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40
640회. 먹다가 자리 옮기는 거 아니다.
도솔문은 비단 금산현뿐 아니라 강남성에서도 알아주는 문파다.
당대 문주인 장웅의 조부(祖父) 장천이 천태종의 진인인 까닭이다.
구주에서는 종문 제자와 촌수가 가까울수록 높이 쳐준다.
종문 제자와의 연이 아직 끈끈해서다.
그래서 강남성의 성주(城主)는 해마다 도솔문 문주 장웅에게 선물을 보낸다.
성주가 눈치를 볼 정도면 금산현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기세등등해진 도솔문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천태종 제자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했다.
오죽하면 반점에서 영천주의 특산품인 홍설아를 마신다고 손님을 때려 쫓을까.
제 식구가 밖에서 때리고 다니는 건 눈감아 주지만, 맞고 다니면 못 참는 게 인지상정이다.
일대제자 장일선은 이대제자 둘이 반점에서 맞았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꼭지가 홱 돌았다.
잘잘못을 가리기 전에 도솔문의 제자가 맞고 다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건 도솔문 문주인 장웅은 물론 천태종의 장천 진인까지 욕보이는 짓이었다.
그래서 금산현 최고수라는 사제와 이대제자 셋을 이끌고 반점으로 달려갔다.
사고를 친 외지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반점에 손님이라고는 딱 하나뿐이었으니 말이다.
장일선은 자리에서 막 일어선 청년 앞으로 다가가 턱짓을 했다.
“도솔문 앞에서 보란 듯 도솔문 제자들을 내쳤다는 놈이 네놈이냐?”
연적하가 도솔문도들로 보이는 사내 다섯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다짜고짜 이놈 저놈 해 대는 걸 보니 예의와는 담을 쌓은 자들이다.
천태종을 뒷배로 두고 있으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왜 그랬냐고는 묻지도 않으시네?”
연적하의 말에 장일선이 콧방귀를 뀌며 답했다.
“흥!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도솔문의 제자에게 손을 대서는 안 된다.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것을 보니 강남성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어디에서 온 놈이냐!”
“나? 수약주에서 왔는데?”
장일선이 애매한 눈으로 청년을 보았다.
전쟁 상대인 영천주와 달리 수약주는 완산주와 나쁜 관계가 아니었다.
“타지 사람이라고 해서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네가 본문의 제자들에게 상해를 입혔으니 우리와 함께 도솔문으로 가야겠다. 명진, 송원, 이자를 잡아라.”
명이 떨어지자 그의 뒤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던 두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이윽고 명진이 연적하의 좌측, 송원이 우측으로 다가갔다.
순간 연적하는 도솔문도들의 안하무인 같은 태도에 배알이 뒤틀렸다.
기껏 생각해서 조용히 사라져 주려 했는데 잡아가겠다니?
짜증이 치밀어 오른 그는 자신의 의자에 도로 앉았다.
명진과 송원이 연적하의 좌우측 겨드랑이에 막 손을 밀어넣으려는 순간이다.
‘딱!’ 하는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명진과 송원이 뒤로 나뒹굴었다.
제대로 맞았는지 비칠비칠 일어서는 그들의 이마 정중앙이 금방 부풀어 올랐다.
번개 같은 청년의 수법에 장일선은 흠칫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번에는 금산현 제일 고수인 손무치가 앞으로 나섰다.
“나는 도솔문의 손무치요. 그쪽은 누구요?”
“나? 지나가는 나그네.”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게 죄를 지어서요? 아니면 천태종이 알면 안 되기 때문이오?”
손무치는 은근슬쩍 청년을 이상한 쪽으로 몰아갔다.
물론 상대가 천뢰종의 간자라고 생각해서라기보다는 압박을 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연적하는 눈곱만큼의 압박도 느끼지 않았다.
“당신들은 내 이름을 알 자격이 없어. 귀찮게 하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가. 가서 처음에 징징댄 두 놈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봐. 그럼 당신들도 알게 될 거야. 내가 시비를 건 게 아니라는 걸.”
설명을 마친 연적하는 다시 술잔에 홍설아를 따랐다.
이윽고 그가 막 술잔을 집어 드는데 별안간 손무치가 덤벼들었다.
“차핫!”
연환십팔수라 불리는 도솔문의 주먹질이 화려하게 터져 나오기 직전에, 막혔다.
연적하가 내뻗은 손무치의 주먹을 잡은 뒤 힘껏 비튼 것이다.
‘빠득!’ 하고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손무치의 손목이 한바퀴 돌았다.
“악!”
생전 처음 느끼는 고통에 손무치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연적하가 ‘쯧쯧’ 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말했잖아. 좋은 말로 할 때 가라고. 왜 착한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좋은 날이니까 이 정도로 끝낼게. 마음 변하기 전에 어서 가.”
믿고 있던 손무치가 당하자 장일선은 감히 덤벼들 생각도 하지 못했다.
명진과 송원이 부러진 손을 잡고 덜덜 떠는 손무치를 부축하고 먼저 나갔다.
장일선은 떠나기 직전, 청년이 소년에게 볶음밥 주문하는 소리를 들었다.
‘빠드득! 이놈이 우리 도솔문을 이처럼 무시하다니.’
도솔문의 제자들을 상하게 했으니 달아나야 마땅하다.
그런데 술을 처마시던 놈은 들으라는 듯 밥까지 주문하고 있었다.
‘인생의 마지막 식사로 만들어 주마.’
이를 갈던 장일선은 반점을 나가자마자 바람처럼 도솔문으로 달려갔다.
***
도솔문.
객청.
삼 남 일 녀가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분위기가 여간 화기애애한 게 아니다. 가만히 들어 보면 대화의 대부분은 장천 진인의 스승 자랑이었다.
“웅아, 너는 우리 스승님께서 얼마나 대단한 분이신 줄 아느냐?”
조부의 말에 도솔문 문주 장웅이 웃으며 화답했다.
“소손, 종문의 일에 어두우니 가르쳐 주십시오.”
“험, 우리 스승님으로 말하자면 비경에서 옥형검령(玉衡劍靈)을 얻으신 분이시다. 너 옥형검령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느냐?”
“모릅니다.”
“비경에서 얻을 수 있는 검령은 대부분 살검령이 아니면 활검령이다. 하지만 성수검령(星宿劍靈)이라 불리는 특별한 검령이 있다. 이른바 ‘별의 혼’이라 불리는 성수검령은 수백 년 간격으로 세상에 나오지. 우리 스승님이 얻은 옥형검령이 바로 그 성수검령의 하나이니라. 옥형검령에는 북두칠성의 기운이 담겨 있으니 검령 중에 검령이라 할 수 있다. 스승님께서 검령과 처음 동화를 하시고 독요의 경지에 오르실 정도로 말이다.”
“아아! 하면 사조님께서 노조가 되신 것입니까?”
장웅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중년 여자를 보았다.
진인이 찾아가도 성주가 맨발로 뛰어나와 맞이한다는데 노조라니!
수백 살이지만 아직도 중년으로 보이는 여자, 소화연 노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장 문주, 나는 너의 사조가 아니다. 그러니 이후로는 노조라고 부르도록 해라.”
“송구합니다. 제가 너무 들떠서 그만 실언을 하였습니다.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장웅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조부를 핑계로 어영부영 엮어 보려 했는데 상대는 보통이 아니었다.
하기야 보통 사람이면 노조에 오르지도 못했을 게다.
한편 장천 진인은 스승이 자신의 손자를 밀어내자 안타까웠지만 끼어들지 않았다.
소화연 노조의 칼 같은 태도로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질 즈음이다.
도솔문의 일대제자 장일선이 월동문을 지나 허겁지겁 달려왔다.
요란한 발소리가 나자 장웅이 인상을 찌푸렸다.
천태종의 노조와 진인을 모신 자리에 이게 무슨 소란인지 모르겠다.
“귀빈들 앞에서 웬 호들갑이냐?”
그렇지 않아도 소화연 노조에 한 소리 들은 직후라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장일선이 급히 머리를 숙이며 고했다.
“조금 전 서가반점에서 도솔문의 이대제자 둘이 외지인에게 맞고 왔습니다. 제가 흉수를 잡기 위해 손무치와 이대제자 셋을 데리고 반점으로 갔지만……. 놈의 공격으로 오히려 손무치의 손이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손무치가 당했다고? 외지인이 몇이나 되기에?”
“……혼자였습니다. 하지만 절대 평범한 놈은 아니었습니다. 이 시국에 보란 듯 홍설아를 마시는 것으로 보아 영천주의 간자일지도 모릅니다.”
장일선은 청년이 ‘수약주에서 왔다’고 한 말을 고의로 빠트렸다.
지금의 상황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아서다.
“영천주?”
장웅 문주가 조부인 장천 진인을 힐끔 보았다.
그가 정말 영천주의 간자라면 천뢰종에서 보냈을 확률이 높은 까닭이다.
장천 진인이 장일선에게 물었다.
“그자가 쓰는 무공을 보았느냐?”
“보았으나 시정잡배들이나 사용할 법한 간단한 주먹질이었습니다.”
“그에 관해 아는 것이 있다면 모두 말해 보거라.”
“처음 놈에게 당한 문도들이 고색 창연한 단검과 옥적(玉笛)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옥적?”
장천 진인이 스승인 소화연 노조를 돌아보았다.
옥적은 폭죽과 함께 종문에서 신호용으로 종종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역시나 소화연 노조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장천 진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뢰종과 전쟁 중인 천태종으로서는 그냥 흘려 버릴 사안이 아니었다.
“그자가 정말 천뢰종과 관계된 자인지 알아야겠으니 앞장서거라.”
“예!”
장일선이 씩씩하게 답했다.
이럴 때면 든든한 뒷배를 두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
서가반점.
연적하는 창가에 앉아 추가로 주문한 볶음밥을 느긋하게 먹었다.
달달한 홍설아와 잘 구워진 닭고기, 그리고 볶음밥까지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식사다.
“아저씨, 혹시 종문 분이세요?”
서윤의 말에 연적하가 되물었다.
“왜?”
“종문 분이라고 해도 달아나는 게 좋을 거예요. 도솔문 문주님의 조부는 천태종 진인이거든요. 게다가 지금은 그 진인의 스승님까지도 도솔문에 와 있다고요. 천태종 분들이 오면 뼈도 못 추릴걸요?”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요즘 완산주에서 홍설아를 먹으면 안 되는 분위기냐?”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랬다면 저희 아버지도 홍설아를 안 팔았죠. 도솔문 제자들이 술 먹고 괜히 그러는 거예요. 아마 그 사람들도 영천주의 청주(淸酒)를 먹었을걸요? 영천주의 청주가 얼마나 유명한데요. 반점이나 주루치고 영천주 술을 안 파는 데가 어디 있다고요.”
“그런데 왜 그 지랄이래?”
“도솔문이잖아요. 도솔문 문주님의 조부가 천태종 진인이니까, 괜히 그러는 거죠. 자기들이 천태종 제자라도 되는 것처럼.”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설명이다.
연적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소년을 보았다.
“왜요?”
“너 똑똑하냐?”
“그런 질문이 어디 있어요? 쓸데없는 소리 마시고,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까 얼른 가세요. 먹다 남은 건 제가 후딱 싸 드릴게요.”
“됐다. 먹다가 자리 옮기는 거 아니다.”
“와아! 허세 장난 아니다. 아저씨 그러다가 진짜 죽어요. 종문 고수들은 일반인 알기를…….”
말하다 말고 서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 쳐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반점 문을 열고 도솔문 관계자들이 조용히 들어왔다.
장일선이 장웅 문주에게 바싹 붙어 속삭였다.
“문주님, 손무치의 손을 부러뜨린 게 바로 저놈입니다. 도솔문에서 올 걸 알면서도 달아나지 않은 걸 보면, 보통 놈이 아닙니다.”
장웅 문주는 청년을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하필 볶음밥 접시에 얼굴을 처박고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간덩이 하나는 부은 게 확실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도솔문에 시비를 걸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테니까.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지?’
장웅 문주가 속으로 청년의 대범함에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 장천 진인이 나섰다.
그가 첫마디를 뗌과 동시에, 청년이 입안 가득 음식을 문 채로 돌아 보았다.
“네가…….”
“연 진인?”
제자인 장천 진인을 거칠게 밀치고, 소화연 노조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마치 생이별한 연인과 우여곡절 끝에 재회라도 한 듯 저돌적인 기세다.
그녀의 격한 반응에 느긋하게 앉아 있던 연적하가 움찔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