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0
60회. 여기 좀 이상하지 않아?
이윽고 오봉산채와 관계된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군자검 이연익이 말했다.
“다른 분들은 모두 돌아가도 좋소이다. 따로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 문주님들과 와룡장의 연 소협은 잠시 자리에 남아 주시오.”
낙양오협의 가족들이 하나둘씩 객청을 떠나갔다.
잠시 후 팔선문, 대연문, 칠양문의 문주들과 와룡검객 연무백만 남자 이연익이 말문을 열었다.
“지금부터 나누는 이야기는 가급적 여러분만 알았으면 하오. 어젯밤, 정의맹에서 연락이 왔소. 여주에서 유명교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하오.”
유명교라는 말에 사람들의 얼굴이 굳었다.
“정의맹에서는 의기대를 보낼 것이오. 그러나 알다시피 유명교는 무림의 공적. 정의맹에서는 낙양의 무림인들이 이 일에 발 벗고 나서기를 바라고 있소.”
팔선문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이십여 년 전에도 강남의 무관들이 힘을 모아 사교를 퇴치했습니다. 우리 팔선문은 동참하겠습니다.”
“대연문도 돕지요.”
“칠양문도 함께하겠습니다.”
각 문파의 문주들이 연무백을 바라보았다.
“와룡장도 참여하겠습니다.”
연무백은 몸을 사리지 않았다.
무림 세가가 되겠다고 하면서 하남 무림의 일을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참월검객 연무룡의 아들인 자신이 이 일에서 빠지면 두고두고 비웃음을 살 것이었다.
“고맙소이다. 정의맹은 이 일에 동참한 문파들의 의기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별말씀을요.”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문득 팔선문주가 중얼거렸다.
“어쩌면 오봉산채의 토벌이 뒤로 미뤄질 수도 있겠군요.”
“설마요.”
칠양문주가 말도 안 된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자 대연문주가 말했다.
“그렇게 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요. 유명교의 처리가 우선이니까요.”
그러자 칠양문주는 이연익을 보며 말했다.
“이 대협, 오봉산이면 여주에서 사나흘 거리가 아닙니까? 여주의 일이 끝나면 이참에 의기대와 함께 녹림도를 쓸어버리는 건 어떻습니까?”
“아니 될 말씀이오. 사적인 일에 의기대를 끌어들일 수는 없소.”
이연익은 칠양문주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단지 그가 공사의 구별에 철저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이연익은 이번 일을 낙양오협의 가문에서 조용히 처리하기를 원했다. 괜히 의기대를 끌어들였다가 외부에 소문이라도 나면, 그건 자식들에게 못할 짓이었다.
잠시 침묵하던 군자검 이연익이 말을 이었다.
“여러분, 우선은 유명교에 집중하십시다. 오봉산채는 그 뒤에 처리해도 늦지 않소. 그리고 무엇보다 유명교는 다른 일에 정신을 팔아도 될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외다.”
사람들은 이연익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일단 수긍했다. 유명교가 정의맹의 공세에도 살아남았다는 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었으니까.
“허면 우리가 몇 명이나 지원을 하면 좋겠습니까?”
칠양문주의 질문에 이연익이 준비한 답을 말했다.
“문파별로 정예 다섯 명씩 보내면 괜찮을 것 같소. 우리 의천문은 열 명을 보낼 생각이오.”
지원대를 삼십으로 하자는 소리다.
사실 칠파이문으로 구성된 의기대가 스물이니 최소 삼십은 돼야 얼추 균형이 맞는다.
사람들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각 문파별로 다섯은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숫자다.
그들이 무사히 돌아온다면 말이다.
***
보봉현.
오봉산.
아침부터 모처럼 오봉십걸과 구밀복검 심양각이 상화각에 모였다. 인질로 잡고 있는 낙양오협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함이다.
폐인이 된 뒤로 심양각은 오봉십걸의 모임에 꼬박꼬박 초대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심양각의 위치가 오봉십걸과 동등해진 건 아니다. 여전히 심양각은 오봉십걸에게 존댓말을 썼고, 오봉십걸은 그를 아랫사람으로 대했다.
채주이자 첫째인 풍연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연 아우, 우리끼리니까 솔직하게 아우의 생각을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인질들이 풀려나면 그들이 보복을 하러 올 텐데, 어쩔 생각이냐?”
“그때쯤이면 돈도 많이 모였을 텐데. 좀 쉬죠.”
“싶다고?”
“각자 고향에도 좀 다녀오고, 가고 싶은 곳도 다니자고요. 의천문이 좀 잠잠해지면 다시 모이자고요. 설마 우리 뒤만 졸졸 따라다니지는 않겠죠.”
“흘흘, 연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놈들도 체면 때문에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 묻힐 겁니다.”
심양각의 말에 심각하던 오봉십걸의 안색이 조금씩 풀어졌다. 가장 강호 경험이 많은 사람의 말인지라 왠지 그럴듯했던 것이다.
신시 초(오후 3시).
천기덕이 딱딱하게 굳은 만두와 물병을 숙소 안으로 던지다시피 밀어 넣었다.
“잘 처먹어라!”
문이 닫히자 낙양오협은 허겁지겁 만두를 입안에 넣고 씹어 삼켰다.
급하게 먹다 목에 걸렸는지 오중산이 ‘컥컥’거렸다.
그걸 본 손상극이 황급히 물병을 건네주자 오중산은 벌컥벌컥 들이켰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만두는 딱 다섯 개.
마파람에게 눈 감추듯 만두를 먹어 치운 낙양오협은 이내 축 늘어졌다.
셋째 손상극이 벽에 등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지독한 새끼들. 한 끼에 만두 하나라니.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것 같네.”
화답하듯 둘째 오중산이 말했다.
“이놈의 물은 마실수록 속이 허해지는 느낌이야. 그나저나 독심낭인이라는 놈의 점혈 실력이 정말 무섭군. 첫날 점혈당한 뒤로 도무지 운기를 할 수가 없으니.”
동생들의 말을 듣고 있던 첫째 황동엽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아! 그러게, 나도 몇 번이나 시도해 봤지만 내공이 전혀 느껴지질 않는다. 풀려나면 점혈법이나 더 공부를 해 봐야겠어.”
남자들이 심심파적으로 점혈법에 대해 논할 때다.
문득 이소민이 연설주에게 물었다.
“연 매, 우리가 이곳에 갇힌 지 며칠이나 지났지?”
“오늘로 칠 일이에요.”
“하아! 이젠 가족들 귀에도 다 들어갔겠구나.”
“그뿐이겠어요? 아마 돈을 마련해서 오는 중일 거예요. 대충 여주쯤 왔겠네요.”
“아, 가족들 얼굴을 어떻게 보지? 그렇게 반대하는 걸 몰래 뛰쳐나왔는데…….”
“저는 어머니 손에 맞아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에요.”
“백 부인이 그렇게 무서워?”
“저를 강제로 시집보내려고 하실 거예요. 어쩌면 돈 많은 장사꾼에게 팔아 버릴지도 몰라요. 저 때문에 큰 빚을 지셨으니까.”
“에이, 설마.”
연설주가 맥없이 웃어 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자식을 팔지야 않겠지만 자신에게는 같은 소리였다.
“그래서 연 매는 꿈을 포기할 거야?”
이소민의 물음에 연설주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그러고 싶지 않지만 너무 큰 빚을 지게 해서……. 가족들 볼 면목이 없어요. 그런 피해를 입히고도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건가 싶고.”
“연 매는 멋진 여협이 될 거야. 내 말 믿어.”
“에효! 말씀만이라도 고맙네요.”
“그런 의미에서 같이 바람 좀 쐬러 갈까?”
물론 인질이 자유롭게 바람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이소민의 말은 뒷간에 가자는 거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지켜 주기 위해 뒷간에 갈 때는 꼭 붙어 다녔다. 웬일인지 도적들도 여자들이 함께 다니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
“그래요.”
이소민과 연설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들은 애써 모른 척 점혈법의 대화를 이어 갔다.
이소민이 문을 두드리자 밖에서 ‘무슨 일이냐?’는 소리가 들렸다.
이소민은 문에 입을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볼일을 좀 보게 해 줘요.”
밖에서 절그럭절그럭 자물쇠 푸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문이 열렸다.
두 여자가 밖으로 나가자 도적은 다시 문을 닫고 자물쇠로 잠갔다.
볼일을 마친 이소민과 연설주는 천천히 걸었다.
조금이라도 더 바깥바람을 쐬고 싶은 마음에서다.
모처럼 두 사람의 표정이 밝았다.
하루 종일 좁은 방에 갇혀 있다가 이렇게라도 나와 걸으니 너무 좋았던 것이다.
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이소민이 말했다.
“연 매, 여기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요?”
“산채라기보다는 그냥 산속 마을 같잖아.”
그제야 연설주는 이소민의 말을 알아들었다.
확실히 낙양오협에게 적대적인 걸 제외하면 오는 길에 보았던 마을들과 비슷했다.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죠. 하지만 다른 산채를 본 적도 없어서 뭐라고 말을 못 하겠네요. 도적들은 적풍채보다 훨씬 잔악한 게 확실하지만.”
천 냥의 배상금을 지불하게 된 연설주는 오봉산채에 대한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고작 백 냥이라는 푼돈에 합의를 본 이소민은 달랐다. 그녀의 눈에는 오봉산채의 나름 괜찮은 점도 제법 많이 보였다.
그중 가장 눈에 두드러진 것은 여자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자신과 연설주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정도로 아름답다.
주루나 객점, 심지어 반점에만 가도 음흉한 눈으로 힐끔거리는 남자를 만날 수 있다. 함께 다니는 오라버니들이 아니었다면 꽤나 시달림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 오봉산채의 도적들에게 사로잡혔을 때는 자결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했다. 녹림도가 여자를 어떻게 다루는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다.
녹림의 도적들은 ‘강간은 기본이고 시간(屍姦)까지도 서슴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기이하게도 지금까지 자신의 옆으로 한 걸음 이상 다가온 도적이 없다. 멀리서 침을 흘리며 바라보는 걸 보면 욕정에 물든 것 같은데도 그랬다.
점혈을 당해 약해지고도 연설주와 둘이 다니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없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그게 아니었다면 주변의 풍광 따위를 둘러볼 마음의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두 여자가 소곤거리며 걸어갈 때다.
“여어, 아주 그냥 나물 캐러 산에 올라온 여자들 같네. 제집처럼 행동하니까 좋지?”
이소민과 연설주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평상에 어린 도적이 비스듬하게 누워 있었다.
저놈과 만나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 두 여자의 걸음이 빨라졌다.
그런데 연적하는 때마침 눈에 띈 두 여자를 그냥 보내 줄 마음이 없었다.
“오라버니가 말씀하시는데 누구 맘대로 가래?”
두 여자는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그녀들을 인솔해 가던 천기덕이 짧고 강하게 말했다.
“저쪽으로 가라.”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은 평상.
두 여자는 이를 악물고 평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소민이 연적하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소형제,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요?”
지금 그녀는 부친인 군자검 이연익이 봤다면 뒷목 잡고 쓰러질 정도로 조신함 그 자체였다.
연적하가 뚱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지내려니까 답답한가 봐? 산책을 다니는 걸 보니.”
“그,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측간에 갔던 거예요.”
“킁, 킁, 그래? 어쩐지 냄새가 지독하더라니.”
“…….”
밀려오는 수치심에 이소민과 연설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면전에서, 그것도 여자가 아닌 남자에게 이런 말을 듣다니!
어쩌면 상대의 말이 사실일 수 있어서 더 부끄러웠다.
고수가 되면 보통 사람보다 훨씬 오감이 발달하기 때문이다.
지난 칠 일간 씻지 못한 그녀들은 ‘냄새’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특히나 방금 큰일을 치르고 나온 이소민은 숨도 쉬지 못할 정도였다.
연적하가 여자들을 빤히 보며 중얼거렸다.
“음식을 좀 줄여 줄까? 그게 냄새 나는 측간에 드나드는 것보다 낫지 않겠어?”
그 말에 울컥한 연설주가 바로 받아쳤다.
“이봐요! 한 끼에 어린애 주먹만 한 만두 하나를 주면서 뭘 더 줄인다는 거예요!”
“흥! 주먹이면 엄청 큰 거지. 한 끼에 콩알만 한 벽곡단 하나를 먹는 도사들도 있어. 어디서 배부른 소리야?”
“그, 그건…….”
화가 난 연설주는 씩씩거렸지만 딱히 반박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아주 제 입에 들어가는 거만 관심이 있지? 요즘 와룡장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면, 만두가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을 텐데?”
연적하가 조롱하듯 빙글빙글 웃었다.
가슴이 덜컥한 연설주가 소리를 빽 내질렀다.
“무슨 소리예요! 우리 와룡장에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천 냥으로도 부족했나요! 말해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