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35
435회. 반전의 재미를 모르네
장거문은 한눈에 연남천을 알아보았다.
이빨까지 숭숭 빠진 자신과 달리 보름 전보다 더 말끔해진 얼굴을 보니 울컥 화가 치밀었다.
그는 욕설을 퍼붓기 전에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다섯 명의 빈객들이 무덤덤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무력을 자랑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입만 열면 호언장담하던 호위무사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백일취 노우조가 물었다.
“장 공자, 저들이 수적(水賊)이오?”
“예. 고 포두는 감당하기 어려울 겁니다.”
알면서도 고원황 포두를 부른 건 놈을 완전히 짓밟기 위해서다.
일단 관부에 수적으로 낙인찍히면 평생을 죄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운 좋게 이 자리에서 달아난다 해도 마음 편히 살기는 틀린 셈이다.
뒤늦게 장거문을 본 고원황 포두가 황급히 다가가 인사를 올렸다.
“장 공자님, 직접 나오셨는데 한발 늦은 것 같습니다. 조사를 했지만 수적으로 보이는…….”
“고 포두, 저놈입니다.”
장거문이 고원황의 말을 끊고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예?”
고원황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그의 손끝이 가리킨 곳에 있는 사람은 자칭 무당파 제자 연남천이었다.
“장 공자님, 그는 자신을 무당파 제자라고 했습니다.”
“거짓말일 겁니다. 설사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그가 강도 짓을 한 것은 사실이고요.”
“아…….”
고원황은 장거문의 말을 알아들었다.
거짓이든 아니든, 그가 정말 장 공자의 호위들에게 강도 짓을 했다면 추포함이 마땅하다.
물론 사실 확인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고원황이 연적하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너도 귀가 있다면 들었겠지? 장 공자님은 호광성 안찰사 장 대인의 아드님으로 허튼소리를 할 분이 아니시다. 바른대로 고하거라. 보름 전 구강에서 장 공자님의 호위를 상하게 하고 재물을 강탈한 사실이 있느냐?”
“아닌데요?”
순간 고원황이 곤혹스러운 눈으로 연남천과 장거문을 번갈아 보았다.
선하게 생긴 얼굴로 아니라 하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멀찍이서 타는 듯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던 장거문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뻔뻔한 놈! 본 공자가 직접 목격했는데 아니라고 시치미를 뗄 속셈이냐!”
골치 아픈 얼굴로 지켜보던 고원황이 연남천에게 한마디 하려는 순간이다.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호위만 때린 게 아니라 저 장 공자라는 놈도 때렸거든요? 장 공자라는 놈의 돈도 수고비로 받았고요.”
“…….”
실내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해졌다.
연적하의 상상을 초월한 답변에 다들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눈만 끔뻑거렸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고원황이 물었다.
“너 이놈!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게냐! 장 공자와 호위는 왜 때렸으며, 수고비는 또 무엇이냐?”
그러자 장거문이 빽 소리쳤다.
“뭘 물어요! 본인 입으로 죄를 실토했으니 잡기나 해요!”
하지만 고원황은 포두인지라 전후 사정을 조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거문의 말만 듣고 추포했다가 일이 꼬이면 그것도 골치인 까닭이다.
펄쩍 뛰는 장거문과 미동도 않는 고원황을 번갈아 보던 연적하가 말했다.
“내가 원래 싸움을 싫어하는 사람이거든요? 보름쯤 전에 구강에 갈 일이 있어서 배를 탔어요. 그리고 하루나 이틀 지났나? 저놈과 호위들이 배 위에서 어떤 아가씨에게 찝쩍거렸어요. 그 아가씨 일행이 만류하니까, 이번에는 그 사람을 개 잡듯 패더라고요. 이름이 이 뭐시기라고 하던데. 여하튼 그 남자가 맞아 죽기 직전에 내가 그만하라고 했어요. 그랬는데 저것들이 분수를 모르고 나한테 칼을 휘두르잖아요. 포두 아저씨는 나쁜 놈들이 칼 들고 덤비면 가만히 죽어 줘요?”
“험…….”
고원황은 헛기침을 터드렸다.
장거문은 무한에서도 소문난 호색한인지라 안 봐도 어떤 상황인지 그려졌다.
“네가 장 공자 일행과 싸웠다는 것은 알겠다. 허면 재물은 왜 빼앗았느냐!”
“빼앗은 게 아니라 저놈이 고맙다고 준 거예요.”
“허튼소리 말고 바른대로 고하거라!”
“아 진짜 고맙다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줬다니까요. 물어보면 알잖아요. 야! 인마! 너 그날 나한테 울면서 고맙다고 돈 줬어? 안 줬어? 거짓말하면 이번엔 고자로 만들어 버린다.”
연적하의 물음에 장거문이 치를 떨며 소리쳤다.
“고 포두! 뭐하는 겁니까! 그날 내 호위들은 단전이 부서지고, 나도 앞니가 다 나갔어요! 그런 짓을 한 놈에게 뭐가 고맙다고 돈까지 바칩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요! 내가 바쳤을지! 저놈이 강탈해 갔을지!”
장거문은 무한포방이 그의 상대가 못 됨을 알면서도 밀어붙였다.
그들이 다치면 그 뒤에 빈객을 내세울 작정이었다.
빈객들 역시 그런 그의 속셈을 알기에 뒤에서 팔짱 끼고 구경만 했다.
하지만 가장 앞에서 독촉받는 고원황은 그걸 살필 여유가 없었다.
장 공자의 말대로 연남천의 주장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무당파 속가제자까지는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런데 명왕교 사대신군이라는 노인에게 늙은이라니?
그것에 비하면 장 공자가 고맙다고 돈을 줬다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무한포방에 데리고 가서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진위를 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본관이 보기에도 너의 주장에 문제가 많다. 무한포방에 가서 조사를 받아야겠다. 중죄인이 되고 싶지 않으면 저항하지 마라. 등전, 명일! 이 자를 포박해라!”
“예!”
그의 곁에 서 있던 두 명의 포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긴장된 순간, 연적하가 고원황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포두 아저씨도 이제 보니 머리가 장식이네. 저놈이 나 잡겠다고 다섯 명이나 되는 무림인들을 끌고 온 거 안 보여요? 겨우 이 두 사람이 나를 포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등전과 명일이 흠칫한 얼굴로 고원황을 보았다.
그의 말대로였다.
포두와 포졸들을 합해도 장 공자가 데리고 온 다섯 명의 무인만 못하다.
그의 능력이 무한포방을 뛰어넘는다는 소리다.
“그래서 국법을 무시하고 포졸과 싸우겠다는 거냐! 그럼 네 죄만 더욱 무거워질 뿐이다!”
큰소리와 달리 고원황의 눈빛은 흔들렸다.
행여나 무한포방의 포졸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자신만 손해인 까닭이다.
“와! 감동이다. 나 걱정해 주는 포두 처음 봐. 이럴 때는 어떻게 하지?”
연적하가 오두방정을 떨자 공취산이 ‘쯧쯧!’하고 혀를 찼다.
손가락만 튕겨도 황천길로 떠날 사람들을 두고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백두마군인 자신도 단숨에 제압한 사람이 고작 포두 앞에서 말만 앞세우다니.
“늙은이, 그 표정 뭐야? 뭐가 불만인데?”
“저 하찮은 사람들과 말을 섞고 있는 너를 이해할 수 없어서 그런다.”
“하찮다고?”
“너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모두 죽여 버릴 수 있지 않느냐? 무한포방이 두려워서 그러는 건 아닐 테고. 능력도 있는 놈이 왜 지질하게 사느냐?”
“내가 이래서 마두들을 안 좋아해요. 입만 열면 죽인대. 사람이 개돼지도 아니고. 왜 지질하게 사냐고? 재밌잖아.”
“뭐가? 너를 무시하고 능멸하는 놈들을 구경하는 게 재밌느냐?”
“이 늙은이가 반전의 재미를 모르네. 장 공자라는 놈 봐. ‘힘 좀 쓰는 놈들’ 데리고 오면 이길 수 있을 거라 믿는 얼굴이잖아. 그런 믿음으로 깝치는 걸 보면서, 저걸 어디까지 손봐야 하지?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알아? 죽이는 건 순간이야. 하지만 내 즐거움은 제법 길지. 한 편의 잡극(雜劇)을 보는 것 같다니까.”
“…….”
공취산은 할 말이 없었다.
무공도 특이하지만 연남천의 정신 세계마저도 이처럼 독특할 줄은 몰랐다.
한편 졸지에 ‘힘 좀 쓰는 놈들’이 되어 버린 빈객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런 소리를 듣고도 구경만 할 사람은 없었다.
백일취 노우조를 필두로 비검절암 장교산, 강남삼웅이 천천히 걸어갔다.
무한의 개방 분타주 노우조는 무극문 출신의 단두(團頭)다.
비록 황실에서 내칠 정도로 죄를 지었지만 무공만큼은 진짜였다.
“노부는 개방의 분타주로 백일취라고 하네. 나와 함께 온 분들은 각각 ‘비검절암’과 ‘강남삼웅’으로 불리는 무림의 협객들이시지. 소협은 누구기에 이런 우리를 ‘힘 좀 쓰는 놈들’이라 폄하하는가?”
개방의 고수 노우조가 나서자 고원 황과 포졸들은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장거문은 뜻대로 되지 않자 인상을 찌푸렸다.
이렇게 되면 자칫 강도가 아니라 무림인들의 드잡이질로 끝날 수도 있었다.
물론 연남천이라는 놈을 병신으로 만들면 속이 좀 풀리겠지만 말이다.
다행히 돌아가는 꼴을 보니 그렇게도 될 것 같았다.
연적하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나요?”
“자네 말고 누가 또 그런 소리를 했다고.”
“나는 연남천이라고 하는데요. 개방이라면서 옷이 왜 그렇게 깨끗해요? 내가 만나 본 개방 방도들은 죄다 거지였는데. 그쪽은 일반인보다 더 깨끗하네요? 개방 맞아요?”
노우조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거지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라 거지로 살라고 해서 거지가 되었다.
무한의 무인들은 체면을 생각해 모른 척해 주는데, 당사자 앞에서 그런 지적질이라니!
그가 막 한마디 하려는 순간 공취산이 말했다.
“개방 중에도 저런 놈이 있다. 나라에 죄를 지어서 강제로 거지가 된 놈들이지. 저런 거지 아닌 거지를 ‘단두’라고 부른다.”
“아! 단두!”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그에 대해 들은 것도 같다.
“의복이 깨끗하고, 개방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는 분타주들은 단두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 저렇게 이 집, 저 집 들러붙어서 먹고 살아가는 거다.”
“그건 불쌍한 거야? 지질한 거야?”
“둘 다가 아닐까.”
부들부들 떨던 노우조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당장 몽둥이로 두 놈의 대갈통을 부수고 싶지만 아직은 아니다.
정체를 알고 난 다음에 손을 써도 늦지 않았다.
“노형, 개방의 사정에 대해 밝은 걸 보니 무림인 같은데. 존성대명이 어찌 되시오?”
“나는 명왕교의 사대신군인 적월 공취산이다.”
“개소리!”
결국 노우조의 입에서 막말이 튀어나왔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에게 늙은이 소리를 들으면서 사대신군이라고? 공취산이 비릿한 시선으로 노우조를 보았다.
“개소리라고? 그럼 개소리를 알아 들은 너는 개냐?”
“노망난 늙은이! 말로 하려고 했더니 안 되겠구나! 일단 좀 맞고 보자!”
노우조가 번개처럼 단봉을 휘둘렀다.
단봉이 공취산의 머리통에 닿기 직전, 연적하가 젓가락으로 단봉을 쳐 냈다.
딱-.
바위와 부딪친 듯 단봉이 뒤로 튕겨 났다.
노우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앉은 자리에서 젓가락으로 단봉을 쳐 내다니 보통의 공력이 아니다.
“여러분! 아무래도 한가락 하는 놈인 것 같소! 힘을 합칩시다!”
“풋! 힘을 합치면 달라질 것 같아? 합쳐 보든가. 늙은이도 봐 봐. 완전 한 편의 잡극 같지 않아? 내가 이 맛에 못 끊는다니까.”
뒤늦게 분위기를 파악한 장교산과 강남삼웅이 재빨리 검을 뽑았다.
다섯 명의 무인을 둘러보던 연적하가 갑자기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일단 너는 거기서 꼼짝도 하지 마.”
말과 함께 그가 들고 있던 젓가락을 던졌다.
쉬익- 퍼억-.
두 개의 젓가락이 마치 못처럼 장거문의 양 어깨를 벽에 박아 버렸다.
“으아아아!”
장거문은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누구도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연남천이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 준 한 수에 질린 것이다.
젓가락으로 사람을 벽에 박다니?
무공도 놀랍지만, 그건 보통의 성정(性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노우조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내공이 노화순청(爐火純靑)에 들면 젓가락을 화살처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장정을 통째로 날려 벽에 박아 버리는 건 또 다른 영역이다.
‘젓가락에 담긴 힘이 얼마나 컸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