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70
470회. 안녕들 하십니까?
성내로 들어간 직일신장(直日神將)과 구궁천녀(九宮天女)는 왕부(王府) 근처의 객점에 방을 얻었다.
그리고 식당에 내려가 이른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객점에는 손님도 뜸했다.
술시 말(오후 9시)쯤, 식당이 텅 비자 구궁천녀가 슬쩍 운을 뗐다.
“백일웅(백화상방 대행수)이 물건을 석신사(借薪司, 궁정에서 사용하는 땔나무를 공급하는 아문)의 환관 유근에게 넘겼다고 했죠?”
“그렇소. 하지만 최종 목적지는 결국 문화전(文華殿, 태자를 교육시키는 장소)의 대학사(정5품) 모운중일 게요.”
분명히 그렇게 들었다.
대학사 모운중과 금일상방 방주를 이어 주고 있는 사람이 환관 유근이라고.
“그 두 사람으로 끝났으면 좋겠네요.”
“그러기를 바라오.”
직일신장(直日神將)이 무덤덤한 눈빛으로 야경을 바라보았다.
최근 유명교와 황실의 관계는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걷고 있다.
이젠 사고를 쳐도 수습해 줄 사람이 없으니 가급적 조용히 끝내야 했다.
해시 말(오후 11시).
직일신장과 구궁천녀는 야행복으로 갈아입고 객점을 나섰다.
황궁의 경비는 삼엄했지만 팔황인 두 사람은 여유 있게 안으로 잠입했다.
하지만 마음만 너무 앞섰다.
두 사람은 뒤늦게 자신들이 환관의 숙소를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시진(2시간)쯤 지났을까?
황궁 경비를 맡은 구문제독부의 금군을 피해 다니던 직일신장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하! 아무래도 이러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소. 날이 밝거든 환관을 하나 잡아다가 물어봅시다.”
“그게 낫겠어요.”
구궁천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쓸까’라는 말대로다.
무공만 믿고 무턱대고 담을 넘었지만 이렇게 풀어 나갈 일은 아닌 것 같다.
결국 직일신장과 구궁천녀는 황궁 만 몇 바퀴 돌고 다시 객잔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두 사람은 전날과 달리 여유를 가지고 황궁 안팎을 염탐했다.
그러다 점심 무렵.
마침내 두 사람은 태평전(太平殿) 뒤편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어린 환관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구궁천녀가 나섰다.
홀연히 눈앞에 화사한 복장의 중년 여인이 나타나자 장사비는 반사적으로 허리부터 꺾었다.
황궁에서 여자는 궁녀 아니면 왕족이니 일단 자세를 낮춘 것이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중년 여인의 물음에 장사비가 공손히 답했다.
“장사비라 합니다.”
“환관이렷다?”
“예, 소관은 석신사에 속해 있습니다.”
‘석신사’라는 말에 구궁천녀의 눈이 빛났다.
처음 만난 환관이 석신사의 환관이라니, 오늘은 시작부터 잘 풀리는 느낌이다.
“석신사는 어디에 있느냐?”
그러자 장사비가 태평전 옆에 있는 전각을 가리켜 보였다.
“저곳입니다. 그런데 귀인께서는 누구신지요?”
“알 것 없다. 너 혹시 유근을 아느냐?”
“예.”
“유근을 이리 데리고 오너라.”
“예.”
나이가 어린 장사비는 이유를 묻지 않고 순순히 물러갔다.
잠시 후 장사비가 삼십 대로 보이는 환관 하나를 데리고 왔다.
유근은 태평전 뒤에 중년 여자가 홀로 서 있자 장사비를 돌려보냈다.
“소관을 찾으셨다고요?”
유근은 티 나지 않게 중년 여자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살폈다.
궁녀가 아닌 걸 보면 왕가의 여자 같은데 왜 자신을 찾는지 모르겠다.
석신사의 내관은 황궁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비루한 신세인 까닭이다.
“네가 석신사의 유근이 맞느냐?”
구궁천녀는 지난밤과 같은 헛수고를 피하고자 재차 확인했다.
“예, 그렇습니다만 무슨 용무가 있으신지요?”
순간 그의 뒤에 직일신장이 귀신처럼 나타났다.
그는 단숨에 유근의 아혈과 마혈을 제압하고 어깨에 둘러멨다.
곧이어 직일신장과 구궁천녀의 신형이 퍽 하고 사라졌다.
황궁 동편의 자금산.
인적이 없는 자금산 깊숙한 곳에 유령처럼 두 사람이 나타났다.
어깨에 유근을 둘러멘 직일신장과 구궁천녀다.
직일신장은 거대한 바위 뒤쪽에 유근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내동댕이쳐짐과 동시에 혈도가 풀린 유근이 비칠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왜, 왜들 이러십니까?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저는 고작해야 석신사의 환관일 뿐입니다.”
그러자 직일신장이 차갑게 말했다.
“묻는 말에나 답해라. 한 달하고도 보름쯤 전, 백화상방의 백일웅 대행수에게 받은 물건이 있을 것이다. 기억나느냐?”
“…….”
유근이 머뭇거리자 직일신장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살고 싶으면, 머리 굴리지 말고 묻는 말에만 답해라. 기억나느냐?”
“……예.”
“무엇을 받았느냐?”
“책, 그러니까 서안에서 가져온 고서를 몇 권 받았습니다. 제가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빼앗은 것도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우리는 그 책을 찾고 있다. 그 책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모운중 대학사(정5품)에게 가는 책이라고 해서 전해 드렸습니다.”
사례비로 은자 이백 냥을 받았지만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책을 전해 준 장소가 어디냐? 문화전이냐? 모운중의 집이냐?”
“문화전에서 드렸습니다.”
“책이 문화전에 있다는 소리냐?”
“그것까지는 알지 못합니다만 문화전에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사께서 먼저 검수를 한 뒤에 왕가로 보낸다고 했으니까.”
“한 달 보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문화전에 있겠느냐?”
“대학사께서 관심을 두다 보니 늦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전에 보낸 책들도 아직 문화전에 있을 정도니까요.”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왕가에서 흡족해했다고 들었는데 아직 문화전에 있다니.”
“저는 백화상방에 대학사께서 하신 말씀을 전해 준 것뿐입니다. 서안에서 온 책들은 아직 왕가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한 권도.”
“그러니까 전부 문화전에 있다?”
“대학사께서 사저(私郞)로 가지고 간 게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렇습니다.”
“흐음!”
직일신장의 입에서 무거운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대학사의 사저로 반출한 게 있다면 일이 커질 수도 있었다.
대학사뿐 아니라 그의 식솔들 입도 봉해야 하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가라앉자 유근이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모두 말씀드렸습니다. 다른 이에게 입도 뻥끗하지 않을 테니 약속하신 대로 살려 주십시오.”
그 말에 직일신장이 피식 웃었다.
“내가 묻지도 않은 것까지 성심성의껏 말해 준 것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지. 너를 살려 주겠다는 약속을 한 적은 없다.”
말과 함께 직일신장이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머리통에 구멍이 난 유근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
그날 저녁.
직일신장과 구궁천녀는 대학사 모운중의 퇴궐(退闕)을 기다렸다가 그를 덮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모운중의 호위무사 두 사람의 목이 꺾였다.
직일신장은 모운중을 어두컴컴한 뒷골목으로 끌고 가서는 다짜고짜 물었다.
“금일상방에서 보낸 고서는 어디 있느냐?”
“뭐, 뭐 하는 연놈들이냐! 내가 누군지 알고…….”
그의 말을 끊고 직일신장이 한마디 한마디 씹어 뱉듯 말했다.
“대학사 모운중. 마지막으로 묻겠다. 금일상방에서 보낸 고서들은 어디 있느냐?”
“대, 대체 뉘시오?”
모운중은 이대로 당하는 게 억울한지 상대의 정체부터 확인하려 들었다.
보다 못한 구궁천녀가 나섰다.
“우리는 유명교에서 나온 사람들이에요. 교주님에게 가야 할 책이 당신에게 잘못 가서 회수하려고 하니 협조해 주세요.”
그녀는 유명교를 앞세우면 모운중이 포기할 거라 생각했다.
“나에게 잘못 오다니. 그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요? 뭔가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인데 금일상방이 보낸 책은 모두 왕부의 것이오.”
모운중은 끝까지 잡아뗐다.
그런 그의 질긴 모습에 구궁천녀는 혀를 내둘렀다.
“대단하군요. 책만 읽은 고리타분한 늙은이라고 생각했는데, 욕심이 하늘을 찌르네요. 교주님의 물건을 탐하고도 살아남기를 바라나요?”
“문제가 있다면 왕부로 사자를 보내어 해결할 생각을 해야지 이 무슨…….”
직일신장이 모운중의 말을 끊었다.
“모운중. 잘 들어라. 고서를 검수한다는 명목으로 빼돌렸다지? 네놈은 우리 교주님뿐 아니라, 네가 섬기는 황제도 기만했으니 죽어 마땅하다. 지금부터 묻는 말에만 답해라. 헛소리할 때마다 사지 중 하나를 뽑을 것이다. 금일상방이 보낸 고서는 어디 있느냐?”
“…….”
모운중은 살기등등한 직일신장의 눈빛에 질려 입만 뻐끔거렸다.
사실을 말하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변명을 하자니 무서웠다.
순간 직일신장이 모운중의 아혈을 찍었다.
그리고 왼쪽 팔을 움켜잡고 뜯어냈다.
빠득.
팔뚝에서 뼈 바스라지는 소리가 나더니 팔이 뜯겨져 나왔다.
‘끄아악!’
평생 글만 읽은 모운중이 끔찍한 고통에 눈을 까뒤집고 버둥거렸다.
직일신장은 모운중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아혈을 풀어 주며 말했다.
“대답이 없어도 헛소리로 간주한다. 다시 묻겠다. 금일상방이 보낸…….”
“문화전! 문화전에 있소!”
“‘너의 사저에도 있다’고 증언한 사람이 있다. 사저에 빼돌린 것이 있느냐?”
“대체 누가 그런 터무니 없는 소리를! 빼돌린 것이 아니라 연구를 위해 딱 한 권 가져갔소. 조만간 문화전으로 다시 가져다 놓을 생각이었소.”
“딱 한 권이라고? 거짓말이면 네놈의 식솔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것이다. 마지막 기회를 주지. 사저에 몇 권이나 가져갔느냐?”
“……두 권이오. 비교할 만한 것이 있어서 곁에 두고 보았소.”
“흥! 대학사라는 놈이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으냐?”
말을 마친 직일신장은 모운중의 아혈과 마혈을 찍고 어깨에 둘러멨다.
잠시 후 두 개의 인영이 야조(夜鳥)처럼 황궁의 높은 담을 날아올랐다.
그날 밤, 직일신장과 구궁천녀는 문화전과 대학사 모운중의 사저에서 고서를 모두 회수했다.
그리고 모운중의 식솔들을 남김없이 죽인 뒤에 응천부를 떠났다.
***
다음 날.
고요하던 응천부가 발칵 뒤집혔다.
황궁이 있는 응천부에서, 그것도 문관인 대학사 모운중과 그의 집안 사람들이 몰살을 당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포방(捕房)은 물론 도찰원까지 동원되어 배후를 조사했다.
설상가상이라고, 그날 오후 자금산에서 석신사의 환관 유근의 시체가 발견됐다.
자금산에서 환관의 시체가 발견되자 결국 금의위까지 나섰다.
금의위는 나이 어린 환관 장사비를 통해 ‘유근과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정체불명의 중년 여인’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금의위에서는 유근과 모운중 집안의 혈겁이 같은 날 일어났다는 것에 주목하고, 유근과 모운중의 관계를 파고들었다.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
응천부의 상방들은 금일상방이 모운중과 교분을 맺으려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상방을 통해 유근, 모운중, 금일상 방의 관계가 드러나자 미궁에 빠질 듯하던 사건은 급물살을 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응천부의 설화인들을 중심으로 기이한 이야기가 퍼져 나갔다.
“드디어 일이 터졌네요. 서안의 금일상방이 석신사의 환관을 통해 대학사에게 대안탑(大雁塔)에서 나온 고서를 선물한 건 알고 있죠? 그런데 불청객이 응천부를 방문한 날, 환관과 대학사 일가가 참변을 당했습니다. 불목하니와 백화상방과 금일상방은 안녕들 하신지 모르겠습니다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