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42
442회. 늙은이와 관계없는 일이잖아
옥기린 양이선은 연적하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자신과 연적하, 아니 양가장과 저 녹림의 연적하는 원수 아닌 원수였다.
나중에야 사돈인 백미주가 그에게 한 짓을 알았다.
그의 복수심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만약 자신도 연적하처럼 무자비하게 당했다면 복수를 했을 것이다.
딱 거기까지다.
그의 복수에 휘말려 양가장이 몰락했으니 그는 양가장의 원수다.
은원이란 이처럼 돌고 도는 것.
양이선은 그를 이해하면서도 그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양가장 식솔들이 낭인으로 전락해 천하를 떠돌고 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막상 가까이서 그를 만나니 입안이 바싹바싹 말랐다.
그가 보여 준 한 수는 자신과 그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일깨워 줬다.
분하지만 자신도 녹수방 방주처럼 단 한 수에 나가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노려보기만 했다.
피가 끓어올랐지만 그를 향해 창을 겨누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연적하가 물었다.
“양이선? 정주의 옥기린 양이선?”
청로방 방주 장천검 위소우는 당황한 얼굴로 양이선과 연적하를 번갈아 보았다.
성급(省級) 고수가 아닌 다음에야 이름만 듣고 알 수는 없다.
위소우 역시 양이선에 대해 몰랐다.
하지만 ‘정주’라는 지명이 나온 순간 양이선의 출신 내력을 파악했다.
‘설마 양가장 사람이었나.’
정주 출신에, 창을 귀신처럼 다루고, 양씨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청로방이 하남성에 있었다면 처음부터 양가장과의 관계를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산서성에서 양이선의 이름만으로 거기까지 알 수는 없었다.
‘양가장이라면 도귀를 상대할 수 있겠지. 그런데 연 공자가 양이선을 어떻게?’
자신은 일 년이나 데리고 있으면서도 몰랐는데 이름만으로 알아보다니?
연적하와 양이선의 관계를 생각하던 위소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뒤늦게 ‘삼장불립’에 대한 소문이 떠올라서다.
‘이런 제길! 망했다.’
양가장 출신이 마냥 좋은 게 아니다. 아니 지금의 경우는 오히려 치명적인 약점이다. 연적하와 양가장은 공존할 수 없는 사이니까.
잔뜩 긴장한 위소우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어쩌면 다관을 뺏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삼장불립’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제 혈족까지 쳐 낸 연적하가 아니던
하물며 청로방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가 한창 화를 모면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을 때 양이선이 말했다.
“그렇소. 나는 정주 양가장의 양이선이오.”
양이선은 ‘당신이 망하게 한’이라는 말을 뒤에 붙이려다가 꾹 참았다.
다 죽어 가던 도귀 고윤월의 얼굴이 조금씩 펴졌다.
그도 뒤늦게 하남성에서 유명했던 ‘삼장불립’의 사건을 기억해 낸 것이다.
양이선은 부담스러운 상대지만 결국 녹수방의 승리로 끝날 게 분명했다.
위소우의 ‘염려’나 고윤월의 ‘기대’ 와 달리 연적하는 더 이상 양이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왜 불렀는지 알죠? 녹수방과 청로방에서 서로 다관을 지켜 주겠다니 더 센 쪽과 계약하라고 했어요. 그게 맞는 것 같죠? 아니라고 생각하면 지금 말해요. 결과 나온 뒤에 다른 소리 하지 말고.”
그러자 고윤월이 호기롭게 말했다.
“저는 연 공자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약한 사람들이 다관을 지켜 줄 수 없으니까요.”
한발 늦게 위소우가 풀 죽은 얼굴로 답했다.
“예, 저도 연 공자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어느 쪽이 강한지 무위를 겨루어 보죠.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면, 약속하는데, 다시 나를 만나게 될 거예요.”
“결과에 승복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방주인 위소우의 대답이 빨랐다.
고윤월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방주를 힐끔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지금은 기절한 방주를 대신해서 자신이 약속해야 할 분위기다.
“저희 녹수방도 그러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답을 들은 연적하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시작해 봐요.”
잠시 후 다관 앞 거리.
두 방파의 최고수 고윤월과 양이선이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고윤월은 박도를, 양이선은 단창을 손에 들고 있었다.
녹수방과 청로방 방도들이 거리를 막아 사람들은 멀찍이서 구경을 해야 했다.
고윤월의 박도가 먼저 움직였다.
그는 생사대적을 만난 듯 무자비하게 도를 휘둘렀다.
고작 신성현의 귀도와 그보다 훨씬 큰 정주의 옥기린.
아무래도 명성의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다.
고윤월은 양이선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몰아칠 생각이었다.
차차차창-.
숨 쉴 틈도 없이 도로 몰아쳤건만 단창은 마치 철벽처럼 모든 걸 막았다.
고윤월과 양이선은 이리저리 자리를 바꿔 가며 상대의 빈틈을 노렸다.
창가 자리에서 비무를 지켜보던 적월 공취산이 들으라는 듯 한마디 했다.
“양가 놈이 이기겠군.”
“…….”
연적하가 침묵하자 공취산이 물었다.
“‘삼장불립’은 장원을 두고 한 말이냐? 아니면 사람까지도 포함된 게냐?”
옆에 서 있던 위소우 역시 궁금한 듯 연적하의 표정을 훔쳐보았다.
“영원한 것은 없어. 당신도 백두마군이었지만 교주를 배신하고 명왕교로 갔잖아.”
“그래서, 양씨를 용서해 준다고?”
공취산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눈앞에서 땀 흘리며 싸우는 양이선을 보고 있자니 연적하의 생각이 궁금했다.
“늙은이와 관계없는 일이잖아.”
“이 세상에 나와 관계없는 일은 없느니라. 너도 도가(道家)의 공부를 했으면 ‘만물일여(萬物一如)’라는 말은 들어 봤을 텐데.”
“쯧! 곧 죽을 늙은이가 입만 살아서는.”
연적하는 양이선의 싸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용서?
물론 처음에는 백가장과 양가장이 와룡장의 뒤를 봐줘서 꽤 화가 났었다.
하지만 세 가문이 쫄딱 망한 지금은 다르다.
복수는 넘치도록 완성됐고, 자신은 과거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가는 중이다.
양이화를 도운 것도 그래서다.
그걸 모르니 용서 운운하는 것이리라.
연적하는 굳이 설명해 줄 필요를 느끼지 못해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채앵!
단창에 제대로 걸린 박도가 뒤로 튕겼다.
순간 양이선이 고윤월의 가슴으로 파고들며 창대로 가슴을 찍었다.
양가창법의 이식 ‘취파만산운(葛破萬山雲)’이다.
퍽!
그 충격으로 뒷걸음질 치던 고윤월이 돌연 왼손을 빠르게 흔들었다.
촤아아-.
시커먼 모래가 양이선의 얼굴로 날아갔다.
양이선은 급히 옆으로 얼굴을 틀어 정체불명의 모래를 피했다.
자연히 공격의 맥이 끊어지고, 빈틈이 생겼다.
고윤월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반격에 나섰다.
파팟-.
양이선의 양쪽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비겁하다!”
흥분한 위소우는 무심코 소리 질렀다가 급히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헉! 내가 미쳤지. 녹림 고수 앞에서 비겁 운운하다니…….’
사파에서 독 모래를 쓰는 건 일상다반사.
그걸 비겁하다 했으니 연적하의 심기가 많이 불편했을 것이다.
양가장 사람을 고용한 것으로도 부족해 그런 실언까지 하다니!
아무래도 마가 낀 날 같다.
한편 양이선은 갑자기 머리가 띵해지자 자신이 중독당했음을 깨달았다.
검은 모래를 피한다고 피했는데 몇 알이 몸에 닿았던 모양이다.
‘독 모래였구나!’
독에 당했다고 생각하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도 살수만큼은 피했는데 독까지 사용하다니? 이건 죽이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양이선의 움직임이 변했다.
창의 움직임은 더욱 날카로워졌고, 짧게 끊어치던 공격이 길게 이어졌다.
콰직!
휘몰아치는 공격을 근근이 막아 내던 고윤월의 박도가 뚝 부러졌다.
대경실색한 고윤월이 뒤로 물러났지만 양이선은 구경만 하고 있지 않았다.
그림자처럼 달라붙은 양이선이 창 끝으로 고윤월의 어깨를 찍었다.
아까와 같은 ‘취파만산운’의 초식이다.
하지만 이번엔 창대를 돌리지 않아 창날이 고윤월의 오른편 어깨에 박혔다.
“윽!”
짧은 신음과 함께 고윤월의 손에서 박도가 떨어졌다.
챙그렁-.
한 걸음 물러선 양이선이 창을 한 바퀴 ‘휘리릭’ 돌려 옆에 세운 뒤 물었다.
“더 하시겠소?”
“…….”
고윤월은 가타부타 답하지 않고 야릇한 눈으로 양이 선을 보기만 했다.
“대답은?”
“흥! 곧 죽을 놈이 큰소리는.”
싸움에 지고도 큰소리는 오히려 고윤월이 쳤다.
“무슨 헛소리냐! 패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냐!”
“패배? 누가? 내가?”
고윤월이 슬금슬금 거리를 벌렸다.
상대의 뻔뻔한 태도에 노기가 치밀어 오른 양이선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런데 이게 웬일?
술에 취한 것처럼 하늘과 땅이 한 차례 출렁거렸다.
대경실색한 양이선은 황급히 창을 붙잡아 상체를 세우고 소리쳤다.
“도객이 독을 쓰다니. 네놈이 그러고도 무인이냐!”
“흥! 개소리. 당가의 고수 앞에서는 찍소리도 하지 못할 놈이 어디서!”
고윤월의 지적에 양이선은 반박하지 못했다.
‘도귀라고 하기에 도만 쓸 줄 알았는데……. 내 실수다.’
놈이 독 모래를 사용한다는 걸 알았다면 더 빨리 제압했을 것이다.
고윤월이 바닥에 떨어진 반 토막 난 박도를 집어 들고 양이선에게 다가갔다.
“후후! 패배를 인정하면 살려는 주마. 인정하지 않는다면 팔다리를 하나씩 자르겠다. 어떻게 할 테냐?”
고윤월은 한껏 여유를 부렸다.
독 모래의 독은 대단하지 않지만 그래도 해약을 먹어야 해독이 가능하다.
그러니 당장 해약을 구할 수 없는 양이선은 독 안에 든 쥐나 마찬가지였다.
연적하가 공취산에게 고개를 돌렸다.
“독 모래의 독이 그렇게 대단해? 맨손으로 만진 걸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대단한 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만한 독도 아니다. 싸우기 전에 해약을 미리 먹었다면 맨손으로 잡는 게 가능할 게다.”
공취산이 답하자 위소우가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이걸 먹어야 해독이 됩니다.”
답답한지 그는 자기 품에서 쥐똥만 한 크기의 까만 환을 꺼내 보였다.
연적하가 환약을 건네받은 뒤 킁킁 하고 냄새를 맡았다.
약재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주님은 왜 해약을 가지고 다녀요?”
“최근 산서성에 독 모래를 쓰는 마두 아니 사파 고수들이 좀 있어서요. 제가 평소에도 이것저것 준비를 좀 하는 편입니다.”
위소우는 ‘마두’라고 했다가 급히 ‘사파 고수’로 표현을 바꾸었다.
“아, 유명교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파 고수들이 하나 둘 유입되다 보니 분위기가 좀 좋지 않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연적하가 돌연 창문으로 손을 뻗었다.
“아이고! 더워서 그런가? 창문에 습기가 차네.”
그가 창문을 열자 어디선가 일진광풍이 몰아쳐 왔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밀려오자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건 고윤월도 마찬가지였다.
창에 의지해 겨우 서 있던 양이선도 본능적으로 고개를 틀었다.
아니, 틀려는 순간이다.
한 줄기 경력이 날아와 아혈을 점하자 그의 턱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그때 흙먼지와 함께 뭔가가 입안으로 깊이 들어왔다.
깜짝 놀란 그가 뱉어내려 할 때 경력이 이마를 강하게 밀며 턱밑으로 빠져나갔다.
머리가 뒤로 꺾이며, 목울대가 저 혼자 움직여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캑! 쿨럭! 쿨럭!”
뒤늦게 양이선이 마른기침을 해 댔지만 한번 넘어간 이물질은 다시 넘어오지 않았다.
바람은 이내 잦아들었다.
방금까지 허리를 꺾고 캑캑거리던 양이선의 상체가 꼿꼿하게 펴졌다.
갑자기 ‘찌르르’한 느낌과 함께 단전에서 청량한 기운이 올라왔다.
누군가 조금 전의 그 난리통에 자신에게 해독약을 먹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