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29
429회. 교주님과 어떤 사이냐?
연적하가 대뜸 부적을 꺼내자 적월 공취산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대나무 등짐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술사였던 모양이다.
백두마군들 중에도 술사가 있는데 그들은 무인 출신보다 약했다.
‘술사였구나.’
상대가 술사라는 것을 알게 된것 만으로도 조금 긴장이 풀렸다.
그들이라면 법기(法器)로 ‘지옥의 마신’을 해치울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무인과의 싸움은 다르다.
당연하게도 무인들은 마물과 달리 법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일그러져 있던 구유귀검 이무영과 천산비마 하소상의 얼굴도 풀어졌다.
그들 역시 ‘상대가 술사라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무영과 하소상이 각자의 독문병기를 꺼내 들고 천천히 연남천을 압박해 갔다.
연적하 역시 명왕교 무인들의 기도에 살짝 변화가 온 걸 느꼈다.
부적을 꺼내니 만만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술법의 맛을 아직 못 봤다 이거지? 오늘 제대로 보여 줄게. 내가 이걸 ‘구천벽력부’라고 이름을 지어 봤거든? 우선 이거 하나 받아 보시고.”
말과 함께 연적하가 벽력부를 정면으로 날려 보냈다.
순간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던 이무영이 벼락처럼 검을 휘둘렀다.
쉬이익-.
검 끝에서 쏘아져 나온 검기가 부적에 닿기 직전, 부적이 불길에 휩싸였다.
쉭-.
그와 동시에 검기가 부적을 가르고 지나갔다.
부적은 허공에서 재가 되어 흩날렸다.
이무영이 득의의 미소를 지을 때, 머리 위로 먹구름이 꾸물꾸물 몰려들었다.
공취산과 이무영, 하소상은 급히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 청명하기만 하던 하늘이 시커먼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여유 만만하던 공취산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
풍운조화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유명 교주와 같은 경지라니 놀라울 뿐이다.
꽈르릉! 꽈광!
뒤이어 하늘에서 수십 개의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십두마병과 유명교도들은 혼비백산하여 메뚜기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에게 벼락은 항거하기 어려운 위협이었다.
공취산은 굳건하게 서 있던 수하들이 달아나자 이를 빠드득 갈았다.
고작 부적 하나에 전열이 흐트러졌다.
답답한 마음에 ‘자리를 지켜라!’ 소리쳤지만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꽝!
그의 옆으로도 한 줄기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새카맣게 탄 땅바닥을 보니 벼락은 환각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공취산은 연남천에게 시선을 돌렸다.
십두마병들이 사석(捨石, 바둑에서 의도적으로 버린 돌) 역할을 제대로 못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젠 자신이 나서야 할 차례다.
벼락이 뜸해지자 공취산은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달려가려 했다.
그때 황당하게 연남천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헉!’
공취산이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살폈다.
설마 이형환위였을까?
그는 눈앞에서 귀신처럼 사라져 버린 연남천의 경신술에 소름이 돋았다.
‘달아난 건가?’
아무리 찾아봐도 연남천이 보이지 않으니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큰소리치더니 막상 싸움이 벌어지자 부적 한 장 던지고 떠난 모양이다.
안도의 숨을 내쉬던 공취산이 멈칫했다.
머리는 끝났다는데 본능이 아직 아니라고 자꾸만 경고를 보냈다.
눈에 보이지 않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는 암암리에 기감을 주변으로 넓 게 퍼트려 보았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정종 무공 특유의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설마 눈속임이었다는 건가?’
공취산은 기운이 느껴지는 빈 공간으로 치고 들어가 검을 휘둘렀다.
쉬이익- 쉬익-.
베고 찔렀지만 검에 닿는 느낌이 없었다.
그야말로 혼자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다 헛손질한 꼴이 되고 말았다.
여기저기 숨어서 지켜보던 교도들이 그런 공취산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취산이 허탈한 얼굴로 돌아설 때 뒤쪽에서 연남천이라고 밝힌 술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늙은이 기감 좋네.”
“놈!”
공취산은 빠르게 돌아서며 검을 내질렀다.
쉭-.
그러나 또 허탕이다.
뒤늦게 공취산은 연남천이 단지 술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놈, 보통이 아니구나.’
팔황신모도 술사이면서 무인이었다.
술사와 무인 모두 운기토납을 하지만 결과물이 다르다.
같은 수련을 해도 술사는 법력이 자라고, 무인은 내공이 깊어진다.
그런 강호의 상식을 깨트린 사람이 팔황신모였다.
그런데 저놈도 팔황신모처럼 법력과 내공을 함께 쓸 수 있는 모양이다.
등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기감은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기에, 다른 일을 함께하기 어렵다.
그러니 ‘찾아내고 공격하는’ 일련의 동작들 사이에 약간의 틈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만약 상대가 무공의 고수라면 그 틈을 이용해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다.
자신이 계속 헛손질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한편 연적하는 ‘공허법(은형술)’으로 공취산 주변을 맴돌았다.
재빨리 마혈을 제압해 떠날 생각이었는데 상대의 기감이 좋아서 쉽지 않았다.
‘어쩐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꼼수가 통하지 않을 때는 정도(正道)로 가야 한다.
연적하는 부적 대신 청사를 잡았다.
그리고 은형술을 풀면서 멧돼지처럼 공취산에게 돌진했다.
“헉!”
갑자기 눈앞에서 연남천이 툭 튀어 나오자 공취산은 반사적으로 검을 내밀었다.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연적하는 망설임 없이 구천구검 이 식 행지무강(行之無疆)으로 되받았다.
차르르-.
공취산의 검을 타고 청사가 거침없이 앞으로 전진했다.
깜짝 놀란 공취산이 거리를 벌리려 하자 청사에서 검기가 뻗어 나왔다.
청사의 검기는 마치 뱀처럼 검신을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공취산의 손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큿!”
짧은 비명과 함께 공취산의 손에서 검이 툭 떨어졌다.
순간 저돌적으로 달려간 연적하가 청사를 쥔 손등으로 그의 목을 찍었다.
초식도 뭐도 아닌 이른바 막싸움의 수법이다.
그런데 공교롭게 무심코 내지른 손등에 염천혈(廉泉穴, 목울대 조금 위쪽)이 걸렸다.
십두마병도 아닌 백두마군 공취산이 ‘캑!’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고 말았다.
연적하가 공취산을 쓰러뜨리자 명왕교도들은 허둥지둥 물러났다.
그건 십두마병 이무영과 하소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두마군도 감당하지 못한 고수 앞을 막아설 정도로 담력이 큰 사람은 없었다.
연적하는 기절한 공취산의 마혈을 정성껏 찍은 뒤 어깨에 둘러했다.
그래도 의리가 있는 사람이 하나쯤은 있었나 보다.
그림자처럼 공취산을 따라다니며 모시던 귀천객 강두수가 물었다.
“진인을 어디로 데려가는 거요?”
“몰라도 돼.”
“가르쳐 주시오.”
“그 전에 너 십두마병이 되기 위해서 수도자를 제물로 썼어? 안 썼어?”
“썼소.”
연적하가 그를 노려보았다.
힘을 얻기 위해 죄 없는 수도자를 죽였다고 생각하니 살의가 치솟았다.
“죽일 테면 죽이시오. 본래 약육강식 아니오? 수도자가 나보다 강했다면 내 손에 죽었겠소? 귀하가 나보다 강하니 귀하의 뜻대로 하시오.”
“알았어.”
연적하가 청사를 꺼내 던졌다.
한순간 ‘퍽!’ 하고 강두수의 가슴을 관통한 청사가 연적하에게 돌아왔다.
법보답게 청사에는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연남천의 가공할 무위를 본 십두마병들은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았다.
“그래 그거야. 나쁜 놈이 뻔뻔하기까지 하면 죽는 거야. 나쁜 짓을 해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지. 안 그래?”
상대가 대답을 원하는 줄 알고 이무영과 하소상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심한 눈으로 명왕교도들을 보던 연적하는 이내 자리를 떠났다.
***
물가를 따라 걷던 연적하가 어깨에 메고 있던 공취산을 짐짝처럼 내던졌다.
털썩.
그 충격으로 기절했던 공취산이 정신을 차렸다.
“끄응! 여긴 어디냐?”
“어디긴 보면 몰라? 포양호지.”
“연남천이라고 했느냐? 왜 나를 괴롭히지? 대체 나에게 무슨 원한이 있다고?”
“왜 이래? 애들처럼. 너는 무슨 원한이 있어서 수도자를 죽였어? 그런 거 아니잖아.”
“그래 좋다. 나는 천두마왕이 되기 위해서 수도자들을 제물로 바쳤다. 그럼 너는 왜 나를 못살게 구느냐? 나에게 이러는 이유가 있을 게 아니냐?”
공취산은 생면부지인 연남천이 자신만 물고 늘어지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돈 때문이라면 원하는 대로 주겠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그런데 돈 한 푼 못 받고 이 짓을 하고 있으니 가슴이 찢어진다.”
“돈 때문이 아니라고? 그렇다면 원하는 걸 말해라. 명왕교의 힘이 아직은 약하지만, 그래도 네가 원하는 걸 들어줄 정도는 된다.”
“내가 원하는 거? 간단해. 어디에 가서 누굴 만나 주면 돼.”
대나무 등짐을 내려놓은 연적하가 그 속에서 주섬주섬 먹거리를 꺼냈다.
“어디에 가서 누굴 만나라는 말이냐?”
“풍지산. 팔황신모.”
“…….”
공취산이 조용해지자 연적하는 종이에 싸 온 만두를 뜯어 먹기 시작했다.
절반이나 먹었을까?
충격받은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공취산이 다시 물었다.
“너는 교주님과 어떤 사이냐?”
“말 한번 잘못해서 귀찮은 일에 얽힌 사이?”
오랜 세월 팔황신모를 모셨던 공취산은 연남천의 말 속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렸다.
“이제 보니 언령으로 얽혔나 보군.”
“어, 맞아. 그 노인네 앞에서는 빈말도 하면 안 되겠더라고. 그걸 몰랐지 뭐야.”
“교주와 언령으로 얽혔다면 나를 풀어 줄 수 없겠구나.”
“달아날 생각도 하지 마. 그래 봐야 심력만 낭비하는 거니까.”
공취산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허허. 내가 너와 같은 무명소졸에게 사로잡히다니. 내 운도 다했군.”
“에이, 머리 굴리지 마. 그러면 내가 다시 싸워 보자고 할 것 같아? 소용없어. 나한테 무슨 말을 해도 당신을 풀어 줄 일은 없어.”
“그래, 그래야 할 테지.”
연적하는 다시 만두를 뜯어 먹었다.
한동안 말없이 만두를 먹던 연적하가 공취산을 힐끔 바라보았다.
“내가 궁금한 게 하나 있어. 대답해도 되고, 안 해도 상관은 없어. 명왕교의 백두마군들은 죄다 배신자잖아. 그런데 팔황신모는 당신만 콕 찍어서 데려오라고 했거든? 왜 그랬을까?”
“…….”
공취산은 눈을 지그시 감고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적하는 그의 담담한 표정에서 뭔가 사연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단지 재수 없이 걸린 거라면 공취산도 억울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자기가 교주에게 잡혀가는 상황임을 생각하면 평범한 일은 아니었다.
“뭐 당신이 가르쳐 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뻔하지. 사마외도에서 스승과 제자가 눈맞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안 그래?”
“…….”
질끈 감은 공취산의 눈두덩이 파르르 떨렸다.
갑자기 턱에도 주름이 잡힌 걸 보면 이를 악물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또 연적하의 호기심을 건드렸다.
‘아무래도 이 늙은이와 팔황신모 사이에 뭔가 있는 것 같단 말이지.’
하지만 서두를 생각은 없다.
강서성 포양호에서 산서성 풍지산까지 가려면 서너 달은 걸린다.
그 정도 기간이면 알아내고도 남음이 있다.
‘잘됐네. 심심하지 않겠어.’
어쩌면 무림사의 비밀인지도 모를 일을 연적하는 심심풀이용으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