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27
527회. 한번 맡아 보실래요?
연적하는 공지유를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아까부터 배가 아픈 사람처럼 몸을 배배 꼬더니 이젠 괜찮냐고 묻고 있다.
“뭐가요?”
“가렵지 않으시냐고요. 신당이 더러워서 그런지 저는 굉장히 가려운데.”
그녀의 말에 연적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강호의 토지신 묘나 사당에 비하면 이곳 신당은 객점이나 다름없었다.
곳곳에 버려진 이부자리가 보였지만 툭툭 털어서 써도 될 정도로 깨끗했다.
“괜찮은데요?”
“그래요?”
공지유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연적하는 괜찮다는데 왜 이렇게 몸이 간지러운지 모르겠다.
‘내 자리가 더러운가?’
고민하던 공지유는 슬그머니 연적하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의 곁으로 가자 이번에는 화로라도 끼고 앉은 것처럼 더웠다.
“하아! 왜 이렇게 덥지?”
그녀는 달아오른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며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연 대협?”
“왜요?”
“덥지 않으세요?”
“안 더워요.”
그녀가 달뜬 얼굴로 물었지만 연적하의 대답은 무덤덤하다 못해 차가웠다.
공지유는 잠깐 멈칫했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이상하다. 왜 나는 이렇게 덥지? 아휴!”
그리고 은근슬쩍 상의를 벌리고 손바람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공지유의 주변으로 그녀의 체향이 퍼져 나갔다.
고수가 될수록 오감이 발달된다.
연적하는 코끝으로 공지유의 체향이 밀려오자 인상을 찡그렸다.
“공 소저.”
“예?”
공지유가 상기된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쪽 몸에서 땀 냄새가 심하게 나는데 떨어져 앉으면 안 될까요?”
“냄새요?”
공지유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자신의 몸에서 나는 체향은 냄새 따위가 아니다.
비록 말은 탔지만 향낭(香囊)까지 차고 있는데 무슨 냄새란 말인가!
“이, 이건 냄새가 아니라…….”
이토록 향긋한 것을 냄새라고 할 수가 있을까?
“아, 죄송해요. 제 코가 좀 예민해서.”
“네에, 향냄새를 싫어하시나 보다.”
“딱히 그런 건 아니에요. 제 처가 계향초로 만든 향조(香皂, 비누)를 사용하는데 그건 좋더라고요.”
“계향초 냄새를 좋아하시는구나.”
한 걸음 물러나는 듯싶었던 공지유가 도발적으로 말했다.
“몰라서 그러시는데 제가 쓰는 사향(麝香)도 좋은 거예요. 한번 맡아 보실래요?”
말과 함께 그녀는 연적하에게 상체를 내밀었다.
달아오른 체온에 더욱 강해진 향이 연적하에게 훅 하고 밀려갔다.
순간 연적하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졌다.
야수와 싸울 때처럼 이형환위의 신법을 펼쳐 전각 밖으로 나간 것이다.
홀로 남겨진 공지유가 멍한 눈으로 텅 빈 자리를 응시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그녀는 옷매무새를 바르게 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어느새 간지러움은 물론 뜨겁던 열기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방금까지 있었던 일이 거짓말처럼 생각될 정도의 변화다.
“꿈을 꾼 건가?”
공지유는 제 볼을 슬쩍 꼬집었다.
순간 따끔했다.
머릿속에 부유하고 있던 마지막 열기까지 싹 빠지자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들이대도 너무 들이댄 것 같다.
“내가 미쳤지.”
머리를 젓던 공지유의 눈에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몽연향이 들어왔다.
“향 때문이야.”
그게 아니고서는 말이 안 된다.
한편으로는 이상했다.
조금 전까지 미치도록 뜨겁고 간지러웠는데 왜 지금은 멀쩡할까?
더 이상 옆에 남자가 없어서일까?
때마침 유익현이 전각 안으로 고개를 빼꼼히 들이밀었다.
“유 사제, 뭐해?”
“아뇨. 들어가도 되나 싶어서.”
유익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전각으로 들어왔다.
말과 표정을 보니 오라버니에게 한 소리를 들은 게 분명했다.
“왜 눈치를 봐? 너, 우리 오라버니에게 무슨 말 들었어?”
“예.”
“무슨 말?”
“두 분만 있게 눈치껏 자리를 만들어 주라고.”
“그래서 나갔다가 온 거야?”
“예, 그런데 연 대협은 안 계시네요?”
기껏 밖에서 빙빙 돌다 왔는데 연적하가 보이지 않으니 실망한 얼굴이다.
“나가셨어.”
“왜요?”
“몰라. 그런데 너 몽연향을 맡고도 괜찮으니?”
“네. 사저는요? 냄새가 싫으세요?”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그녀가 날카롭게 받아쳤다.
“싫기는! 몽연향을 오래 맡으면 나른해진다고 해서 물어본 거야.”
“아, 네. 저는 아무 느낌도 없어요. 나갔다가 와서 그런가?”
두 사람이 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연적하가 돌아왔다.
“공 소저 괜찮아요? 몽연향인지 뭔지 꺼 버릴까요?”
“아, 아뇨. 이제 괜찮은 것 같아요.”
“저 몽연향이라는 거 아무리 봐도 수상해요.”
“왜, 왜요?”
“공 소저 일도 그렇고, 아무튼 마음에 안 드네요.”
말과 함께 연적하가 손을 까닥였다.
순간 제단 위에 놓였던 향로가 둥둥 떠서 전각 밖으로 날아갔다.
내친김에 연적하는 다시 한번 손을 휘저었다.
그의 손끝에서 일어난 돌풍이 내부를 한 바퀴 맴돌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화려한 화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 하나가 전각 안으로 들어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저는 광욕천왕을 모시고 있는 종, 양삼태라고 합니다. 누군가 향로를 내버리고 몽연향까지 흩어 버렸는데, 혹시 누구 짓인지 보셨습니까?”
공지유는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기 싫어 시치미를 뗐다.
“우리는 온 지 얼마 안 돼서 몰라요.”
하지만 양삼태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공교롭군요. 누군가 지금 막 향로를 버리고 향을 흩은 것도 같은데. 실례지만 어느 문파의 제자들이십니까?”
“우리는 현천문의 사람들이에요.”
“현천문이시라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됩니다만, 만에 하나 목격하신 게 있다면…….”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적하가 말했다.
“아저씨가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에요?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왜 미혼향을 피워 놨대요? 신당을 매음굴로 운영하려고 그래요?”
양삼태가 황당한 얼굴로 청년을 보았다.
미혼향도 기가 막힌데 매음굴이라니?
사천왕 신당의 사제는 소요종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문파들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소요종의 노여움을 사지 않으려면, 아무리 현천문 제자라 해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 사천왕의 신당에서만큼은 그래야 했다.
양삼태는 속으로 이를 갈면서도 정중하게 물었다.
“소협의 존성 대명은 어떻게 되십니까?”
“나는 석경장의 장주 연적하예요. 불만 있으면 석경장으로 따지러 오든지.”
“이제 보니 석경장의 연 장주님이셨군요. 연 장주님, 사천왕의 신당은 구주의 종문에서 인정하는 곳입니다. 수약주의 신당은 소요종에서 돌봐 주고 있지요.”
자신의 뒤에 소요종이 있으니 까불지 말라는 소리다.
하지만 어디 연적하가 그런 협박에 굴할 사람인가.
“그래서요? 막 이상한 향 피워 놓고 음란한 짓을 해도 된다?”
천박한 그의 표현에 양삼태는 인상을 찌푸렸다.
“본래 광욕천왕의 신당은 그럴 목적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종문에서도 장려하고 있고요. 설마 연 장주님은 구주의 종문들이 결정한 일을 반대하시는 겁니까?”
“구주의 종문이 뭐라고 하는 나는 마음에 안 들어요. 딱 봐도 미혼향이구만 무슨 몽연향이래.”
몽연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연적하는 그것을 미혼향으로 생각했다.
“…….”
노기를 이기지 못해 부들부들 떨던 양삼태는 공지유와 유익현에게 화살을 돌렸다.
“두 분은 현천문의 제자십니까?”
공지유가 마지못한 얼굴로 답했다.
“그래요. 나와 내 사제는 현천문의 사람이에요.”
“그렇다면 당장 이 무도한 사람을 제압하여 소요종으로 압송하십시오. 두 분이 거절한다면 나는 소요종에 오늘의 일을 고발할 겁니다.”
공지유와 유익현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신당의 사제들과 얽혀 잘된 예가 없었는데 골치 아프게 됐다.
이윽고 공지유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양 사제님, 연 대협께서 양 사제님이나 광욕천왕의 신당에 불만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신당에 처음이라 그러신 거니 사정을 좀 봐 주세요.”
양삼태의 눈매가 좁아졌다.
현천문의 제자가 꼬박꼬박 대협이라고 하는 걸 보니 보통은 아닌 모양이다.
‘저토록 젊은 사람을 대협이라고 부르다니……. 무공의 고수인가 보구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던가.
현천문의 제자들도 공손하게 대하는데 굳이 싸워야 하나 싶다.
‘못 이기는 척 끝내야 하나?’
그가 고민할 때다.
가만히 듣고 있던 연적하가 불쑥 끼어 들었다.
“공 소저, 나 저 아저씨와 광욕천왕의 신당에 불만이 있는데요?”
“…….”
공지유가 황망한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려도 유분수지.
적당히 수습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불난 곳에 기름을 붓는 꼴이다.
양삼태는 더 이상 양보하지 못하고 눈에 쌍심지를 켰다.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시는군요. 대체 뭐가 불만입니까?”
“나는 신당에 미혼향을 피워 놓고 사람들 끌어모으는 게 싫어요. 이제 좀 알아 처먹으셨어요?”
연적하의 폭언에 양삼태도 이성을 상실하고 소리쳤다.
“뭐라! 금사님이 만든 몽연향을 미혼향이라니! 뭣들 합니까! 저 미친놈을 포박하지 않고! 당신들은 소요종의 벌이 두렵지도 않단 말입니까!”
“뭐? 미친놈? 말 다 했어? 신당에 미혼향을 피워 놓은 게 누군데! 누가 누구더러 미쳤대!”
적반하장이라고 양삼태가 뻔뻔하게 나오자 연적하는 주먹을 휘둘렀다.
공지유와 유익현이 말리고 어쩌고 할 틈도 없었다.
퍽!
‘악!’ 소리와 함께 양삼태가 훌훌 날아갔다.
공지유와 유익현은 너무도 엄청난 현실 앞에 입을 쩍 벌리고 굳어 버렸다.
사천왕을 섬기는 사제를 때리다니?
물론 신당을 종문에서 운영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종문과 관계된 곳이다.
그런 곳의 사제를 폭행했으니 수약주가 뒤집어질 일이었다.
“연 대협! 안 돼요, 안 돼!”
공지유가 양삼태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러는 동안 유익현은 양삼태에게 달려가 그의 상처를 살폈다.
입술이 터진 것 말고는 큰 상처가 보이지 않아 그가 내심 안도할 때다.
“커억! 퇫!”
양삼태가 핏덩이를 뱉어 내는데 피에 젖은 하얀 이빨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하기야 연허의 고수에게 맞았으니 저래야 정상이다.
놀란 유익현은 손으로 제 입을 꽉 막았다.
“너, 너…….”
수치심과 분노에 사로잡힌 양삼태는 연적하를 가리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나? 뭐? 한 대 더 때려 달라고?”
이왕 엎질러진 물이다.
연적하는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한번 더 얼굴을 후려쳤다.
공지유와 유익현은 양삼태가 다시 한번 비명을 내지르는 걸 봐야만 했다.
한번 싸움이 났으면 시비를 가려야 하는 법.
연적하가 양삼태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이봐. 다시 말해 봐. 누가 미쳤다고? 신당에서 미혼향으로 사람들을 꼬시는 게 미친 거야? 아니면 그걸 보고 화가 난 내가 미친 거야?”
살기등등한 연적하의 눈빛에 양삼태는 꼬리를 내렸다.
“대가(제가), 미텼습니다(미쳤습니다).”
양삼태는 이빨이 부러져 줄줄 새는 발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제야 연적하는 손을 풀고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아저씨 운 좋은 줄 알아. 나처럼 착한 사람 만났으니 이 정도지, 진짜 나쁜 사람 만났으면 죽었어.”
“예, 예. 감사함미다(감사합니다).”
기가 꺾인 양삼태는 평범한 일반인들처럼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어색하게 웃고 있는 입과 달리 눈은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