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41
441회. 양이선이라고 창을 아주 잘 다루지요.
녹수방.
좌사는 수하 하나를 청로방으로 보내고 자신은 직접 방주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여월 다관에서 일어난 일을 털어놓았다.
그의 변명 섞인 보고가 끝나자 녹수방 방주 천애도 유하원이 삐딱하게 말했다.
“낮술을 했느냐?”
“예?”
“신성현에 녹림의 연적하가 왜 와? 그리고 뭐? 고수 하나를 데리고 오라고? 헛소리하지 말고 취했으면 집에 들어가서 처자거라.”
“방주님, 저 안 취했습니다. 낮에 반주 삼아 딱 한 잔 했습니다. 정말 연적하가 맞습니다.”
그러나 유하원은 좀처럼 좌사의 말을 믿지 못했다.
녹림의 연적하가 뭐 빼먹을 게 있다고 신성현같이 척박한 곳에 온단 말인가.
“너 연적하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젊은 놈이 연적하라는 걸 어찌 알았느냐?”
“그가 스스로 연적하라고 했고, 녹림의 영패도 보여 주었습니다.”
“녹림의 영패를 본 적은 있고?”
“……오늘 처음 보았습니다.”
“에라 이 병신아!”
유하원이 욕설과 함께 탁자 위에 있던 책을 집어 좌사에게 던졌다.
좌사는 책이 얼굴로 날아오자 눈을 질끈 감았다.
퍽.
“연적하의 얼굴도 모르고, 영패도 본 적 없는 놈이 뭐? 정말 맞다고? 그걸 말이라고 해? 외당 당주씩이나 되는 놈이 저렇게 멍청하니. 쯧쯧!”
좌사가 책에 맞아 터진 입술을 손 끝으로 더듬으며 말했다.
“방주님, 그들은 정말 반박귀진에 든 사람 같았습니다.”
“반박귀진의 사람을 본 적은 있느냐?”
“……없습니다.”
사실 좌사 같은 하수가 반박귀진의 고수를 본 적이 있을 리가 없다.
좌사는 모든 걸 귀동냥으로 들었을 뿐이다.
반박귀진에 들면 평범해 보인다고.
유하원은 좌사의 말속에 숨은 치명적인 허점을 지적했다.
“반박귀진에 든 사람을 본 적도 없는 놈이 무슨 개소리냐? 네가 속았으면 됐지, 나까지 속으라고? 갔더니 그놈이 달아났으면 어쩌게? 지금 청로방 방주와 싸움을 붙이려는 게냐? 오! 그런 식으로 내 뒤통수를 치시겠다?”
“절대로 아닙니다. 하지만 방주님, 만에 하나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놈이 거짓말했을 수도 있지만, 사실이라면요? 정말 녹림의 연적하라면요?”
“…….”
좌사의 물음에 유하원은 선뜻 답하지 못했다.
정황상 거짓말이 분명한데, 진짜 연적하가 신성현에 떴을 수도 있다.
두 발 달린 짐승이 어딘들 못 갈까.
만약 좌사의 말대로 청년이 연적하라면 그의 부름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결국 유하원은 경고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만약 그놈이 연적하가 아니라면 내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녹수방에서 제일 뛰어난 고수 하나를 데리고 오라 했다고?”
“예. 청로방에도 같은 말을 전했습니다.”
“비무라도 시키겠다는 건가?”
“그럴 것 같습니다.”
“미친놈. 녹수방에 딸린 입이 몇 갠데, 그걸 달랑 한 사람의 싸움으로 결정하겠다니. 방파 운영이 애들 장난인 줄 아나.”
투덜거리면서도 유하원은 머릿속으로 적당한 대상을 물색했다.
“도귀 고윤월을 불러라. 그리고 혹시 모르니 다관 주변에 방도들을 깔아 두고.”
“예.”
좌사는 방주가 다관에 갈 뜻을 보이자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진짜인지 거짓인지는 가보면 알 일이고, 일단 산 하나를 넘은 느낌이다.
***
같은 시간 청로방.
녹수방도가 전해 준 소식에 청로방도 발칵 뒤집혔다.
정파인 호천맹에 속한 청로방의 반응은 사파로 갈아탄 녹수방과 또 달랐다.
원로와 당주들이 보인 반응은 녹수방보다 복잡했다.
“녹수방의 음모가 분명합니다. 녹림의 태상호법이 왜 신성현에 온답니까?”
“설령 그가 정말 녹림의 연적하라 해도 청로방을 오라 가라 할 수는 없습니다. 호천맹에 속한 우리가 그의 말에 따라서도 안 되고요.”
“그래도 녹림의 태상호법이면 강호에서 배분이 낮지 않으니 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이 일로 사파에서 우리를 걸고넘어지면 우리만 손햅니다.”
청로방 방주 장천검 위소우가 곤혹스러운 눈으로 원로들을 보았다.
다 맞는 소리였다.
녹수방의 음모 같기도 했고, 녹림인 연적하가 부른다고 쪼르르 가는 것도 우습다.
하지만 그 일로 사파에 찍히면 청로방만 고달파진다.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의 말씀에 다 일리가 있습니다. 녹수방의 음모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녹수방 외당 당주 좌사가 여월 다관에 마수를 뻗쳤는데 이대로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위소우는 일부러 연적하에 대한 언급은 삼갔다.
말해 봐야 청로방의 체면만 상할 일이라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방주께서는 한 사람만 데리고 가실 생각이십니까?”
“일단은 그렇게 해야지요. 여러분은 다관과 가까운 곳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다관에 들어오지만 않으면 뭐라고 하지 않을 겁니다.”
방주의 말에 원로와 당주들은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녹림의 부름에 응한다는 게 조금 이상하지만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허면 누구와 가시겠습니까?”
“양이선이면 될 것 같습니다.”
원로와 당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이선은 지난해 영입한 무인으로 청로방 제일 고수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여월(如月) 다관.
네 사람이 다관 앞에서 마주쳤다.
녹수방 방주 유하원과 고윤월, 그리고 청로방 방주 위소우와 양이선이다.
유하원이 ‘흥!’ 하고 냉소를 치고는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고윤월은 양이선을 힐끔 본 후에 방주를 따라갔다.
적반하장인 유하원의 행동에 고개를 젓던 위소우가 양이선을 보며 말했다.
“방금 들어간 자가 도귀 고윤월이네. 이 근방에서 최고 고수로 알려졌지. 어때 보이나?”
“실력은 있어 보이는군요.”
양이선의 담담한 눈빛을 본 위소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함세.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하면 추풍대를 자네에게 맡기겠네.”
“노력하겠습니다.”
위소우가 만족한 얼굴로 돌아섰다.
양이선의 신출귀몰한 창법이라면 ‘도귀’라는 고윤월도 별수 없으리라.
한편 유하원은 다관에 들어가자마자 내부를 훑었다.
이미 일반 손님들을 내보냈는지 창가 쪽에 두 사람만 앉아 있었다.
그는 청년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귀하가 녹림의 연 공자십니까?”
“그런데요?”
“저는 녹수방의 방주인 천애도 유하원이라 합니다. 그런데 귀하가 녹림 태상호법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사칭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말입니다.”
“영패 보여 줘?”
연적하는 상대를 확인하자 바로 말을 놓았다.
순간 유하원이 눈을 찌푸렸다.
일방의 방주인 자신에게 새파랗게 어린 놈이 반말을 하니 거슬린 것이다.
유명교에 가입하고 난 뒤로 이런 식의 하대는 처음이었다.
“평생 녹림의 영패를 본 적이 없는데, 본다고 알겠습니까?”
유하원의 말에 뼈가 있었다.
당신이 정말 연적하인지 모르겠으니 머리를 숙이지 않겠다는 태도다.
그런 그의 감정은 연적하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어떻게 알려 줄까?”
유하원이 옆에 있는 도귀를 가리켜 보였다.
“이 사람은 녹수방 최고의 고수로 ‘도귀’라 합니다. 그에게 한 수 보여 주시지요.”
방주가 갑자기 자신을 끌어들이자 고윤월은 움찔했다.
연적하와의 비무는 계획에 없던 탓이다.
하지만 자신도 청년의 정체가 궁금했던지라 슬쩍 반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연적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 사람은 청로방과 싸워야 하잖아. 공평하게 해야지. 나한테 두드려 맞고 싸우기도 전에 기가 꺾이면 되나. 안 그래?”
“허면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어, 애먼 사람 잡지 말고 당신이 나서 봐. 당신은 몇 대 맞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때?”
유하원은 청년이 도귀 대신 자신을 상대로 지목하자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녹림 태상호법이 고작 도귀와의 비무를 꺼린다니 수상하군.’
말은 배려하는 듯했지만 자신이 볼 때는 회피였다.
자신도 그런 식으로 꺼림칙한 상대와의 싸움을 피한 적이 많았다.
‘나를 지목하면 싸우지 않고 그냥 넘어갈 거라 생각했나?’
그는 세밀하게 청년을 살폈다.
반박귀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평범했다.
반박귀진도 무인.
이러니저러니 해도 무공을 익힌 최소한의 흔적은 남아야 정상이다.
그런데 저놈은 평생 칼 한 번 잡아 본 적이 없는 여리여리 한 몸뚱아리였다.
게다가 병장기도 보이지 않았다!
연적하가 검술의 고수라고 들었는데 빈손이라니?
‘사기꾼들의 허세인가.’
손을 섞어 보면 알게 될 일이다.
고수라는 느낌이 들면 그때 재빨리 패배를 자인하고 빠져도 늦지 않다.
“그렇게 하지요.”
유하원이 받아들이자 연적하는 앉은 상태에서 상체를 살짝 틀었다.
그리고 덤비라는 듯 손가락을 까닥였다.
아무리 녹림 태상호법이래도 녹수방 방주인 유하원의 입장에서는 모욕적인 행동이었다.
유하원은 상대의 작태에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정중한 말과 달리 그의 눈은 살기로 번들거렸다.
‘이놈. 죽여 버리겠다.’
처음부터 자신의 성명절기인 불비도법(不悲刀法)을 쓰면 꼼짝없이 당하리라.
그의 손에서 ‘발도와 동시에 빗물을 벤다’는 추도단우(抽刀斷雨)가 펼쳐졌다.
슈각-.
그야말로 섬광처럼 박도의 칼날이 연적하의 목울대로 날아갔다.
필살의 각오로 펼친 발도술이라 초절정 고수라 해도 막기 어려워 보였다.
물론 그건 도귀 고윤월과 청로방 방주 위소우, 그리고 양이선의 생각이다.
턱.
빛살처럼 날아가던 박도는 연적하의 목 앞에서 멈춰 섰다.
연적하가 엄지와 검지 손가락만으로 도신(刀身)을 잡아 버린 것이다.
박도의 무게와 속도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인지라 모두의 입이 쩍 벌어졌다.
다음 순간 연적하는 도를 자신의 몸으로 끌어당겼다.
망연자실하게 서 있던 유하원은 균형을 잃고 속절없이 딸려 갔다.
연적하는 코앞까지 끌려온 유하원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세차게 후려쳤다.
퍽!
패배를 자인하고 어쩌고 할 틈도 없었다.
유하원은 장정들이 사지를 잡고 힘껏 던진 것처럼 한쪽 방향으로 날아갔다.
쿠당탕.
코뼈가 내려앉았는지 밋밋해진 얼굴 위로 핏물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도귀는 물론 청로방 방주 위소우까지 일격에 박살난 유하원의 모습에 흠칫 몸을 떨었다.
만에 하나라고 생각하고 왔건만 진짜 녹림의 연적하다.
십두마병을 참살하고 다녔다는 인간 백정.
수틀리면 혈족까지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몰살시킨다는 희대의 악마.
천지맹의 총단에서 이인자인 총사까지도 묵사발 만들 정도로 단순 무식하다던가.
모두가 슬며시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양이선만은 오히려 빳빳하게 고개를 세웠다.
‘빠득. 연적하.’
양이선은 이를 악물고 두려움을 밀어냈다.
양가장을 망하게 한 원수 앞에서 개처럼 꼬리를 말고 싶지 않아서다.
“자아, 아직도 내가 연적하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사람 있나요?”
연적하가 손바닥을 탁탁 털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숨죽이며 지켜보던 청로방 방주 위소우가 엉거주춤 앞으로 나섰다.
“연 공자님, 저는 청로방 방주 위소우라고 합니다. 천하에 위명이 쟁쟁한 연 공자님과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금의 그 한 수면 충분합니다. 저희 청로방은 연 공자님의 뜻에 따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위소우는 연적하가 별말이 없자 얼른 함께 온 양이선을 소개했다.
“이쪽은 양이선이라고 저희 청로방에서 가장 뛰어난 무인입니다. 창을 아주 잘 다루지요.”
양이선?
시큰둥한 얼굴로 듣고 있던 연적하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