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11
511회.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파게 한다.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일반인이 잡아서는 안 될 영물’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공지섭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초목급’ 이라면서 왜 못 잡아요?”
“종문에서 쓸개를 선단(仙丹)의 재료로 쓰기 때문이지. 일반인이 ‘장생불사 곰’을 잡다가 종문 제자에게 걸리면, 이유를 불문하고 죽는다네.”
“아!”
순간 연적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공지섭과 조원들이 어정쩡하게 대응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니!
“그럼 어떻게 해요?”
그때 공지유의 입에서 다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악!”
곰의 앞발에 얻어맞은 공지유가 물웅덩이로 날아가 떨어졌다.
첨벙-.
바람처럼 따라붙은 곰이 큰 앞발로 물고기를 낚아채듯 공지유의 몸을 찍어 갔다.
공지유가 위험에 처하자 그래도 오라비라고 공지섭이 가장 먼저 몸을 날렸다.
공지섭의 창이 곰의 등판을 찍었다.
콰직!
덩치는 컸지만 초목급이라 그런지 단박에 거죽이 갈라졌다.
“크아아!”
검은 곰이 비명을 지르며 돌아섰다.
무방비 상태로 등을 찔렸지만 얼마나 튼튼한지 상처는 깊지 않았다.
공지섭의 공격은 오히려 곰의 흉성만 자극했다.
곰이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공지섭에게 달려들었다.
조장과 곰이 싸우자 조원들도 더는 고민하지 않았다.
네 명의 무인들이 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틈에 연적하는 공지유를 건져 내기 위해 물웅덩이로 달려갔다.
공지유는 정신을 차렸는지 비칠거리며 일어섰다.
연적하가 손을 내밀자 공지유는 군말 없이 잡고 물 밖으로 나왔다.
뒤늦게 곰과 조원들의 싸움을 보던 공지유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큰일 났네요.”
“상대가 ‘장생불사 곰’이라서요?”
“네, 우리 힘으로 잡을 수는 있지만 종문의 눈에 띄면 모두 죽게 될 거예요.”
“쓸개만 채취해 가지 않으면 괜찮을 거예요. 평생 종문 제자를 본 적이 없다면서요?”
“그렇기는 한데. 하아! 빨리 끝내고 자리를 뜨는 게 낫겠어요.”
공지유가 바닥에 떨어진 검을 다시 주워 들었다.
“내가 도울 테니까 쉬고 있어요.”
그녀를 만류한 연적하가 한순간 꺼지듯 ‘퍽’ 하고 사라졌다.
뒤이어 곰의 머리 위에 그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형환위의 신법이었다.
공지유의 입에서 ‘아!’ 하고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녀가 숨을 들이쉬기도 전에 연적하의 주먹이 힘차게 곰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콰앙!
네 명의 무사들과 싸우던 곰이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스르륵 무너졌다.
공지섭과 조원들이 곰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정우생이 곰의 코끝에 손등을 댔다가 떼며 중얼거렸다.
“일 났네, 일 났어.”
종문의 영물인 ‘장생불사 곰’을 죽였으니 이보다 더 큰 일도 없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하더니만, ‘천년화령적지’를 얻은 뒤로 마가 낀 모양이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곰의 사체를 내려다보던 조원들이 일제히 공지섭을 보았다.
“왜? 뭐 어쩌라고?”
공지섭의 물음에 조원 송약정이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쓸개를 떼어 가죠. 암시장에 팔면 금 열 냥은 받을 겁니다. 어쨌든 걸리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은 한 냥으로 한 가족이 한 달을 살아갈 수 있다.
은 백 냥이 금 한 냥이니, 금 열 냥은 거금이라 할 수 있었다.
공지섭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침묵했다.
어쩔 수 없이 ‘장생불사 곰’을 죽인 것과 쓸개를 채취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쓸개가 돈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부터는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된다.
그때 정우생이 나섰다.
“조장님, 아니, 공 사형. 어차피 종문 제자에게 걸리면 우린 죽어요. 쓸개를 채취했건 아니건 죽습니다. 공 사형도 아시잖아요.”
고민하지 말고 쓸개를 채취하자는 소리다.
그래도 굳게 다물어진 공지섭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조원들의 목숨은 물론 사문의 존폐까지 걸린 일이라 선뜻 결정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보다 못한 공지유가 한마디 했다.
“오라버니,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빨리 해. 이러다 종문 제자 눈에 띄면 우린 다 죽어.”
공지섭은 동생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침내 조개처럼 굳게 닫혀 있던 그의 입이 열렸다.
“우생, 쓸개를 채취해라. 일을 마친 뒤에 최대한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자.”
기다렸다는 듯 정우생이 검으로 곰의 배를 갈랐다.
그리고 곰의 배 속에 손을 쑥 집어넣더니 금방 쓸개를 찾아냈다.
그가 쓸개를 챙기자 공지섭은 가까운 숲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공지섭이 막 숲 가장자리에 도착했을 때다.
숲에서 한 사람이 마치 산책이라도 하듯 느긋하게 걸어 나왔다.
눈부시게 빛나는 청의를 입은 삼십 대 남자였다.
순간 공지섭의 시선이 사내의 뒤쪽을 훑었다.
천관산맥을 혼자 돌아다닐 리 없으니 일행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하지만 사내의 뒤로는 그저 울창한 수림(樹林)이 전부였다.
사내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뒷짐까지 지고 공지섭의 앞에 와서 섰다.
공지섭은 가슴이 덜컥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누구신지?”
‘장생불사 곰’을 죽인 직후에 낯선 사람과 만나니 심장이 제멋대로 뛰었다.
그가 종문 제자여도 문제지만, 아니라 해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였다.
종문의 눈에 들기 위해 그가 밀고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내는 대답 대신 공지섭의 조원들을 찬찬히 살폈다.
마지막으로 공지유에 이르러 그의 입술이 실룩거렸다.
공지유는 탐욕 가득한 사내의 시선이 불쾌했지만 함부로 나서지 않았다.
사내의 무시에 울컥한 공지섭이 다시 입을 열었다.
“누구냐고 물었…….”
“피 냄새가 나는군.”
허를 찔린 공지섭은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사내의 얼굴만 멍하니 보았다.
사내가 공지섭의 어깨너머로 시선을 던지며 말을 이었다.
“어디 보자. 저건 곰이군? 가슴에 하얀 털을 보니 ‘장생불사 곰’인가? 크기를 보니 삼백 년쯤 묵은 영물 같은데, 일반인들이 용케 잡았네?”
“오, 오해요. 곰이 일행에게 덤벼서 살기 위해 죽였을 뿐이오.”
공지섭의 음성이 떨렸다.
사내가 자신들의 얼굴을 보았으니 ‘살인멸구’만이 살길이었다.
상대도 그걸 알 텐데 태연자약했다.
그건 그의 무위가 자신들보다 뛰어남을 의미한다.
‘큰일 났구나. 우리와 달리 천관산맥을 홀로 다녀도 될 정도의 고수라니!’
그러는 동안 조원들과 연적하가 도착했다.
육 대 일이라는 압도적인 수적 우위에도 공지섭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때 사내의 손가락이 정우생을 가리켰다.
“살기 위해 죽였다고? 저놈의 몸에서 ‘장생불사 곰’의 쓸개 냄새가 나는데?”
사내의 말에 조원들이 일제히 도검을 뽑아 들었다.
차차창-.
조원들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사내를 죽여야 하는 까닭이다.
순간 사내가 손가락을 활짝 폈다.
손끝에서 뻗어 나간 다섯 줄기 광망(光芒)이 조원들의 병장기를 때렸다.
쉬이익- 따따땅-.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창과 도검이 ‘뚝’ 부러졌다.
공지섭과 조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정우생의 경우 사시나무 떨듯 부들 부들 몸을 떨기까지 했다.
지풍(指風)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저렇듯 육안에 보이는 기운은 ‘의기발현(意氣發顯)’의 경지에서나 가능하다.
‘의기발현’은 최소한 그가 ‘연단(鍊丹, 입문 단계)’의 종문 제자라는 뜻이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공지섭이 가장 먼저 오체투지(五體投地) 하며 외쳤다.
“살려 주십시오! 정말 조원을 살리기 위해 죽였습니다! 쓸개를 채취한 것은 순간의 욕심에 눈이 멀어 그렇게 한 것입니다. 결코 쓸개 때문에 곰을 잡은 것이 아닙니다!”
네 명의 조원들도 땅바닥에 머리를 ‘쿵쿵’ 박으며 애원했다.
“살려 주십쇼!”
“곰이 먼저 공격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사내, 천태종 종문 제자 장천세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어렸다.
‘이제 마무리만 남은 건가.’
***
한 식경(약 30분) 전.
천관산맥은 영지 선초가 많아 종문 제자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다.
천태종의 종문 제자 장천세는 영지 선초를 구하기 위해 새벽부터 산을 뒤지고 다녔다.
하지만 아직 ‘연단’에 불과한 그는 안쪽을 공략하지 못해 별 재미를 못 보고 있었다.
종문은 ‘연단’, ‘연하’, ‘원영’, ‘독요’, ‘현인’, ‘종사’로 단계가 나누어져 있다.
‘연단’이 ‘입문 단계’라면, ‘종사’는 ‘인선(人仙)의 경지’로 종문 제자들의 최종 목표다.
종문의 최고 어른인 ‘종사’가 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수련이 요구된다. 그때 필요한 것이 선단(仙丹)이나 영지 선초, 또는 영물이나 신수의 내단(內丹)이다.
‘영지 선초’나 ‘내단’은 직접 복용하거나 ‘선단’의 재료로 사용되기에, 종사를 꿈꾸는 종문 제자에게 무상의 보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종문 제자들은 기회만 되면 천관산맥처럼 영기로 충만한 지역이나 신비지처(神秘地處)라 불리는 비경(秘境)을 찾곤 했다.
“하아! 못 해 먹겠네.”
장천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었다.
하루 종일, 그야말로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녔건만 아직 무소득이다.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던 그는 아까 봐 둔 ‘장생불사 곰’을 떠올렸다.
빈손으로 돌아가느니 ‘장생불사 곰’의 쓸개라도 가져가는 게 낫겠다 싶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곰을 목격했던 천장 폭포 아래의 용소(龍沼)로 향했다.
‘장생불사 곰’은 아직도 근처 숲에서 벌집을 따 먹고 있었다.
저걸 지금 잡을까? 한 바퀴 더 돌아보고 올까? 고민하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흠칫 놀라 기운을 방사(放射)하여 살피니 다행히 일반인들이었다.
‘흥! 영지 선초를 구하러 왔나 보군.’
구주의 일반인들에게 영지 선초는 가장 유용한 재화(財貨)였다.
그들은 영지 선초를 선약(仙藥)으로 복용하거나, 종문에 공물로 바치곤 했다.
선품의 공물은 부귀영화와 직결된다.
어쩌다 극상의 선품을 바치고 종문 제자가 된 사람도 나왔다.
그래서 구주의 문파들은 틈날 때마다 제자를 영기가 충만한 산에 파견하곤 했다.
‘아니면 벌써 구했거나.’
잠시 생각하던 그는 ‘장생불사 곰’의 근처로 슬쩍 피했다.
곧이어 오 남 일 녀가 나타났다.
여자의 외모는 종문 제자에 비하면 부족했지만 그래도 봐줄 만했다.
‘응?’
한창 여자의 얼굴을 품평하던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들 속에서 희미한 영기(靈氣)가 느껴졌다.
그것은 분명 영지 선초가 품고 있는 아주 특별한 기운이었다.
그의 시선이 창을 든 남자에게 꽂혔다.
‘화령(火靈)의 영기로구나!’
하늘이 자신을 위해 준비해 둔 영지 선초가 분명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튀어나가 화령의 영기를 가진 선품(仙品)을 빼앗고 싶었다.
하지만 쥐꼬리만 한 양심이 발목을 잡았다.
고민하던 그의 눈에 열심히 벌집을 핥고 있는 ‘장생불사 곰’이 보였다.
찰나지간에 머릿속으로 일석이조(一石二鳥)의 묘수가 떠올랐다.
저걸 이용하면 ‘쓸개’와 ‘화령의 영기’ 모두를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파게 하는 거다.
그는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곰을 잡아, 여자를 향해 세차게 밀쳤다.
갑자기 등을 떠밀린 ‘장생불사 곰’이 여자에게 미친 듯 달려들었다.
***
현재.
모든 것이 천태종 종문 제자 장천세의 뜻대로 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종문 제자와 일반인이 만났으니 다른 변수가 생길 리 없다.
사내가 묵묵히 서 있자 공지섭은 다시 한번 세차게 땅에 머리를 박았다.
쿵!
“어느 종문의 제자이신지는 모르겠으나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장천세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너희가 감히 도살이 금지된 ‘영물’을 잡아 쓸개를 취했으니 죽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