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1
61회. 그 정도면 된 거 아닌가요?
연설주는 연적하가 배다른 동생이라는 걸 모른다.
처음 연적하가 하늘에서 용무천상으로 내려찍을 때는 볼 틈이 없었고, 이소민에게 운룡풍호를 펼칠 때는 이미 기절한 상태였다. 물론 본다 해도 격이 달라 알아보기 어려웠을 테지만 말이다.
그 뒤로도 알아차릴 기회는 없었다.
오봉십걸들은 평소 연적하를 ‘연 아우’, ‘연 형님’, ‘연 오라버니’라고 불렀다. 다른 도적들도 감히 연적하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못하고 ‘형님’이라고만 했다.
그뿐 아니다.
오봉산채의 도적 다섯이 죽은 일로 낙양오협과 도적들의 관계가 틀어진 것도 한몫했다. 대화가 없다 보니 연설주에게 연적하는 무공이 뛰어난 젊은 도적이었다.
그 도적이 와룡장에 무슨 수작을 부린 것처럼 말하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왜 말이 없어! 말해 보라고!”
악에 받친 연설주는 자신의 처지도 잊고 연적하를 몰아세웠다.
연적하가 실실 웃으며 물었다.
“궁금해?”
“그래요. 그러니까 무슨 일인지 말해 봐요.”
“맨입으로는 안 되지.”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나에게 뭔가 바란다면 너도 뭔가를 해 줘야 할 거야.”
연설주가 연적하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역시 도적은 어쩔 수 없군요. 나에게 그렇고 그런 걸 바란다면 꿈 깨요! 나는 절대 도적 따위와 그럴 생각이 없으니까!”
“그렇고 그런 게 뭐야?”
연적하의 멍한 표정에 연설주는 자신이 뭔가 착각했음을 알았다.
“아, 아니에요. 당신이 원하는 게 뭐죠?”
연적하는 연설주를 지그시 바라보며 십이 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연적하 여섯 살.
여섯 살의 연적하는 아직 본처와 후처의 의미를 모른다. 당연히 누나와 형들이 왜 그를 그토록 미워하고 괴롭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뭔가 잘못해서 그런다고 받아들였다.
예컨대 못생겼다거나, 머리가 나쁘다거나, 몸에서 냄새가 난다거나, 행동이 느려서 다른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다고 말이다.
배다른 형제자매인 연무백, 연승백, 연설주는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연적하를 괴롭혔는데, 그중 연설주가 가장 심했다.
어린 연적하는 나이 많은 형들보다 세 살 차이의 연설주를 가깝게 여겨 다가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천박하고 더러운 놈이라며 밀어냈다.
당시 아홉 살의 연설주는 엄마인 백미주의 언행을 거의 그대로 따라 했다.
그녀는 연적하가 울 때까지 꼬집는다거나, 뜻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욕들을 쏟아 냈다.
연적하가 악동처럼 실실 웃으며 말했다.
“너도 양무기처럼 마음을 담아 고두배를 해 봐. 그럼 가르쳐 줄게.”
“…….”
연설주는 기가 막힌 얼굴로 젊은 도적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 그가 고두배를 요구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 그보다 저 도적은 왜 피해자인 자신에게 고두배까지 원한단 말인가?
놀란 이소민은 무심코 연설주의 팔을 잡았지만, 그뿐이었다. 아무리 두 사람이 친하다 해도 이건 연설주가 결정할 문제였다.
“이봐요? 미쳤군요. 내가 왜 당신과 같은 도적에게 고두배를 해야 하죠? 그걸 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당신이 아닌가요?”
“그래서 안 하겠다고?”
“흥! 당신이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당신에게 머리 숙이지 않아요. 우리 와룡장의 사람들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아요. 당신이 무슨 말을 해도 그건 거짓일 거예요.”
“어, 내일은 해가 뜰 거야. 아! 안 믿겠구나?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거짓이라고 했으니까.”
연설주는 그냥 못 들은 척하기로 했다.
그러자 연적하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와룡장 여주인이 의천문에 천 냥을 빌렸다지? 그거 갚으려면 뼈가 빠지게 일해야 할 텐데. 어쩌나. 이제 돈 들어올 데가 없어서.”
“헛소리!”
연설주가 한마디 하자 이소민이 급히 속삭였다.
“연 매,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려. 받아 주면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할 거야.”
연설주가 입술을 깨물었다.
안다. 자신이 반응할수록 저 도적의 헛소리는 점점 더 심해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열불이 치솟아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곧 하남성 녹림에 와룡장과 관계된 상방은 봐주지 말라고 할 거거든.”
“퍽 두! 녹림이 잘도 당신 말을 들어주겠네요.”
“연 매, 하지 말라니까. 그냥 무시해.”
이소민은 연설주가 더 이상 저 젊은 도적을 자극하지 않기 바랐다.
어째 연적하와 연설주가 말싸움을 하고, 중간에서 이소민이 만류하는 모양새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다른 건 몰라도 오늘부터 백세상방은 오봉산에 출입 금지야.”
“…….”
연설주가 연적하를 노려보았다.
독기 어린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상대를 찢어 죽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심정이 역력히 느껴진다.
그럴수록 연적하의 미소는 짙어졌다.
보다 못해 이소민이 나섰다.
“저어, 소형제. 연 매가 당신에게 칼을 휘두른 건 잘못이지만……. 그래서 와룡장에게 천 냥이나 받기로 했잖아요. 그 정도면 된 거 아닌가요?”
이소민은 저 도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연설주를 괴롭히기로 작정한 사람 같았다. 도적을 죽인 상방 무사들도 그냥 보내 주고 왜 유독 연설주에게만 죄를 묻는단 말인가?
심지어 연설주는 그에게 조금도 위협이 되지 못했다.
상처를 입히기는커녕 옷깃에 닿지도 않았는데 와룡장까지 물고 늘어지다니.
연적하가 심드렁한 얼굴로 답했다.
“이봐. 그 정도 보상으로 됐는지 아닌지는 당한 사람 마음이야. 내 기분이 더럽다는데 네가 왜 그래? 자꾸 그러니까 은근 기분 나빠지려고 하네?”
“아, 아니에요. 제 생각이 짧았네요. 미안해요.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은 아니에요.”
이소민은 화들짝 놀란 얼굴로 사과했다.
말싸움을 구경하다가 깜빡 자신의 처지를 망각했던 것 같다. 여기가 흉명이 자자한 녹림 산채고 자신은 그곳에 인질로 잡혀 있는데 말이다.
연적하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이야아! 날씨 참 좋다. 그렇지? 볼일 다 봤으면 얼른 가 봐. 여자들만 나가서 안 돌아오면 일행이 걱정하잖아. 그럼 안 되지. 얼른 가서 안심시켜 주라고.”
“…….”
이소민은 아쉬운 눈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냄새나는 방으로 돌려 보내지기 전에 상큼한 바람을 조금이라도 더 마시려는 듯이.
연설주는 천기덕에게 등 떠밀려 움직이기 직전까지 연적하를 노려보았다.
***
여주.
여하를 끼고 발달된 소도시 여주가 이른 아침부터 긴장에 휩싸였다. 정파의 무림인들이 마치 급습하듯 몰아닥친 탓이다.
객점의 식당과 반점마다 정의맹 의기대와 하남성 정파 무관의 고수들로 가득했다. 그들의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살벌한 눈빛에 도시가 얼어 붙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무림인들은 여하 강변으로 이동했다.
선두에 선 사람들은 소림사의 공백 대사와 다섯 나한이었다.
공백 대사가 멈춰 서자 정의맹 의기대 대주 철금강 만백이 다가갔다.
“사형, 이곳입니까?”
소림사의 항렬은 금강경 개경게(開經偈)의 글자를 따른다. 개경게의 네 구절에서 글자 하나를 골라 법명에 사용하는 식이다. 선대가 법명의 앞에 붙이면 후대는 뒤에 붙였다.
개경게는 다음과 같다.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 위없이 높고 싶은 미묘한 법)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隅, 백천만겁 지나도록 만나기 어려워라)
아금문견득수지(我今聞見得修持, 제가 지금 보고 듣고 수지하여)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義, 여래의 참된 뜻을 알고자 하나이다)
현재 소림사의 가장 어른은 무 자 항렬인 무법 선사다.
그 아래 장문인과 장로들은 현백, 공백, 만백 등 백 자 항렬을 쓴다.
그리고 청장년인 나한들은 문 자를, 가장 어린 제자들은 진 자를 쓰고 있었다.
현재 의기대 대주 만백은 백 자 항렬의 소림사 장로로 집법당 공백 대사의 사제였다.
고개를 끄덕이던 공백 대사가 강변의 한 지점을 가리켜 보였다.
“저곳에서 제물로 사용된 스님이 발견되었네. 시체가 들어 있던 포대는 여주의 포목점에서 제작한 것으로 확인되었지. 그들은 여주에 숨어 있을 것이네.”
“실로 대범한 자들이로군요. 이토록 가까이에서 그런 짓을 하다니.”
“분명히 여하 강변 어딘가에 근거지가 있을 걸세.”
“지금까지 흔적을 남기지 않았는데, 지금에 와서 갑자기 꼬리를 잡힌 이유가 뭘까요?”
“긴장이 풀렸거나, 그만큼 자신이 있어서 그런 것이겠지.”
“사형도 유명교의 소문을 믿으십니까?”
“초능을 사용한다고?”
“예.”
“전혀 근거 없는 소문은 아닐 게야. 어쩌면 마공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르지.”
“나무아미타불. 사형께서도 그리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정의맹 총사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시던데.”
“하아! 동남동녀의 원정이나 시체에서 사기를 흡수하는 건 들어 봤지만, 살아 있는 수도사의 몸에서 무얼 얻겠다고. 실로 괴이하고 악랄한 일이야.”
“그런데 사파의 고수가 초능을 얻 게 되면 얼마나 강해질까요?”
“글쎄. 참월검객과 검왕조차 월하선자를 죽이지 못한 걸 봐서는……. 상상 이상일 게다.”
만백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것도 벌써 이십 년 전의 일이다.
그동안 본신의 무공은 물론 초능까지 강화되었다면?
뒷일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곳을 기준으로 상류 쪽은 사제가 맡게. 나는 이 대협 일행과 함께 하류 쪽을 조사해 보도록 하겠네.”
“알겠습니다. 수상한 게 발견되면 무리하지 마시고 연락 주십시오.”
“그러지.”
잠시 후 의기대와 낙양 무관들은 각각 상류와 하류 방향으로 흩어졌다.
***
여하 강변.
은하장.
은하장의 안채에 십여 명이 모여 있었다.
은하장 장주 척진경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모두가 절정에 이른 무림인인 듯, 한 사람 한 사람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중 오십 대로 보이는 기골이 장대한 남자, 대력귀가 조금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장주님, 광명장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성물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는 걸 보면, 천두마왕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천두마왕이라는 말에 척진경은 마시던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천두마왕은 교주가 아니고서는 오를 수 없는 무상의 자리인 까닭이다.
“쯧쯧! 대력귀야. 월하선자와 환영신마가 손을 잡았다 해도 천두마왕은 무리다. 천두마왕의 강림에 필요한 주문을 아는 사람은 교주님뿐이지 않느냐.”
같은 팔주령을 사용하더라도 십두마병과 백두마군, 천두마왕의 주문은 다르다. 그건 단지 제물을 천 개 바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백두마군들은 천두마왕이 되고 싶어도 될 수가 없었다.
“교주님께서 사라진 지 이십 년이 넘지 않았습니까? 어쩌면 광명장원에서 손을 썼는지도 모릅니다.”
“그 당시 교주님은 백두마군이었지만 월하선자와 잔혈마도는 십두마병에 불과했다. 지금의 너희 사대신장들처럼 말이다. 백 명의 십두마병도 백두마군 하나를 당하지 못한다.”
이번엔 시체처럼 얼굴이 하얀 음산귀가 끼어들었다.
“장주님, 대력귀의 말을 흘려듣지는 마십시오. 광명장원에서 십두마병들을 많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자리에 욕심이 없다면 왜 그러겠습니까?”
그들과 나란히 앉아 있던 무쌍귀와 무영귀도 고개를 끄덕였다.
“월하선자는 보통 여자가 아닙니다.”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겁니다.”
최측근인 사대신장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자 척진경도 더는 무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영귀, 네가 광명산장의 동향을 좀 더 세심히 살펴보도록 해라.”
“존명.”
무영귀가 숙였던 허리를 펼 때, 한 남자가 마당을 가로질러 다가왔다.
“장주님, 정의맹과 낙양의 무가들이 여하강 변을 이 잡듯 뒤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본장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