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92
592회. 자신의 경지가 신분이다.
갑작스러운 힐난에 벽초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붉게 물들었다.
신입 앞에서 청소 문제로 잔소리를 들으니 부끄러운 것이다.
급히 돌아선 벽초는 상대를 확인한 후에 변명처럼 말했다.
“경람 노사(老師, 연허의 경지), 보다시피 매일 오후에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사용하다 보면 그럴 수 있으니 양해해 주십시오.”
연적하도 천천히 돌아섰다.
이제 이십 대 초반의 아가씨가 허리에 손을 척 걸치고 서 있었다.
벽초가 노사라고 부르더니, 과연 허리에 헝겊 띠 대신 금제과대(金製鑄帶, 금장식 허리띠)를 맸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노사라는 위치가 부러웠다.
한편으로는 화도 났다.
그녀의 나이로 볼 때 벽초가 한참 선배였다.
비록 이십오 년 동안 방사의 자리에 남아 있었다 해도 선배를 저렇게 무시하다니!
“그러니까 누가 오후에 하래? 내가 오전에 청소하라고 했잖아!”
하지만 의외로 경람 노사의 닦달에도 벽초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건 불가합니다. 경람 노사 한 분을 위해서 오전에도 청소를 할 수는 없습니다. 나에게도 수련할 시간은 필요하니까요. 아시겠지만 오전에는 ‘천애불문비(天涯不文碑)’ 앞에서 명상을 해야 합니다.”
“흥! 이십오 년 동안 명상을 해도 원영에 들지 못했으면 포기하고 청소나 제대로 해! 원영에도 들지 못하고, 청소도 못 하면 나가 죽어야지!”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내가 불우산에 있는 것은 수도를 위해서입니다.”
“수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방사’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수도가 아니라 일이야. 허리에 두른 그 띠가 뭔지 알아? 소요종의 일꾼을 의미하는 거라고! 당신도 알잖아? 닥치고 오전에 봉황정을 치워 놔. 내일부터 오전에 청소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때 연적하가 끼어들었다.
“경람 노사님, 내일부터 내가 할 테니까 벽 사형은 그냥 내버려 둬요.”
“넌 또 뭐야? 올해 들어온 신입이냐?”
“예.”
벽초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지만 연적하를 만류하지 않았다.
경람 노사의 성격상 오전에 봉황정을 치우지 않으면 사달이 날 것 같아서다.
“네가 봉황정의 청소를 오전에 하겠다고?”
“예.”
“이름이 뭐냐?”
“연적합니다.”
“만약 봉황정이 깨끗하지 않으면 네게 책임을 물어도 되겠지?”
“그러세요.”
그러자 경람 노사는 그의 얼굴을 기억하겠다는 듯 예리하게 살폈다.
“연적하라고 했지? 앞으로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보겠다. 만약 청소를 잘하면 특별히 나의 깨달음을 가르쳐 줄 수도 있다. 모두 너 하기 나름이니 열심히 하도록. 누구처럼 이십오 년 동안이나 소격각에서 일하고 싶지 않으면.”
“…….”
연적하는 벽초를 생각해 답하지 않았다.
경람 노사는 벽초를 힐끔 보더니 휙하고 돌아서 가 버렸다.
다시 둘만 남게 되자 벽초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경람 노사는 성격이 까탈스러우니 그녀의 마음에 들게 일하기란 쉽지 않을 게다.”
“그런데 사형. 경람 노사도 따지고 보면 사형의 아래가 아닌가요?”
“쩝, 종문에서 입문 순서는 큰 의미가 없다. 같은 스승을 모시고 있다면 모를까?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경지가 곧 신분을 의미한다. 경람 노사가 나보다 십오 년 늦게 입문했지만, 지금은 내 윗사람인 것도 그래서다.”
“야아, 서열이 그냥 콩가루네요?”
“다르게 말하면 정직하지. 자신의 경지가 곧 신분이니까. 종문이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날 수도 있다. 평생을 실지렁이처럼 구정물 속에서 살 수도 있고.”
연적하는 단순 무식한 종문의 제자 육성 방식에 혀를 내둘렀다.
강자존 약자멸(强者存 弱者滅).
구주의 가혹한 환경 때문인지 종문도 철저하게 약육강식이었다.
뒷말은 자신의 처지를 빗대서 한 것인지 벽초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이왕 봉황정의 청소를 맡겠다고 했으니 경람 노사의 눈에 들도록 열심히 해 봐라. ‘백 년 기재’인 그녀의 깨달음은 너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게다. 우리처럼 스승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윗분들의 배려가 보물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백 년 기재’는 무슨 소리예요?”
“말 그대로 ‘백 년에 한 명 난다’는 천재다. 남들 십 년 걸리는 연단을 오 년에 끝낸 사람이니까. 그것도 가르쳐 주는 스승도 없이.”
“그렇게 능력 있는데 스승이 없어요?”
“영기의 질이 떨어지니까. 경람 노사의 영기는 하품(下品)인 ‘오행간(五行間)’으로 알려져 있다. 영기의 질이 떨어질수록 위로 올라가기가 어렵지.”
벽초가 연적하를 힐끔 보았다.
“왜요?”
“너도 ‘오행간’이냐?”
벽초는 연적하도 자신처럼 ‘오행간’이라고 생각했다.
대체로 소격각에 있는 사람들은 죄다 ‘오행간’이었기 때문이다.
“저는 오행간에도 들지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더더욱 열심히 청소를 해야겠구나. 경람 노사의 조언을 얻어야 할 테니까. 그녀의 눈에 들어야 하니 당분간은 봉황정 청소만 하도록 해라.”
“다른 데는요?”
“일단 경람 노사의 반응이 올 때까지나 혼자 하마. 네가 열심히 했음에도 경람 노사가 가르침을 주지 않으면 그때 다시 조정해 보자.”
“그러지 말고 그냥 반씩 나눠서 해요. 저는 오전에 청소를 할게요.”
연적하는 벽초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자기 때문에 그의 연공 시간이 줄어드는 건 사양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벽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벽초가 오전에 연공을 고집하는 건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어서다.
오전에 뒷간 청소를 하고 오후에 연공을 하면 자신도 냄새가 거슬렸다.
“오전에 청소를 해도 괜찮겠느냐?”
“저는 상관없어요.”
“허면 ‘봉황정’과 이 위쪽의 ‘세심정’을 네가 맡거라. ‘소요정’과 ‘무궁전’은 내가 오후에 청소를 하마.”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봉황정’과 천애곡의 ‘세심정’은 거리가 가까워서 청소하러 다니기도 수월했다.
“그렇게 할게요.”
“오전에 해 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말해라. 경람 노사가 뭐라고 해도 수련이 우선이니까.”
“예.”
“그럼, 가자. 내가 봉황정에서 특별히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어딘지 가르쳐 주마.”
벽초가 성큼성큼 앞장서 걸었다.
그의 발걸음은 이십오 년의 공력으로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나 녹록한 인생은 없다.
상상외로 더러운 봉황정 뒷간의 모습에 연적하는 저도 모르게 벽초를 보았다.
경람 노사가 생트집을 잡은 줄 알았는데 이건 욕이 나올 만도 했다.
“벽 사형, 오늘 청소 며칠 만에 하는 거예요?”
“어제 오후에 했으니까 하루다.”
“아니, 고작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왜 이렇게 더러워요? 난 보름은 지난 줄 알았는데.”
연적하가 기막힌 얼굴로 중얼거렸다.
언제 치웠는지 모를 객점의 뒷간처럼 더러웠는데 고작 하루란다.
이십오 년 동안 한길을 파 온 벽초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사람마다 뒷간을 사용하는 방식이 다르다. 누군가는 자기가 다녀간 흔적을 남기지 않지만, 누군가는 개처럼 여기저기 오물을 묻히지. 천주봉에서 생활하는 사람만 오백여 명이다. 그들이 모두 깨끗할 수는 없지 않으냐.”
“양생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벽곡단도 안 먹어요? 그건 똥도 거의 안 나온다던데.”
“벽곡단이야 수명이 짧은 평범한 수도자들이 먹는 거고. 종문의 제자들은 진인(원영의 경지)만 돼도 수백 년을 사니 오히려 식도락을 즐긴다. 기름진 걸 먹으면서도 득도를 할 수 있는데 누가 벽곡단을 먹겠느냐?”
연적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하루 만에 이렇게까지 더럽혀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아, 정말 싫다.’
***
그날 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자 병휴가 물었다.
“천주봉은 할 만해요?”
“그냥저냥이죠. 그쪽은 어때요?”
“용화봉요? 여긴 일단 마음이 편해서 좋네요.”
“마음이 편해요?”
“용화봉에서 가장 큰 게 구요각이거든요. 구요각 사람들은 자기들도 잡일을 해서 그런지 잔소리가 없어요. 심지어 기다리기 싫으면 자기들이 청소를 할 때도 있대요. 물론 더러운 건 손도 안 대지만.”
“대단하네요.”
“천주봉은 고상한 사람들만 모여 있어서 정말 잡부 취급을 받는다면서요? 특히 봉황정 여자들은 뒷말이 많기로 유명하다던데.”
“봉황정이 그렇게 유명해요?”
“오늘 일 가르쳐 준 차 사형이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한 달도 못 채우고 쫓겨났다고.”
“쫓겨나기도 해요?”
“봉황정에서 항의가 많이 들어와서 바꿔 줬다더라고요. 그리고 벽초 사형 있잖아요?”
“예, 왜요?”
“그분이 봉황정의 전설이시래요.”
“전설요?”
“십오 년 전에 천주봉으로 옮기신 건데, 봉황정에서 그렇게 오래 버틴 분이 없대요.”
“그래도 찾아와서 항의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왜요?”
“벽 사형과 내가 오후에 청소를 하는데, 봉황정만 오전에 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오전에요? 미쳤나 보다. 우리는 수련도 하지 말라는 거야 뭐야. 오전에 뒷간 청소를 하면 수련이 제대로 되겠냐고. 자기들이 청소를 안 해 봐서 그러는 거지. 냄새도 냄새지만 눈 감으면 뒷간이 눈앞에 아른거릴 텐데.”
“하도 난리를 쳐서 내가 오전에 해 주기로 했어요.”
“연 형, 생각 잘해요. 자칫 벽 사형처럼 연 형도 소격각에 발이 묶일 수도 있어요.”
“정 수련에 방해가 되면 오후로 다시 돌리죠 뭐.”
“에이 더러워. 빨리 원영을 만들어서 위로 올라가야지. 이건 뭐 멀쩡한 사람을 잡부 취급이니.”
툴툴거리던 병휴는 하루가 고단했는지 이내 잠이 들었다.
연적하도 억지로 눈을 감았다.
정신의 피로가 상당했던지 생생하던 몸이 축축 늘어졌다.
‘그래, 원영(元嬰). 까짓거 당장 만들어 준다.’
반나절의 뒷간 청소가 가진 힘은 엄청났다.
그는 단 하루 만에 소요종의 모든 것을 알아 버린 느낌이었다.
뭐랄까.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다 알아 버려, 불우산에서 십 년은 지낸 것 같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작 반나절 만에 십 년은 지낸 것 같은 피로가 밀려왔다.
특히나 녹림에서 대접받고 살아온 연적하에게는 악몽이 따로 없었다.
물론 그가 궂은일을 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오봉산에 처음 들어가서는 반년 가까이 부엌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엌일과 뒷간 청소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요리가 뭔가를 창조하는 일이었다면, 뒷간 청소는 몸과 마음이 불편한 노동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친 연적하는 일단 가까운 ‘세심정’부터 방문했다.
천애곡에서 가까워서 그런지 세심정은 수련자들로 들끓었다.
소격각의 사람들이 천주봉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뒷간 청소하는 모습을 다른 수련자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거다.
구주 출신이 아닌 자신도 은근 신경 쓰이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연적하가 청소를 마치고 잠깐 그늘에서 쉴 때다.
“연 대협?”
뒤쪽에서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청요 노조를 따라간 공지유였다.
“어? 공 소지? 여긴 어쩐……. 아, ‘천애불문비’를 공부하러 왔구나?”
“네, 그런데 왜 여기에 계세요? 천애곡으로 가시지 않고?”
“아, 난 청소하다가 쉬는 중이에요.”
“청소요?”
아무것도 모르는 공지유가 눈을 끔뻑였다.
그때 신이승이 불쑥 나타났다.
“오랜만이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여기서 보게 되는구려. 이틀 만인데 꽤나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느낌이오. 다들 잘 지내고 계시오?”
“어머! 신 소협, 그날은 인사도 못 했네요. 초요산 제군님의 제자가 되신 것 축하해요. 이젠 정말 하늘로 훨훨 날아오를 일만 남으셨네요?”
“감사하오. 그 이후로 공 소저와 연 형은 어떻게 됐소? 나는 스승님에게 이끌려 가느라 결과를 알지 못하오.”
“저는 청요 노조님의 제자가 되어 범천봉에 자리를 잡았어요. 연 대협은 어느 분의 제자가 되었나요? 틀림없이 굉장한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겠죠?”
공지유가 궁금한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의 무위는 비슷한 또래 중에 비교할 자가 없으니 스승도 보통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