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25
425회. 자네와 다니면서 이렇게 됐네
탈혼마검 노도경은 쉽게 사람을 찾았다.
평소 세상 물정 모른다며 놀리던 연적하도 그 점은 배우고 싶을 정도였다.
노도경은 맥을 잘 짚으면 된다고 했다.
그는 지나가던 무인 하나를 잡아서 최근에 잡혀 온 숙수가 있는지 물었다.
무인은 숙수에 대해 술술 털어놓았다.
광명촌에 숙수가 셋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한 달 전쯤 들어온 신입이라나.
새로 온 숙수의 집을 알아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숙수의 이름이 문유백이라는 것은 집에 있던 그의 처가 알려 준 것이다.
노출을 꺼리는 노도경이 문유백의 처를 맡았다.
그리고 어차피 명왕교와 부딪쳐야 하는 연적하가 문유백을 구하기로 했다.
광명정은 마을에서 가장 큰 전각이어서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연적하는 제집처럼 정문으로 광명정에 들어갔다.
그리고 망나니처럼 날뛰고 있는 십두마병 하나를 바닥에 처박았다.
십두마병들이 자신을 포위했지만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건 제단 앞에 서 있는 우두머리를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물로 변한다면 혹 모를까?
지금의 저 모습은 자신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유명교주와의 만남이 너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눠 봤지만 역시나다.
이 정도라면 어렵지 않게 문유백을 빼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 두 분 중에 누가 문유백이에요?”
죽다가 살아난 문유백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저, 접니다.”
그의 얼굴을 본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가(酒家)의 남매와 닮은 걸 보니 그가 확실한 것 같다.
제단에서 불청객과 숙수의 대화를 지켜보던 악불 방천각이 한마디 했다.
“그는 우리 광명촌의 숙수인데 무슨 일이냐?”
“그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거든요. 참, 혹시 적월이 어딨는지 알아요?”
방천각이 어이없는 얼굴로 청년을 보았다.
점입가경이라더니 딱 그 꼴이다.
제사에 난입해 십두마병을 때려눕히더니, 이젠 백두마군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
“그는 본교의 백두마군이다. 왜 그를 찾느냐?”
“그 사람을 꼭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서요. 광명촌에 있나요?”
“적월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누구냐?”
“거기까지는 몰라도 돼요. 그가 광명촌에 있냐고요.”
“광명촌에 없다. 네 사문을 말한다면 그가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마. 설마하니 후환이 두려워 사문조차 밝히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
방천각은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살심을 억누르고 대화를 이어 갔다.
그의 사문까지 요절을 내고 싶어서다.
“가전무공을 익혔는데요?”
연적하가 상대를 빤히 쳐다보았다.
술법은 무당파의 것이지만, 무공은 가전무공이었으니 거짓말이 아니었다.
“가전무공이라. 십두마병을 한 수에 제압한 걸 보면 제법 유명한 집안이겠구나? 사대세가냐?”
“아닌데요? 난 와룡장 출신이에요. 지금은 쫄딱 망해서 사라졌지만.”
“와룡장? 설마 월하교당이 세워진 언사의 장원을 말하는 게냐?”
“잘 아시네. 사문을 가르쳐 줬으니까 약속대로 적월이 어딨는지 말해 봐요.”
“그 뭐 어려운 일이라고. 적월은 포양호에 있는 황방산으로 갔다. 이곳은 경쟁이 심해서 제물 구하기가 쉽지 않거든. 씨가 말랐다고나 할까.”
방천각은 선선히 적월의 행적을 알려 주었다.
어차피 곧 죽을 놈이니 숨길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만에 하나 놈이 이 자리에서 달아나면, 그건 그거대로 괜찮았다.
그가 적월을 귀찮게 하는 동안 자신은 천두마왕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으니까.
이래저래 자신이 손해 볼 일은 없었다.
“약속은 지켰으니 이제 그만 죽어라.”
말과 함께 방천각이 손을 까닥였다.
기다렸다는 듯 아홉 명의 십두마병들이 각자의 병장기를 뽑아 들었다.
십두마병들이 막 연적하를 덮치려 할 때다.
연적하가 품 안에서 ‘흑운차일부(黑雲遮日符)’를 꺼내 허공에 던졌다.
순간 광명정이 검은 구름으로 가득 찼다.
연적하는 바람같이 달려가 한 손으로 문유백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가 막 자리를 떠나려 할 때 문유백이 애원했다.
“소협, 제단에 있는 여승도 좀 구해 주십쇼. 제 처제입니다.”
연적하는 문유백을 옆구리에 끼고 제단으로 달려갔다.
그때 어둠 속에서 미친 듯한 광소가 들려왔다.
“크하하핫! 술사였단 말이지! 본좌가 광명정에서 제물을 빼앗길 것 같으냐!”
말과 함께 섬뜩한 파육음이 들렸다.
“봉천명 마인위일 성령불이(奉天命 魔人爲一 星靈不移)…….”
뒤이어 괴이한 주문과 함께 짙은 혈향이 광명정을 채워 나갔다.
제단 쪽으로 달려가던 연적하는 즉시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여승이 죽었으니 이제는 문유백을 데리고 명왕교에서 빠져나가야 했다.
콰지직!
창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오니 휘영청 밝은 달이 천지를 비추고 있다.
연적하는 협곡 입구를 향해 바람처럼 달려갔다.
뒤이어 십두마병들도 광명정의 창문을 부수고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잡아라!”
십두마병들이 고함을 지르며 불청객의 뒤를 따라붙었다.
광명촌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명왕교까지 흘러 들어온 사람들은 허둥지둥 몸을 숨겼다.
집 안에 있던 사람들도 급히 문을 걸어 잠갔다.
십두마병들이 오늘처럼 집단으로 누군가를 잡겠다고 몰려다닌 적은 없다. 광명촌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광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연적하가 문유백을 옆에 끼고 달렸지만 십두마병들은 좀처럼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거리는 점점 벌어졌다.
노도경 덕분에 경신술이 부쩍 늘어난 연적하는 오히려 뒤를 돌아보는 여유까지 발휘했다.
광명촌에서 협곡 입구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미 노도경이 한차례 쓸고 지나갔는지 입구는 휑하니 뚫려 있었다.
부서진 문짝 주변에 십여 구의 시체가 보였다.
시체만 남아 있는 걸 보니 경비 무사들은 십두마병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쯧! 그냥 목책을 넘어가도 됐는데.’
노도경의 무위로도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는 죽이고 부쉈다.
역시 마교답다고나 할까.
연적하는 바람처럼 부서진 문을 통과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뒤이어 십두마병들이 목책에 도착했다.
그들은 더 이상 상대가 보이지 않자 추격을 포기하고 목책에 머물렀다.
달밤에 벌어진 한바탕 소란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
구강.
신항진.
연적하와 노도경은 문유백의 주가(酒家)에서 다시 만났다.
문유백 부부는 어린 자녀를 품에 안고 ‘늦게 와서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문유백의 처는 동생의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광명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 까닭이다.
오히려 그녀는 문유백에게 여산 근처로 가지도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다음 날 아침.
문유백은 은인인 연적하와 노도경을 위해 정성껏 식사를 준비했다.
연적하와 노도경은 마주 앉아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
두 사람 모두 이제 서로 다시 볼 일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 무당파 제자와 마교도의 동행은 무림사에서 보기 드문 경우였다.
“아저씨는 광명촌에 다시 갈 거죠?”
“그럴 생각이네.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고 하지 않던가. 상대가 비록 별 볼 일 없는 명왕교라 해도 배울 게 있다면 배워야지.”
“좋은 것만 배워요. 괜히 이상한 거 배웠다가 몸 버리지 말고.”
“걱정해 줘서 고맙네. 자네도 명왕교에 볼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뭐 이제 됐어요. 입 가벼운 어떤 늙은이 덕분에 안 가도 돼요.”
“광명정에서 무슨 소릴 들었나 보군.”
연적하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음식으로 젓가락을 뻗었다.
그가 앞으로 명왕교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 모르니 조심해야 했다.
노도경은 연남천을 힐끔 보았지만 더 묻지 않았다.
괜히 더 물었다가 또 세상 물정 모른다는 소리나 듣게 될 것 같아서다.
식사가 거의 끝나 갈 무렵이다.
문세아가 주뼛쭈뼛 다가와 연적하 앞에 돈을 내려놓았다.
“깜빡 잊고 있었네요. 여기 나머지 사십 문이에요. 감사합니다.”
“내가 이래서 애들을 싫어해. 꼬마야, 이런 건 깜빡하면 안 돼. 나니까 가만있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뒤에서 칼 맞았어. 돈 계산은 그때그때 해야 되는 거야.”
연적하가 돈을 쓸어 담자 노도경이 말했다.
“험! 이보게. 그 사십 문은 내 것일세. 그걸 꼭 내 입으로 말해야 하나?”
“누가 뭐래요? 내 앞에 널려 있으니까 일단 치운 거예요. 원래 그렇게 의심이 많아요?”
그러자 노도경이 연적하 앞으로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런 거라면 사과하지. 지금 주게.”
“와! 진짜. 내가 사십 문으로 이런 오해를 다 받아 보네. 자요. 자.”
노도경은 손바닥에 올려진 사십 문을 꼼꼼히 세어 본 후에 갈무리했다.
“내가 본래 의심이 없는 사람인데 자네와 다니면서 이렇게 됐네.”
“의심이 없기는 개뿔. 의인이 있다는 걸 믿지 못해 죽이면서 무슨.”
마교의 율법인 의인살(義人殺)에 대한 비난이었다.
“그건 오핼세. 의인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의인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본교의 가르침이네. 그러니 세상의 의인은 위선자일 뿐이지.”
당당한 노도경의 말에 연적하는 반박하지 못했다.
십전무후 남궁연이라면 모를까?
소학(小學)을 겨우 뗀 연적하에게 노도경과의 토론은 무리였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문유백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주가를 나섰다.
이윽고 두 사람은 간단한 작별 인사를 나누고 미련 없이 헤어졌다.
연적하는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갔고, 노도경은 여산으로 향했다.
***
호광성.
여산.
점심 무렵.
사십 대로 보이는 중년인이 여산 초입에 들어섰다.
등에 검을 맨 그는 신항진에서 연적하와 헤어진 마교 동방사자 노도경이었다.
그는 마치 산책이라도 하듯 느릿느릿 산을 올랐다.
지난밤에 한차례 왔던 길이라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도 않았다.
반 시진(1시간) 쯤 올라가자 마침내 협곡이 나타났다.
글자가 새겨진 바위벽을 지나자 바로 높게 솟은 목책이 보였다.
목책 앞에 선 노도경의 입가에 얼핏 미소가 걸렸다.
어젯밤 자신이 부순 정문은 언제 수리를 했는지 말끔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인기척을 들었는지 목책 위로 사람 머리 하나가 삐죽이 올라왔다.
“누구냐!”
“그렇게 말하는 그쪽은 누군가?”
방문객의 묵직한 기도에 남자는 말투를 바꾸었다.
“나는 명왕교의 호교무사요! 이곳은 명왕교의 성지니 특별한 용무가 없으면 돌아가시오!”
“그렇다면 내가 제대로 찾아왔구먼. 가서 높으신 분들께 전하게. 천산마교의 동방사자 노도경이 여산을 지나는 길에 인사차 들렀노라고.”
“…….”
남자의 머리가 아래로 쏙 사라졌다.
뒤이어 ‘우당탕’ 하고 물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산마교.
수십 년 동안 활동이 없었다고 하지만 그 이름의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잠시 후 목책 안에서 이십여 명의 호교무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조장 왕금조가 노도경에게 읍을 해 보였다.
“명왕교 호교무사 왕금조라 합니다. 제가 광명정으로 모시겠습니다.”
명왕교 설립 이래 가장 큰 손님인지라 왕금조의 태도는 공손하기만 했다.
마교와 명왕교의 공식적인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