공을 익힌다.
마교 교주를 천자마의 화신으로 여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주인(염마왕과 마신)이 서로 다른데 가능하겠소? 본교의 공법을 익히는 순간 염마왕의 권속이 되오. 마교 교주께서 그걸 허락하겠냐는 말이오.”
“염마왕은 신(神)입니까?”
노도경이 방천각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만약 신이 아니라면 문제가 될 게 없다. 마교의 ‘천자마’는 마신, 즉 신이니까. 마교도가 염마왕의 권속이 된다 해도 신경쓰지 않을 게다.
하지만 방천각의 대답은 기대와 달랐다.
“염마왕은 저승을 다스리는 신이오. 초능을 받으려면 그분의 권속이 되어야 하고. 사자께서 그분의 권속이 되겠다면 본교의 공법을 가르쳐 드리리다.”
“염마왕이 저승의 신이며, 그의 권속이 되어야만 공법을 배울 수 있다면 사양하겠습니다. 내가 들은 소문과는 많이 다르군요.”
“어떤 소문을 들으셨소?”
“수도자를 제물로 바쳐 초능을 얻는다. 그렇게 얻은 초능의 대가로 사망 시에 마물이 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 보면 그렇소.”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염마왕의 권속이 되는 것과 마물에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본교의 공법을 배우지 않겠다면서 그건 왜 묻소?”
“만에 하나 교주님께서 관심을 가지면 설명해야 하니 알아 두려 합니다.”
방천각이 척진경과 강상피를 힐끔 보았다.
말해 줘도 되나 싶어서다.
강상피는 애매한 표정이었지만 척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 동방사자가 명왕교의 공법을 거부했다는 건 그들과 맞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면 숨길 것도 없었다.
강상피도 뒤늦게 그런 생각을 했던지 동의를 표했다.
“그 부분은 유명교주인 팔황신모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더이다. 우리는 그것이 제물로 인한 업(業)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을 뿐이오.”
노도경은 방천각의 입가에 맺힌 씁쓸한 미소를 보고 그것이 사실임을 알았다.
‘업이라니? 해괴한 소리를 하는구나.’
마교에도 사람을 희생하여 연공하는 신공이 몇 개 있다.
하지만 그 어느 신공도 업으로 인해 당사자가 마물화되는 것은 없었다.
명왕교는 신비한 초능만큼이나 모든 것이 특이했다.
생각에 잠긴 노도경의 귓가로 방천각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런데 사자의 방문 시기가 참으로 괴이하구려. 지난밤 광명정에 침입자가 들어와 분탕질을 치고 달아났는데, 혹 아는 바가 없소?”
“전혀요. 살다 보면 왕왕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야말로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겠지요.”
방천각은 더 이상 그 일을 묻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지난밤의 불청객과 마교 사자 사이에 이렇다 할 접점이 없어서다.
마교 동방사자 노도경은 세 명의 백두마군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고 떠났다.
별반 소득이 없었지만 노도경의 표정은 밝았다.
만에 하나 일이 잘 풀려 명왕교의 공법을 얻었어도 문제였다.
그랬다면 언젠가 연남천과 다시 마주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능글맞은 연남천을 떠올리자 속이 불편해졌다.
딱히 손해 본 것은 없는 것 같은 데 왜 이리 찜찜한지 모르겠다.
***
구강.
두창현.
황방산.
정오 무렵.
대나무 등짐을 진 청년이 황방산 초입에 나타났다.
이틀 전에 신항진을 떠난 연적하다.
그는 포양호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기어코 황방산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야아! 그 노인네 경치 좋은 데로 왔네. 미안해서 어쩌나.”
물론 그 노인네는 적월 공취산을 의미했다.
연적하는 나들이 나온 사람처럼 주위를 휘휘 둘러보며 느긋하게 산으로 들어갔다.
그가 늦가을 산이 주는 정취를 감상하며 걸을 때다.
근처에서 ‘쿵! 쿵!’ 하고 나무패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에 이끌려 따라가 보니 바짝 마른 중년인이 땀을 뻘뻘 흘리며 나무를 찍고 있었다.
연적하는 한쪽에 서서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구경꾼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지 남자가 도끼질을 멈추고 슬쩍 고개를 돌렸다.
“무슨 볼일 있소?”
“아저씨, 이 산에 대해서 좀 알아요?”
“이 산의 나무를 내다 판 지 십 년이 다 돼 가니 안다고 할 수 있겠지.”
이야기가 길어질 듯하자 남자, 이삼은 도끼를 내려놓고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나무하러 자주 와요?”
“뭐가 궁금해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생각은 하지 마슈.”
“왜요?”
“아직 소문 못 들었소?”
“소문요?”
“이거 못 들은 얼굴이군. 잘 들으쇼. 산 위에 해원사라고 작은 사찰이 하나 있소.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곳에 요괴가 출몰하면서 승려들도 싹 다 떠났소. 지금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황방산에 오르기만 하면 사라진다오.”
“아저씨는 멀쩡하잖아요?”
“나는 보다시피 초입에서만 살짝 나무를 해 가니 괜찮은 거고. 중턱에만 가도 흔적 없이 사라진다니 그쪽도 그냥 내려가는 게 좋을 거요.”
“해원사는 어디쯤 있어요? 산길 따라 올라가면 돼요?”
“반 시진(1시간) 정도 곧장 올라가 다 보면 큰 바위 앞에서 갈림길이 나오는데, 거기서 오른편이오. 바위에 해원사 가는 방향이 새겨져 있으니 보면 알 게요. 정말 해원사에 가려고 그러우?”
“요괴 때문에 그런 거라면 난 괜찮아요. 최근에 도술을 좀 배웠거든요.”
“그쪽이 어디서 뭘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괜한 객기 부리지 마슈. 조만간 두창현에서 조사를 한다고 하니 그 이후에 가든가.”
이삼은 빨리 일을 마치고 내려갈 생각에 다시 도끼를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