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44
644회. 밤하늘이 검형으로 가득했습니다.
아홉 종문의 뿌리는 같다.
그래서 종문의 조직이나 무공에 유사점이 많다.
어디 조직과 무공뿐이랴.
성물과 천문(天門)을 생각하면, 동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 만큼 공법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도 비슷했다.
예컨대 천지종에도 진전은 빠르지만 위험하다는 이유로 금지된 공법들이 있다.
보통 때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공법이지만, 지금은 대변혁의 시대.
성물의 파괴는 종문 제자들을 무모하게 만들었다.
어떤 이들은 금지된 공법을 대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구회일 진인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는 연모하던 빙설화가 전무후무할 속도로 승급해서 아득히 멀어지자, 스승인 일성 제군을 찾아가 ‘더 빠른 성취를 얻게 해 달라고’ 사정했다.
그건 금지된 공법을 가르쳐 달라는 소리와도 같았다.
제자의 간청에 일성 제군은 복마신공(伏魔神功)의 공법을 가르쳤다.
그것은 이름 그대로 마(魔)를 굴복시켜 다루는 공법이었다.
여기서 마란 마기(魔氣)를 의미한다.
마기를 얻는 방법은 간단했다.
영물이나 신수(神獸)처럼 마물들에게서도 혼석이나 영석이 나왔다.
마기에 오염된 혼석과 영석은 특별 관리대상이라 제군이 아니면 접근하기도 어렵다.
일성 제군은 제자에게 복마신공을 전수하고, 오염된 혼석을 내어 줬다.
구회일 진인은 마기를 자양분 삼아 빠르게 원영 칠 성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왕옥산 비경에서 북두검령을 얻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것이 지난 반년 동안 그에게 일어난 극적인 변화다.
초반객점.
구회일 진인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연적하는 과거 ‘원영 삼 성’이었던 자신을 찍어 누를 정도의 고수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그런데 이름이 어째…….’
왕옥산 비경에 들었던 종문 제자치고 연적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특히나 천지종에서 그 이름은 꽤나 유명했다.
과장됐다는 평이 따라다녔지만, 그래도 빙설화 제군과 검을 나눈 사람인 까닭이다.
‘소요종의 연적하일까? 아니면 동명이인(同名異人)?’
과거 소요종이냐고 물었을 때 놈은 극구 ‘석경장 사람’이라 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소요종은 아닌 것 같다.
놈이 정말 소요종 사람이었다면 자신을 살려 보낼 리 없으니까.
동명이인이라 결론 내린 그는 다섯 명의 천왕단 진인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창가 쪽에게슴츠레한 눈의 청년이 있소. 무위가 뛰어난 놈이니 일시에 덮쳐 제압합시다.
천왕단 진인들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객점 식당은 손님들로 가득했지만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종문 제자에게 일반 백성은 의자나 탁자와 비슷했다.
싸움에 앞서 의자와 탁자가 걸리적거린다고 정리하는 사람이 있을까?
천왕단의 진인들이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이윽고 구회일 진인이 벼락처럼 검을 뽑아 연적하에게 휘둘렀다.
싸아아- 싸아-.
시퍼런 진검강 두 줄기가 몰아쳐 갔다.
동시에 다섯 명의 진인들도 일제히 검신합일로 연적하를 향해 날아갔다.
콰직. 서걱-!
탁자와 의자는 물론 사람까지도 두 쪽이 났다.
예기치 못한 습격에 연적하 주위의 손님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저녁을 먹고 있던 연적하의 몸이 의자에 앉은 채 위로 떠올랐다.
콰지직!
그는 단번에 천장을 뚫고 객점 지붕 위로 솟구쳐 올랐다.
뒤이어 여섯 개의 빛줄기가 그를 지나쳐 밤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구회일을 알아본 연적하가 차갑게 외쳤다.
“무슨 짓이야!”
밤하늘 위에 오연하게 서 있던 구회일 진인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답했다.
“우리는 천지종 팔문각의 천왕단이다. 적이 잠입했다는 제보를 받고 왔다. 네가 소요종과 관계되지 않았다면 저항하지 말고 내 지시를 따라라.”
뒤늦게 비명 소리와 함께 객점 식당의 손님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갔다.
연적하가 기막힌 얼굴로 말했다.
“보아하니 구면인데 그냥 말로 하지, 왜 죄 없는 사람들까지 죽이며 난리냐?”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순순히 우리를 따라 천지종으로 갈 테냐? 아니면 이 자리에서 죽겠느냐?”
구회일 진인은 자신의 우위를 확신했다.
북두검령을 얻으면서 원영 구 성에 올랐으니 지려도 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연적하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더니 진짜 그러네. 살려 달라고 질질 짜서 보내 줬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치냐. 진짜 용서가 안 된다. 너는 죽어야겠다.”
허공에 떠 있던 천왕단 진인들이 당혹스러운 눈으로 구회일 진인을 보았다.
구회일 진인을 살려 보냈다는 말은 뭐고, 뒤통수는 또 뭐란 말인가.
뭐라고 반박하려던 구회일 진인은 문득 고개를 쳐들었다.
갑자기 머리 위에서 기이한 기운이 느껴져서다.
그를 따라 무심코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천왕단 진인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밤하늘 위에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검형(劍形)이 떠 있었다.
날카로운 검 끝을 아래로 한 검형은 끔찍하게도 별들만큼이나 많았다.
연적하의 검결지가 구회일 진인을 가리키자 검형이 일제히 움직였다.
깜짝 놀란 천왕단의 진인들은 급히 구회일 진인에게서 멀어졌다.
싸우고 말고를 생각할 틈이 없었다.
천왕단의 다섯 진인들은 본능적으로 죽음이 쏟아져 내리는 자리를 피했다.
구회일 진인은 당황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북두검령을 믿었다.
남두성군이 생(生)을 관장한다면, 북두성군은 사후(死後)를 주재하는 존재다.
그런 이유로 성수검령(星宿劍靈)인 북두검령은 살검령의 시작이자 끝으로 알려져 있다.
구회일 진인은 검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한편, 검결지를 뻗었다.
구회일 진인의 앞쪽 공간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붉은 검형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북두 검령의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감에 천왕단 진인들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었다.
태양처럼 붉게 타오르는 북두검령이 작은 검형들을 압살할 것 같았다.
구회일 진인 역시 그런 기대감으로 북두검령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윽고 북두검령과 떨어져 내리던 검형들이 충돌했다.
콰콰콰콰쾅-!
귀를 울리는 폭발음이 연속으로 들려왔다.
“아아!”
손나인 진인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마치 불길에 휩싸인 거대한 검에 불나방들이 몰려드는 것 같았다.
구회일 진인의 우세를 예감한 그녀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기쁨은 잠깐, 이내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낙숫물이 바위에 구멍을 뚫는다던가!
불나방으로 보이는 검형에 북두검령의 붉은빛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착각인가 싶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흔들림은 더 심해졌다.
쿠쿠쿵-!
어느덧 폭발음마저도 묵직하게 변했다.
곧이어 태양처럼 불타던 북두검령이 몰려드는 검형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조각 났다.
꽈광!
뭔가 터져 나가는 폭발음과 함께 불덩어리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북두검령이 터지자 구회일 진인은 쓰러질 듯 한차례 휘청거렸다.
내부의 충격으로 눈앞이 캄캄했지만, 구회일 진인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지금은 눈앞의 검형들을 막는 게 우선이었다.
그는 단사천벽(單紗天壁)의 검공을 진검강으로 펼쳤다.
검사(劍絲)가 아니라 진검강으로 만들어진 검벽이 구회일 진인의 앞에 세워졌다.
구회일 진인은 검벽을 세운 뒤 달아날 생각이었다.
진검강으로 만들어진 검벽이라면 어느 정도 시간을 벌어 줄 테니까.
콰작!
그런 그의 기대는 단 한 번의 격돌에 허물어졌다.
검형이 검벽을 부수고 그에게 몰아 닥쳤다.
“헉!”
대경실색한 그는 반사적으로 대라금강의 호신강기를 끌어 올렸다.
쩡-!
검형에 가슴을 적중당한 구회일 진인이 피를 뿜으며 날아갔다.
그런데 그 모습이 기괴하다.
구회일 진인의 칠공에서 시커먼 연기가 뭉글뭉글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누가 봐도 마물화되어 가는 모습이었다.
정신적인 충격과 연이은 치명상으로 주화입마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런 그의 뒤로 수백 개나 되는 검형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순간 손나인 진인이 다급히 소리쳤다.
“멈추어라! 구 진인은 일성 제군님의 제자다! 구 진인을 죽이면 일성 제군님이…….”
퍼퍽-!
모골이 송연한 타격음과 함께 허공에서 피의 비가 내렸다.
손나인 진인이 멍한 눈으로-조금 전까지 구회일 진인이 있던-빈 하늘을 응시했다.
일성 제군의 제자가 임무 수행 중에 공중분해 됐으니 천왕단 역시 책임을 면치 못할 터였다.
뒤늦게 정신이 든 그녀는 빠르게 천왕단 진인들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원영 구 성’의 구회일 진인이 당해 내지 못했다면 자신들은 말할 것도 없다.
‘종산으로 달아난다.’
멈칫하던 손나인 진인과 천지종 진인들이 다섯 방향으로 흩어졌다.
연적하는 천지종 진인들의 뒤를 쫓지 않았다.
그는 뻥 뚫린 지붕을 통해 다시 객점 식당으로 내려왔다.
난장판으로 어질러진 식당과 다섯 구의 시체를 보니 마음이 착잡했다.
일반 백성들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다니.
이놈의 세상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천지종이 시끄러워지면 안 되는데.’
이런 식으로 불필요한 주목을 끌면 남궁연과의 만남도 꼬이게 된다.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종산으로 가 봐야겠다.’
자정쯤에나 슬슬 움직이려고 했는데 시간을 앞당겨야 할 것 같다.
마음을 굳힌 연적하는 객점에서 나가자마자 즉시 운종술로 자리를 떴다.
***
위례성.
천지종 종산 원덕산.
팔문각.
원광안 노조가 모처럼 찾아온 천수각 각주와 차를 마시고 있을 때다.
객청의 앞마당으로 다섯 명의 진인들이, 마치 살에 맞아떨어진 새들처럼,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구주를 오시하는 천지종 종산에서 이렇게 경우 없는 행동이라니!
원광안 노조가 황당한 눈으로 난입하다시피 한 불청객들을 쏘아보았다.
그런데 오후에 이포진으로 보냈던 천왕단이다?
“너희는 천왕단이 아니냐?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팔문각에서 이 무슨 짓이냐?”
그러자 천왕단 진인 중에 연장자인 무송 진인이 답했다.
“각주님, 큰일 났습니다.”
무송 진인은 외부인 앞에서 차마 더 말하지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그제야 곡절이 있음을 짐작한 천수각의 곡분조 노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일이 생긴 듯한데 먼저 일어나겠소. 남은 이야기는 다음에 나누도록 하십시다.”
“그러지요. 살펴 가십시오.”
곡분조 노조는 난입한 다섯 진인의 얼굴을 확인한 뒤 바람처럼 사라졌다.
주위에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한 원광안 노조가 천왕단의 진인들에게 물었다.
“큰일이라니? 이포진에서 큰일 날일이 뭐가 있다고. 그리고 구 단주는 어떻게 하고 너희들만 왔느냐?”
“구 단주는 죽었습니다.”
순간 원광안 노조가 버럭 소리쳤다.
“죽다니! 그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야! 천지종 종산 인근에서 ‘원영 구 성’의 고수가 죽다니! 그게 말이 될 법한 소리라고 생각하느냐! ‘원영 오 성’의 너희도 이렇듯 멀쩡하거늘, 왜 구 단주가 죽었다는 거냐!”
“이포진에 나타났다는 고수와 구 진인은 구면인 것 같았습니다. 구 진인의 지휘로 저희가 급습을 하였다지만, 그자를 당해 내지 못하고 당했습니다.”
“천왕단의 여섯 진인이 급습까지 하고도 당했다고? 거기다 구 진인이 죽고?”
원광안 노조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구회일 진인은 일성 제군의 제자라 특별히 관심을 쏟았는데 죽다니 기가 막혔다.
“예, 그의 검공은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그 파괴력이 무지막지했습니다.”
“처음 보는 검공이라고?”
“예, 밤하늘이 검형으로 가득했습니다.”
원광안 노조가 인상을 찌푸렸다.
“쯧! 대체 검형이 몇 개나 되기에 가득했다는 것인지 똑똑히 말해 보거라.”
‘몇 개나 되느냐?’는 질문에 무송 진인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손나인 진인이 끼어들었다.
“각주님, 검형은 마치 밤하늘의 별들처럼 셀 수가 없었습니다.”
“밤하늘의 별이라니! 그게 무슨 개소리야! 단체로 환술에 당하기라도 한 것이냐?”