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34
434회. 향이 바뀌었네요
오십 년 전.
사천성.
고명산 태일관.
도교에서는 향(香)을 중요시 여긴다.
향은 신에게 공양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그것으로 복을 빌기도 한다.
어디 그뿐이랴.
향은 세속의 온갖 삿된 기운을 깨끗하게 정화시켜 준다.
그런 이유로 도관에서는 늘 향을 피운다.
천사도를 신봉하는 태일관은 향에 더욱 집착했다.
스승은 향이 신(神)과 사람과 귀신을 소통하게 해 준다고 가르쳤다.
그렇지 않아도 귀도(鬼道)라고 불리는 태일관에서 향은 생활의 중심이었다.
“알겠느냐? 모든 공법 중에 으뜸이 향을 잘 피우는 것이다. 신들은 향 냄새를 통해 우리의 신심을 들여다 보신다. 그러니 향 하나를 피우더라도 허투루 하지 마라.”
그런 스승의 가르침을 제자들은 충실히 따랐다.
눈만 뜨면 향을 올렸고, 어디서 무엇을 하는 박산향로(博山香爐)에 향이 타오르는지 확인했다.
태일관에서 아침저녁으로 피우는 향은 ‘일주청향(一柱淸香)’이었다.
향은 언제나 창고에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어 떨어진 적이 없다.
아니, 딱 한 번 그런 적이 있다.
여름 장마에 창고 지붕에서 물이 샜다.
그 물이 향 보관함에 떨어져 여름내 곰팡이가 슬었다.
뒤늦게 그걸 알게 된 담당자는 가까운 도관에서 이름만 다른 ‘상분심향(常交心香)’을 구해 왔다.
제자들은 향이 바뀐 걸 알지 못했다.
하지만 후각이 발달한 공취산은 그 미묘한 차이를 금방 알아차렸다.
“향이 바뀌었네요.”
“무슨 소리냐? 바뀌다니?”
대사형의 말에 다른 사형제들도 일제히 공취산을 보았다.
존재감 없는 막내가 뜬금없이 민감한 향 얘기를 꺼내니 그런 것이다.
“일주청향과 비슷하지만 달라요. 상분심향 같아요.”
“나는 똑같은 것 같은데?”
“향이 다 똑같지 뭐가 다르다고.”
“개코냐?”
사형제들은 그의 말에 반신반의했다.
오후에야 담당자는 스승께 이실직고하고 상방에 ‘일주청향’을 주문했다.
그날 밤.
공취산은 경내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둘째 사저 양여령과 마주쳤다.
그녀가 웃는 얼굴로 말을 걸었다.
“너라면 내가 무슨 화정유를 썼는지 알겠다. 그렇지?”
“옥호청향(玉壺淸香)?”
“역시.”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한동안 침묵했다.
두 사람 사이에 대화는 없었지만 공취산은 지루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난 떠날 거야.”
“예?”
“이름을 알 수 없는 신님이 떠나라고 했어. 스승님이 그랬잖아. 신언(神言)을 따르라고.”
갑작스러운 그녀의 선언에 공취산은 당황했다.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도관 생활을 하던 사저가 떠난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언제요?”
“네가 말해 봐. 언제 가는 게 좋을까?”
“제가요?”
“함께 가자.”
“예에? 왜 저예요?”
공취산은 거절하는 대신 왜 자신이냐고 물었다.
그것도 신님의 뜻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궁금했다.
“너라면 믿을 수 있겠다 싶어서.”
“저는 아직 구정단법(九鼎丹法)을 다 배우지 못했는데…….”
“내가 가르쳐 줄게.”
“…….”
공취산은 사저의 제안에 마음이 흔들렸다.
구정단법만 배울 수 있다면 태일관이 아니라 어디라도 상관은 없었다.
그때 양여령이 말했다.
“나는 ‘진구정단법(眞九鼎丹法)’까지 가르쳐 줄 수 있어.”
‘진구정단법’이라는 말에 공취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일반 제자들은 ‘구정단법’만 배운다.
궁극의 단계라는 ‘진구정단법’은 태일관을 책임질 후계자, 즉 삼사형의 몫이었다.
“사저가 어떻게…….”
“궁금해? 내가 어떻게 아는지?”
“…….”
공취산은 대답하지 않았다.
문득 언젠가 태상각 쪽에서 내려오던 사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겠지.
생각에 잠긴 공취산의 귓가로 양여령의 투명한 음성이 들려왔다.
“내일, 해시 말(밤 11시)에 태상각으로 와. 그럼 내 말이 사실이라는 걸 믿게 될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양여령은 그를 스쳐 지나갔다.
‘옥호청향’의 향기가 혼란에 빠진 공취산을 더욱 세게 흔들었다.
“늙은이. 안 먹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벌써 젓가락 들 힘도 없어? 내가 먹여 줘야 돼?”
연적하가 윽박지르자 적월 공취산은 기나긴 상념에서 깨어났다.
음식을 기다리다가 옛 생각에 빠져들었던가 보다.
마지못해 젓가락을 집어 들었지만 딱히 먹고 싶은 게 보이지 않았다.
“이 늙은이가 진짜. 내가 씹어서 넣어 줘?”
연적하의 끔찍한 협박에 공취산은 억지로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
호광성 안찰사 장공래의 저택.
한 사내가 대문을 두 손으로 밀어젖히며 안으로 뛰어들었다.
“공자니임! 공자니임!”
그는 안채로 달려가며 목이 터져라 장거문을 찾았다.
사내의 소란에 집안에서 일하던 하인들이 안채를 기웃거렸다.
비스듬히 누워 졸고 있던 장거문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소리를 들어 보니 전에 데리고 있던 호위 중 하나였다.
폐인이 된 뒤 자기 발로 나갔는데 갑자기 웬 소란인지 모르겠다.
참다못한 그가 문을 열고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단숨에 섬돌 아래까지 달려온 사내가 허리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공자님! 지난번의 그 마두가 나타났습니다!”
“마두?”
“왜 얼마 전 구강으로 가던 중에…….”
“그놈이 분명하냐!”
한순간 장거문의 얼굴이 검붉게 달아올랐다.
찢어질 듯 부릅뜬 눈에서는 살기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소인이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그놈이 틀림없습니다. 대나무 등짐까지도 같았습니다.”
“어디냐! 어디에 있느냐 말이다!”
“그놈이 ‘옥호청향’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바로 달려왔습니다!”
순간 장거문이 버럭 소리쳤다.
“여봐라! 누구 없느냐!”
멀리서 기웃거리던 하인들이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달려왔다.
“너! 별채의 빈객들을 모두 모셔오 고! 너는 무한포방(武漢捕房)의 고 포두에게 가서, 마두가 나타났으니 관병을 이끌고 ‘옥호청향’으로 오라 해라!”
“예!”
“예!”
하인 둘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별채로 갔던 하인이 다섯 명의 무인들을 이끌고 돌아왔다.
다섯 모두 사십 대 후반으로 눈빛이 형형한 게 척 봐도 보통은 아니었다.
선두에 있던 개방 무한 분타주 백일취 노우조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헤헤, 장 공자, 오늘은 무슨 일로 우리를 모두 부르셨소?”
“노 대협. 얼마 전 제 호위들을 폐인으로 만들고 돈까지 강탈해 간 마두가 나타났습니다. 대담하게도 마두가 ‘옥호청향’에서 식사 중이라는군요. 고 포두를 불러 추포할까 하는데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는 수치스러워 자신이 맞은 건 감추었다.
하지만 아직 멍이 덜 빠진 얼굴을 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노우조도 알았지만 짐짓 모른 체했다.
“아무렴요. 공자의 호위를 폐인으로 만들 정도면 포방만으로는 힘들 겁니다. 강호 도의를 생각해서라도 도와야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노우조의 말에 비검절암 장교산과 강남삼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거문이 다섯 명의 무림 고수들에게 공수(拱手)로 예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호의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마두의 얼굴을 제가 알고 있으니 안내하겠습니다.”
장거문이 앞장서자 다섯 명의 고수가 그 뒤를 따랐다.
처음 마두의 출현을 알린 사내도 이를 빡빡 갈며 그들을 따라갔다.
***
옥호청향.
식사 후 한가하게 차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던 연적하가 중얼거렸다.
“대도시라 그런지 사람 많네. 얼씨구? 포졸들까지? 어디서 싸움이라도 났나?”
그의 호들갑에 공취산이 거리로 고개를 돌렸다.
아닌 게 아니라 반점 안에까지 전해질 정도로 거리는 소란스러웠다.
곧이어 포졸들이 우르르 몰려와 반점 주위를 에워쌌다.
“뭐야? 여기서 싸움이 났나 본데?”
연적하의 시선이 반점 내부로 향했다.
하지만 반점의 손님들은 조용히 식사하느라 고개도 들지 않고 있었다.
“응? 아닌데? 포졸은 뭐지?”
“아니긴 뭐가 아니냐. 딱 보니 도적을 잡으러 온 모양새구먼.”
“도적? 설마 나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말고.”
건성으로 답한 공취산은 따뜻한 찻잔을 두 손으로 말아쥐었다.
자신이야 연적하가 끌려가면 좋겠지만, 하늘이 두 쪽 나도 그럴 일은 없을 게다.
고작 포졸을 앞세운 걸 보니 아직 연적하가 누군지 모르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콰앙!’ 하고 문을 박차며 포두와 포졸들이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아무도 움직이지 마시오! 본관은 무한포방의 포두 고원황이오! 구강 일대에서 활동하는 수적이 나타났다고 하여 추포하러 왔소! 잠시 호패를 조사할 테니 협조해 주시오!”
멀뚱멀뚱 쳐다보던 연적하가 물었다.
“호패가 없는 사람은요?”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아무것이나 상관없소. 그마저도 없는 사람은 본관과 함께 무한포방으로 가야 할 것이오.”
그러자 연적하가 호들갑스럽게 품 속을 뒤졌다.
“가만 호패를 내가 어디다 뒀더라. 어라? 없었나? 아, 없었구나.”
창고에서 탈출한 뒤로 녹림에 투신했으니 호패가 있을 리 없다.
연적하가 고민하고 있을 때 고원황은 한쪽에서 호패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를 마친 사람은 즉시 반점 밖으로 나갔다.
마침내 손님들이 거의 나가고 연적하와 공취산의 차례가 되었다.
고원황이 두 사람의 자리로 다가갔다.
“두 분, 식사도 마친 것 같은데 협조 좀 해야겠소이다. 호패 좀 봅시다.”
공취산이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는 없다. 어릴 때 도첩(度膜)을 받으면서 호패를 없앴거든.”
“도첩이라도 봅시다.”
“다시 환속(還俗)하면서 도첩도 버렸다.”
“이거 수상하군. 호패도 없고, 도첩도 없다? 하면 어디의 뉘신지라도 좀 압시다.”
“나는 명왕교의 사대신군으로 적월 공취산이라고 한다.”
“…….”
고원황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공취산을 보았다.
골골거리는 얼굴의 늙은이가 명왕교 사대신군이라니 기가 막혔다.
그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욕을 꾹 누르고 다시 물었다.
“사대신군을 증명할 신표는 있소?”
“없다.”
“허면 당신이 사대신군이라는 것을 증명할 만한 사람은 있소?”
그러자 연적하가 말했다.
“아저씨, 이 늙은이 명왕교의 공취산 맞아요. 그건 내가 보증할 수 있어요.”
“소협은 누구요? 호패 좀 봅시다.”
“나요? 나는 무당파 속가제자 연남천인데, 나도 호패는 없어요.”
“허면 도첩이라도 보여 주시오.”
“속가제자는 도첩 없어요.”
“그러니까 소협도 자신이 무당파 속가제자라는 걸 증명할 게 없다?”
“예. 아, 이 늙은이가 알아요. 내가 무당파 제자 연남천이라는 걸.”
순간 고원황이 언성을 높였다.
“그러니까 지금 신원을 증명할 수 없는 사람들이, 서로의 신원을 보증하겠다. 이거냐! 그게 말이야 방귀야! 네놈 눈에는 내가 병신 핫바지로 보이느냐! 당장 호패를 내놓든지, 아니면 나와 함께 포방으로 가야겠다!”
“아, 침 튀었네. 포두 아저씨, 진정하세요. 아저씨 눈에는 나랑 이 늙은이가 수적으로 보여요?”
그제야 고원황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호패나 신분을 증명할 만한 게 없어서 그렇지 눈앞의 두 사람은 지극히 평범했다.
골골거리는 늙은이와 순박한 인상의 청년, 게다가 둘은 날붙이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낌새를 채고 튀었나?’
머뭇거리던 고원황의 눈에 대나무 등짐이 보였다.
포두의 오랜 경험상 저걸 보면 청년의 정체를 확실히 알 것도 같았다.
“열어라.”
“옙!”
연적하는 거리낌 없이 즉시 등짐 덮개를 젖혔다.
붓, 주사, 괴황지, 기름병 등을 본 고원황의 입에서 ‘끙!’ 하고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무당파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적이 가지고 다닐 물건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정체불명의 두 사람을 놓아주자니 여간 찜찜한 게 아니다.
고원황이 두 사람의 신병 처리 문제로 갈등할 때다.
최초 신고자이자 호광성 안찰사의 아들인 장거문이 반점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