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11
611회. 의리는 냄새보다 강하다.
초요산 제군은 다시 한번 연적하를 보았다.
영기의 질 문제로 외면했건만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나온 형국이다.
무위가 뛰어난 것과 영기의 질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내단과 원신의 합일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영기의 질’이다.
영기(靈氣)란 신령스러운 기운으로 원신도 포함된다.
내력이 높아도 원신에 문제가 있으면 합일해 봐야 쓸 만한 게 나오지 않는다.
원영지체를 세분화하면 다시 무상지체, 태양지체, 태음지체, 오행지체 등으로 나뉜다. 내공이 아니라 영기의 질에 의해 원영지체의 급이 정해지는 것이다.
그건 수십만 년 종문의 역사가 증명한다.
그런데 오늘 그 법칙에서 벗어나는 일이 생겼다.
‘입문 제자가 노사, 진인, 노조를 건너뛰어 제군에 이르다니…….’
‘천애불문비’가 파괴된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아직은 검공에 한해서라고 하지만 그가 검령을 얻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어이쿠! 누가 오는 것 같네요.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제가 벌인 일은 눈감아 주세요.”
말을 마친 연적하는 이내 어검비행으로 사라져 버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초요산 제군도 급히 운종술로 자리를 벗어났다.
제군이나 돼서 까마득한 후배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싶지 않아서다.
잠시 후 무너진 계곡에 소요종 고수들이 속속 도착했다.
다들 폭발음에 이끌려 온 사람들이다.
한 식경(약 30분)가량 계곡 주위를 조사하던 그들은 빈손으로 돌아갔다.
***
천주봉.
소격각.
연적하는 느긋하게 소격각을 돌아다녔다.
이제 곧 방사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새로워 보였다.
하다못해 창고 앞에 줄지어 서 있는 똥장군들도 싫지 않았다.
소격각에 배어 있는 구린내도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정겨웠다.
한가하게 걷고 있는 그를 누군가 불렀다.
“연 사형.”
병휴였다.
그동안 한방을 쓰면서도 연 형, 병 형 하던 두 사람은 지난밤에야 호칭을 정했다.
따져 보니 연적하가 한 살 많아서 사형이 됐다.
만나자마자 호칭부터 정리한 은소선을 생각하면 꽤나 늦은 편이다.
“어, 사제.”
연적하가 반가운 얼굴로 병휴를 보았다.
자신을 대신해서 오전의 청소를 끝내고 왔는지 몰골이 엉망이었다.
“청소하고 온 거야?”
슬쩍 물어보니 병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데 창고에는 웬일입니까? 냄새나는 것투성이인데.”
“그냥 여기저기 둘러보던 중이야.”
“에이, 둘러볼 거면 세심정이나 가 보시지. 소격각에 뭐 볼 게 있다고.”
“세심정?”
“요즘 세심정이 사람들로 가득하잖습니까. 천애곡 때문에.”
“사람들 많은 게 좋으냐?”
“그동안 소문만 들었던 사저들을 다 볼 수 있잖습니까. 그것 때문에 사형들도 죄다 세심정 주변을 기웃거리던데. 연 사형도 한번 가 보십쇼. 괜히 소격각에서 우중충한 것만 보지 말고.”
“난 보고 싶은 사저 없다.”
“에이, 말로만. 예쁜 여자 밝히기로 유명하신 분이. 그러지 말고 가 보십쇼. 누가 압니까? 사형 마음에 드는 예쁜 사저가 있을지.”
예쁜 여자라는 말에 연적하의 눈이 빛났다.
혹시나 그중에 남궁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사저들을 모두 본 건 아니니까 한 번쯤은 가서 확인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 아니던가.
“그럴까?”
“에이, 결국은 그럴 거면서.”
병휴가 실실 웃었다.
“참, 사제. 내일부터 세심정과 봉황정 청소는 그만해도 될 거야.”
“왜요? 한 달은 제가 해 드린다니까요?”
“내일이면 내가 소격각을 나가게 될 것 같아서 그래.”
“소격각을 나간다고요? 또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질렀습니까?”
병휴가 놀란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승급의 가능성은 생각지도 못하고 파문(破門)을 당하는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웬 잘못?”
“소요종에서 소격각이 가장 밑바닥인데, 여기서 나가는 거면 파문밖에 더 있습니까?”
“위로 올라가는 건 생각하지도 않냐?”
“헉! 노사로 승급하는 겁니까? 와아! 벌써 원영(元嬰)을 만들었어요?”
“그래, ‘천애불문비’가 깨지기 직전에 만들었다.”
“그날 깨달음을 얻은 겁니까?”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천애불문비’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와, 운이 좋으시네. 그걸 어떻게…….”
병휴는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원영을 만든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천애불문비’에서 뭔가를 얻었다는 게 부러웠다.
“그러니까 내일부터는 본래 네가 맡은 곳만 청소하면 된다. 각주님이 벽초 사형에게 다른 사람을 붙여 줄 테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예, 그나저나 축하드립니다. 소격각을 나가더라도 저를 모른 척하면 안 됩니다.”
“그럴 리가 있냐. 하나밖에 없는 사제인데.”
“소격각에서 어디로 가시게요?”
“글쎄다. 무상각에 스승님이 계시지만 진인이시라 함께 지낼 수가 없다네?”
“허! 벌써 스승님도 모셨습니까?”
“어쩌다 인연이 닿았다. 그런데 노조는 돼야 함께 지낼 수가 있단다.”
“그럼 연 사형은 일반 제자들이 머무는 곳으로 가겠네요?”
“그렇겠지.”
연적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불우산의 오대 봉우리에는 칠각에 속하지 않은 제자를 위한 숙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중에 어느 곳으로 가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소요종의 대소사를 처리하는 대라각에서 정해 주기 전까지 알 수가 없다.
병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들자 이별이라더니 딱 그 짝이네요. 연 사형과 이제 막 친해졌는데.”
“이별은 무슨. 같은 소요종에 있으면서. 생각나면 종종 놀러 오마.”
“생각은 나도 놀러 오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냄새 때문에. 가뜩이나 냄새에 민감하신 분이 퍽도.”
“어허! 의리는 냄새보다 강하다고. 난 의리 빼면 시체야. 알면서 그래.”
“예, 예. 그 의리 한번 믿어 보겠습니다.”
병휴가 푸들푸들 웃었다.
확실히 연적하는 다른 사형들과 달랐다.
그라면 정말 소격각을 나간 뒤에도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연적하가 병휴와 노닥거릴 때, 초요산 제군은 소격각 각주 백무영 진인과 만나고 있었다.
“어이쿠! 초요산 제군님께서 누추한 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백무영 진인은 초요산 제군의 앞에 납작 엎드렸다.
진인에게 제군은 하늘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각주로서의 체면 따위는 내팽개쳤다.
“소격각에 연적하 방사가 있다지?”
“그렇습니다.”
백무영 진인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초요산 제군의 안색을 살폈다.
문득 대라각의 각주인 주역봉 노조에게 그를 다른 곳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떠올랐다.
‘설마 무궁전에서 연적하를 데려갈 생각인가?’
그때 초요산 제군이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조만간 그가 승급의 문제로 자네를 찾아올 걸세.”
“승급요? 연적하 방사가 벌써 원영을 만들었다는 말씀이십니까?”
백무영 진인의 음성이 높아졌다.
소요종에 입문한 지 아직 칠 일도 안 됐는데 벌써 원영을 만들었다니?
등급 외의 열등한 영기를 가지고 그게 가능한 일일까?
“원영을 만들었냐고 했나?”
초요산 제군의 반문에 백무영 진인은 눈만 끔뻑였다.
승급에 관한 문제면 원영이지 뭐 다른 게 있겠나 싶어서다.
그러나 이어지는 초요산 제군의 말에 백무영 진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연적하는 ‘검의 화신’을 수백 개나 만들었네. 이제 내가 왜 그대를 찾아왔는지 알겠나?”
“부, 불가능한 일입니다. ‘검의 화신’이라고 하셨습니까? 제가 어제 연적하에게 ‘천산검영’을 익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만에 ‘검의 화신’을 수백 개나 만들었다고요? 그걸 지금 믿으라고 하시는 말씀이 십니까?”
초요산 제군이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그대가 믿지 못하는 것도 이해하네. 그걸 보는 나도 황당했으니까. 혹 자네는 정오 무렵에 영기의 파동을 느끼지 못했는가?”
“느꼈습니다. 천애곡의 노조 분들 중에 누군가가 깨달음을 얻었으려니 생각했습니다.”
누구인지 확인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노조의 깨달음을 진인이 구경거리로 삼아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축하해 줄 요량으로 내가 달려갔었네. 노조가 아니라 연적하의 영기가 폭발한 것이었네. 그 자리에서 ‘검의 화신’ 수백 개를 보았지.”
“외람된 말씀이지만 아직 그런 소문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겠지. 연적하가 ‘검의 화신’을 다른 산으로 옮겨 갔으니까. 그대도 오늘 낮에 범천봉 뒤쪽에서 들려온 폭발음은 들었겠지?”
“그, 그게 그것 때문이었습니까?”
“맞네. 연적하가 ‘검의 화신’ 수백 개를 계곡에 때려 넣어 생긴 일이네. 그 일로 계곡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지. 이제 믿겠는가?”
“…….”
백무영 진인은 얼빠진 얼굴로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연적하의 무위가 진인에 육박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원영은 무위의 높고 낮음과 무관하다.
마치 내가(內家) 고수가 처음 내단을 만들 때처럼, 원영의 씨앗을 만드는 데에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걸 하루 만에 해내는 것으로도 부족해 ‘검의 화신’까지 만들었다니.
자신이 알고 있던 원영의 이치가 무너지는 느낌이다.
“어차피 알게 될 일을 미리 알려 주는 것은, 혼란을 피하기 위함일세.”
그제야 백무영 진인은 초요산 제군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승급을 어디까지 해야 합니까?”
“‘검의 화신’을 수백 개나 만들었지만, 그에게는 아직 검령이 없네.”
“아!”
“물론 비경에 들게 되면 곧 검령을 얻겠지. 하지만 비경은 구월에나 열릴 걸세. 그때까지 그를 진인으로 두는 게 어떨까 싶어서.”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제군께서 오늘 저를 깨우쳐 주지 않았다면 곤경에 처할 뻔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백무영 진인은 초요산 제군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리 귀띔받았기에 망정이지, 아무런 정보 없이 연적하를 만났으면 갈팡질팡했을 것이다.
‘검의 화신’에 놀라 그를 노조나 제군으로 추천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소요종은 일대 혼란에 빠져들었을 게다.
“이건 내 개인적인 부탁이네만. 그의 승급시험을 가급적 조용히 치렀으면 하네. 그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해서.”
“누가 감히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분명히 그가 이룬 경지와 지위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제자들이 나올 걸세. 그러니 비경이 열릴 때까지 최대한 덮고 갔으면 하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초요산 제군이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자신이야 검령을 얻지 못했으니 진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두의 마음이 같을 수는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진인도 과하다’부터, 노조네, 제군이네 말들이 많을 게다.
***
다음 날 아침.
연적하는 자신의 승급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소격각 각주 백무영 진인을 찾아갔다.
연적하가 집무실로 들어오자 백무영 진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서 오시……거라.”
많은 준비를 했지만 긴장했던 탓에 말이 꼬였다.
백무영 진인은 주책맞게 따로 노는 제 입을 원망하며 빈 의자를 가리켰다.
이 역시 전에 없던 일이다.
“앉게.”
“뭘 의자씩이나.”
툴툴거리면서도 연적하는 냉큼 의자에 앉았다.
“그래,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왔느…… 는가?”
머릿속은 반말을 하라고 하는데 ‘진인의 입’이 자꾸 하오체를 썼다.
“아침에 뭐 잘못 먹었어요? 말투가 왜 그래요?”
“험, 소격각 각주로서 앞으로는 제자들 하나하나를 존중해 줄 생각이네.”
“아, 그러시구나. 저번에 원영을 얘기했더니, ‘천산검영’부터 배우라고 했잖아요? 다 배운 것 같은데 어디서 보여 드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