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71
471회. 십전무후에게 줬다고?
하남성.
남양.
동백현 백화상방.
사월 중순.
‘소문은 말[馬]보다 빠르다’는 말이 있다.
응천부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이내 남직례성과 하남성으로 퍼져 나갔다.
상방 방주들이 갑자기 거리를 두자 백화상방 방주 백한생은 급히 대행수 백일웅과 중양대주 상월검 백산우, 그리고 백선화를 불러들였다.
“대행수, 요즘 만수상방과 화양상방에서 우리가 곧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른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다닌다던데. 내가 알지 못하는 무슨 문제라도 있나? 남직례성에서 일이 터졌다는 건 또 무슨 소리고?”
방주의 물음에 백일웅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호사가(好事家)들이 막 던지는 소리니 귀담아들을 것 없습니다.”
“만수상방과 화양상방에서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닌다니까 무슨 호사가 타령인가!”
“호사가들의 말에 만수상방과 화양상방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게.”
“금일상방에서 우리에게 고서 배달을 의뢰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응천부(남경)로 가는.”
“두 번 있었지.”
“그런데 응천부에서 고서를 전달받은 사람들이 살해당한 모양입니다. 그걸 두고 무슨 대단한 음모라도 있는 것처럼…….”
듣고 있던 백한생이 급히 말을 끊었다.
“자네와 거래를 한 사람이 죽었나?”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또 누가 죽었기에?”
“제가 유근이라는 환관에게 고서를 넘겼고, 유근은 그걸 대학사 모운중에게 전했는데……. 유근과 모운중 모두 죽은 것 같습니다.”
“그 외에 고서와 관계된 사람은 없고?”
“남직례성에서는…… 없습니다.”
백일웅은 잠깐 십전무후를 떠올렸지만 말하지 않았다.
상방의 신용을 생각해서라도 그 일은 무덤까지 안고 가야 했다.
더구나 이런 불쾌한 일에 남궁세가를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만수상방과 화양상방에서 그런 소문을 퍼트리고 다녔군. 하여간 징그러운 놈들이야. 틈만 보이면 물어뜯으려고 한다니까.”
“너무 심려 마십시오. 그 고서가 무림의 보물도 아닌데 무슨 일이야 있겠습니까? 선화야, 네가 고서를 들춰 봤으니 말해 보거라. 그게 그토록 대단한 물건이라고 생각하느냐?”
백일웅의 말에 백한생이 놀란 눈으로 딸을 보았다.
“너, 고서를 읽었느냐?”
“물건을 점검하는 과정에 살짝 확인한 정도예요. 애초에 금일상방에서 밀봉하지도 않았을 정도로 평범한 물건이었는걸요?”
“정말 그저 그런 책이더냐?”
“네.”
그녀 역시 부친에게 ‘십전무후에게 책을 선물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제야 백한생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사촌 동생인 대행수와 딸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까닭이다.
그때 문밖에서 총관의 음성이 들려왔다.
“방주님, 유명교에서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방주님을 뵙자고 하십니다.”
순간 백한생과 백일웅, 백산우, 백선화가 놀란 얼굴로 후다닥 일어났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유명교에서 직접 찾아온 적이 없어서다.
백한생은 급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백일웅과 백산우, 백선화도 지체하지 않고 그의 뒤를 따랐다.
백한생이 비파를 안고 있는 중년 여자와 건장한 체구의 중년 남자 앞에 섰다.
눈치를 보던 총관이 중년 남녀에게 백한생을 소개했다.
“저희 상방의 백 방주님이십니다.”
비파선자(毗婆仙子)와 금강보살(金剛菩薩)이 웃으며 한마디씩 했다.
“비파선자예요.”
“금강보살이오. 다른 분들은 누구요?”
총관은 금강보살이 백한생의 뒤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자 급히 설명했다.
“백일웅 대행수님과 중양대주 상월검 대협, 그리고 서기입니다.”
“백일웅 대행수라면 혹 남직례성으로 상행을 나갔던 분이오?”
“예, 그렇습니다.”
“하하. 잘됐군, 잘됐어. 그렇지 않아도 백 대행수에게 볼일이 있었는데.”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던 금강보살이 대뜸 툇마루로 걸어가 끝에 걸터앉았다.
마치 자신의 집에라도 온 것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태도에 백한생은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공손히 말했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괜찮소. 그럼 대화를 나눠 봅시다.”
문득 금강보살이 비파선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비파선자가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유령처럼 사라져 버렸다.
멍하니 서 있는 백화상방 사람들에게 금강보살이 말했다.
“여러분은 내가 왜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시오?”
백한생이 사람들을 대표해 조심스럽게 나섰다.
“혹 저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가장 우선적으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팔황이 모종의 거래를 위해 방문했다고 믿었다.
금강보살이 재밌다는 얼굴로 백한생을 보았다.
“그야 당연한 소리. 그런데 당신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시오?”
“모릅니다. 말씀해 주시면 최선을 다해, ‘되도록’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는 ‘되도록’에 힘을 실었다.
‘유명교 분부이니 무조건 맞춰 주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순간 금강보살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상대의 비웃음에 당황한 백한생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만 끔뻑였다.
“방주가 모르는 일이라 이건가? 대행수, 당신이라면 알겠지? 우리 팔황이 백화상방을 찾아온 이유를.”
“저도 모르겠습니다.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그때 멀리서 ‘띵띵’ 하는 비파 소리가 들려왔다.
비파 소리와 더불어 금강보살의 눈빛도 차갑게 가라앉았다.
“장사꾼들은 못된 습성이 하나 있어. 자기들이 사람들을 잘 알고, 그들의 머리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모르겠다고 잡아떼면 내가 믿어 줄 것 같나?”
어느새 금강보살의 말이 짧아졌다. 그가 살기를 뿜어내자 백화상방 사람들은 숨통이 조이는 느낌에 비틀거렸다.
그 와중에 백한생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크흑! 어르신! 정말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니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열 배, 백 배로 돌려 드리겠습니다!”
금강보살이 살기를 거두며 말했다.
“마지막 기회를 줄 테니 잘 생각하고 답해라. 금일상방이 교주님의 고서를 응천부로 잘못 보냈다. 너희가 환관에게 넘긴 그 고서를 말하는 것이다. 응천부로 갔던 자들은 옆으로 빠져라.”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백일웅, 백산우, 백선화가 옆으로 움직였다.
“고서를 빼돌린 자가 누구냐.”
금강보살의 물음에 백일웅이 급히 답했다.
“어르신, 누구의 모함인지는 모르겠으나 저희는 고서를 빼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팔황에게 만수상방과 화양상방의 유언비어가 흘러 들어갔다고 착각했다.
그러자 금강보살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말로는 들어먹지 않을 위인들이로군.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겠다 이거지?”
순간 안채 쪽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아니, 정확히는 비파선자가 양 떼를 몰듯 백화상방 식솔들을 몰아왔다.
잠시 후 집무실 앞마당에 상인과 그의 가족들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금강보살이 다시 합류한 비파선자에게 그간의 일을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끝까지 고서를 빼돌리지 않았다는구려. 무슨 부귀영화를 누려 보겠다고 저러는 건지 원. 선자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떻소?”
“그렇게 해요. 나도 깔끔한 게 좋으니까.”
비파선자가 손끝으로 비파를 가볍게 쓰다듬자 ‘띠리링’ 하고 맑은 음이 흘러나왔다.
백한생과 백일웅, 백산우, 백선화는 무슨 소리인지 몰라 멍하니 보기만 했다.
그에 반해 안채에서 나온 식솔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덜덜 떨었다.
금강보살이 백일웅을 보며 말했다.
“모함이라고? 고서를 빼돌리지 않았다고? 틀림없으렷다?”
“그렇습니다.”
백일웅의 말과 동시에 비파선자가 현을 튕겼다.
띵-.
순간 가장 앞쪽에 앉아 있던 여자의 머리가 ‘퍽’ 하고 터져 나갔다.
기이한 적막이 마당을 휩쓸고 지나갔다.
백한생 일행의 입에서는 신음이 흘러나왔지만 다른 식솔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미 안채에서 수도 없이 본 광경인 까닭이다.
뒤늦게 백한생은 아까 들었던 비파 소리의 의미를 깨닫고 덜덜 떨었다.
“어, 어르신, 무슨 오해인지 모르겠으나…….”
“오해? 푸하핫! 네 눈에는 우리가 오해 따위로 움직일 사람으로 보이느냐?”
묘하게 확신에 찬 태도다.
깜짝 놀란 백한생은 급히 대행수와 중양대주, 그리고 딸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희들! 나에게 감춘 일이 있었더냐?”
“없습니다!”
“아닙니다!”
백일웅과 백산우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러나 그들과 나란히 선 백선화는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물어뜯었다.
노련한 숙부들과 달리 경험이 부족한 백선화는 식솔들의 죽음 앞에서 머뭇거렸다.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본 팔황의 눈에서 섬광이 번득였다.
백한생도 딸의 표정에서 뭔가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선화야, 무슨 일이냐. 솔직하게 말해 보거라.”
압박을 견디지 못한 백선화가 고개를 푹 숙였다.
‘더는 못 버티겠어.’
남궁세가와 유명교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누구라도 유명교를 택할 것이다.
“실은 고서 중에 일부를 십전무후에게 선물로 줬어요. 유명교 교주님 것인 줄 모르고 그랬어요. 단순히 왕부로 보내는 책인 줄 알고…….”
“왜! 대체 왜 그런 짓을 해! 백일웅, 백산우, 너희도 알고 있었느냐?”
백일웅과 백산우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모두 제 잘못이에요. 숙부님들은 죄가 없어요.”
“너는 왜 금일상방의 물건에 손을 댔느냐. 신뢰가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누누이 가르쳤는데, ‘옥주’와 ‘당삼채’를 잃었다고 그런 짓을 해?”
“그것 때문만은 아니에요. 실은 상행 중에 제가 녹림의 연 공자에게 잘못을 저질렀어요. 그가 누구인지 모르고 함부로 대하다가, 급기야 쫓아내기까지 했어요.”
가만히 듣고 있던 중양대주 백산우도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고백했다.
“방주님, 실은 저도 연 공자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수하들과 함께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백한생이 버럭 소리쳤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네가 왜 연 공자를 죽이려 들어?”
“쫓겨난 그가 계속 뒤따라오는 게 너무 수상쩍고 신경 쓰여서 그랬습니다. 남궁세가에 도착해서야 그가 녹림의 연적하라는 걸 알았습니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은 대행수 백일웅이 찍었다.
“하아! 방주님, 모두가 제 잘못입니다. 남궁세가에서 백화상방의 합비 출입을 금한 것은 ‘옥주’와 ‘당삼채’ 때문이 아닙니다. 십전무후가 연 공자의 일로 분노해서 그렇게 된 것이었습니다. 선화를 시켜 십전무후에게 책을 선물로 보낸 사람은 접니다.”
“너, 너희들 모두가 나를 속였구나.”
갑작스러운 충격에 뒷목을 잡고 비틀거리던 백한생이 풀썩 주저앉았다.
수치스러운 비밀이 밝혀지자 백화상방은 침묵에 휩싸였다.
금강보살이 인상을 찌푸렸다.
“고서를 십전무후에게 줬다고?”
백선화가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전부가 아니라 그중에서 세 권만 추려서 보냈어요. 부족한 세 권은 응천부의 고서점에서 구입해…….”
“채워 넣었다?”
“……네.”
“따로 필사(筆寫)해 둔 책은?”
“없어요. 저희뿐 아니라 다른 상방도 ‘고서’라고 다 필사하지는 않아요. 무공 서적이나 이름난 경전처럼 상품성이 있는 거라면 모를까.”
“그래, 그러니까 십전무후에게 선물한 세 권이 전부다?”
“예, 그건 제 목숨을 걸고 보증할 수 있어요.”
자리를 털고 일어난 금강보살이 비파선자에게 물었다.
“그렇다는구려. 목숨까지 걸고 보증한다니 믿어 줍시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거짓말은 아닌 것 같네요. 이만 마무리해요.”
“그럽시다. 아까 고생하셨으니 여기는 내가 정리하리다. 달아나는 것들만 도와주시오.”
말을 끝낸 그는 백화상방 사람들에게 뛰어들었다.
뒤이어 무자비한 살육이 시작됐다.
중양대주 백산우는 그의 일초를 받아 내지 못하고 얼굴이 함몰되었다.
사람들이 금강보살을 피해 달아나면 비파 소리가 울렸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머리가 터졌다.
띵, 띠잉-.
잠시 후 비파 소리가 멎었다.
양손에 묻은 피를 탈탈 털어 내던 금강보살이 갑자기 탄식을 터뜨렸다.
“허어! 이제 어쩐다.”
“이 문제는 풍지산으로 돌아가 논의를 해 봐야 할 것 같네요.”
금강보살이 고개를 끄덕였다.
십전무후와 연적하가 혼인을 했으니 간단히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