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26
526회. 금사는 어떤 신일까요?
공지유의 말에 연적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엄밀히 말해 향냄새는 강호의 미혼향과 조금 달랐다.
강호의 그것이 약간 쿰쿰하다면 전각에서 맡아지는 것은 달콤했다.
그러니 처음 느낌만으로 미혼향이라 지레짐작하는 건 상대에 대한 실례이리라.
공지유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왜요? 냄새가 마음에 안 드세요?”
“아뇨. 냄새는 괜찮은데 몸이 좀 나른해져서요. 피곤해서 그런가?”
“향냄새가 심신을 이완시켜 줘서 그래요.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예요.”
“저 향의 이름은 뭐예요?”
“몽연향(蒙然香)이라고 해요. ‘금사(金莎)’가 광욕천왕(狂欲天王)께 진상했다는 전설이 있는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요. 신들의 속사정을 누가 알겠어요?”
귀에 익은 ‘금사’라는 이름에 연적하의 눈에서 광망이 번득였다.
“‘금사’요?”
“네, 아홉 군주 중에 한 분이죠. 신들 가운데 가장 지혜롭다고 해요.”
연적하는 풍지산에서 본 ‘금사’를 떠올렸다.
구주에서도 ‘세상은 넓고도 좁다’는 말이 통하나 보다.
‘금사’라는 이름을 공지유에게 다시 들을 줄이야.
그때는 막연하게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금은 가슴이 답답했다.
군주의 경지를 어렴풋이 알게 된 까닭이다.
‘그래서 그렇게 오연한 표정으로 서 있었나?’
하기야 이 거대한 세계의 신들 중에 하나니 강호가 좁아 보였을 게다.
“‘금사’는 남자예요? 여자예요?”
“훗! 어떨 거 같아요?”
“멀리서 봤는데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가지 않더라고요.”
“예?”
공지유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금사’를 멀리서 봤다니?
지금까지 수약주에서 ‘금사’를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아, ‘금사’의 신당에서 보셨나 보다. 아닌가?”
공지유가 연적하의 얼굴을 힐끔 보았다.
‘이상하네. 금사의 신당에 들어갔으면 구주와 신들에 대해 모를 리가 없는데?’
그건 지금까지 연적하가 보인 모습과 맞지 않는다.
의아해하는 공지유에게 연적하가 말했다.
“신당 말고, 우연히 멀리서 ‘금사’를 본 적이 있어요.”
“진짜 ‘금사’요?”
“네.”
“아니, 정말, ‘금사’를 봤다고요?”
얼마나 놀랐는지 공지유는 흐트러져 있던 자세까지 바르게 했다.
“뭘 그렇게 놀라요?”
“놀랄 만하죠. 사람이 신을 보았다는데. ‘금사’는 정말 신상(神像)처럼 생겼나요?”
“아직 신상을 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말할 수가 없네요. 그보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물은 건 난데요?”
“아, ‘금사’는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해요.”
“음양인(陰陽人) 같은 건가요?”
“그건 모르겠어요. 다만 ‘금사’가 처음 현신한 곳은 수약주였어요. 정확히는 수약주 아래의 ‘열사(熱砂)의 땅’인데, 거긴 환경이 극악해서 암수를 구별할 수 없는 존재가 많대요.”
“환경이 극악하다고 암수를 구별 못 해요?”
“머릿수가 적으니까 짝을 찾기 어려울 거 아니에요. 척박한 환경으로 소문난 ‘황천주’만 해도, 화산지대가 많지만 그래도 사이사이 살 만한 땅은 있거든요. 그런데 ‘열사의 땅’은 아예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곳에 들어가면 돌아오지도 못한다니까 알 만하죠.”
“그래서 암수가 한 몸이다?”
“네, ‘야설(野,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래요. 그래서 신상도 그렇게 생겼죠.”
“그렇게라면?”
“아름다운 얼굴에 가슴과 남근이 모두 달려 있어요.”
“에이, 그건 아니다.”
“그래서 ‘야설’이라고 했잖아요. 가슴과 남근은 지어낸 이야기 같지만, 얼굴은 진짜 아름답다고 하더라고요.”
“뭐, 봐줄 만은 하더라고요. 진짜 아름다운 사람은 따로 있지만.”
“진짜 아름다운 사람이 누군데요?”
“제 처요. 십전(十全)이라고 불릴 만큼 완벽한 미인이죠.”
연적하의 처 자랑에 공지유는 입술을 삐죽였다.
기껏 분위기를 잡아 놨더니 고작 있지도 않은 처 자랑이라니.
공지유는 연적하의 안색을 살폈다.
몽연향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걸 피워 놔도 흔들리지 않을 눈빛이다.
“아, 덥다.”
공지유는 꼭꼭 싸매고 있던 상의를 풀어 헤쳤다.
정말 더운 것도 있지만, 속에서 열불이 치솟아 견딜 수가 없었다.
***
반년 전.
‘귀도문에서 옥로주가(玉露酒家)를 협박한다’는 연락을 받고 현천문도 들이 달려간 적이 있다.
귀도문은 인접한 공화현의 문파로 현천문과 크기가 비슷했다.
현천문이 산음현을 대표하는 문파라면 귀도문은 공화현에서 그랬다.
서로 엇비슷한 세인지라 현천문과 귀도문은 상대편 지역을 넘보지 않았다.
그랬던 관례를 귀도문에서 깬 것이다.
그 근원을 따지고 보면 이 모두가 자연의 변화로 일어난 일이었다.
옥로주가가 자리한 옥로촌은 본래 산음현의 일부였다. 그러던 것이 오 년 전의 대홍수 때 물줄기가 바뀌어 공화현 쪽으로 붙어 버렸다.
강줄기가 옥로촌을 산음현에서 떼어 낸 모양새가 되자 잡음이 일어났다.
귀도문이 옥로주가를 집적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부터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옥로주가를 관리하는 문파가 현천문인 까닭이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록 강줄기에 변화가 없자 귀도문에서 욕심을 냈다.
마침내 옥로주가의 후계자를 납치한 것이다.
그리고 옥로주가에 현천문과의 관계를 끊게 하자, 현천문 문주 소천우는 사태 해결을 위해 풍운대를 급파했다.
해거름 무렵.
풍운대주 고진열이 ‘광욕천왕’의 신당 앞에서 멈춰 섰다.
다섯 개 조의 조장들이 의아한 얼굴로 고진열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본래 광욕천왕의 신당은 남녀가 모여 행음(行淫)을 하기로 유명한 곳인 까닭이다.
조장 공지섭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대주님, 이곳은 광욕천왕의 신당입니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으니 더 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더 가 봐야 노숙이다. 길바닥에서 자다가 야수의 습격이라도 받으면 어쩌려고. 그보다는 신당이 백번 낫지.”
듣고 있던 또 다른 조장 학사문이 애매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사천왕을 믿는 사람들의 행사를 방해하면 나중에 말이 나올 겁니다.”
“믿기는 개뿔. 음탕한 것들일 뿐이다.”
“정말 후사를 보기 위해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노숙을 하면 번은 누가 서게? 최소한 한 개 조는 번을 서야 할 텐데, 잠도 제대로 안 재우고 귀도문과 싸우라고 하면 좋아하겠다.”
고진열의 말에 학사문은 반박하지 못했다.
대주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구주의 야수들은 야행성이라 공도(公道)와 산을 가리지 않았다.
공도를 믿고 노숙하다가 야수의 밥이 된 사람도 많았다.
결국 조장들은 대주의 결정을 따랐다.
내일 귀도문과 칼을 맞대야 하니 오늘 밤이라도 푹 쉬고 싶어서다.
그렇게 해서 공지유는 난생처음 광욕천왕의 신당에 발을 내디뎠다.
풍운대가 들이닥치자 광욕천왕의 신당은 난리가 났다.
발가벗은 남녀가 곳곳에서 튀어나와 무인들을 욕하고 저주했다.
신당에서의 싸움은 종문에서 금한지라, 풍운대가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 와중에도 정말 뻔뻔한 사람들은 신당을 떠나지 않았다.
공지유는 그런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우리가 보는 앞에서 저럴 수 있죠? 짐승인가? 아니면 욕정에 미친 건가?”
그녀의 물음에 다른 조의 담여화가 답했다.
“몽연향 때문에 이성을 잃어서 그래.”
“몽연향요?”
“전각에 자욱한 연기 보이지?”
“네.”
“몽연향이라고 하는 건데 심신을 나른하게 만들어 줘. 음탕한 생각을 하면서 오래 맡고 있으면 저렇게 되는 거야. 좋게 말하면 후손을 만드는 데 열중하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극도로 음란해져서 다른 건 눈에 안 들어온다고 할까?”
“짐승처럼요?”
“그래, 누가 보든 말든 개처럼 흘레붙는 거지.”
“지독하네요. 저런 건 좀 위험한 거 아니에요?”
“이 세상에서 위험한 게 어디 한두 개니? 공도를 돌아다니는 야수에 비하면 저건 애교지. 재수 없으면 집 안에서 자다가도 물려 가는 판국에.”
“그렇기는 하지만……. 나쁜 사람들이 몽연향을 악용할 수도 있잖아요.”
“그건 네가 몽연향을 몰라서 그러는 거야. 몽연향을 만든 이가 누군지 알아?”
“몰라요.”
“금사야.”
“금사가 만들었다고요? 아니 왜요?”
공지유의 음성이 높아졌다.
그녀는 담여화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지혜의 신’인 금사가 몽연향 같은 걸 만들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광욕천왕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어.”
“그러니까 왜요?”
“왜는 무슨, 군주가 왕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데. 그래도 금사가 만들어서 다행인 줄 알아.”
“몽연향이 뭐 좋은 거라고 다행이래요?”
“우리가 전각에 들어온 지 제법 됐지? 몸이 나른하고 풀리는 거 외에 다른 게 있어?”
“음, 그러고 보니 별 이상이 없는 데요? 우리는 무인이라 괜찮은 걸까요?”
“말했잖아. 음탕한 생각을 하면 이상해진다고. 그러니까 몽연향을 맡는다고 음욕에 빠지는 게 아니야. 음탕한 생각을 해야 음욕에 빠지게 된다고. 그 차이를 알겠어?”
“음…….”
공지유는 담여화의 말을 곰곰 생각해 보았다.
‘음탕한 생각을 해야만 음욕이 치밀어 오르는 거라면……. 괜찮은 건가?’
그런 그녀를 보며 담여화가 말을 이었다.
“금사가 만들어서 그 정도인 거지. 정말 악신(惡神)이 만들었다면 끔찍했을 거라고. 종문에서 몽연향에 손대지 않는 것도 그래서야. 신이 만든 것이라 금지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악용될 여지가 없으니까.”
“그렇군요.”
“그 대신 한번 음탕한 생각을 하면 끝없이 빠져들게 되지. 무려 신이 만든 향이라고. 사부님께서는 몽연향으로 금사의 품성을 알 수 있다고 했어.”
“품성요?”
“응, 스스로 빠져들게 만드는 거지. 그리고 한번 빠지면 절대 헤어 나오지 못해. 음욕에 눈이 멀어 우리 앞에서도 방사를 하고 있는 저 사람들처럼.”
담여화가 복잡한 눈으로 곳곳에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누가 보든 말든 그들은 진땀을 흘리며 방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쾌락에 물든 얼굴인데, 힘든 노동처럼 보이는 건 또 뭔지.
그런 괴상한 사람들의 모습이 슬프면서도 우습다.
“금사는 어떤 신일까요?”
공지유의 물음에 담여화가 말했다.
“선악은 모르겠지만, 고약한 신인 건 맞는 것 같아. 사람으로 치면 변태?”
담여화는 자기가 말하고도 웃긴지 ‘꺄르르’ 웃었다.
평소에 잘 웃지 않는 그녀가 큰 소리로 웃자 다른 문도들이 힐끔거렸다.
뒤늦게 흠칫한 담여화가 제 허벅지를 꼬집으며 중얼거렸다.
“이것 봐. 심신이 풀어지면 이렇게 된다니까. 너도 몽연향에 당하지 않게 조심해. 술에 취한 것처럼 몸이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있어. 후후훗! 정말 미치겠네.”
나중에 담여화는 손으로 힘껏 제 뺨을 때리기까지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지유는 담여화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현재.
공지유는 아까부터 답답해서 견디기 어려웠다.
아랫배 어딘가를 작은 개미 한 마리가 돌아다니며 깨무는 느낌이다.
무심코 손으로 쿡 누르면 가려움은 두 배 세 배가 되어 돌아왔다.
‘이나 벼룩이 옮았나?’
광욕천왕의 신당은 더럽기로도 소문이 난 곳이었다.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와 방사를 치르고 그냥 가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사방에 널린 오래된 이부자리만 봐도 알 만하다.
자신도 이렇게 가려운데 연적하는 어떤지 모르겠다.
말도 못 하고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 대던 공지유가 슬쩍 물었다.
“연 대협, 괜찮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